서적소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볼테르 / 옴므리브르 / 2015.10.28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광신과 편협함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장 칼라스의 무죄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볼테르는 사건의 본질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편협함과 맹신에 있다고 보았다.
‘장 칼라스 사건’은 볼테르가 ‘정의’에 대한 열정과 염원을 표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다. 볼테르는 관용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해 철학적인 추론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역사와 성서, 강론, 도덕론 등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인용한다. 생각의 자유와 종교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인류와 국가에 큰 이익이 된다는 볼테르의 주장은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로부터 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냈다.
볼테르는 무엇보다도 ‘이성’을 강조하면서 자연법에 비추어 관용을 설명했다. 그에게 ‘사랑’과 ‘관용’이 없는 이성은 광신보다 더 위험한 것이다. 무신론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은 이데올로기가 종교로 변질되어 서로를 박해했던 인류의 어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편협함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볼테르의 열정과 인간애가 담긴 책이다.

○ 목차
볼테르 / 7
빅토르 위고의 추모사로부터 / 16
옮긴이의 말 / 22
1장 [장 칼라스 사건] 개요 / 33
2장 [장 칼라스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 / 51
3장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 / 57
4장 신앙의 자유가 위험하다면 과연 그것을 허용한 나라가 있었겠는가? / 65
5장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면 좋은 점 / 79
6장 자연이 인간에게 편협함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 86
7장 고대 그리스인도 박해를 겪었을까? / 89
8장 로마인들이 보여 준 종교적 관용 / 95
9장 순교자 / 107
10장 순교와 박해에 관한 거짓 전설의 위험성 / 129
11장 종교가 박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 143
12장 유대인들은 편협함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나? / 155
13장 유대인들이 누린 율법 해석의 자유 / 177
14장 만약 예수그리스도가 편협한 태도를 가르쳤다면… / 191
15장 편협한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증언들 / 202
16장 죽어가는 사람과 교리에만 밝은 사람의 대화 / 211
17장 어느 예수회 신부가 르텔리에 신부에게 쓴 편지(1714년 5월 6일) / 219
18장 관용이 필요 없는 예외적인 경우 / 227
19장 중국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보고서 / 233
20장 차라리 미신을 믿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 241
21장 너그러운 마음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 249
22장 보편적 관용 –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 254
23장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 263
24장 덧붙이는 말 / 266
25장 글을 마치며 – 편협함에 희생된 장 칼라스를 위하여 / 275
참고문헌 / 284
해외 독자 서평 / 285

○ 저자소개 : 볼테르 (Voltaire,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 (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 (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 (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 (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 (Sceaux) 성 (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 (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 (L’Ingenu)』 (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 (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
볼테르 (Voltaire)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립 오를레앙의 섭정(1715년~1723년) 시기에는 오를레앙 공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이는 문학 살롱에 참여했다. 그러던 1716년,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 〈나는 보았네〉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비극이나 서사시와 같이 당대에 인정받고 있던 장르에 도전했는데, 이름을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그리고는 1718년 11월(24세), 옥중에서 집필한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어느 귀족과의 싸움으로 다시 부당하게 투옥되었다가 국외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볼테르는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고난 비판 정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 16세기 내내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1728년)를 펴낸다.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는 비극 『자이르』 (1732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1733년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샤틀레 후작부인(에밀리 뒤 샤틀레)의 애인이 되어 그녀의 영향으로 문학가에서 철학자로 변신한다. 볼테르는 『철학 편지』(1734년)를 통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이상화하고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종교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문제가 되자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하여 파리 입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샤틀레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10여 년간 저술과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뉴턴에 관한 편지』(1736년)와 『뉴턴 이론의 철학적 요소들』(1736년)을 출간하고 비극 『마호메트』(1741년)와 『메로프』(1743년) 등도 발표하였다.
1744년에는 친구의 외무장관 취임을 계기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들어가 역사 편찬관이 되었다. 이후 17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혀 비로소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1750년,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 둔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역사서 『루이 14세의 세기』(1751년)를 완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와 마찰이 일어나자, 1753년에는 베를린을 떠나게 된다.
이후 프로이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의 국경에 도착(1754년)한 볼테르는 파리 입성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스위스 국경 인근인 페르네에 정착한다. 이곳에 머무는 20여 년간 볼테르는 계몽 사상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볼테르는 수많은 저서 출판과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는데, 그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재건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페르네를 활기찬 소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볼테르는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시기에 종교적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재판을 규탄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원서 제목: 관용에 대한 개론)』(1763년)와 세계 문명사인 『풍속에 관한 에세이』(1756년), 철학 콩트인 『캉디드』(1759년), 『철학 사전』 (1764년) 등이 만년에 출간되었다.
1778년,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다. 생애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 의 상연을 위해 파리를 찾은 볼테르는 이 작품의 첫 공연을 직접 감독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렌』을 관람하기 위해 ‘코메디 프랑세즈’를 찾은 대중들은 그를 둘러싸고 “칼라스 옹호자 만세!”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러 온 것이었으며, 볼테르가 일생 동안 제안한 새로운 가치관, 즉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1778년 5월 30일에 사망한 볼테르는 비록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는 못했지만,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 역자 : 김계영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디드로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학과 문화, 서양 근현대 문학에 대한 강의를 계속하며 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연구와 번역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 문학사』 (상, 하)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앨리스』, 『보바리』 (공역), 『달랑베르의 꿈』, 『사랑에 빠진 악마』, 『불쾌한 이야기』, 『마르셀 뒤샹』 (공역), 『키는 권력이다』, 『르 몽드 환경 아틀라스』, 『르 몽드 세계사』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관용에 대한 이 책은 힘과 지혜를 가진 분들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써 대단히 겸허하게 제출하는 탄원서이다. 이 책은 언젠가 결실을 맺을 한 개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글을 마치며 – 편협함에 희생된 장 칼라스를 위하여」중에서
“인간의 법은 어떤 경우에라도 이 자연법을 토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법과 인간의 법은 이 세상 어디서나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자연이 인간에게 편협함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중에서
“이 현명한 스승들이 오만한 무지를 발휘하여 폭력과 박해마저 가한다면 ‘잔인한 멍청이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 자신의 종교를 근거로 하여 이웃을 증오하는 태도야말로 맹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맹신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미신을 믿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중에서
“자비심은 상처를 입지 않았고 평화도 지켜졌다. 논쟁을 벌이면서도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겸손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이 어디에 있는가!” —「종교가 박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중에서
“서로를 미워하라고 우리에게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니었고, 서로의 목을 조르라고 손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도와서 힘들고 덧없는 삶의 짐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소서. 무기력한 육신을 덮고 있는 의복들 간의 사소한 차이, 불충분한 언어들 간의 사소한 차이, 모든 우스꽝스런 관습들 간의 사소한 차이, 우리의 모든 불완전한 법률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우리의 당치않은 의견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우리들 눈에는 불평등하지만 당신 앞에서는 아주 평등한 우리의 모든 조건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 같은 존재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계기가 되지 않게 해 주소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중에서
“한편에서 본성이 부드럽고 자비로운 목소리를 들려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본성의 적敵인 광신이 포효한다. 평화가 모습을 드러낼 때, 편협함은 자신의 무기를 벼리고 있다.” —「덧붙이는 말」중에서
“종교는 우리가 이승과 저승에서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저승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승에서 행복하려면 인간의 부족한 본성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 필요한가? 너그러워야 한다.” —「너그러운 마음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중에서
“진정한 기적들로 얻은 믿음을 흔들어 놓는 이 모든 거짓 기적들, 당신이 복음서의 진리에 덧붙여 놓은 그 모든 터무니없는 전설들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신앙심이 사라지게 한다.” —「순교와 박해에 관한 거짓 전설의 위험성」중에서
“민족의 역사를 통틀어 너그럽고 관대하며 자비로운 면모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유대인의 기나긴 역사 전체를 덮고 있는 그토록 끔찍하고 야만적인 구름 사이로 관용의 빛이 널리 퍼져 나간다.” —「유대인들은 편협함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나?」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종교적 박해의 근거가 된 편견과 미신을 타파하고, 관용 정신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다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구약과 신약 성서 등에 많은 장을 할애한 데에 있다.
볼테르는 먼저 종교와 생각의 자유가 충만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례를 들며 박해의 근거를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하며, 그의 복권은 고대 그리스가 오히려 종교적 관용이 넘쳐난 사회였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둘째, 고대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국가보다는 종교를 우선시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의 태도 그리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들면서 고대 로마인에 대한 신화를 반박한다. 박해에 대한 거짓 신화를 볼테르가 공격한 이유는 꾸며진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종교에 냉담해지고, 무신론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무신론은 사랑과 관용이 없는 이성만 발달한 궤변론이므로 광신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편협함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유대인들을 둘러싼 오해를 반박했다. 유대인들의 편협함의 이면에 있는 율법 해석의 자유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목자로 세우는 신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어느 구절에서도 예수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박해하라고 말한 대목을 발견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즉, 그리스도교가 원래 편협한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단과 폭력적인 면모를 보여 온 것은 교리 논쟁과 종교에 대한 잘못된 열정 때문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볼테르가 역사 속에서 종교적 관용이 넘쳐났던 시기를 다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장 칼라스 사건’을 일으킨 광신과 맹신이 박해의 이유를 아무데서나 찾고 있었으며 또한 편협한 정신은 가장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는데 꼭 필요한 논증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 왜 우리는 ‘관용’에 관해 말해야 하는가?
볼테르의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250여 년 전, 광신과 편협함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칼라스의 무죄를 밝힘으로써 억울한 희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인 책이다. 우리가 볼테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차이’를 ‘다름’으로 인식하고, 그 ‘다름’을 빌미로 삼아 온갖 잔인한 폭력과 살인을 초래하는 편협함을 치유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관용의 정신이다.
가령, 볼테르는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이는 다른 의견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칼라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하므로 우리도 역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볼테르에게 있어 진정한 관용이란, 부족한 존재인 우리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볼테르의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에 관해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 ‘장 칼라스 사건’ 개요
장 칼라스는 툴루즈에서 도매상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가장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둘째 아들이 가톨릭교로 개종했지만 용인했으며,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하녀에게 자식들을 모두 맡길 정도였다.
그러던 1762년 5월 9일, 장남인 마르크 앙투안 칼라스가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의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마침내 신교도에게 적대적이며 맹신적이었던 당시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툴루즈 법원은 여론에 휩쓸려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이후 거듭되는 가혹한 심문에도 장 칼라스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맹신과 편견에 빠진 일부 재판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장 칼라스만 수레바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매질과 고문을 하는 사형을 집행했다.
– 해외 독자 서평
관용이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자체이다.
우리 모두는 약점과 오류투성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의 어리석음을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 _ID 크리스토프 플레셔(독일)
편협함은 인간의 본성일까?
나는 볼테르의 비판 정신에 매우 공감한다.
일본은 과연 너그러운 사회일까?
그렇다면 미국은? 유로화의 위기로 흔들리고 있는
유럽은 또한 어떠한가?
이 세상에서 편협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볼테르의 이 책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 읽힐 것이다 . _ID 시게노무 후지오카(일본)
이 책은 내 삶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내적 갈등이 심했던 십 대에 이 책을 처음 접했고 ,
대학에서 융합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 다시 한 번 읽었다 .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나는 이 책을 세 번째로 펼치고 있다. _ID 밥 로스(미국)
볼테르의 글에는 놀라운 면이 있다.
문체가 명료하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가 고질병처럼 앓고 있던 심각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야말로 볼테르의 글에서 나오는 힘이다.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영양제 같은 책이다. _ID 안토니오(이탈리아)
표현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 그리고 인권의 옹호를 주장하는 볼테르의 펜은 날이 선 칼처럼 예리하여
우리 모두의 의식을 일깨워 준다.
종교의 자유, 관용 정신, 생각의 자유와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_ID 고리(영국)
볼테르는 냉소적이고 신랄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관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_ID 슈도니모(이탈리아)
머리와 가슴이 모두 즐거워지는 책이다.
당시에는 페이스 북과 같은 매체가 없었음에도
볼테르는 이 책 한 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줄 알았다. _ID 오트마르 힌츠(독일)

○ 독자의 평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볼테르 저/김계영 역/옴므리브르
.원제 : Traite sur la tolerance
1.
볼테르는 누구인가?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왕실 사료 편찬관을 지낸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Voltaire)’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2.
정치와 이상의 변화 틈바구니에서 역시 굴곡 많은 삶을 살아가야했던 볼테르는 반봉건, 반교회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책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의 모티브가 되는 ‘칼라스 사건’이 있다. 칼라스 사건은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신교도 장 칼라스에 대해, 볼테르가 그의 무죄를 주장하여 복권시킨 사건이다. 이는 당시 프랑스에 만연한 종교적 맹신과 타종교에 대한 편협함이 빚어낸 사건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도 볼테르는 줄곧 종교적 맹신과 광기를 비난하며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3.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관용’은 자유, 평등, 박애를 아우르는 프랑스의 상징적인 정신이다. 관용을 의미하는 ‘똘레랑스 (tolerance)’는 18세기 초 절대 왕정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이후 관용은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문화 전반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정착했다.
4.
칼라스 사건의 원인이 구교도가 신교도들에 대해 품고 있던 불신과 증오 그리고 구교도가 보인 맹목적인 신앙 때문이라고 판단한 볼테르는 편협한 신앙을 비판하기 위해 관용의 역사를 고찰한다. 역사에 대한 볼테르의 관심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친 근세사 및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이 벌어진 16세기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유대인의 역사 등의 고대와 전반을 아우르며, 좀 더 시야를 넓혀 중국과 일본의 역사까지도 포함된다.
5.
‘너그러운 마음이 많이 아는 것보다 소중하다.’ 볼테르는 “교리의 수가 적을수록 논쟁은 줄어든다. 논쟁이 줄어들수록 불행한 일도 줄어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틀린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 종교는 왜 필요한가? 각 종교마다 지향하는 점이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행복한 삶, 평안한 삶을 근간으로 할 것이다. 볼테르는 이승과 저승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승에서 행복하려면 인간의 부족한 본성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 필요한가? 너그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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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는 1878년 5월 30일, 파리 게테 극장에서 열린 볼테르 서거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 당시 경박하면서도 암울한 모순 속에서 서로 똘똘 뭉친 왕과 귀족 그리고 그들과 야합한 부르주아들의 권력에도 볼테르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 맞섰습니다. 양심 없는 권력과 맹목적인 군중에 맞서 또한 서민들에게는 위압적이고 가혹하면서도, 왕 앞에서는 절대복종하며 무릎을 꿇는 귀족들에게 맞서 볼테르는 홀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볼테르를 통해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을 깊이 마음에 담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