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광분 (狂奔)
염상섭 / 프레스21 / 1996.11.20
소설가 염상섭이 1929년 10월 3일부터 1930년 8월 2일까지 연재한 장편 「광분 (狂奔)」이 프레스21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김경수씨가 감수한 이 소설은 1920년대말 친일을 거부한 한집안의 몰락 과정을 그렸다.

– 소설가와 언론인으로는 출중했으나 생활인으로는 무능
장기를 빼앗기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손발 묶인 지식인들을 형상화한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문단에 화제를 뿌렸다. 한국 근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표본실…’은 당시 조선 문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새로운 양식의 소설이었다. 훗날 ‘삼천리’ 1933년 9월호는 “감상과 인도주의에 젖어오던 당시 문단은 실로 섬뜩해 했다”고 평가했다.
‘표본실…’을 읽고 놀란 사람 중에는 김동인도 있었다. 당시는 조선 문단이 이인직의 독무대와 이광수의 독무대를 지나서 김동인의 독무대 시기였는데 염상섭이 ‘진짜 근대소설’을 들고 나오자 김동인이 강적이 나타났다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염상섭은 최남선이 발간한 주간지 ‘동명’의 창간 (1922.9)을 준비하면서 ‘묘지’를 발표 (1922.7)하고 최남선이 주도한 조선문인회 결성 (1922.12)에 힘을 보탰다. 1924년 3월 ‘동명’의 후신으로 창간된 시대일보 사회부장이 되자 ‘묘지’를 ‘만세전’으로 제목을 바꿔 4월부터 시대일보에 연재했다. ‘만세전’에서 그는 주인공을 통해 일본의 무자비한 횡포, 조선의 변하지 않는 의식과 낡은 관념을 질타했다.
1924년 9월 시대일보를 그만두고 1925년 10월부터 첫 장편소설 ‘진주는 주엇으나’를 동아일보에 연재한 후 일본 문단에 진출하기 위해 1926년 1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 몇 편의 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후 1928년 8월 경성으로 돌아와 1929년 5월 자신보다 13살이 어린 20세 처녀와 결혼했다.
1929년 9월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입사해 장편소설 ‘광분’ (1929.10~1930.8)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신생’지에 단편 ‘출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광분’에서는 통속적인 애정을 묘사하면서 광주학생의거 등 시국 관련 이야기를 교묘하게 끌어들였다. ‘출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김동인의 아픈 상처를 건드렸다.
당시 김동인은 평양 보통강 관개사업을 벌였다가 막대한 유산을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궁핍해지고 1927년 아내까지 여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는 등 가정 파탄까지 가중되면서 김동인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게다가 우울증 등 신경증세의 악화로 수면제와 최면제를 과다 복용하면서 몸까지 망가졌다. 염상섭은 소설에서 김동인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문단 사람들 누구나 김동인으로 짐작했다. 염상섭은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작가로서 좋은 소재를 놓치기 싫었다. 게다가 늘 주눅 들었던 김동인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상큼했다.

○ 저자소개 : 염상섭 (廉尙燮)
횡보 (橫步) 염상섭 (廉尙燮)은 서울출생으로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 (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 (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 (金億), 김찬영 (金瓚永), 민태원 (閔泰瑗), 남궁벽 (南宮璧), 오상순 (吳相淳), 황석우 (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처녀작「표본실의 청개구리」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인 소설로 평가되며, 암야」「제야」「전야」「만세전」등을 통해 근대 중편소설의 초석을 닦았으며, 이후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치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장편소설 『삼대』에 이르러 집대성 되었다.
1920년대 염상섭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단편 “윤전기”를 통해 그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 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만선일보 편집국 주필, 국장, 시대일보 사회부 부장,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두 파산』, 『일대의 유업』 등의 단편소설과 『무화과』, 『백구』, 『취우』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1963년 작고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화훈장 은관, 3.1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 감수 : 김경수
김경수는 196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강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1988년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평론집으로 『문학의 편견』과 『소설 농담 사다리』를 펴냈으며, 소설연구서로 『현대소설의 유형』과 『염상섭 장편소설연구』를 펴냈다.

○ 출판사 서평
<광분 (狂奔)>은 인간의 한없는 욕망으로 인해 무너지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경옥과 계모 숙정의 갈등을 기점으로 하여 숙정의 불륜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파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광분>은 자유 연애 사상 등의 서구 사상이 크게 유행하고, 물질주의가 팽배해진 당시의 시대상이 살인이라는 사건으로 그리고 있다.
<광분>의 인물들은 대부분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들이고, 사회에 대한 걱정 없이 개인들이 문제에만 열중하고 있다.
경옥이나 정방은 자신들의 사랑에만, 숙정과 변량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 독자의 평
삼대와 만세전으로 유명한 염상섭의 비교적 덜 알려진 소설 광분.
그의 소설 중 두 번째로 긴 이 소설의 무게감은 꽤 묵직하다.
통속적인 느낌을 많이 주지만 또 사회고발적인 이야기까지 전달하는 이야기꾼 염상섭. 경옥과 계모 숙정, 그들의 남자 주정방과 변원량, 그리고 진태와 을순 등 주변인들과의 관계, 엄청난 갑부 민병천의 가족이 파탄으로 향하는 모습과 최고 반전인 누군가의 죽음까지. 잘 짜여진 한국 소설 하나 읽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