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 살림 / 2003.12.30
‘헬라스적 사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 그것은 어떤 사유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인가? 헬라스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들의 정신을 찾아내었고, 그렇게 형성된 사유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이 물음들이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관심사이다.
‘뮈토스적 사고에서 로고스적 사고에로’ (Von Mythos zum Logos)라는 상투적인 설명은 독일의 고전 철학자인 빌헬름 네슬레가 헬라스에서의 합리화 (이성화) 과정을 그려내려한 동명의 저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독일에서 이 책을 출간되었던 1940년대의 정치 상황과 또 저자가 히틀러가 주도하던 ‘국가 사회주의자 운동’의 추종자였음을 떠올려보면, 그는 고전학 분야에서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진작시키려는 한 방편으로 저술활동을 했음이 분명해 진다. 심지어 그는 책의 서문에서 “정신의 미성숙으로부터 그 성숙으로의 성장은 아리아 민족에게 남겨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가장 재능 있는 인종에 속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헬라스 종족이 합리적 사고에 대한 능력 때문에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는 생각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인종적 편견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고정된 시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쨌든, 많은 역사가들은 중동 지방의 의학, 수학, 천문학 분야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헬라스의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로 받아들여지는 근거는 ‘자연의 발견’과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실천’이라고 요악될 수 있다.
길게 기술된 헬라스적 사유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1)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또는 산파술이라 불리는 철학적 방법에서 명확히 찾아볼 수 있는 대립되는 사고방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 2) 기하학적 사고를 통해 후에 논리학이라고 불리는 추상적 사고방식으로의 전개, 3) 헬라스어의 특징에서 연유된, 정신적 특징을 지니는 개념적 언어와 과학적 개념의 형성, 4) 신들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가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장벽에 의해 가로막힌 세계로 보지 않았던 헬라스인 특유의 종교관과 이에서 비릇된 객관적 사고 (설명이 더 필요하지만)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헬라스적 사고의 기원을 탐구하는 몇 가지 관점 [1) 신화에서 철학으로, 2) 오리엔트의 영향사적 의미, 3) 문학 장르의 발전, 4) 헬라스의 종교와 철학의 관계, 5) 폴리스의 생성과 철학의 발생] 에 대해 하나씩 소개하고 각각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폴리스의 정치 체제는 아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웅변적 경쟁, 쟁론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바로 그 무대가 공공의 광장인 아고라인데, 아고라는 시장이기 이전에는 회합의 장소였다. 말로써 경쟁하는 사람들, 웅변에 대해 웅변으로 맞서던 사람들은 이러한 계급적 질서를 갖는 사회에서 동등한 계급이 되었다. 모든 대결, 즉 모든 에리스는 평등의 관계를 전제한다. 경쟁은 단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사회적 생활의 논쟁적 (경쟁적) 개념의 핵심에 이 평등주의적 정신이 깔려 있다. 이제 아르케는 더 이상 어떤 한 사람의 배타적인 속성일 수 없었다. 국가 그 자체는 모든 사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박탈 당하였다. 국가가 특정한 집단의 지배자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을 때, 국가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되었다.” – p78
“폴리스의 탄생과 더불어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법의 기록’이다. 법을 기록한다는 것은 비단 법의 영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법을 ‘말하는’ 기능을 가진 바시레이스의 사적인 권위로부터 법을 멀찍이 떼어 놓는 것이었다. 따라서 법은 공공의 자산이 되었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이 되었다. 한 사람의 군주에 의하여 유지되었던 정의는, 더 이상 신적 질서 체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글자에 의하여 공중에 드러난 정의는 엄격한 인간 차원으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정의는 곧 법이다. 동시에 정의는 모든 것에 공통하고 모든 것보다 우월한 원리로서, 또 논의에 따르고 법령에 의하여 수정되어야 하는 합리적 기준으로서 나타날 수 있었다.” – p82

저자는 이 세계의 본성과 질서에 관한 자연 철학자들의 탐구가 그들 이전의 신화적 사고보다 더 체계적이고, 더 이론적이며, 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신화적 사고, 그 전-과학적인 사고는 모든 헬라스적 자연관과 과학적 사고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며, 헬라스인들의 정치적, 윤리적, 철학적 사고에 침투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이러한 사고들이 또한 고전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형성에 거름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짓는다.
○ 목차
1. 헬라스란 말의 역사적 의미
2. 뮈토스적 사고에서 로고스적 사고에로
3. 헬라스인들의 사상적 풍토
4. 헬라스적 사유의 특징
5. 헬라스적 사고의 기원을 탐구하는 관점
6. 에필로그
○ 저자소개 : 김재홍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고중세 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를 했으며 이후 가톨릭 대학교 ‘인간학 연구소’ 전문연구원, 서울대학교 철학과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관동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을 지냈다.
현재는 정암학당 연구원,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그리스 사유의 기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성격의 유형들』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헬라스 철학의 아르케 (시원)가 신화적 사고로부터 이성적 사고에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방식의 전회 (轉回)라고 한다면, 그러한 전환과 발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아니, 철학의 출발에 대한 그러한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 내지 까닭은 무엇인가? 헬라스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들의 정신을 찾아내었고, 그렇게 형성된 사유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라고 부르는 것은 라틴어 ‘그라이키아’ 혹은 ‘그라이치아 (Graecia)’에서 유래한 영어식 표현이다. 이것은 당시 로마인들이 헬라스인들을 그라이코이 (Graikoi)라고 부르고, 그들이 살던 곳을 ‘그라이키아’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데우칼리온과 퓌라의 대홍수 이후 이들이 정착한 테살리아 지역에 그들의 아들인 헬렌 (Helln)이 세운 나라가 헬라스이다. 이들의 후손으로부터 여러 부족이 형성되었는데, 이들 모두를 통틀어 ‘헬렌의 후손들 (헬레네스, Hellnes)’이라고 일컫게 되었고, 이들이 사는 지역 전체를 ‘헬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 독자 서평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독일의 고전 철학자인 빌헬름 네슬레는 그리스 철학 및 과학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뮈토스적 사고에서 로고스적 사고로 (Vom Mythos zum Logos)’ 라는 표어를 제시하였다. 그리나 오늘날에는 탈레스 이전의 서사시인들인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로부터 그리스 철학의 맹아를 찾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며, 그중에서도 헤시오도스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보는 기곤은 ① 참과 가상적인 것 간의 구분 ② 신들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서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물음 ③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전체’에 대한 생각이 철학의 시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적 사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사유의 개방성
헬라어의 특징적 표현 방식들을 통해 알 수 있듯 그리스인의 사유 구조 안에는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헤로도토스의『역사』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서 잘 나타나듯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신의 개방적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 문화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2) 기하학적 사유방식
기하학의 개념을 통한 추상적 사고방식의 전개는 그리스 사유의 특징이며, 그들은 기하학의 원리인 조화와 균형을 신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했다. 또한 기하학적 사고는 폴리스의 시민들 간에 평등사상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기여하였다.
(3) 기하학에서 논리학으로
이러한 기하학적 사고는 후일 논리학이라는 추상적 학문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하학의 패턴인 ‘일반적 규칙 밑에 특수한 다양성들이 포섭되고 발견되기를 바라는 성향’은 논리학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4) 조화와 균형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기하학적 사고를 예술의 영역에도 적용해 아름다운 건축과 조각을 남겼으며 그 기본적 원리는 조화(harmonia)와 균형(summetria)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질서와 균형을 아름답고 유용한 것이었지만, 무질서와 균형의 결여(asymmetria)는 추하고 유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5) 그리스 언어의 특질
중성의 단수 주격 정관사 ‘to’는 그리스인들에게 추상개념의 형성을 가능케 해 주었으며, 이는 곧 자연과학과 철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6) 그리스인들의 신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고 보지 않았으며, 신을 공경했지만 인간과 신의 관계를 절대적인 주종 관계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한 그리스의 신들은 스스로도 우주의 질서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이 질서를 지배하는 움직일 수 없는 법칙과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의 과제였다.
(7) 신은 술어적 개념
그들에게 신이란 유한성의 범주를 벗어난 그 무엇을 의미했으며, 세계에 작용하고 있는 영속하는 지배력이나 힘은 어떤 것이나 신으로 불릴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한 대부분의 것이 신이었다. 이러한 헬라의 신들은 필연적으로 다신론적이었다.
그리스적 사고의 기원을 탐구하는 관점은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이성적 사고와 그에 선행하는 신화적 사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힘으로서 그리스 사고의 기원을 찾음 ② 그리스 사유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고 주로 오리엔트의 강한 영향을 강조함. ③ 그리스 정신의 발전 과정을 그리스 문학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여 그 형성과정을 검토함 ④ 그리스적 사유의 발전을 그들의 신에 대한 이해로부터 찾음. ⑤ 그리스적 정신은 그리스의 정치 사회적 발전과 함께 점차적으로 형성됨.
(1) 신화에서 철학으로
이 입장은 그리스의 사유 방식이 전래하는 사회적 종교적 태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뮈토스가 아닌 로고스적 사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콘포드는 아낙시만드로스와 호메로스/헤시오도스의 우주관이 동질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자가 대담성과 완결성으로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없앰으로서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혹은 ‘신화적 사고에서 합리적 사고에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 오리엔트의 영향
이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적 사유의 바탕에는 오리엔트의 문화와 종교 경험적 기술을 비롯한 여러 사상이 가로놓여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적 사고는 오리엔트의 영향으로부터 발전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신들은 헬라스의 신들과 달랐으나 그리스의 신들로 쉽게 번역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했으며, 그리스 신들의 탄생신화 자체도 근동의 신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에 관한 생각에는 인도-이란적인 종교 사상의 영향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3) 문학 장르의 발전과 이성의 전개
이 입장은 그리스 문학의 전개 과정, 즉 서사시, 서정시, 비극, 산문, 철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스 정신의 발전과정이라고 파악한다. ① 서사문학의 시대에는 아직 인간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하려는 태도가 엿보이지 않으며, 세계에 대한 자기 인식의 주체인 자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인식과 행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힘 즉 신성에 의지한다. ② 서정문학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시인이 뚜렷한 인격체로 나타나며, 육체와 정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서 내면세계의 독자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③ 비극의 시대에 인간의 내면적 갈등의 정도는 더욱 극렬화되며 첨예화되며, 비극은 주인공의 격렬한 고뇌를 통해서 보편적 고귀함과 위대성을 실현한다.
(4) 그리스의 종교와 철학
이는 그리스 종교로부터 그리스적 사유의 기원을 찾는 입장으로, 헤시오도스가 『신통기』에서 행했던 신들의 이름에 대한 어원학적 해석은 세계의 기원 즉 아르케에 천착하려는 철학의 근본적 정신과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5) 정치적 사고에서 철학적 사고로
이는 그리스적 사유가 그리스의 정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실증적 사고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합리적 사고의 발생은 서정시의 시기에 출현한 폴리스의 존재와 그 안에서의 삶의 특징짓는 ‘연설과 토론의 정치’ 및 ‘완전한 지식의 공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법의 기록’은 정의가 더 이상 신적 질서 체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닌 인간 차원에 세워진 합리적 기준에 의해 구체화되도록 해 주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