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 에세이
김규동 / 바이북스 / 2011.3.25
– 시인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시대를 배반하지 않는 시인 김규동 이야기 『나는 시인이다』
선비 시인 김규동이 살아온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역사와 시 문학의 역사를 엿보는 자전적 에세이다. 유소년 시절, 일제 치하에서의 학업, 은사 김기림과의 만남, 시인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 월남과 민족 분단의 삶 등 시인이 살아온 길을 담담하게 전한다. 더불어 김수영, 한하운, 천상병 등 저자가 만난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일화까지 담아내 우리 현대 시 문학의 역사를 엿본다. 시인의 감수성을 잘 끌어 낼 수 있게 도와준 첫사랑 진학순, 일본인 한문 선생 와타나베, 군사 독재 시절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 등 시인 김규동의 내밀한 기억을 엿보고 있다.

– 목차
1부 | 유년 시절의 기억
당나귀를 아시나요?
병원장의 말썽꾸러기 아들
공부가 제일 쉽다고요?
성적통신표를 위조하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던 작문 시간
박대룡을 찾습니다
경성고보 시험에 낙방하다
2부 | 시인을 꿈꾸다
시인 김기림 선생을 만나다
경성고보 친구들
순탄치 않았던 학교생활
한 여인의 잔향(殘香)
시인에 대한 단상
잊히지 않는 선생님
3부 |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기
해방과 함께 찾아온 이념 갈등
딱 3년만 머물려고 했는데……
유채룡 선생과의 재회
피란지 부산에서의 생활
대한민국 최초의 간첩 조작 사건
시인 천상병과 박인환
대한민국 시인들
대한민국 대표 시인 김수영
기인(奇人)박거영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김규동
저자 김규동은 1925년 2월 13일 함경북도 종성 출생이다.
1944년 경성고보를 거쳐 1947년 연변의대를 수료하고 평양종합대학을 다니다 1948년 월남했다.
1948년《예술조선》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1955년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나비와 광장>, <어느 병상의 연대>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의 작품들은 전쟁,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 현실의 비판 등 모더니즘 경향이 짙었으며, 이후에는 통일 문제, 노사 문제, 민주와 인권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성향을 보였다.
2001년 시를 목각에 새겨 전시한 시각전 (詩刻展)을 개최했으며, 2011년 그동안 발표한 시 중 432편의 시를 모아 《김규동 시전집》을 출간했다.
80세에 마지막 시집을 내고 통일의 날을 기다리던 시인은 북에 홀로 남기고 온 모친을 그리며 2011년 9월 타계했다.
– 책 속으로
인환이 한번은 《경향신문》에 취직을 했어요. “나 취직했다.” 무척 기뻐하며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다녔어요. 사나흘 보이지 않다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다방에 힘을 다 빼고 눕다시피 앉아 있는 거예요. “너 웬일이야?” “나 신문사 그만뒀어.” “아니, 왜 벌써 그만두냐?” “아휴, 사회부장과 싸웠어. 들어봐. 불이 났는데 소방차가 달려오고 사람들이 불 끄려고 양동이에 물 나르고 아무리 끄려 해도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데 참 볼만하더라고 그래서 ‘야밤에 화산 뿜듯 치솟은 불기둥이 서울 하늘을 장식했다’라고 기사를 썼지.”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어이가 없는 사회부장은 신문기사 작성법에 대해 즉석 강의를 늘어놓았대요.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기사를 작성하라는 거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써야지, 불기둥이 솟았다든지, 서울 하늘을 환히 밝혔다는 게 말이 되냐며 정성스럽게 쓴 기사를 확 찢어버렸대요. “기껏 시적인 표현을 동원해 기사를 작성했는데 내 글을 찢어버려?” 당하고만 있을 그가 아니었죠.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이 무식한 놈아!” 하며 부장의 멱살을 잡았대요. 쫓겨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얘기를 하면서도 당시가 생각나는 듯 거친 숨을 내쉬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거예요. “사회부장이란 놈이 왜 그리 무식하냐? 아, 불기둥이 솟았잖아. 야밤에 서울 하늘이 조명탄을 터뜨린 것처럼 환했다고 사실을 썼는데 왜 찢어버려?”
황당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점잖게 거들고 나섰지요. “네가 만리동에서 불이 났는지 광화문에서 불이 났는지 그걸 안 썼잖아. 왜 그랬어?” “그건 잊어버렸지.” 싱겁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거 있죠. 인환은 이렇듯 감성파였어요. 모든 것을 시적으로 생각했죠.

– 출판사 서평
.‘시대를 배반하지 않는 선비’ 김규동
유소년기에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경험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민족상잔과 분단의 비극을, 가장이 되어서는 군사 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그리고 노년이 되어서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경험하는 일, 이는 1920~1930년대에 태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었을 경험이다. 김규동 시인 역시 우리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똑같이 경험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역사의 순간순간에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현실을 피해 달아나지 않았다. 일제 시대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일제에 저항하며 살아왔고, 6·25와 분단 현실 속에서는 전쟁의 폐해와 잔인함을 지적하는 모더니즘적 시로 시대를 위로했다. 또한 군사 독재 시절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고, 분단된 조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을 위해서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시를 선물했다. 이런 시인을 두고 김광규 시인은 “시대를 배반하지 않는 선비”라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대를 배반하지 않는 선비”란 시인 자신이 한평생 추구해온 삶의 목표였다. 이 책에는 ‘선비 시인’ 김규동이 살아온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이 땅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재능과 소질이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은 파란만장하다. 시대나 환경적으로 파란만장한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파란만장하다. 동네 마당에서 노니는 당나귀를 잡아타고 달리다 떨어지고, 브레이크도 없는 자전거를 비탈길에서 타고 내려오다 신발 뒤축이 해지며, 높은 나뭇가지 위의 까치집에서 까치 알을 꺼내다 떨어지고, 소학교 1학년을 낙제해 두 번 다니고, 성적통신표를 위조해 부모님께 보여드렸다가 들통이 나는 등 현재 시인의 모습에서는 상상이 힘든 유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부리던 시인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책 읽는 것이 좋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아동 문학 전집을 끼고 살고, 작문 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나서는 한 달에 여덟아홉 편의 글을 쓰기도 하면서 문학인의 꿈을 품는다. 시인은 이야기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특별한 그만의 재능과 소질이 있어요. 공부가 뭐 별겁니까?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극대화시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 사는 훈훈한 사회를 일구어가는 게 공부입지요.”(본문 70쪽) 이러한 시인의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지어낸 말도 아니고, 허황된 가정도 아니다. 시인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인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유년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또 청소년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인 김규동을 만든 사람들……
저자가 시인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 경성고보 은사였던 김기림 시인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한다. 김기림은 《조선일보》학예부장을 지내던 시인이자 기자였다. 1941년 조선총독부가 한글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경성고보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시인 이상의 친한 친구이자 <바다와 나비> 등의 시를 발표한 시인으로 유명했던 김기림을 만난 저자는 그의 매력에 빠졌고 은연중 여러 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경성고보 시절 시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또 있다. 바로 영화에 미쳐 살다 나중에 영화감독이 된 신상옥, 시인 이용악의 아우로 형을 미워했던 이용해, 소설가 김한길의 아버지이자 나중에 사회당 당수가 된 김철이 그들이다. 이들은 고보 시절 시인과 가장 가까이 어울렸던 인물들이며 시인이 그리워하는 인물들이다. 그 외에도 시인의 감수성을 잘 끌어낼 수 있게 도와준 첫사랑 진학순, 일본인 한문 선생 와타나베 등 모두가 저자가 시인이 되는 데 영향을 준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등 대한민국 시인들의 이야기
《나는 시인이다》는 단순히 김규동 시인 한 사람만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1950년대 시인과 함께 활동하던 여러 시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몸담았던 ‘후반기 동인’ 박인환, 김경린, 이봉래, 조향, 김차영과 ‘후반기 동인’은 아니지만 단짝으로 친하게 지내던 박거영, 대한민국 대표 시인 김수영, 한센병 시인 한하운, <귀천>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천상병 등 대한민국 여러 시인들의 자서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특히 당시 젊은 세대였던 ‘후반기 동인’을 중심으로 기존의 보수 문단에 반향을 일으키며 모더니즘 시 운동을 전개하는 이들의 모습은 눈으로 보듯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중 나이 서른에 요절한 시인 박인환의 생전 모습이 가장 세밀하게 담겨 있다.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고, 당시 유명한 가수나 영화배우들과 어울려 다니고, 그러면서도 근대 모더니즘의 흡수가 가장 빨랐던 인물. 그것이 시인이 곁에서 바라본 박인환의 모습이었다. 또한 김수영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깡마른 얼굴에 소 눈동자 같이 큰 눈, 항상 어딘가 쓸쓸해하는 모습의 김수영. 세상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다 떠난 시인. 하지만 시를 쓸 때는 무서우리만치 치열하게 작품에 몰두한 사람이 김수영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김수영도 있다. 이가 나빠 30대부터 틀니를 해, 오징어를 줘도 먹을 수 없었던 사람, 생계를 위해 ‘양계(養鷄)’를 해야만 했던 사람, 여성과 사귀는 것에 소질이 없었던 사람, 항상 긴장하고 불안해하던 사람이 김수영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우리가 교과서나 시집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시인들의 진솔한 삶이 가득 담겨 있다. 이것이 《나는 시인이다》가 김규동 단 한 사람만의 자전 에세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시 문학의 귀중한 사료’인 이유다.

– 추천사
명목(名木)은 대개 고목(古木)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아름다운 노년이 흔치 않다. 드물게도 명목 같은 사람이 있다. 김규동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시는 진정성(眞情性)이고 진정성은 그 속에 담긴 시대의 양(量)일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고향 집 우물가의 느릅나무다. 우리 시대의 애환이 상처처럼 각인된 아름다운 나무다. – 신영복(성공회대 교수)
추억은 인생의 아름다운 꿈이다. 인간은 꿈이 있기에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며, 과거의 경험 속에서 내일을 설계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한국 시단의 최고 원로이신 김규동 선생의 수필집 《나는 시인이다》는 당신이 살아온 팔십 평생 중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의 다양한 체험과 에피소드를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그려낸 회상(回想) 문집이다. 특히 1950년대 초반에 박인환, 김수영, 이봉래, 김경린, 김차영, 조향 같은 젊은 시인들을 규합하여 후반기 모더니즘 시 운동을 선도하던 얘기가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오직 젊은 패기 하나만으로 밀어붙여 당시의 전통 보수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 모습이 눈으로 보듯 묘사되어 있다. 지난 일을 글로 쓰기는 쉽다. 그러나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줄 만큼 쓰기는 어렵다. 그런 뜻에서 이 글은 성공을 거둔 저자의 자전(自傳) 문학이다. -민영(시인)
이 책에는 ‘시대를 배반하지 않은 선비’ 시인 김규동의 다채로운 인생 여정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후반과 해방 직후의 북한, 그리고 6·25 전란기와 전후 남한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친숙한 구어체로 엮어진 20세기 중반기의 격동하는 우리 역사가 한 권의 성장 소설처럼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읽힌다. -김광규 (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