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의 생애와 사상
알베르트 슈바이처 / 문예출판사 / 1999.11.30
슈바이처 박사가 스스로 삶의 전반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집. 오르가니스트이며 신학자, 철학자로의 명성을 버리고 아프리카 속에서 인류애를 펼친 그의 생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목차
1.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2. 파리와 베를린에서의 생활
3. 스트라스부르에서 활동하던 처음 몇 해
4. 성만찬과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연구
5. 대학 강의와 ‘예수 생애 연구사’ 집필기
6. 역사적 예수와 오늘의 기독교
7. 바흐에 관한 프랑스어판과 독일어판 책을 쓰다
8. 파이프오르간과 그 제작에 관하여
9. 원시림의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다
10. 의학 공부를 하던 시절
11. 아프리카로 떠나기에 앞서
12. 의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 쓴 몇 가지 책
13. 아프리카에서의 첫번째 활동
14. 가레종과 생 레미에서의 수용소 생활
15. 다시 알자스로
16. 의사 겸 성 니콜라이 교회 목사로 일하던 시절
17. 아프리카 회고록
18. 귄스바흐와 외국 여행
19. 아프리카에서의 두번째 활동
20. 유럽에서의 2년간과 아프리카에서의 세번째 활동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독일계의 프랑스 사상가ㆍ신학자ㆍ음악가ㆍ의사이자 루터교 목사다.
알사스의 카이제베르크에서 출생했으며, 슈트라부스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30세 되던 해에 봉사활동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새롭게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913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오고웨 강변의 람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이 후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의료 활동에 헌신하였다. 195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설립하였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책 속으로
원주민들과 접촉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단지 전통에만 얽매인 사람들인가, 아니면 정말 독자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고 놀란 것은 그들이 인생의 의의나 선악의 본질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대체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파리 선교회 간부들이 그토록 중시여기던 교리 문제는 과연 내가 예상했던 대로 선교사들의 설교에서 사실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듣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산상수훈이나 바울의 위대한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우리는 예수의 정신에 의하여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단순한 복음 이상의 것은 전할 수가 없었다. — p. 162
‘나의 생활 환경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의 활동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기꺼이 입증하고 싶다.…내 힘을 아낄 필요 없이 쉬지 않고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을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 본다. 체념이 불가피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하여 나는 침착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앞날을 내다본다. 행동인으로서든 수난자로서든 우리는 모든 이성을 초월한 평화를 거쳐간 사람으로서 우리의 힘을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 마지막 페이지
○ 문재인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 철학자 김형석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와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백세를 바라보는(1920년생) 인생론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으로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슈바이처 박사의 ‘나의 생애와 사상’을 꼽았다.
‘나의 생애와 사상'(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74쪽 / 1999년 11월 출간)
“나도 뭔가 베풀어야” 인류 사랑과 헌신
슈바이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 = 김형석 교수는 철학자답게 이런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소개했다. “1896년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그날은 성령강림절이었다. 이때 문득 이런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나도 무엇인가 베풀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는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복음전파와 함께 의료사역에 헌신했다. 유명한 파이프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예술과 학문을 아는 사람이었다. 멋진 삶이었다. 행복한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삶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_ 이 기사는 격주간 독서신문 1624호(2017년 5월 22일자)에 실렸다.
○ 독자의 평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이에 대한 재미있는 유머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희망우유’ 시리즈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갓 태어나면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인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가 천재라고 믿고 싶은 희망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아이가 자라며 천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유는 파스퇴르 우유로 바뀐답니다. 천재급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머리를 갖기를 바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도 잠깐, 부모의 욕심을 깨닫고 나면 서울우유로 바꿉니다. 서울대만 가더라도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아이는 자라면서 우유의 이름을 바꿔가며 희망도 바뀐다는 게 ‘희망우유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이후에 순서에 따라 나오는 우유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세우유, 건국우유, 삼육우유, 저지방우유…
눈치채셨겠지만, 저지방우유는 ‘지방대라도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먹이는 우유라네요.
요즘 표현대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부모는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바이처 처럼 천재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 공헌하는 인물로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부모라면 자녀가 요셉이나 다윗 처럼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간과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바이처, 요셉이나 다윗이 이룬 성공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공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인고의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위대한 인물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를 읽었습니다.
철학자 강신주가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마음 속에는 저뿐 아니라 저의 자녀들이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슈바이처 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조용히 접어야 했습니다.
그가 철학, 신학, 음악에 놀라운 성과를 거둔 데는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 논문은 예술이나 교제 때문에 방해받는 일 없이 그대로 계속 되었다. 나는 아주 건강했기 때문에 밤에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었다. 밤에 한잠도 자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위도르 앞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한 적도 있었다. (29쪽)
‘예수 생애 연구사’의 집필로 바쁜 중에도 나는 바흐에 관한 프랑스어로 된 저서를 완성했다. (…) 나는 성 빌헬름 교회 바흐 합창단의 파이프오르가니스트로 있으면서 이론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바흐를 자세히 연구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제는 그때 얻은 생각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기 때문에 내겐 매력적이었다. (81쪽)
1903년과 1904년은 모든 자유시간을 바흐에 바쳤다. (…) 나는 바흐를 위해 밤 시간밖에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에 의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지장이 많았다. (…) 내가 바흐에 관해 책을 쓰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짓이었다. 나는 광범위한 독서를 했기 때문에 음악사나 음악 이론에 관해서 약간 아는 편이었지만, 역시 전문적인 음악 학자는 아니었다. (…) 1906년 여름 ㅋ ㅌ예수 생애 연구사’를 완성하고 난 뒤 나는 바흐의 독일어 판에 착수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직접 번역할 수는 없고 만족할 만한 것을 만들려면 다시 자료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로 쓴 바흐 책을 덮어버리고 독일어로 더 나은 것을 새로 쓰기로 결심했다. 455페이지 책이 844페이지가 되는 바람에 출판사에서는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 (…) 아래층 비어홀의 떠들썩한 소리가 나의 후텁지근한 방으로 들려왔을 때 쓰기 시작해서 해가 이미 높이 솟아오른 것을 보고 쓰기를 멈추었다.이때부터 재미가 나서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2년 만에 완성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의학 공부다, 강의 준비다, 설교 준비다, 연주 여행이다 하여 계속해서 이 일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81~86쪽)
나는 진정한 파이프오르간을 위해 투쟁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사람들은 좋은지 나쁜지 보아달라거나 또는 수정해 달라며 파이프오르간 설계도를 보내왔기 때문에 나는 이 일로 해서 여러 날 밤을 보냈다. 내가 주교, 대성당 수석 신부, 종교 국장, 시장, 목사, 교회 집사, 교회 장로, 파이프오르간 제작자와 파이프 오르가니스트들에게 낸 편지는 몇백 장이나 되었다. (103쪽)
이제 피로와의 고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고투는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신학 교수직과 목사직은 즉각 포기하기로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학 강의도 하고 또 거의 매주 설교도 해가며 의학 공부를 했다. 의학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강의에서 바울의 교리 문제를 취급했기 때문에 강의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또한 그 당시에는 파이프 오르간에도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35쪽)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진리를 슈바이처를 통해 다시 한번 배우게 됩니다.
그가 세상에 위대한 이름을 남긴데는 그에 맞는 값지불이 있었던 겁니다.
만약 ‘자녀는 부모의 희망대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부모는 평생토록 자녀의 원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힘들고, 거칠고, 쉴 틈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