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시오노 나나미 / 한길사 / 2002.8.30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이야기. 그녀가 지중해 문명을 동경하게 된 계기, 그리하여 『로마인 이야기』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계기가 한 편의 영화였다는 고백. 선뜻 믿기 힘들겠지만, 그러나 사실이다. 그녀는 ‘내 인생에서 그 영화(트로이와 헬렌)와의 만남은 결정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확실히 시오노 나나미와 영화의 관계란 보통 이상이다. 게리 쿠퍼의 죽음을 가족의 죽음처럼 슬퍼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보고 또 보고, 적어도 열 번 이상은 보았다는 이 열혈 영화 매니아가 영화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이 책에는 시오노 나나미가 사랑하는 영화사의 주옥 같은 명작들이 매우 다양한 주제 아래 소개되고 있다. 애수어린 고전 영화를 비롯하여 전쟁 영화, 연애 영화 등을 아우르는 그녀의 식견은 전문가의 그것 못지않다. 물론 전문 영화 비평이 아닌지라 철저한 분석, 작품성에 대한 긴 해설은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나『남자들에게』등에서 그녀가 보여 주었던 개성은 그대로라 반갑다. 시오노 나나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시오노 나나미적인 영화 이야기’니까.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약 6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그녀만의 특별한 영화 감상 코드를 풀어내고 있으며 특히 전쟁 영화와 연애 영화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다. 전쟁 영화에 드러나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을 지적하는 시선은『로마인 이야기』를 연상시키고, 연애 영화를 보며 말하는 ‘남자론’과 ‘사랑론’은『남자들에게』의 그것이다. 한마디로 시오노 나나미다운 영화평이자 에세이랄까. 그것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한.
시오노 나나미의 열혈 독자는 물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쉬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보호 받고 싶을 때, 옛날이 그리워질 때,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나는 영화를 본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독자에게 매력적일 책이다.
–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에세이
“로마인 이야기”에서 보여준,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필력이 영화 이야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로마의 휴일, 로미오와 줄리엣, 문스트럭 등 연애 영화와 지옥의 묵시록, 패턴 대전차군단, 플래툰 등 전쟁영화, 햄릿, 트로이의 헬렌 등 고전과 하이눈, 서부의 사나이 등 서부영화까지 아우르는 영화 목록 속에서 리더쉽, 작가의 자의식, 남녀 관계 등에 대한 실제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 목차
- 어른의 순애보
- 달이 빛나는 밤에
- 스타, 허상과 실상을 오가는 존재
- 전시의 리더
- 삶을 위한 계획
- 인간 혐오
- 남녀간의 우정
- 불륜의 두 가지 종말
- 학교 교육
- 지골로의 삶
- 고대의 전쟁과 현대의 전쟁
- 학식과 덕행을 갖춘 남자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정의에 대하여
- 한눈에 반한 사랑
- 차별에 대하여
- 반성이라는 행위
- 악녀
- 수면제
- 자유로운 여자
- 언어에 대하여
- 꿈은 이루어진다
- 에피큐리언
- 놀이하는 마음
- 무도회의 수첩
- 파워와 품격
- 관능
- 상냥한 관계
- 죄와 벌
- 이탈리아 남자의 꿈
- ‘라이징 선’, 그후
- 주거에 대하여
- 지중해
- 여자의 삶
- 거짓과 진실
- 작가가 그리는 작가상
- 실업
- 경청하는 자세
- 8월의 고래
- 영상의 한계
- 아무도 몰라준다
- 생과 사, 그리고 생
- 단순명쾌한 히어로들
- 여가 선용
- 모자의 대화
- 천재, 신이 사랑한 사람
- 위대한 평범
- 시오노 나나미가 뽑은 내 인생의 영화
- 영화의 청춘시절을 떠올리며/가와모토 사부로

○ 저자소개 :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일본어: 塩野七生 1937년 7월 7일 ~ )는 일본 출신의 작가, 역사평설가, 소설가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와 관련된 다수의 작품을 저술하였다. 1990년대 이전에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에 관련된 작품을 주로 집필해 왔고, 1992년부터 2006년까지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고대 로마의 역사를 그려내었다. 이름의 나나미(七生)는 칠월칠석에 태어난 것에서 붙여졌다.
– 생애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 7월 7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처음 읽고 유럽의 신화와 역사에 매료되었다. 1963년 가쿠슈인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시절 좌파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했으나, 1960년 안보투쟁 이후 분열을 거듭, 목적성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학생 운동의 현실에 질려 발을 빼게 되었다. 졸업 후 다시 유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직후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196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떠한 공식 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으며, 이탈리아뿐만 아닌 유럽 전역,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1968년 일본으로 귀국, 문예지인 《중앙공론(추오코론)》에 《르네상스의 여자들》을 연재하면서 작가로서 데뷔했다. 1970년 두 번째 작품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기 시작, 같은 해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하며 이탈리아피렌체에 정착한다. 이 결혼 생활에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수 년 후 이혼했다. 그 후 아들과 함께 1993년 로마로 이주해 현재 그곳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작품 활동
초기 작품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데뷔작인 《르네상스의 여자들》(1968)을 시작으로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1970), 《신의 대리인》(1972)은 모두 14-16세기 이탈리아의 역사를 주제로 한 팩션이며, 이 경향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신의 대리인》 이후 큰 작품 활동을 하지 않던 시오노 나나미는 1980년, 10여년에 걸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서술한 이야기체 역사서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발표해 1982년 산토리 학예상을 받았다. 이후 70년대 1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역사소설인 《세 도시 이야기》(1993-1995), 《전쟁 3부작》(1983-1987)을 발표하였다. 이후 《로마인 이야기(ローマ人の物語)》를 쓰게 되는 것에까지 이르게 된다.
– 수상
1970년 《르네상스의 여자들》로 받은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시작으로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 1993년 신초 문예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는 데 공을 세운 것을 인정받아 국민포장인 그란데 우피치알레 공로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05년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자수 포장, 시바 료타로 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평가
많은 비평가와 역사학자들은, 시오노의 작품이 엄밀히 말하면 역사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가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한 시오노의 책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특히 고대 그리스를 서술한 부분이나 로마의 속주 통치를 미화한 부분)이 다수 있으며, 이것이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그릇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다른 비평가들은, 시오노의 저작 전반에 있어 그 주제의식과 문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으며, 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사상적으로 편향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특히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옹호가 현저하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의 경우, 자신의 저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의 pp.130~148에서 시오노 나나미를 “일본 우익 제국주의 성향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작가”이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였다. 책 곳곳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서술들이 상당수 있으며, 그리고 한일 양국의 역사문제에 관하여 “서로 각자 다른 버전의 역사교과서를 가지면 된다”고 역설, 일본측의 역사적 과오 반성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등, 역사의식에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이 저작이 마키아벨리즘적이고, 권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은 문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상당부분 마키아벨리를 오해한 입장으로, 마키아벨리즘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 시키자는 것이지 “도덕 자체를 인정하지 말” 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오노 나나미의 입장을 “마키아벨리즘” 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시오노는 오히려 그 왜곡된 의미로서의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 작품
르네상스 저작집 (塩野七生ルネサンス著作集)
《르네상스의 여인들》 (ルネサンスの女たち), 1968년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チェーザレ・ボルジアあるいは優雅なる冷酷), 1970년
《신의 대리인》 (神の代理人), 197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 (海の都の物語), 1980년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わが友マキアヴェッリ), 1987년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ルネサンスとは何であつたのか), 2001년
로마인 이야기 (ローマ人の物語)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ローマは一日にして成らず), 1992년
《한니발 전쟁》 (ハンニバル戦記), 1993년
《승자의 혼미》 (勝者の昏迷), 199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ユリウス・カエサル ルビコン以前), 199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ユリウス・カエサル ルビコン以後), 1996년
《팍스 로마나》 (パクス・ロマーナ), 1997년
《악명높은 황제들》 (悪名高き皇帝たち), 1998년
《위기와 극복》 (危機と克服), 1999년
《현제의 세기》 (賢帝の世紀), 2000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すべての道はローマに通ず), 2001년
《종말의 시작》 (終わりの始まり), 2002년
《위기로 치닫는 제국》 (迷走する帝国), 2003년
《최후의 노력》 (最後の努力), 2004년
《그리스도의 승리》 (キリストの勝利), 2005년
《로마 세계의 종언》 (ローマ世界の終焉), 2006년
전쟁 3부작(戦争三部作)
《콘스탄티노플 함락》 (コンスタンティノープルの陥落), 1983년
《로도스 섬 공방전》 (ロードス島攻防記), 1985년
《레판토 해전》 (レパントの海戦), 1987년
세 도시 이야기(三つの都の物語)
《주홍빛 베네치아》 (緋色のヴェネツィア·聖マルコ殺人事件), 1987년
《은빛 피렌체》 (銀色のフィレンツェ·メディチ家殺人事件), 1989년
《황금빛 로마》 (黄金のローマ·法王庁殺人事件), 1990년
○ 역자 : 양억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베드타임 아이스』 『120% cool』 『나는 공부를 못해』 『탐정 갈릴레오』 『프리즌 호텔』 『한밤중에 행진』 『우리가 좋아했던 것』 『러시 라이프』 『칠드런』 『노르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코인로커 베이비스』 『용의자 X의 헌신』 『중력 삐에로』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그들은 원자폭탄은 물론이고 전쟁 시대의 일본과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식들하고도 그 문제를 통해 교류하지 않는다. 하와이에 사는 친척의 성공담 정도가 고작이다. 종형제이지만, 그들은 미국인이라 자신들의 아버지가 원자폭탄으로 죽었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도망쳐버린다.
그것을 알고 노란 미국인 사촌이 나가사키 공항에 내리자마자 뱉어내는 말은 너무도 상징적이다.
“왜 큰아버지가 원자폭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지 않은거야?”
이 말은 40대와 50대 일본인을 향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 세대 묘사가 유형적인 것은 시나리오를 쓴 구로사와의 역량이 쇠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대 자체가 너무 유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 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늘 도망만 쳐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 중략
반성이란 말의 의미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말고도 자기 행위 또는 의식에 대해 판단을 내릴 필요성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후자의 반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로 정리하여 세계에 던져야 한다. 독일인이 했고 이탈리아인이 했던 일을 일본이라고 못 하란 법은 없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로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이다. — p.138~140
연애영화는 질릴 정도로 많다. (…) 그러나 여자의 사랑을 사랑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묘사한 영화는 의외로 적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 조각의 절망도 없는 달콤하고 격렬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카사블랑카’는 남자가 바라본 사랑이라 해야할 것이다. 게다가 ‘라마르세예즈’까지 들려오고 있으니,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로마의 휴일’은 너무 잘 만들어진 동화 같다. 그 영화를 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혁명시대의 러시아가 주인공이다.
‘모정’은 주연 여배우 제니퍼 존스가 싫어서 보지 않았다. 주연 여배우가 싫어서 보러 가지 않은 영화를 들자면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폴링 인 러브’가 있다. 아마도 나는 열연형 여배우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영화는 나에게 ‘로마인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다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바로 익은 감이 저절로 떨어지듯, 시오노에게는 낭중지추일 수 밖에 없는 재능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지중해 문명에 반하고, 그로써 오늘날 ‘로마인 이야기’의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계기로 단순히 “호메로스 작품을 일고 난 뒤” 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그러면 그 나머지 반은 뭘 까? 「트로이의 헬렌」이다.
그는 말한다. “내 인생에서 그 영화와의 만남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 시오노의 탁월한 서술에 영화는 새롭게 태어난다
이 책에는 영화의 황금시대에 만들어졌던 주옥 같은 명작들 – <제3의 사나이>, <천장 관람석의 사람들>, <육체와 악마>, <여름의 폭풍> 등등 – 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소개되면서, 그 시절 청춘의 통과의례로서 영화를 보았던 시오노의 애수어린 노스탤지어와 함께 우리를 책 속 영화이야기에 푹 빠지게 만든다. 읽는 이에 따라서 보고 안 보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굳이 줄거리가 필요 없을 만큼 매력적인 시오노의 영화평과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가 따뜻하기만 하다.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 다가오는 그 갈증과 충만함이 더 큰 것이다. 아마 금방이라도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쉬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을 때, 옛날이 그리워질 때,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떄, 나는 영화를 본다” 고 한 시오노의 말에 “맞다, 맞아!”를 연발할지도 모른다.
– 영화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즐겨라!
영화에 보이는 그의 사랑을 좀더 살펴보자. 더없이 비생산적인 시간일 수밖에 없는 비행기 안에서는 틀어주는 영화란 영화는 뭐든지 다 본단다. 귀국할 때면 늘 애용하는 도심지 호텔 바로 곁에 큰 비디오 가게에 반드시 들러 그동안 보지 못한 영화를 섭렵하고, 극장은 필수 코스다. 또 ‘한 여름밤의 재즈’같은 영화처럼, 봤다 하면 열두 번이나 가서 보는 극성스러움도 있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TV에 방영되면 어떤 작품이건 무조건 테이프에 담아두고, 만약 일이 있어 그날 집에 없을 때도 아들에게 엄명을 내려서라도 녹화를 시킨다. 한번은 어떤 영화작품의 추천사를 써달라는 외화배급회사 사람에게 ‘새러토가 트렁크’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말했단다. 그는 말한다.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 한다. 젊은이의 감수성이란, 정신적 나태에 빠진 어른들의 일시적인 항복 상태의 징표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민하고 깊은 감수성은 진실로 어른들에게만 허락되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젊은이 못지 않은 패기와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 남자 품평회, 영화에서라고 빠질 수 있나!
이미 『남자들에게』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탁월한 남자론, 영화 속 남자 배우들도 시오노 앞에서는 옴짝달싹 할 수 없이 품평의 대상이 된다. 게리 쿠퍼는 그에게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남자다. ‘하이 눈’과 ‘우정어린 설복’에서 품격, 유머정신, 균형감각, 그리고 위대한 평범성을 완벽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결혼상대자로 점찍을 정도. ‘밤의 대수사선’에서 열연한 시드니 포이티어와 ‘베버리 힐스 캅’의 에디 머피의 비교는 또한 탁월하다. 같은 흑인이지만 너무나 완벽한 신사의 전형을 보여준 포이티어에게는 죽는 한이 있어도 블랙이란 말을 쓸 수 없으니 부자연스럽고, 비속한 언어를 따발총처럼 내뱉는 머피에게는 깜둥이란 말을 해도 기꺼이 받아줄 것 같아 유쾌한 사나이가 된다. ‘3인의 도망자’의 닉 놀테를 두고 한없이 안아줄 것 같은 수면제 같은 매력에 반하기도 하지만, ‘감미로운 결투’라 할 수 있는 남녀의 대화에서 그저 감탄하는 눈길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냐고 투덜대기도 한다. 아널드 슈워제너거와 유치원 악동을 결합시킨 ‘유치원에 간 사나이’에서 근육질의 거한인 그를 두고는 ‘아무리 노력한들 그의 눈에 떠도는 애수는 불량품이다’고 핀잔을 준다.
– 전쟁영화의 서술은 가장 시오노답다!
가장 시오노다운 것은 역시 전쟁 이야기다. <패턴 대전차군단>에서는 어떻게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수 있느냐 하는 것도 장군의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하며, ‘전시 리더’의 결정과 용단을 강조한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생사를 거듭하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도 기타를 치며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커츠 대령을 두고 “전시의 리더에게는 평시의 리더보다 훨씬 더 퍼포먼스에 재능이 필요하다”는 멋들어진 명언도 남긴다. 또 하이테크 전쟁이라 부린 걸프 전쟁과 고대의 전쟁을 비교하여 “정치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이란 피를 흘리는 정치이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마오쩌둥의 말도 너무나 적절하게 구사한다. 한마디로 능수능란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노트에 적어두고 싶은 멋진 말들이 너무나 많다. 앞뒤 문맥을 모르더라도 상관 없다. 시오노의 글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겁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