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세설 첫 번째
김훈 / 생각의나무 / 2007.6.22
‘칼의 노래’로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도 분명하게 자기의 자리를 가늠한 김훈이 지난 수년간 여러 매체에 기고해 온 시론을 책으로 묶었다. 오랜 언론인 생활에서 얻은 직관과 명석한 판단력, 그리고 흔들림 없는 지성의 사유는 김훈 산문의 본령을 차지한다. 그의 문장은 단호하면서도 은유적이고, 시적이면서고 논리적이고, 비약적이면서도 겸박하다. 삶의 안과 밖을 두루 아우른 산문의 휘황함이 여기에 있다.

○ 목차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초콜리과 SOFA
한 소방관의 죽음
떠나가는 배
책임질 숭 없는 책임
시장과 전장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
‘너는 어느 쪽이냐’ 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개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사실과 의견
‘개수작’을 그만두라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
두 죽음을 곡함
돈·오카네·머니
‘해먹다’아 카게무샤
협잡이 ‘디지털’화될 때
…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의 공간정서
서울 엘레지
드리나강은 누가 건널까
길
인간의 몸과 손
올림픽에 대한 단상
공차기
…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끈, 어선의 밧줄
강가의 사랑, 산속의 슬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며
꽃몸살 나는 봄
수박과 자두
자연의 강, 마음의 강
여름 꽃밭에서 가을 꽃밭으로
양희은, 김추자, 심수봉
…

○ 저자소개 : 김훈 (金薰)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 책 속에서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 … 오직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날짐승들의 시대에 당대를 향하여 말을 거는 일은 가능한가, 당대를 향하여 할 말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언어와 신호는 아직도 소통력이 있는 것인가, 그런 고통스런 질문의 지옥 속에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보편과 객관을 걷어치우고 집단의 정의를 조롱해가면서 나 자신의 편애와 편견을 향하여 만신창이로 나아갈 것이다. 글 쓰는 자의 적은 끝끝내 그 독자들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영원히 ‘일인 대 만인’의 싸움일 뿐이다. – ‘개 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중에서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13쪽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14쪽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16쪽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라고.-20쪽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 (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13~14쪽
정치적 언어는 사실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의견에 바탕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흔히 욕망이나 이득에 바탕하고 있었다. 욕망과 이득에 바탕한 말들은 사실을 지운다. 그 말들은 거대한 명분을 뒤집어쓰고 뻔뻔스러워진다. 말은 무기로 변한다. 무기로 변한 말은 적에게 허상을 부여하고 그 허상을 친다. 그때 적의 언어도 똑같은 전략에 따라 무장된다. 그렇게 해서 전면전을 치르는 말들의 신기루가 당대 현실 위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는다. -67쪽
언론의 자기 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행위가 아니라, 우선은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통제행위이다. 이것은 쉬운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거의 불가능 쪽에 가까운 일이다. ‘사실’이 갖는 층위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고 전달하는 자의 주관 속에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며, 의미를 부여받거나 의미를 박탈당한다. ‘사실’이 객관적이고 ‘의견’이 주관적이기에 앞서서, ‘사실’을 만지고 거기에 다가가는 인간의 시선이 이미 주관적이다. 단순한 교통사고나 화재사건, 살인사건조차도 그 전후 맥락과 의미 내용을 완전무결하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나는 ‘사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의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사실과 의견은 적대적이다. -91쪽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인 각자의 죽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의식 속에서 그 죽음은 통계화된 사회현상일 뿐이다. 죽음이 그렇게 사물화될 때, 삶 또한 우연성 속에 방치된 사물로 전락한다. 사물화된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시간들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자리매김은 불가능해진다. 죽는 일은 무섭지만,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 일상의 삶은 더욱 무섭다. -137쪽
빠른 속도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과정을 챙기지 않는다. 속도의 꿈은 길을 버리고, 오직 시간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땅에 붙어서 달리는 자에게 그 꿈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다. 자동차가 빨리 달릴수록 속도감각은 무디어지고 시야는 좁아지낟. 시야는 전방으로만 집중되고, 풍경은 인간의 외곽을 겉돌아 백미러 뒤쪽으로 장난감처럼 소멸한다. 빠르게 질주하는 자동차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소외되고, 그 공간을 삶의 영역 안으로 끌어넣을 수가 없게 된다. 자동차는 나쁘고, 자전거는 착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자동차가 없이는 이 세상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전거의 덕성은 그 속도와 힘이 사람의 몸의 허용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계장치가 그것을 조작하는 사람의 몸과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속도는 능률이고 절약이며,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지만, 속도의 본질은 공간으로부터의 소외다. 저렇게 빠르게, 어디로들 가는 것인가. 가는 과정을 저렇게 다 버려도 되는 것인가.-193쪽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직접 이해할 것, 사물과 인식 사이에 잡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늘 경계할 것.-198쪽
여름의 강은 가득하다. 가득한 물이 아득히 흐른다. 흐르는 것은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흘러오는 것도 아니다. 흐르는 것은 오고 또 가는 것을 잇대면서 늘 신생한다. 그러므로 강은 지속이고 또 명멸이다. 가득한 여름가은 젊은 날의 시간과 생명의 모습을 닮아 있다. 가을이 와서, 여름의 거센 힘을 모두 버리고, 맑고 또 낮아질 때까지 젊은 여름의 강은 산과 들의 모든 굽이를 다 휘돌아가면서 가득히 흐른다. -246~247쪽
흐르는 물 옆에서 그 새로움이 날마다 쉼없이 잇닿아 이루어져서 삶이 거듭거듭 다시 태어나기를 퇴계는 기원하고 있다.-249쪽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284쪽
○ 출판사 서평
– 무사유의 세상을 읽어내다!
소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의 세설, 제1권. 저자가 한국일보, 국민일보, 그리고 시사저널 등의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해 온 시사 칼럼 55편을 모았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해온 저자 특유의 직관력과 판단력, 그리고 흔들림 없이 날카로운 인문적 사유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건넨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맞닥뜨린 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극적인 언어로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비판을 뒤섞은 풍자를 바탕으로 정치, 문화, 예술, 자연,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면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에 발을 거는 등 한국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역설적으로 재구성한다.
제1부와 제2부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검토하는 글을 담고 있다. 병역, 주한미군, 언론개혁, 인권, 그리고 죽음의 일상화 등에 대해 다룬다. 제3부와 제4부에는 저자 특유의 문체가 지니고 있는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단상이다. 희미해져 가는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의 참모습에 관한 성찰을 풀어놓는다.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41) 중에서 _ 7월 29일자

– “이 무슨 술주정 같은 소리냐?”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아는 커피의 종류만해도 참 많습니다. 비엔나 커피, 에스프레소, 아이리시 커피, 라떼, 카푸치노, 모카, 아라비카, 아메리카노, 마키아또, 플렛 화이트, 카페오레 등등 참 커피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아침에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 마다 제 아내는 저를 ‘친미파’ 라고 부르며 자기는 ‘친한파’ 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weak long black인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자기는 한국의 세계적 개발품인 믹스 커피, 그것도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그려진 국산품 애호가니까, 그리 부른다는 겁니다. 그러다 농담이 진해지면 믹스 커피 애호가는 애국자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저는 매국노로 까지 확전이 되곤 합니다. 은퇴자들이 카페에 함께 가서 커피를 마실 때도 카푸치노파, 라떼파, 아메리카노파가 따로 따로 앉자고 하는 이가 있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도 그룹이나 파가 다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부터 구한말의 개화파, 훈구파, 친러시아파, 친서방파를 거쳐 해방 후의 좌익, 우익의 피비릿내나는 싸움, 그리고 이어진 호남이냐, 경상도냐, 38 따라지냐를 지나 지금도 진보냐, 보수냐, 친미냐, 친중이냐, 친일이냐로 여전히 내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각해보면 파, 분파가 많다는 것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닙니다. 색갈의 다양함은 세상을 아름답게하고, 음식이나 음료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맛의 세계를 풍성하게하고, 생각이나 의견의 다양성은 세상을 더욱 더 발전시킵니다. 무엇이든 하나 보다는, 여럿이면 선의 경쟁과 토론을 통하여 우리네 삶을 살찌게해주기 때문입니다. 모두 똑같이 냉면이나 자장면이나 카프치노로 통일하면 재미도 없고 발전도 않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든 통일해서 하나가 되는게 선하고 좋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선입관입니다. 파가 많은 것은 분쟁이고 대립이며 갈등일뿐 이라는데 머물러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 지상주의자들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같은 파들 끼리, 똘똘 뭉쳐서 자기들 끼리만 모든 것을 독식, 독점하고 다른 파는 짖눌러버리고 없애버릴려는 데 있습니다.
요즘 한국사회는 그게 너무 심해져서 안타깝다 못해 겁이 날 정도입니다.
소설가 김훈선생의 말대로 ‘이 무슨 술주정인가!’ 싶습니다.
파벌없는 사회, 파벌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교민사회도, 종교나 사회단체도 다 파벌이 있고, 또 그 파벌의 다양성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만들면서 발전해 갑니다. 모든 걸 다 두둘겨 부셔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전체주의로 가는 겁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 조정, 균형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자꾸 어느편이냐, 어느 파냐 묻는 것은 그야말로 술주정입니다.
이해와 관용, 포용과 사랑 !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