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돈의 철학
게오르그 짐멜 / 한길사 / 1988.1.1
돈이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형이상학의 정립을 시도하려는, 돈에 대한 가장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다. 일면적인 인간관계, 자신의 소산앞에 무력해지는 개인을 통해 ‘소외’의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 목차
가치와 화폐
화폐의 실질가치
목적계열에 있어서의 화폐
개인의 자유
개인적 가치의 화폐등가물
생활양식
○ 저자소개 :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 1858~1918)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 1858~1918)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역사학, 민족심리학, 철학, 예술사 및 고대 이탈리아어를 공부했으며, 칸트 철학에 대한 연구로 1881년 박사학위를, 그리고 1884년 ‘하빌리타치온’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학자로서의 짐멜은 불운했다. 1885년부터 베를린 대학 철학과에서 사강사로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아주 오랫동안 사강사와 무급의 부교수로 재직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91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학계에서 주변인, 아니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짐멜은 『돈의 철학』(1900)을 위시해 『사회분화론』 (1890), 『역사철학의 문제들』(1892), 『도덕과학 서설』(1892~93), 『칸트』(1904), 『칸트와 괴테』(1906), 『쇼펜하우어와 니체』(1907), 『사회학』(1908), 『철학의 주요 문제들』(1910), 『괴테』(1913), 『렘브란트』(1916), 『사회학의 근본 문제들』(1917), 『현대 문화의 갈등』 (1918)을 비롯해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미학 등에서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며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철학적 주저인 『돈의 철학』에서는 경험적 현실세계로 임하는 철학, 또는 달리 말해 경험과학의 차안과 피안에 위치하는 철학을 제시했으며, 이에 입각해 돈과 개인의 자유 및 인격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논구했다.
또한 그의 사회학적 주저로 꼽히는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저술에서 형식사회학을 구축해 사회학적 인식에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으며, 1909년 막스 베버 및 베르너 좀바르트 등과 더불어 독일사회학회를 창립하여 사회학의 제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짐멜이 남긴 방대한 지적 유산은 총 24권으로 된 『게오르그 짐멜 전집』에 담겨 있다.
오늘날의 모더니티 담론과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은 짐멜이라는 거대한 정신세계에 회귀하면서 더욱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 역자 : 안준섭, 장영배, 조희연
○ 출판사 서평
돈이란 인간에게 무엇이며 사회에 대해 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돈이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형이상학의 정립을 시도하려는, 돈에 대한 가장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다. 특히 일면적으로 되어가는 인간관계, 자신의 소산 앞에 무력해지는 개인의 분석을 통하여 발전시킨 ‘소외’의 개념은 루카치의 소외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언론소개
어느 화폐심리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당한 양의 돈이 있으면 자기가 일상에서 겪는 곤란의 대부분이 해결된다고 믿고 있다. 이수일 같은 심정에서야 ‘돈이면 다냐’고 따져 물을 수 있겠지만, 가난 때문에 울어야 했던 심순애로서야 돈처럼 절실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사랑을 살 수 있는 건 사랑뿐이라고 외치는 건 신파극 이야기고, 현실에선 “돈만 있으면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줄을 잇는다.”(셰익스피어)
하지만 정작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또한 돈이다. 파란 잉크 칠해진 종이조각. 계좌를 통해 움직이는 숫자들. 그걸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돈은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짐멜의 ‘돈의 철학’ (조희연 외 옮김, 한길사)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지만 그 정체는 신비하기 짝이 없는 돈에 대해 가장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는 고전이다.
돈이 정말 매력적인 건 상대성·운동성 때문 아닐까
짐멜은 화폐를 단순한 경제학적 사물로 다루는 것에 반대한다. “수도원의 설립이 종교적 현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듯 화폐도 경제적 사물이기만 한 게 아니다.” 그 피상성을 뚫고 나아가야한다. 화폐에는 근대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심층 변화가 새겨져 있다.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 소위 전문가들은 사실성의 문제에만 주목하지만, 짐멜은 그 현상들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근대 문화의 전반을 화폐와 관련짓는 짐멜의 솜씨는 놀랍기 그지없다. 가령 화폐는 근대적 지성의 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물들의 보편 척도로의 환원, 감정과 무관한 논리적 전개, 주관성을 배제한 객관적 평가. 화폐의 정신은 근대 과학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화폐는 주체와 대상의 질적 교감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사랑을 타락시킨 범인이기도 하다. 순간적이고 강렬한, 하지만 곧바로 끝나버리는 사랑. 돈을 지불함으로써 모든 관계를 청산해버리는 매춘은 화폐적 사랑의 전형이다.
화폐는 또한 속도나 시간에 매달리는 근대적 삶의 상징이다. 다양한 재화들을 하나의 화폐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속도가 증대한다는 이야기다. 화폐사용과 더불어 삶의 회전속도가 빨라지며, 동시에 속도에서 앞서야 화폐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단편적 사례들이 아니다. 짐멜은 맨 끝에 가서 심중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피상성을 뚫고 도달한 근대의 심층, 거기에 있는 것은 ‘존재의 상대주의’다. 과거를 지배한 세계관이 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었다면, 근대의 세계관은 철저히 상대적이다. 모든 가치들은 절대 척도가 아니라 상호 교환을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끊임없이 교환되고 팔리는 것이 있을 뿐,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없다. 근대 들어 화폐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것은 그것이 상대성 자체를 표현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안정감을 주는 것은 언제든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있는 운동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의 상대화, 불멸하는 것의 죽음, 부동하던 것의 운동. 니체가 기회일지 모른다고 말했던 그 거대한 변화 앞에서 짐멜의 목소리는 결코 밝지 않았다. 신파가 사라진 시대, 그 역시 사랑을 살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고 믿었던 게 아닐까. _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공동대표)
○ 독자의 평
– 저자의 머리말
인식 일반의 전제 조건들은 하나의 보다 근본적인 과학을 필요로 한다.(5)
언제나 사람들의 개별적인 평가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예술적인 재구성의 문제인 동시에 가설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정신의 원인들이 중요하다.(6)
이 연구는 결코 국민경제학적 입장에서 행해지지 않았다.(7)
오히려 모든 교환행위는 하나의 심리학적, 윤리사적, 그리고 참으로 미학적 사실로도 취급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7)
이 책 전체의 의미와 목표는 모든 인간적인 것의 궁극적 가치와 중요성을 파악하기 위한 방향을 경제적 현상의 피상성을 뚫고 끄집어내는 일,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7)
이 연구의 통일성은 특정의 지식 내용에 대한 주장과 그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의 점진적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닐, 삶의 모든 소소한 측면으로부터 삶의 총체적 의미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 속에 있는 것이다.(8)
철학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예술의 엄청난 장점은 예술이 항상 엄밀히 규정된 개별적 문제 ― 하나의 인간, 하나의 풍경, 하나의 분위기 ― 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은 이렇게 규정된 개별적 문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시키는 모든 활동과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윤곽을 덧붙이는 일을 하나의 예술적 풍부함, 선물, 그리고 마치 예기치 않은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현존재의 총체를 바로 자신의 문제 영역으로 삼는 철학은, 자신의 문제 영역의 크기에 비해서 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기대되고 있는 바를 충실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8)
방법론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러한 기본적 의도는 사적 유물론에 대하여 하나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적 문화의 원인들 속으로 경제적 삶을 통합시키는 설명 방식이 그 설명력을 인정받고 동시에 모든 경제적 구조들 자체도 보다 심오한 평가와 흐름, 심리학적 혹은 더 나아가서 형이상학적 전제조건들의 결과로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인식과정에 있어서, 이것은 끊임 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전개되어야만 한다.(8)
파악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의 인식관계의 근거가 되는 사물들의 통일성은, 개념적으로 상호 대립되어 있는 인식의 원칙들의 이러한 상호교환과 결합 속에서 비로소 우리들에게 실천적이고 생동적인 것이 된다.(9)
– 짐멜과 『돈의 철학』에 대하여_데이비드 프리스비
짐멜의 저작에 대한 충분한 학문적 인정의 거부에 대한 진술은 당시 독일 학계에 팽만하고 있었던 반유태주의와 결부되어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21)
“사적 유물론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생철학 Lebensphilosophie의 틀에 그 결과를 포함시키는 셈이다. 이 경우 그것은 주관성과 문화적 제형식간의 해소불가능한 대립으로서 나타난다. 짐멜에 의하면 이같은 대립은 문화 특유의 비극이다.”(루카치,『이성의 파괴』)(53)
“짐멜은 여전히 교환경제를 말 그대로의 ‘고립경제’의 개념으로, 즉 고립된 개인이 타개인이 아니라 자연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경제”로 보고 있[다.](56)
짐멜[은] 세계의 점진적인 합리화 과정을 논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화폐의 유통은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나, 상품이라는 범주가 세계관 전체를 구조짓는 보편적 범주가 된 것은 바로 근대자본주의, 그것도 이곳에서의 근대자본주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만하임]고 하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즉 짐멜의 분석은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양식의 분업이 낳은 결과는 어떠한 것들인지를 확인하게 해줄 역사적 구체성의 수준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짐멜은 소외의 진전을 사회적 관계로부터 떼어내 버렸다.[”](60)
짐멜은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이 초래하는 결과의 일부에 대해서는 분명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그를 “형이상학적 비애감 metaphysical pathos”으로 이끌었다.(60)
짐멜의 『돈의 철학』은 “사회주의라는 단어 대신에 그의 신앙과도 같은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대치시키고, 방향은 반대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마침내 고립적 자아 solitary ego, 즉 차후 민법 individual law의 담당자가 될 산업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고독한 인간상을 정립해 나갔다.”(마가리트 주스만)(61)
“어떻게 보면 그의 사회학은 탐미적 사회학 sociology of an aesthete, 혹은 문학 살롱의 사회학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것도 같다”(폰 비제)(62).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는 때때로 엘리트를 통한 문화의 재건이라고 하는 [스테판] 게오르그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요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게오르그의 그같은 생각에 동조하였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짐멜은 1901년에 출간된 게오르그 연구서에서 예술작품을 “완전히 자족적이며 완벽하게 자율적인 우주”라 칭하고, 따라서 사회․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미학적 차원에 귀속시킨다.(63)
그것은 현실의 미적 전화 the aestheticization of reality라 규정할 수 있는 측면이다.(63)
“그[짐멜]는 사회학에 있어 ‘인상주의자’라 불릴 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전체 사회를 구성적으로 조망할 능력이 아니라, 이전에는 간과되었었던 부차적인 사회력들 social forces의 의미를 분석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의 눈짓 혹은 빈민들의 심리적 상태, 혹은 다양한 형식의 사교 등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그의 묘사를 보노라면,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것이면서도 이제껏 찾아볼 수 없었던 수많은 관계들이 돌연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만하임)(66)
삶의 제형식은 “우리를 사물의 본질로부터 유리시키며, 그것은 ‘저 멀리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확신을 가지고 현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그 현실을 더듬다가 곧 움츠리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주관주의의 기본적 의도는…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 자기 내부로 퇴행함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와 대상간의 불가피한 간격을 의식적으로 용인함으로써 대상과 더 친밀하고 진실된 관계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내면적 퇴행인 동시에 현실을 더욱 인지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 intellectualization이기도 하다.(만하임)(67)
“이 본성의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내면사회학 a sociology of inwardness이 필요할 것이다.(아도르노)(67)
이같은 광범한 심미주의가 짐멜의 방법론 및 세계관의 핵심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특정의 계기가 많은 다른 계기와 맺는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사회적 총체성의 제원칙을 밝혀내는 그의 능력이 미학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루카치도 지적하고 있듯이 “거미줄같이 복잡한 이 상호관계의 망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지 못한 채 미로로 남아 있다.”(68)
– 제 6장 생활양식
– 화폐경제가 초래한, 감정적 기능에 대한 지적 기능의 우위
지적 에너지는 화폐경제라는 특수한 현상이 산출해내는 심리적 에너지로서, 화폐경제가 침투하지 않은 이해관계의 영역이나 시대에 널리 존재하는, 일반적으로 감정이나 기질로서 묘사되는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화폐가 갖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낳는 결과이다.(537)
세계의 내용은 전적으로 중립적인 것이며, 어느 시점에서 돌연히 의지에 의해 채색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되면, 의지는, 최초의 개념들과 인과적으로 연결된 다른 개념들에게로 순수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전된다.(538)
빈번히 거론되는 원시인들의 충동성과 감정적 몰입성은 그들의 목적계열이 짧다는 사실과 확실히 관계가 있다.(538)
오늘날 그같은 만족의 순간을 위한 준비와 우회로가 무한히 길어지게 되자, 순간의 목표는 보통 그 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심지어 인간이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수단계열의 이같은 연장은 화폐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왜냐하면 화폐는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을 계열들에게 공통적인 중심적 이해관계를 만들어주고, 그리하여 상이한 계열들을 서로 연결시키며, 하나의 계열을 객관적으로 아주 무관한 다른 계열에 대한 준비과정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화폐가 어디에서나 목적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그 자체가 목적인 무수한 사물들이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일반적인 사실이다.(539)
자연의 과정을 해석하는 데 있어 감정적 강조가 객관적 지성으로 대체되었듯이, 우리의 실천적 세계의 대상들과 관계들도 그것들이 점차로 더욱 상호연관된 계열을 형성하는 만큼 감정의 개입을 배제한다. 감정은 단순히 지성의 대상이 되며, 오직 목적의 ‘종착적’에서만 나타난다. 인식가능한 행위요소들은 객관적 주관적으로 계산가능한 합리적 관계가 되고, 그리하여 오직 삶의 종착점, 즉 최종목적에만 관련되어 있는 감정적 강조와 결정을 더욱 더 제거시켜 버린다.(539-40)
– 생활양식의 무특징성과 객관성
화폐 자체가 사물들의 가치관계의 기계적 반영이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유용한 것이라면, 화폐거래 속에서 모든 개인들은 [양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개인이 가치를 갖기 때문이 아니라 화폐 이외의 어느 것도 가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540)
우리는, 아무리 야비한 음모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순종적인 도구로서 그 중심가치를 제공하는 화폐경제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화폐경제가 가장 고상한 활동에 대해서도 자신의 중심가치를 순종적인 수단으로서 제공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상쇄되지 않으며, 오히려 화폐의 활동과 우리의 고차원적인 가치개념 사이의 아주 우연적인 관계, 화폐와 그 가치개념의 비교의 완전한 무의미성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541)
[지성의 인간에게는] 목적으로서의 화폐에 의한 여러 활동과 이해의 평준화과정에 대해서 오직 최소한의 저항이 있을 뿐이고 경제적 활동을 통하여 개인이 획득할지도 모를 규정성과 특징은 완전히 사라진다. 분명히 그러한 생존수단은 ‘약삭빠름’이라 불리는 비범한 지력이 있어야만 성공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래야만 가능하게 된다.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과 삶의 내용 사이의 확고한 이상적 구분선이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직업’을 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542)
– 지성과 화폐의 이중적 역할: 내용면에서 보면 그것들은 초개인적이다
화폐는 순수한 고립 속에서 또한 독립적인 현현체로서, 교환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객관성의 요소를 표현한다. 왜냐하면 화폐는 교환되는 개개 사물들의 모든 일면적인 속성들로부터 자유롭고, 어떠한 경제적 주체와도 편중된 관계를 전혀 맺지 않기 때문이다.(545)
– 지성과 화폐의 이중적 역할 : 기능면에서 보면 그것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교육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는 표면적인 평등은 사실은 노골적인 조롱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개인들이 모든 종류의 재화를 획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주의 이론들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재화들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549)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들은 과거에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안락과 문화적 향락을 누리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수준과 상층계급의 생활수준의 격차가 더욱 넓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체 지식수준의 향상은 결코 일반적 평등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550)
– 법과 논리의 합리주의와 화폐의 관계
보편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노력은, 화폐가 그 내면적인 본질상 어떤 특수한 개인적 관계도 배제하는 민주적이고 평준화된 사회적 형식이라 할지라도, 가장 단호하게 화폐를 거부한다.(553)
현대의 생활은 다른 영역들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내용적 보편성과 실천적이고 개인적인 보편성 사이의 긴장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것 같다. 현대생활의 일정한 요소들의 내용은 더욱 더 보편적인 것이 되고 보다 많은 개별적 관계들을 지배하게 되며, 그리하여 그 요소들의 개념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현실의 더 많은 부분을 포함하게 된다. 현대의 생활양식을 특징짓고 있는 혼란과 비밀스런 자기모순의 느낌은, 한편으로는 이 요소들의 내용 및 객관적 중요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성과 평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요소들이 개인적으로 사용되는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과 긴장에 부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554)
– 현대문화의 계산적인 성격
우월하지는 않지만 동등한 권리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한 개인이 다수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만장일치가 아닌 결정은 유효하지 않았다. 소수가 다수에 복종해야 한다고 하는 원칙은 개인의 절대적인 질적 가치가 단지 양적인 의미로 전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경제는 일상적인 거래에서 계속적인 수학적 계산의 필요성을 강화시킨다. 많은 사람들의 삶은 질적 가치들을 양적 가치들로 평가하고 계산하며 환원시키는 과정에 포함된다.(555)
Ⅱ
– 문화의 개념
삶의 가치들은 문화가 됨으로써 자연의 힘과 관념적 내용을 초월한다.(나무와 동상의 예)(557) 사물들을 가꿈으로써kultivieren, 즉 자연적인 메카니즘에 의해서 그 사물들에게 주어진 수준을 초월하여 그것들의 가치를 증가시킴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개량하는 것이다. 외부적 자연과 우리의 내면적 본성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에게로 되돌아오는 동일한 가치증식과정이다.(558)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표어는 순수예술의 자기만족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이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문화의 내용들은 각각 자신의 자율적인 이상을 따르는 형식들로 구성되지만, 그 형식들은 순수히 자연적인 수준을 초월하여 발전하는 우리의 힘이나 존재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인간은 대상을 다듬으면서 그 대상들을 자신의 관념에 따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559)
현상들이 이 개념 혹은 저 개념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현상들의 양적인 성격이다. 그러므로 모든 양적인 사물들은 연속적이며, 각각 완전히 다른 범주에 속해 있는 두 양들 사이에 중간적 위치가 항상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개별적 현상은 때로는 이 범주에 때로는 저 범주에 속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 고유한 의미에 의하면 완전히 상호배타적인 두 개념들의 혼합이 가능하게 된다.(559)
– 물질문화의 성장과 인격적 문화의 지체
18세기의 교육적 이상이 인격의 형성, 다시 말하면 개인의 내적가치에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19세기에 있어서는 그것은 일련의 객관적 지식과 행동방식을 의미하는 ‘교양’에 의해서 대체되었다.(561)
플라톤은, 어느 시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지식이란 단지 관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그러나 우리에게 심리적인 실현을 요구하는 인식복합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러한 심리적인 실현을, 미래의 어느 때인가 우리가 획득하게 될 전체적인 인식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의 배반으로서, 즉 ‘이제 그 전체적인 인식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표현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체적인 인식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563)
우리의 실천적 존재가 비록 부적당하고 단편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전체를 실현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일정한 중요성과 일관성을 획득한다. 구체적인 개별적 사물이 그것의 내재적인 법칙과 논리적 본질을 표현하는 개념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내재적인 법칙과 본질의 의미가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자주 실현되는가와는 전혀 무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존재 전체도 아름답건 추하건, 옳건 그른 것이건, 크건 작건 하나의 가능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으로서 나타나며, 일정한 관념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러한 가능성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관계를 맺는다.(563-64) 어떠한 감각적 지각이나 논리적 도추에 의해서도 우리는 결코 직접적으로 현실을 확신할 수는 없다.(564)
– 정신의 객관화
우리는 개인의 정신들에 의해서 실현될 것이지만 하나의 물질적 대상의 특성과는 결코 똑같지 않은 자기나름의 독특한 질적 규정성을 보존하고 있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내용들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정신이 도구, 예술작품 및 책 등과 같은 사물들과 결부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신은 우리가 그러한 사물들 속에서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은 사물들 속에서 더 이상 정의하기 어려운 잠재적인 형식으로 존재하며, 개인의 의식은 정신을 그러한 잠재적 형식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실현시킬 수 있다. 객관적 문화는 우리의 인식에 의해 재생산되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진리의 역사적 표현이거나 보다 완전한 혹은 불완전한 응결이다.(565)
인간은 후손일 뿐 아니라 상속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언어와 노동 및 조직과 전통 속에 객관화된 정신은 인간에게 비로소 그의 세계, 참으로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여 주는 이러한 우월성의 담지자이다.(566)
– 주관적 문화와 객관적 문화의 분리의 원인으로서의 분업
우리의 힘이 자신의 고유한 통일성을 발휘할 수 있는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주체와 대상의 참된 관계는 성립하지 못한다. 한 생산자의 업적의 내적 경향은 그 업적을, 그것과 더불어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다른 생산자들의 업적들과 연결시켜주지만, 그 생산자가 직접 표면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점증하는 전문화 때문에 노동자의 존재형식과 그의 생산물의 존재형식의 괴리가 발생하며 따라서 생산물은 노동자로부터 아주 쉽게 근원적으로 분리된다.(567)
예술작품의 본질은, 어느 누구도 혼자로서는 전체적인 작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노동자들 사이의 노동의 세분화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예술작품은 인간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자족적인 통일체이다. 예술작품은 오직 ‘한’ 사람만을 필요로 하지만 그의 전체를, 즉 그의 가장 내적인 핵까지를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그 사람을 가장 순수하게 반영하고 표현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보답한다.(568)
예를 들어 과학에서의 과도한 분업 때문에 오직 소수의 학자들만이 자신들의 작업의 전제조건들을 스스로 갖출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났다. 자신의 연구를 위한 토대인 수많은 사실들과 방법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재산으로서, 즉 하나의 객관적인 재료로서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질 뿐이다.(570)
중세의 수공업을 지배하였지만 지난 세기에 들어와 급속히 퇴락한 주문생산은 소비자에게 상품과의 인격적 관계를 제공하였다. 상품은 특별히 그 소비자를 위해서 생산되었으며, 따라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상호관계를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상품은 내면적으로 생산자에게 속할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속하는 것이기도 하였다.(571)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