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스티븐 단도–콜린스 / 다른세상 / 2010.12.20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여러 차례 자신의 운명과 목숨을 맡긴 군단, 불굴의 의지를 지닌 백인대장 크라스티누스가 활약한 군단, 카이사르와 숙명의 대결을 펼친 폼페이우스가 적군 가운데 가장 강하다고 인정한 군단!
100여 민족과 120개의 속주를 통합한 로마는 제국이라는 칭호가 역사상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어울린다. 이러한 로마의 영광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특히 카이사르가 만든 10군단은 그 명성이 대단하다.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에서는 이러한 로마의 영광을 만든 주역, 10군단을 통하여 로마군이 어떻게 무적의 군단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10군단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정복했고 내전의 소용돌이에서도 거듭 승리했다. 당시 로마군의 평균 신장은 163cm에 불과했다. 동시대의 평균신장을 생각하면 이는 왜소한 체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외형적 한계를 철저한 훈련으로 극복하였다. 로마군은 최대 100파운드에 달하는 짐을 짊어지고 하루에 40km를 넘는 거리를 행군했다. 또한 로마군은 항상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부족한 병력으로 훨씬 수가 많은 적군들과의 전투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풍랑에 배가 부서저 고립무원의 처지로 전투에 임할 때도 늘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독자들은 이러한 로마군의 전투와 승리의 기술을 보면서 어떠한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1. 눈앞에 직면한 패배
2. 영광에 목마른 장군
3. 스위스를 넘어 게르마니아까지
4. 갈리아 정복
5. 브리타니아 원정
6. 반란과 복수
7. 국가의 적
8. 깨어진 약속
9. 두러스를 향한 경주
10. 패배의 쓴잔
11. 파르살로스 전투
12. 10군단의 항명
13.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죽음
14. 한마디 말의 힘
15. 북아프리카 전쟁
16. 카이사르의 마지막 전투
17.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병사들
18. 필리피와 악티움
19. 황제의 이름으로
20. 코르불로가 다시 만든 정예 군단
21. 황제로부터의 명령
22. 포위당한 예루살렘
23. 성도의 최후
24. 마사다 요새
25. 마지막 날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부록
지도
기원전 1세기“서양”
기원전 58~50년 브리타니아와 갈리아
기원전 1세기“동양”
기원전 1세기 스페인
기원전 1세기 이탈리아 남부, 발칸 반도, 그리스, 소아시아
서기 1세기 중동, 서기 66~71년 팔레스타인
서기 1세기 예루살렘
서기 1세기 예루살렘 성전 모식도, 마사다 요새
개별 군단의 역사(기원전 30년~서기 233년)
로마군이 신병을 모집한 방법
이집트와 유대 주둔 군대의 독특한 명령 체계
로마 군단의 이름과 번호가 붙여진 과정
10군단의“프레텐시스”라는 명칭
제국 로마군의 계급 그리고 오늘날과의 비교
참고문헌
어휘 설명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스티븐 단도–콜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이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30년간 로마군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원전 84년 ~ 서기 231년에 만들어진 50개 군단의 상세한 역사를 연구했다. 이 책 외에도 《Tycoon’s War》, 《Nero’s Killing Machine》 등의 로마사와 미국사, 영국사, 호주사, 프랑스사 같은 현대 역사서를 썼다. 현재는 호주의 타스마니아에 있는 자택에 살며 저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 역자 : 조윤정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그 후 다양한 인문서와 역사서, 특히 상당수의 로마 관련 서적을 번역하였다. 옮긴 책으로는 《아우구스투스》, 《열두 명의 카이사르》, 《잡식동물의 딜레마》, 《금융의 제왕》, 《모던타임스》 외에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오른쪽에서 밀집방진으로 싸우고 있던 보두오그나투스와 네르비족 전사들은 꼼짝없이 갇힌 카이사르와 두 군단만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10군단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선두에 선 10군단 보병대에게 측면을 공격당했다. 10군단은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장에 돌아오자 전세가 역전되었다. 10군단 병사들이 맹렬하게 싸워 카이사르를 구한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나중에 이날 그들이 인간의 용기 이상의 것을 보여 주었다고 썼다. 그들의 맹공격에 당황한 네르비족은 10군단에 밀려 강 쪽으로 도망쳤고, 덕분에 카이사르는 7군단과 12군단을 재편하여 10군단에 합세하게 할 수 있었다.— p.55-56
로마군은 부족한 병력으로 길게 펼쳐진 방어선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 내야 했기 때문에, 이 양방향의 합동 공격은 분명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부장들은 침착하고 현명하게 군사를 지휘했다. 라비에누스, 브루투스, 파비우스, 그리고 최근에 부임한 장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까지 모두가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카이사르는 이 마지막 전투를 묘사할 때, 장군들과 보병대들에 관해선 말했지만 열 개 군단 가운데 어떤 군단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 방어선에서 취약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임시변통으로 병력을 나누어 투입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섯 개의 파견 보병대가 전투를 벌이고, 저기서 열한 개의 혼성 보병대가 싸우는 식이었다. — p.101
“우리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카이사르는 말했다. “또 다른 기회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그는 재빨리 전투 신호로 붉은 깃발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카이사르군 병사들은 이제 평원으로 나가 폼페이우스군 맞은편에 전투 대형을 형성했다. 아피아노스와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마침내 바라던 날이 왔다. 오늘 그대들은 허기나 굶주림이 아니라 적군과 싸울 것이다.” — p.186
안토니우스는 한편으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연인 사이가 되었는데, 이 사건은 로마 사회에서 큰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안토니우스는 이미 결혼한 몸인 데다가 로마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합법적으로 외국인과 결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배우자처럼 대우했고, 따라서 그의 아내는 이름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다 그가 동방의 로마 영토를 그녀에게 선물로 준다고 선언하자, 로마에서 그의 주가는 완전히 폭락하고 말았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이루어져 있던 권력 공유 협정은 기원전 33년 말 만료된 후 갱신되지 않았다. 사실 전쟁은 시간문제였다. — p.304
예리코와 키프로스 함락은 10군단 병사들에게 특히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키프로스는 오래된 헤로데 대왕 시대의 요새로, 예리코가 내려다보이는 먼지 가득한 벼랑 위에 자리해 있었다. 이 도시는 전해에 유대인 반군들이 제3 아우구스타 군단의 병사 500명을 학살한 곳이었다. 로마의 복수는 신속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졌다.— p.365
○ 출판사 서평

– 빛나는 무훈담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 무적의 군단, 그들은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가?
제국이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 로마. 100여 민족과 120개의 속주를 강제로 통합한 거대 제국! 이러한 로마의 핏빛 영광을 가능케 한 건 바로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카이사르가 만든 10군단은 특히 유명하다. 그들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정복했고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끊임없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어떻게 무적의 군단이 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당시 로마군의 평균 신장은 163cm에 불과했다. 빵이 주를 이루던 식단 때문에 체구 또한 왜소했다. 그러나 철저한 훈련을 통해 진정한 전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로마군은 최대 100파운드(약 45.4kg)에 달하는 짐을 짊어지고 하루에 25마일(약 40.2km)을 행군했다. 또한 행군 중에도 매일 새로운 진지를 세웠다. 로마군은 항상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 했다. 비브락테 전투에서는 30만 명의 헬베티족에 맞서 싸웠고, 브리타니아 원정 때는 풍랑에 모든 배가 부서져 고립무원의 처지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알레시아 공성전에서는 부족한 병력으로 방어선 안팎에서 적군이 벌인 합동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가 로마군을 최강의 군단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늘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과 전술 덕분이었다. 저자는 로마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10군단, 일명 ‘카이사르 군단’을 통해 로마군이 어떻게 무적의 군단이 되었는지, 어떻게 모든 전투에서 값진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하나의 개별적인 로마 군단을 다룬 역사서는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지금까지 출간된 적이 없다. 10군단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은 전쟁에서 이기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하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은 변했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어떠한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 원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어 내는 불굴의 의지까지. 10군단의 무훈담은 우리에게 승리를 쟁취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 준다.
– 10군단, 제국의 전설을 만들다!
10군단은 기원전 61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창설한 날부터 무려 135년 간 로마 최고의 군단으로 활약하였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운명과 목숨을 10군단에게 여러 차례 맡겼고, 폼페이우스는 그들을 적군 가운데 가장 강한 군단이라고 인정했다. 10군단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백인대장(百人隊長) 크라스티누스가 활약한 군단이기도 했다. 그들은 코르불로 장군의 모진 훈련 아래서 자신의 용맹을 재발견하고, 여러 개의 성벽으로 가로막힌 예루살렘과 천혜의 요새 마사다를 정복하였다. 저자는 10군단의 시련과 승리를 통해 권력과 핏빛 영광의 절정기에 있던 로마와 로마군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많은 군사 역사가들은 카이사르가 만든 군단들을 화약이 도래하기 전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보병 부대로 평가하고 있다.
– 영웅들의 대결! 그 속에서 빛나는 진정한 리더십!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정면 대결을 펼친 문다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생애 처음으로 패배에 직면했다. 폼페이우스 군을 공격하기 위해 언덕 위로 진격하던 병사들이 적군의 투창 세례에 겁을 집어먹고 그 자리에 멈춰선 것이다. 카이사르는 이들을 독려했지만 소용없었다. “여기서 지면, 나는 목숨을 잃고 그대들은 경력이 끝난다.” 카이사르는 이 말을 남기고 투구를 벗은 채 홀로 앞으로 나아갔다. 병사들을 몰아세우는 대신 위험 속으로 먼저 뛰어든 것이다. 이 같은 카이사르의 행동은 병사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카이사르 군은 결국 값진 승리를 얻게 된다. 이처럼 군단을 이끄는 수장의 행동은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저마다의 리더십으로 병사들을 통솔한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은 물론, 백인대장 크라스티누스와 10군단을 다시 만든 코르불로 장군까지 책 속에는 다양한 타입의 리더가 등장한다. 로마의 영광을 드높인 영웅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 속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 역사상 최고의 전투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플루타르코스, 수에토니우스, 카이사르의 저작 등 로마와 관련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전투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숙명의 대결을 펼친 파르살로스 전투, 카이사르의 뛰어난 전술이 돋보이는 탑수스 전투, 해전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악티움 해전, 제1차 유대-로마 전쟁까지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사적 전투들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전투에 참여한 장군이나 백인대장 혹은 병사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당시의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어떠한 요인이 결정적 패인 혹은 승리의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또한 저자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 군단의 배치와 전투의 진행 상황을 자세히 서술한다. 이 책은 군사적 지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