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말
장 폴 사르트르 / 민음사 / 2008.10.17
노벨상에 선정되고도 최초로 그 수상을 거부한 작품 『말』. 1964년 10월 22일, 사르트르의 회고록 『말』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르트르의 어린 시절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에 따라 책 역시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적 교양을 가장 높은 정신의 작업으로 알고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던 조부의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사원인 동시에 희한한 놀이터였다.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장폴 사르트르 회고록. <말>은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이는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사건으로서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사르트르의 명성을 한층 드높여 주었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윈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나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다.

현명하고 조숙했으며 누구보다도 자존감 강했으나 학교에서는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이 사르트르. 그 열정적이면서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문호’ 장폴 사르트르의 인간적 매력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적 저서와 문학 작품의 씨앗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 목차
1부 읽기
2부 쓰기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1980. 파리 출생으로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메를로 퐁티, 무니에, 아롱 등과 함께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슈페리어에 다녔으며, 특히 젊어서 극적인 생애를 마친 폴 니장과의 교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도 그 시절에 만났다. 전형적인 수재 코스를 밟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그는 항구 도시 루아브르에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다가 1933년 베를린으로 1년 간 유학, 후설과 하이데거를 연구하였다.
사르트르는 1938년에『구토』를 출간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며 신진 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였고,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을 발표하였다.『존재와 무』『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변증법적 이성비판』등을 발표하고『레탕모데른』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차 대전 전후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호평받기도 했는데, 『파리떼』『출구 없음』『더럽혀진 손』『악마와 신』『알토나의 유페자들』 등은 그 사상의 근원적인 문제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때마다 작가의 사상을 현상화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64년, 『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1980년 4월 15일 작고할때까지 끊임없이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 역자 : 정명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 『한국인과 문학사상』, 『졸라와 자연주의』, 『문학을 찾아서』, 『20세기 문학과 이데올로기』(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 『20세기의 지적 모험』, 『자유의 길 제1권』, 『나나』 외 다수가 있다.
○ 책 속으로
이를테면 나는 화성에서 돌아다니던 사람이어서 중력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조그마한 언덕 위로만 기어 올라가도 족히 기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나의 상징적인 7층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또다시 문학이라는 희박한 공기를 들이마
셨다. 세계는 내 발밑에 층층이 겹쳐 있었고, 모든 사물이 제각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고, 사물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곧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환상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97p
그것이 괴롭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였다. 이 세상의 재물은 그 소유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반대로 내게는 그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가를 가리켜 보였다. 나의 존재는 단단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한 일을 장차 계승할 자도 아니었고, 강철 생산에 필요한 자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혼이 없는 존재였다.
나는 책에 둘러싸여서 인생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죽을때도 필경 그렇게 죽게 되리라. 할아버지의 서재는 도처에 책이었다.-45쪽
정신 상태로 보아 플라톤주의자가 된 나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나로서는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나의 관념론은 바로 여기에 유래한 것이며, 나는 그것을 청산하는데 30년이 걸렸다.-56쪽
나는 이미 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서재가 곧 신전이었다 -66쪽
세계는 내 발밑에 층층이 겹쳐 있었고, 모든 사물이 제각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곧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환상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67쪽
p. 14
(샤를 아내 루이즈)활발하고 얄밉고 쌀쌀한 그녀의 사고방식은 올곧고도 짓궂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생각이 선량하면서도 삐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거짓말쟁이이면서도 어수룩한 까닭에 그녀는 만사를 의심했다. –그녀는 점잖은 것과 연극을 다 같이 싫어하게 되었다. 촌스러운 정신주의자들의 집안에 잘못 끼어든 이 예민한 현실주의자는 반발심이 나서 볼테르를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볼테르주의자(회의주의자)로 행세했다.
p. 14
(루이즈)“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싶어하도록 만들어야 한단다.”하고 그녀는 늘 말했다. 과연 처음에는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그 수가 차차 줄어들고 마침내는 만나 볼 수가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p. 15
(외설 소설 읽는 루이즈)“참 대담하군. 잘도 썼지. 인간들이여, 가볍게 스쳐 가라. 힘껏 딛지 말아라.”하며 새침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p. 17
(루이즈 딸 안마리에 대해) 검소하고 자존심이 강한 이 중산층 인간들은 아름다움이란 자기들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면 후작 부인이나 창부들에 대해서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18안마리는 그를 정성껏 돌보았지만 사랑한다는 주책을 부리지는 않았다. 루이즈가 부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을 미리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는 자기 어머니를 좇아 쾌락보다는 의무를 택했다.
p. 19
그녀는 결혼 전이나 후나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을 잘 몰랐고, 때로는 이 낯선 사나이가 왜 하필이면 자기의 품 안에서 죽으려고 온 것인지 기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19어머니는 마음으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아들을 되찾은 것이 기뻤지만, 나는 본 일도 없는 한 여자의 무릎 위에서 의식을 회복했으니 말이다.
p.20
자기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좋았지만, 동시에 특권을 잃게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 루이즈(사르트르 외할머니)
p. 21
얌전히 앉아만 있었으면 귀찮은 식객이라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니 이번에는 집안을 휘어잡으려한다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그러니 첫 번째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온갖 용기를 내야했고 두 번째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겸손할 대로 겸손해야만 했다.
p. 21~22
아버지의 죽음은 내 생애의 큰 사건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사슬로 묶고 내게는 자유를 주었다. 세상에 훌륭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 남자들이 나쁜 탓이 아니라 부자 간의 관계란 원래 고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뭐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이를 소유하겠다니 그런 당치 않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
p. 22
사람은 그냥 죽기만 해서는 안 되며 알맞게 죽어야 한다. 만일 아버지가 더 늦게 세상을 떠났더라면 나는 죄의식을 느꼈으리라. 철이 든 고아는 부모의 죽음을 제 잘못으로 돌려 스스로를 탓하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무척 기뻤다. 남들이 나의 처지가 불쌍하다면서 나를 존중하고 떠받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으로 죽었다.
p. 30
내게는 매우 불완전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밖에는 없었다. 초자아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성격도 없었다. 어머니는 애초부터 내 것이었으며, 그녀를 담담하게 독점하는 것을 누구 하나 시비하지 않았다. 나는 폭력도 증오도 모르고 질투라는 이름의 그 괴로운 수련을 겪지도 않았다.
p. 32
나는 악이 발붙이기에는 나쁜 땅이다. 착한 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애써 노력하거나 스스로를 억제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새로운 수작을 꾸미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p. 34
나는 알맞게 죽어 준 아버지 때문에 자유를 얻었고, 줄곧 죽기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허나 그것은 별수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무당들은 모두가 죽은 여자들이다. 어린애도 모두가 죽은 자의 거울이다.
p. 35
세대의 싸움에서 흔히 어린애와 노인은 한패가 되는 법이다. 어린애가 신탁을 내리면 노인이 그것을 푼다. 자연은 말을 하고 경험은 통역을 하는 것이다. –어린애가 없으면 개를 얻으면 된다. –어린애와 짐승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배반하면서 사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전도유망한 강아지였다.
p. 44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앞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사랑한 일이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워하는 동시에 환심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또한 환심을 사려는 동시에 사랑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p.84
이를테면 나는 난잡한 짓을 하고 난봉을 부리고 사창가에서 바캉스를 보냈지만, 나의 진리가 어디까지나 성전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 허드레 책을 읽으면서 하는 비유
p. 88
나는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억지로 느껴 보려는 순수하지 못한 기쁨을 더 값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혐오감은 그들의 위신의 일부였다. 나는 불쾌감을 진지함과 혼동하고 있었다. 나는 위군자였다. 바로 선생이 내게로 몸을 기울일 때면, 그의 입김이 역하고도 그윽해서 나는 그의 덕성에서 풍겨 나오는 그 악취를 열심히 들이마셨다.
p. 92~93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느끼기를 멈출 수 없는 존재의 결핍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내 능력을 보장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럼으로써ㅗ 영락없이 속임수로 빠져 든 것이었다. 남의 환심을 사야만 했던 나는 아양을 떨었지만 그런 아양은 당장에 빛이 바래 버렸다.
p.94
(에밀 아저씨는) 집안에서 오직 나만이 결백하고, 오직 나만이 일부러 그를 욕보이거나 그를 거짓 소문으로 중상하지 않았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 우울한 사나이의 가슴에 사랑의 불길을 지폈다는 사실에 좀 거북한 느낌이 들어서 방긋이 웃기만 했다.
p.95
한마디로 내 역할은 어른들의 상대역에 불과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서 내 비위를 맞추었다. 그리고 내가 피우는 소란은 할머니에게는 그녀의 심술의 구실이 되었고 어머니에게는 죽어지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p120
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는 따돌림을 당한 나는 이를테면 팔다 남은 물건이었다. 내 나이 일곱 살에 기댈 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었다.
p.145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둘 다 거짓이었다. 나는 공적으로는 사기꾼이었다. 그 유명한 샤를 슈바이체르의 널리 알려진 손자 노릇을 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상상적 불만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가짜 영광을 버리고 익명의 가짜 용사로 변신했다.
나는 아직 글자를 몰랐지만 내 책을 가지고 싶다고 조를 정도로 겉멋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못된 출판사에 가서 시인 모리스 부쇼르가 지은 `꽁트집`을 얻어 왔다. 그것은 민화에서 따온 이야기들인데 할아버지 말로는 어린애의 눈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이 어린이의 취미에 알맞게 고쳐 쓴 책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에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절차를 밟고 싶었다. 나는 두 권으로 된 작은 책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고 쓰다듬어 보고, 종잇장을 바스락거리면서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되는 대로 열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아무래도 이 책이 내 것이라고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인형처럼 다루어서, 가볍게 흔들기도 하고 입 맞추기도 하고 때려 주기도 하였지만 쓸데없었다. 나는 울상이 돼서 그것을 어머니 무릎 위에 갖다 놓고 말았다.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얘야, 어떤 이야기를 읽어줄까? 요정 이야기?˝ 나는 미심쩍어하면서 물었다. ˝요정들이 이 속에 있어?˝
○ 출판사 서평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 사르트르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자유정신과 진실 추구사상, 그리고 풍부한 지식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_ 스웨덴 한림원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1964년 10월 22일, 사르트르의 회고록 『말』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이는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사건으로서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사르트르의 명성을 한층 드높여 주었다.
현명하고 조숙했으며 누구보다도 자존감 강했으나 학교에서는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이 사르트르. 그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문호’ 장폴 사르트르의 인간적 매력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적 저서와 문학 작품의 씨앗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 왜, 자서전인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서전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행위는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소재로 전개한 이야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발표하는 것이며, 독자는 그 이야기에서 인생과 사회에 관한 지식이나 교훈을 얻고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서전의 작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고백이나 경험담에는 소설 이상으로 참되고 중요한 내용이 담겼으리라고 상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르트르가 그의 자서전 『말』을 발표했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계약 결혼, 실존주의, 참여문학, 공산당과의 숨바꼭질 등으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부단히 화제를 뿌려 온 이 특별한 지성인의 본색이 그 책에 담겨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가 감히 드러낸 내적 자아에서 그의 개인적 비밀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진모를 발견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이 기대는 충족되고도 남았다.
『말』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서전의 하나로 공인되었으며 그 후 부단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시대가 완연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이 책은 세계문학의 한 걸작으로서 독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 사르트르, 그의 눈부신 어린 시절을 발견하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나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키가 작고 몸이 약했으며, 가벼운 사시안(斜視眼) 증상을 보였던 사르트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사르트르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양서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문학적 교양을 가장 높은 정신의 작업으로 알고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던 조부의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사원인 동시에 희한한 놀이터였다.
독학으로 글을 깨친 사르트르는 할아버지의 서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순간 “세계”를 만났으며, 그 세계 속에서 “인류의 지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고 서술한다. 이 책의 세계가 그가 인식한 최초의 세계며 유일한 세계다.
또한 사르트르의 글쓰기는 일곱 살 때 할아버지와 운문의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는 곧 산문으로 기울었고, 그는 그 속에서 “행복에 젖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장난’이자 ‘놀이’로 시작된 글쓰기는 곧이어 문학 교수 겸 문사로서의 소양을 쌓아 가는 과정(이 소양은 한때 문학 교수를 꿈꾸었던 사르트르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불어넣은 것이다.)에서 자신의 존재를 필연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새로운 자기기만의 작업”으로 바뀌고, 곧이어 “문학을 통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 그 결과로 자신을 구원하는” 사제(司祭)로서의 작업으로 변모한다. 번역가 정명환은 어린 사르트르가 ‘읽기’와 ‘쓰기’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받으려는 일종의 ‘문학병’에 걸려 있었다고, 작품해설에서 서술하였다.
– 사르트르, 『말』을 통해 문학과 결별하다
사르트르 자신은 『말』이 문학에 대한 고별이었다는 뜻의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는 이미 195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자서전에 거듭 수정을 가해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문학적인 문체를 이루었다. 그 이유가 바로 “문학과 멋있게 결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가 정명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르트르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선언한 일종의 ‘과장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고별’이라는 말이 다만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품 활동의 중단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이후, 『말』을 발표한 후 그런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르트르가 문학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한때 그를 사로잡았던 ‘문학병’이지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문학과의 고별’로서 남게 된 그의 자서전 『말』은 그 존재적 가치를 한층 드높이게 되었던 것이다.
– 한국 불문학계의 원로, 정명환 전(前) 서울대 교수의 열정으로 가득 찬 작품
1964년 초에 『말』의 출간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해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사르트르가 그 상을 거절하여 더욱 큰 화제가 되자, 한 출판사가 고 김붕구 선생과 정명환 선생에게 이 작품의 번역을 부탁하였다. 두 분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주야불식 작업을 이어 나갔고, 거의 한 달 만에 번역을 끝내야만 했다고 한다. 정명환 선생은 그래서 그 작업이 매우 불완전하였고, 누가 “들추어 볼까 겁이 날 정도로 잘못된 곳이 많았”다고 번역 후기를 통해 밝혔다.
4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신판은 정명환 교수가 몇 년에 걸쳐 새로이 다듬고 손을 본 작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반어, 은유, 해학, 상징, 모순어법, 문화적 코드 등이 사르트르 글의 묘미를 한층 더 생생하게 재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말했다.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교정 원고를 몇 번씩이나 꼼꼼히 확인하는 등, 정명환 선생은 『말』을 통해 사르트르와 함께 불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