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메이지 유신과 서양 문명 : 이와쿠라 사절단은 무엇을 보았는가
다나카 아키라 / 소화 / 2006.6.30
『메이지 유신과 서양 문명』는 메이지 계몽주의 시대를 둘러싼 역사를 전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메이지 4년에 국가적 사명을 띠고 요코하마항을 떠나서 약 2년간 미국과 유럽을 시찰한 이와쿠라 사절단과 그 공적 보고서 ‘특명전권대사미구회람실기’를 담았다. 이를 통해 구미의 근대문명ㆍ문화를 일본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는지 알아본다.

○ 목차
책머리에
이와쿠라 사절단 경로도
Ⅰ. 메이지 유신과 『미구회람실기』
1.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 서양-문명과의 접점
2.『미구회람실기』의 서양 이해
3.『미구회람실기』연구의 현 단계
Ⅱ.서양 문명과의 만남
1. 숙녀와 창부-서양 사회와 유교 사회
2. 호텔. 건물. 수도-도시의 기반 정비
3. 도로. 철도. 운하-교통기관과 공간의 확대
Ⅲ. 정치와 교육
1. 의회와 정치-국가와 인민
2. 티에르와 비스마르크
3. 학교와 수업-교육의 실태
Ⅳ.자본주의 시스템
1. 공장과 노동자-산업의 구조
2. 상업과 무역-자본주의의 구조
3. 통신과 신문-저널리즘의 역할
Ⅴ. 사회에 대한 관점
1. 백인.흑인.인디언.황색인종-인종관의 모습
2. 물과 삼림보호-자연과 규제
3.병원과 시설-환경 인식과 약자 보호
Ⅵ. 과학과 문화
1. 동물원. 박물과. 박람회-앎의 체계화
2. 공원과 아카이브즈-공공의 공간
3. 성서와 국가-종교의 역할
Ⅶ.『미구회람실기』와 『문명론지개략』
─푸안신 사절단 및 나카에 조민과 관련하여
1. 푸안신 사절단과 이와쿠라 사절단
2. 『미구회람실기』와 『문명론지개략』─구메 구니타케와 후쿠자와 유키치
3. 진보와 지의 창조
후기
부록
1. 이와쿠라 사절단 구미회람 연표
2. 출발시의 이와쿠라 사절단

○ 저자소개 : 다나카 아키라
1953년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졸업. 일본근대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1928년 야마구치현에서 출생하여 1953년 도쿄교육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일본근대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이와쿠라 사절단의 역사적 연구』(岩倉使節團の歷史的硏究), 『소국주의―일본의 근대를 다시 읽는다』(小國主義―日本の近代を讀みなおす),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團), 『구미회람실기』(歐美回覽實記) 등이 있다.
교주(校注)로는 『특명전권대사 구미회람실기』(特命全權大使 米歐回覽實記, 이와나미문고, 5권), 『일본근대사사대계』(日本近代私事大系, 이와나미서점) 등이 있다.
– 역자 : 현명철
1986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1995년 일본 北海道 대학 대학원 일본사학과 박사과정을 졸업(문학박사)했다.
2005년 현재 경복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19세기 후반의 대마주와 한일관계의 변화>, <독도와 대마도>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일본 가고시마에 여행가기 전에 읽은 책이다. 실제로 가고시마의 유신 후루사토관에 가서 이들의 사진과 업적을 소개한 판넬을 보니, 일본 근대사에서 이들의 비중이 대단하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신 후루사토의 길에도 이들이 요코하마 항을 떠나 구미 각 나라를 순방한 항로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 책을 안 읽고 갔더라면 감흥이 적었을 것은 분명하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이와쿠라를 특명전권대사로 삼아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 등 총 46명의 사절단을 구미로 파견한다. 기본 목적은 기존에 일본이 구미 각 제국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개정을 위한 예비교섭과 선진제국의 문물제도 조사였다. 이들은 1년 10개월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벨기에 등 12개국을 회람하고 귀국하는데, 이의 기록이 이 구메 구니타케가 편수한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이다. 이 책은 <실기>를 간략히 소개, 분석한 책이다.
일단 내 입장에서는 정부 출범 4년밖에 안된 메이지 정부에서 정부 요인의 거의 절반을 회람단으로 파견한 점에서, 신정부의 근대국가 건설에 대한 강한 의욕을 느꼈다.(이때 남아 일본 내정을 담당한 사람이 사이고 다카모리.) 게다가 당시 30,40대인 참가자들의 나이로 보아, 이들이 구미 회람 후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얼마나 강한 추진력으로 정부시책에 반영했을지도 감이 잡힌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도 이미 많이 지적했듯, 나 역시 프로이센에서 만난 비스마르크의 영향으로, 이들이 귀국후 일본국가가 군사적 대국주의를 지향하게 된 점을 이후 역사에 비추어 주목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비스마르크의 영향뿐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