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묵자 (墨子)
묵자 / 박재범 역 / 홍익출판 / 2008
묵가(墨家)의 비조(鼻祖)인 묵자의 사상과 행동을 그의 제자 및 후학들이 기록하여 정리한 책. 묵자는 하층 계급 출신이면서도 유학에 매진하여 상당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낸 인물로 평가 받는다. 기존의 유가와는 다른 사상, 즉 하층민 생활을 통해 형성된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철학을 통해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형식과 계급, 사욕을 타파하고 사회겸애를 주장하여 중국 춘추시대 제자백가에 일대 충격을 던진 묵자의 사상이 담긴 최고의 역작이다. 유려한 문장 속에 불꽃처럼 살아 있는 사상 철학이 현인들의 학문적 견고함과 생에 대한 자세를 엿보게 한다.
묵자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겸애와 절검, 비전은 당대의 다른 사상가들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겸애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유가의 인애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친소원근에 따라 차등을 두고 사랑하는 것에 반해 묵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전은 남에 대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전쟁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과 폐해만을 가져다 준다고 하면서 전쟁 중지를 호소하였다.
절검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기 위한 방편이었다. 묵자는 사치를 금하고 물자를 절약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함으로써 온 백성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장례를 간소하게 하라는 절장과 무절제한 가무를 배척하는 비악을 주장하였다.
○ 저자소개 : 묵자 (墨子)
공자가 세상을 떠난 몇 년 후에 태어났으며, 흔히 묵자(墨子)라고 한다. 주(周)나라 봉건제도가 급속히 붕괴되어 작은 봉건국가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성장한 그는 겸애(兼愛)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도 역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학자였으나, 주례(周禮)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에 생각을 달리하여 자신만의 사상을 세상에 내놓고 그것을 실천할 군주를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에 적합한 군주를 찾지 못하자, 학교를 세워 후학을 키우는 데 힘썼다. 그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했으며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주의를 주창했다.
본명은 묵적(墨翟). 보편적 사랑, 즉 겸애(兼愛)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그의 철학은 수백 년 동안 유학과 맞섰고 묵가(墨家)라고 부르는 종교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공자가 죽은 지 몇 년 뒤에 태어난 묵자는 주(周:BC 111~256/255) 초기에 제정된 봉건적 계급제도가 급속히 무너지고, 중국이 작은 봉건국가들로 나뉘어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성장했다. 따라서 그는 BC 5세기의 중국 사상가들이 당면한 문제, 즉 어떻게 하면 혼란 속에서 정치·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묵자는 원래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던 유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유교는 부담스러운 의례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종교적 가르침을 너무 소홀히 한다고 확신하게 되어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공자는 모든 점에서 볼 때 귀족적인 기질과 경향을 갖고 있었으며, 화려하고 웅장한 주나라 초기의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꿈꾸었다. 반면에 묵자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끌렸고, 주나라보다 훨씬 오래된 원시시대의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과 솔직한 인간관계를 꿈꾸었다. 그러나 묵자의 인생은 중요한 부분에서는 대부분 공자의 인생과 비슷했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중국 고전의 전통에 따라 시를 잘 지었다. 또한 잠시 벼슬에 나섰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군주를 만나기 위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돌아다니며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다. 그러나 각국을 돌아다녀도 그가 찾는 군주는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관직에 추천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스승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공격적인 전쟁을 비난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곤 했다.
〈묵자〉는 묵자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주요저술을 집대성한 것으로, 묵자의 정치·윤리·종교적인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묵자〉는 총 53편인데, 이는 다시 5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 10가지 주요덕목을 개괄하고 있는 2번째 부분이 바로 〈묵자〉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다. 그 10가지 덕목은 상현(尙賢:어진 사람을 존경함)·상동(尙同:윗사람의 뜻에 동조함)·겸애(兼愛:보편적 인류애)·비공(非攻:침략 전쟁에 대한 비난)·절용(節用:근검 절약)·절장(節葬:장례의 간소화)·천지(天志:하늘의 뜻과 그에 따른 상벌)·명귀(明鬼:상벌을 내리는 귀신을 섬김)·비악(非樂:낭비적 활동인 음악에 대한 비난)·비명(非命:숙명론에 대한 반대) 등을 말한다. 〈묵자〉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묵자의 가르침에 대한 요약·발췌, ② 논리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논의, ③ 묵자의 언행에 대한 기록, ④ 군사적 방어술 교본 등이다.
– 역자 : 박재범
충청북도 괴산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문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공부의 방향을 중국현대문학으로 바꿔 중국현대소설을 전공하며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수료 후, 중국 북경사범대학에서 연구학자 과정을 거쳤고, 2000년부터 한중대학교 (구 동해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외국어학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여 왔다. 현재에는 한중대 국제관광 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의 역사 문화와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중국, 중국인의 성격과 특성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 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 본문 요약
1.親士: 주제는 현명한 인재를 가까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 수신 : 이편은 군자의 인격과 함께 품성의 수양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3.소염(所染): 실을 물들이는 작업에 비유하여 천자, 제후, 대부, 선비들은 자신들의 심복과 친구를 반드시 정확하게 선택하여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4.법의(法儀): 천자와 제후가 천하를 다스리고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하늘의 뜻을 법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묵자에게 법도란 만물을 공평히 사랑하고 아껴주는 하늘의 뜻으로 이해되고 있는데,이른바 하늘의 뜻이란 묵가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兼愛兼利사상과 일치한다.
5.七患: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곱가지 재앙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묵자는 일곱가지 재앙을 국방, 외교, 내정, 경제, 왕, 신하, 식량의 측면
6.辭過: ‘사과’란 말의 의미를 풀이해 보면 ‘지나침을 사양한다.’ 내지는 지나친 사치나 허식을 물리쳐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편은 귀족과 통치자들의 지나친 사치행위와 허식 등을 비판하고 있다.
7.三辯: ‘삼변’이란 요임금,순임금과 탕왕 및 주나라 무왕의 통치와 음악과의 관계를 논함. 통치자들의 음악을 배척함
8.尙賢上: 상현이란 말은 현자를 숭상한다는 뜻이다.
9.上賢中: 현명한 사람들을 숭상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
10.上賢下:
11.上同上: ‘상은 ’숭상의 뜻이고 동은 동일내지는 ‘통일’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통일’은 사람들의 뜻을 일치시키고 통일한다는 뜻
12.尙同中 :
13.尙同下 : “지혜로운 사람이 일을 할 때 국가와 백성들이 다스려지는 연유를 반드시 생각하여 이를 실행해 나가고, 또 국가와 백성들이 어지러워지는 연유를 반드시 헤아려 이를 피하고자 한다.
14. 겸애상(兼愛上) : 묵가에서 말하는 겸애란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같이 생각하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다른 집안을, 다른 나라를 자신의 몸처럼 자신의 집안처럼, 자신의 나라를 대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대한다면, 모든 화와 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
15.兼愛中 : “어진 사람들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일을 한다.
16.겸애하(兼愛下) : 묵자가 말하였다.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만들어 내고 천하의 해를 없애는데 힘써야 한다.”
그러면 지금 천하의 폐해가운데에서 어는 것이 가장 큰 것인가?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큰 집안이 작은 집안을 어지럽히는 것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협하는 것과 수가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과 사기꾼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는 것과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깔보는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 또 왕이 된 사람이 은혜롭지 않은 것과 신하된 사람이 충성스럽지 않은 것과 아비된 사람이 자애롭지 않은 것과 자식된 사람이 효성스럽지 않은 것, 이것 또한 천하의 해로움이다. 또 지금의 천민들이 병기와 독약이나 불을 가지고서 서로 해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천하의 해이다.(p123)
17.非攻上: ‘비공’이란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반대한다
18.非功中: “지금의 왕과 대신들은 국정을 이끌어어 나가면서 비판하여야 할 일, 칭찬하여야 일을 잘 따져 살피고, 상과 벌을 내리는 일을 올바르게 하고 형정에 있어서도 잘못이 없도록 노력하였다.
19.비공하: 옛날 천하를 다스렸던 어진 사람들은 반드시 대국의 침략설을 반대하고 천하의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고 사해의 백성들을 통합하였다.
20.절용상(節 用上) : 절용이라는 것은 절약한다는 뜻이다. 묵자는 당시 위정자들이 방탕하고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상황에 근거하여 이들의 호화 사치스러운 생활태도를 비판하고, 경제적이고 검약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p151)
21.節用中:
22.節用下:
23.節葬上:
24.節葬中
25.절장하(節葬下) : ‘절장’이란 역시 말그대로 장례사에 쓰이는 의식이나 비용을 절약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후장구상의 제도는 국가와 사회의 재물을 크게 낭비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건강에 손상을 입히게 되는 등, 백성들의 생업과 노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줘, 결국에 가서는 국가를 빈곤하게 하고 정치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26. 천지상(天志上) : ‘천지’란 문자 그대로 하늘의 뜻을 말한다. 묵자는 하늘을 가장 고귀하고 가장 높은 권위의 소유자로서, 다시말래 지고무상한 존재로서 인간사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천자를 제재하고 관할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아울러 묵자는 하늘은 義를 좋아하고 不義를 싫어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의’는 하늘에서 나오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7.天志中: 하늘이 귀하고 하늘이 지혜로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의로움은 하늘로부터 나온 것이다.
28.天志下: “경계하고 삼가라.하늘이 바라는 일은 반드시 실행하고, 하늘이 싫어하는 것은 멀리 하여야 한다. 그러면 하늘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늘은 의로움을 바라고 불의를 싫어한다. 어떻게 그러함을 아는 가? 그것은 의로움이란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의로움이 올바른 것임을 아는가? 천하에 의로움이 있으면 잘 다스려지고, 의로움이 없으면 어지러워진다.(p191~2)
32.비악상(非樂上) : ‘비약’이란 말은 음악을 비판내지 비난한다는 뜻으로서 일체의 음악활동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묵자는 음악을 즐기고 듣는다는 사실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35.비명상(非命上) : ‘비명’은 이른바 운명론 내지 숙명론을 부정하고 반대한다는 뜻이다.묵자는 고대의 성왕들이 난세를 다스리고 치세를 만든 것은 운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음을 설명하였다. 폭군들이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무책임한 핑계로 규정짓고 이를 성왕들의 사적과 백성들의 보고들은 경험적 사실을 통해 운명론을 반박하고자 하였다.
○ 책 속으로
나는“편안한 집이 없어서 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재물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p34)
근본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은 지엽적인 결과를 풍성하게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친척들이 서로 기대지 않는다면, 밖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써서는 안된다. 친척들이 서로 기대지 않는다면, 밖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데 처음도 끝도 없이 정리가 안되어 있다면, 많은 일을 하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옛왕들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반드시 가까운 것을 잘 살핀 다음 먼 것을 가까이하였다.(p40)
군자란 가까운 것을 잘 살펴서 가까운 데부터 닦아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수양되지 않거나 비난받는 것을 보면,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남의 원망을 줄어들고 자신의 행실을 수양하는 것이다. 남을 헐뜯고 간사한 말은 귀에 담지 않고, 남을 공격하는 소리는 입에서 내지 않으며, 남을 죽이거나 상하게 할 뜻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달라붙을 수가 없다.(p40)
그러므로 군자는 일을 할 때에 나날이 분발하고, 이상은 나날이 원대해지며, 몸차림은 날로 정제해진다. 군자의 도란 가난할 때는 청렴함을 보여주고, 부유할때는 의로움을 보여주며,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보여주고, 죽은 사람에게는 슬픔을 보여준다. 이 네가지 행동은 거짓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니, 자신을 수양함으로써 얻어진다.(p40)
“천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법도가 없어서는 안되니. 법도가 없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장수나 재상이 될 선비라고 하더라도 모두 일정한 법도를 따라야 하며, 비록 여러 공인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역시 모두 법도를 따라야 한다.(p50)
그렇다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로 삼아야 하는가? 그러므로 “하늘을 법도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하늘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무엇을 싫어하는 것인가? 하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을 원하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서로 해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늘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을 바라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서로 해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늘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하늘이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지 알 수 있는가? 하늘이 모든 것을 보전하고 먹여 살리는 거으로써 알 수 있다.(p51)
분에 넘치는 상을 공도 없는 자에게 내리고, 나라의 창고를 텅비게 하면서까지 수레와 말을 갖추고, 갖옷과 보물을 갖추고, 자신들이 부리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까지 궁궐을 치장하고 오락을 즐기며, 죽으면 관을 두텁게 장만하고, 많은 수의와 침구를 마련한다. 살아서는 누가과 정자를 만드는데 죽어서도 무덤을 크게 만든다. 이 때문에 밖에서는 백성들이 고생하고, 안으로는 창고가 바닥나게 된다. 위로는 싫증도 느끼지 못하는 쾌락에 빠져있고, 아래로는 감당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나라는 적국을 만나기만 하면 패하고, 백성들은 흉년과 기근을 당하면 죽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제대로 그 일에 대비하지 않은 죄 때문이다. 또한 식량은 성인들께서도 보배로 여겼다. 그러므로 주서에 “한나라에 삼년치 양식이 없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집안에 삼년치 양식이 없다면 자식이 있다해도, 그들은 더 이상 그으 자식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두고 ‘나라의 근본적 대비’라고 말하는 것이다.(p57)
옛날에 성왕이 정치를 할 때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의롭지 않은 자는 부유하게 해주지 말아야 하고, 의롭지 않은 자는 귀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의롭지 않은 자는 친애하지 말아야하고, 의롭지 않은 자는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p70-p71)
옛날의 우, 직, 고요 같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바로 세분의 성인들이 자신들의 말을 삼가고 행동은 신중히 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올바로 하여 천하에 숨겨진 작은 일들과 잃어버렸던 이익을 찾아 줌으로써 위로는 하늘을 섬기면 하늘이 그분들의 덕을 가상히 여기시고, 아래로는 그것을 만백성들에게 베풀면 만백성들은 그 이익을 받음이 평생토록 그침이 없었음을 이야기 한것이다.(p83)
윗사람과 뜻을 함께하고 아래로는 나쁜 사람들과 결탁하지 않는 사람은 윗사람이 상을 내리고 아랫사람들이 칭찬할 만한 사람이다.(p93)
“옛날에 성왕들은 다섯가지 형벌(이마에 자자하는 묵형, 코를 베어내는 의형, 다리를 자르는 비형, 남근을 자르는 궁형, 사형을 당하는 대벽)을 제정하여 그의 백성들을 다스렸으니, 비유를 들면 실타래에 실머리가 있고 그물에 줄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윗사람을 높이고 따르지 않는 천하의 백성들응 단속하기 위한 것이다.(p94)
이것은 형벌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으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형벌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써 다섯가지 사나운 짓을 한다는 말이다.(p99)
“지금 천하의 왕과 귀족들과 사(士)와 군자들이 진실로 국가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들이 많아지게 하며,행정을 바르게 다스리고, 사직을 안정시키려 한다면 마땅히 윗사람을 높이고 화합하는 일에 대해서 살피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정치를 행하는 일의 근본이다.(p103)
“무릇 백성들이 윗사람을 높이고 화합하도록 만들려는 사람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을 부릴 수가 없다. 반드시 힘써 사랑함으로써 그들을 부려야하고, 믿음과 정성으로써 그들을 지켜 주어야 한다. 부귀로써 그들을 앞에서 인도하고 형벌을 분명히 함으로써 뒤에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이와 같이 정치를 한다면 비록 나와 화합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을 것이다.“(p110~p111)
인생이란 땅 위에 잠시동안 살아 있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마치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가 좁은 틈을 달려 지나가는 것이다.(p127)
『시경』(大雅)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어떤 말이든 응대가 없는 것은 없고 덕에는 보답이 없는게 없다.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면 나는 너에게 오얏으로 갚는다.’ 이것은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랑을 받게 되고 남을 미워하는 자는 반드시 미움을 받게 됨을 말한 것이다.(p131)
옛날 천하의 많은 나라들이 봉해졌는데, 옛날의 일은 귀로 듣고 근자의 일은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하다가 망한 자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p139)
오늘날 성대한 장례와 삼년상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빈궁해질것이며, 백성들의 수도 감소할 것이며, 행정 또한 문란해질것이다. 식량이 궁핍해지면, 어떠한 축적도 없을 것이요, 인구가 감소되면 성곽과 연못을 수리할 사람 또한 감소될 것이요. 또 행정이 문란해지면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없고, 성을 지켜도 견고하게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p171)
그러므로 옛날의 성왕들이 법을 반포하고,정령을 내리고 상벌제도를 마련하여 현량한 행동을 권면하고 포악한 짓을 막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밖에서는 마을 어른들을 공경하였다. 행동거지에도 법도가 있었고, 나가고 들어올 때 절도가 있었으며, 남녀 사이에 분별이 있었다.(p233)
“오늘날 천하의 사대부 군자들은 천하가 부유해지기를 바라고 가난해지는 것을 싫어하며,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어지러워짐을 싫어하고 있으니,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은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론은 천하의 커다란 해악이다.(236)
옛 삼대의 폭군들은 이목의 지나친 쾌락과 마음의 사악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밖으로는 말을 달리며 사냥이나 하고 그물이나 주살로 날짐승을 사로잡고 안으로는 술과 음악에 빠져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돌보지 않았다. 쓸데 없는 일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등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에게 친근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였다. 이라하여 결국 나라는 망하고 그 몸을 처형되는 신세가 되었으나, 오히려 자신이 우둔하여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운명 때문에 망하였다고 말했던 것이다.(p239)
이밖에 옛삼대의 『집령』이라는 역사책에도 ‘그대들은 하늘에 운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말라’고 하여 여기에서도 또한 운명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공과 함께 주나라 성왕을 도운 현사 소공도 말하길 ‘조심하라, 천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공과 나 소공 두사람은 절대로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지어내지 않는다. 행복과 불행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얻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은나라와 하나라 시대의 『시경』『서경』에도 운명이란 말은 폭군이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p240)
옛날의 폭군들은 운명론을 만들어 냈고, 가난한 백성들은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이 모든 것은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하고 게으르게 만들었다. 옛 성왕들은 운명론을 걱정하여, 이를 경계하는 자신의 말을 대나무와 비단에 적기도 하였고, 또 쇠붙이와 돌에도 새겨 두어 후대의 자손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하나라 우임금의 언행록인 총덕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정말로 恭順하지 못하다면, 하늘의 자손이라도 보호받지 못할것이다. 자신들의 흉악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하늘은 재앙을 내릴것이다. 자신의 덕행을 근신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늘이 어찌 보우할 수 있겠는가?(p243)
운명론이란 폭군이 만들어 낸것이고 궁핍한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얘기한 것이지 어진 사람의 말이 아니다. 지금의 어질고 의로운 사람들이 잘 살펴 힘써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p245)
도리와 방법, 학술, 사업을 통일하는 것이 어진 것이다. 크게는 사람들을 다스리고 작게는 벼슬자리에 나아가며, 멀리는 두루 널리 베풀고 가까이는 자기자신을 수양한다. 의롭지 않은 곳에 처신하지 않고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기에 힘쓰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이롭지 않으면 하지않는다. 이것이 군자의 도이다.(p254)
세상만사에 있어서 의로움보다 귀한 것이 없다. 지금 어떤 사람에게 관과 신을 줄것이니. 그 대신 너의 손발을 자르겠다.
그런데 한마디 말을 다투다가 서로 죽이기도 한다. 이것은 의로움이 내몸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사에 으로움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p338)
“말이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항상 말해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면 말해선 안된다.말이 행위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도 자꾸 말을 한다면 쓸데 없는 말에 불과하다.”(p340)
“지금 선비들이 자기 몸을 다루는 것을 보면 상인들이 돈 한푼 쓰는 것만 도 못하다. 상인이 돈을 써 물건을 사들일 때, 감히 함부로 아무렇게나 사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것을 고른다. 지금 선비들이 자기 몸을 다루는 태도는 그렇지 않다. 자기 마음에 하고 싶은대로 행하여 심한 자는 형벌을 받고 가벼운 자라도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니 선비들이 자기 몸을 다루는 태도가 상인들이 돈 한푼 쓰는 것만도 못하다는 것이다.”(p341)
묵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귀신이 사람들에게 바라는 일은 사람이 높은 직위와 녹봉을 받게 되면, 그것을 현명한 사람에게 양보하고 재물이 많으면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귀신이 어찌 재물만을 바라시겠는가? 지금 그대는 높은 직위와 녹봉을 받고 지내면서도 그것을 현명한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첫째 상서롭지 않은 일이며, 재물이 많으면서도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으니 이것이 둘째 상서롭지 않은 일이네.”(p368)
“정치란 것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몸으로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오. 지금 당신은 입으로는 말하면서 몸으로는 실행을 않고 있으니 이것은 당신의 몸이 어지러운 것이오. 당신은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나라를 다스리어 정치를 할 수가 있겠소? 당신은 우선 당신의 몸을 어지럽히지 마시오.”(p357)
“옛날 백공의 난 때 왕자 여를 잡아 도끼를 허리에 대고 창끝을 가슴에 대고서 말하였습니다. ‘왕이 되면 살고 왕이 되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이에 여는 대답하기를 ‘어찌 이렇게도 나를 모욕하는가? 내 부모를 죽이고 초나라를 맡김으로써 나를 기쁘게 하려는가? 나는 천하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의롭지 않은 짓이라면 하지 않겠다. 그런데 하물며 초나라 정도로 되겠는가?고 하면서 끝내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왕자 여야말로 어찌 어진 분이 아니겠습니까?”(p370)
묵자가 말하였다.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하였을 때에는 당신은 송나라를 얻으려 하였는데, 내가 당신을 만나게 된 뒤로는 당신에게 송나라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롭지 않다면 당신은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소.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송나라도 줄 것이오. 당신이 의로움에 힘쓴다면 나는 당신에게 온 천하라도 줄 것이오”(p372)
관리들에게는 처벌조례가 있는데, 방탕하고 음란한 사람은 화살로 그의 귀를 뚫는다. 교만하여 정직한 사람을 속이고, 난잡스럽게 떠들고 다닌다든가 제 할 일을 두고서 남의 일을 방해한다든가, 만사를 게을리하여 뒤늦게서야 일을 처리하는 사람, 휴가를 얻어 간지 석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람 등은 모두 화살로 귀를 뚫는 형벌을 받는다.(p446)
○ 전문 일부
– 옮긴이의 말 :『묵자』를 펴내며
우리가 고전이라고 숭상하는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옛 것을 감상하거나 옛 것에 대한 향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전에는 그 실체를 이루고 있는 인간정신의 본원적인 깊이와 소멸되지 않는 지혜의 넓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삶을 영위하며, 전인적 인격을 완성하는 데 있어 훌륭한 고전에서 지혜를 찾아 이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전이 옛 것과 구별되는 것은 이러한 인간교양, 인간정신의 본원적인 깊이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칠 줄 모르는 과학기술문명이 인간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한다는 명분 하에 그 위용을 뽐내며, 물질중심의 사회와 정보사회를 만들어 놓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성정은 날로 파괴되고 황폐해져 가면서 그 고유의 가치를 잃고 있다. 서구의 사상과 철학은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이러한 시대적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이제 동양의 사상과 철학은 이러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동양사상이라고 하면 유가, 도가, 불가 등의 사상을 그 대표적 사상으로 손꼽는다. 유가와 도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 발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과 철학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가와 도가는 종교의 범주와 인간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데에 그 역할을 한정시켰음에 비해, 유가는 역대 왕조에 걸쳐 국가와 사회의 지도이념과 원리로서 득세하였고, 사람들의 현실생활을 지배하였다. 사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들에 의해 많은 사상과 이념이 창시되고 발원되었으나 그 이후 오직 유가사상만이 정통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물론 한국의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학은 국가 및 사회의 지배이념과 체제의 중심으로 존재하였고, 학술과 문화, 사상에 있어서도 유학 일변도로 흘러오게 되었다. 그 결과 철학과 사상, 이념의 균형적 발전이 저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비현실적이고 비실질적인 명분과 이념만을 고집하며 그 문제점을 보완하지 못해, 18, 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묵자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겸애(兼愛)와 절검(節儉), 비전(非戰) 그리고 유신론적(有神論的) 종교사상(宗敎思想) 등은 유가와 다른 사상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임은 물론,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의 논리와 비교해 볼 때,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실천적이기 때문에 유가의 부족한 점과 문제점을 보충하고 보완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묵가의 이러한 사상과 철학은 21세기를 앞두고 새롭게 전개되어야 할 인류의 공존과 발전을 위한 양보와 화합,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추구해야 할 오늘날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 있어, 현시대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의 샘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본 역서는 청대(淸代) 손이양(孫?讓)의 『묵자간고』(墨子間?)(臺灣藝文印書館 影印本)를 위주로 했다. 필자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해 번역하려고 했으나, 미진하고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학(漢學)과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여러 훌륭한 학자들의 질정(叱正)을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애써주신 홍익출판사의 이승용 사장님과 큰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도와준 유동환 실장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999년 3월 박재범 삼가 적다
– 위대한 사랑의 실천가 묵자
1. 묵자의 생애와 활동
『묵자』(墨子)는 묵가(墨家)의 비조(鼻祖)인 묵자(墨子)의 사상과 행동을 그의 제자 및 후학들이 기록하여 정리한 책이다. 묵가는 춘추전국시대에 유가(儒家)와 함께 양대 학파를 형성하였는데, 묵가의 창시자로서 묵자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명성 또한 공자(孔子)만큼 드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묵가의 창시자이자 『묵자』의 주인공인 묵자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구체적인 전기나 사료가 남아 있지 않다. 묵자는 공자가 활동하였던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나 전국시대 초기에 활동하였던 인물로서 이름은 적(翟)이고 공자와 같은 노(魯)나라 사람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지, 언제 살았는지 등등에 관한 구체적 사실들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심지어는 그의 성이 말 그대로 묵이었는지 그리고 이름은 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정도이다.
묵자에 관한 여러 가지 전적을 정리하고 연구한 양계초(梁啓超)의 『자묵자학설』(子墨子學說)에 근거하여 묵자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해 고찰해 보면 묵자는 기원전 492년에서 468년 사이에 태어나서 기원전 420년에서 376년 사이에 생을 마쳤다. 그러니까 역사 시기로 볼 때에 전국시대에 해당하는 공자 이후 맹자 이전에 태어나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의 출신국에 대해서도 일부 학자들은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그가 송(宋)나라 대부였다는 기록에 따라 송나라 사람으로 보거나,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그가 노나라에 머물며 사각(史角)의 후예에게 학문을 배웠다는 기록을 가지고 노나라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또 『여씨춘추』에 보이는 필원(畢沅)의 견해에 근거하여 초(楚)나라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묵자』에 따르면 묵자의 동시대 사람들은 묵자의 행동을 ‘천인들이 하는 짓'[賤人之所爲]이라 하였고, 묵자 자신 또한 천인(賤人)임을 자처하면서 행동하였다. 이렇게 볼 때 묵자는 생산직을 담당하였던 중하층 계급의 기술자[工匠]이거나 노동자 출신이었던 것 같다. 묵자는 성(城)을 지키는 데 필요한 기구들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하였다고 한다. 고대의 글라이더[滑翔機]인 목연(木鳶)을 만든 적도 있다고 하며, 전쟁할 때 필요한 수레도 직접 제작하는 등 침략전쟁을 막기 위해 축성과 방어무기의 제조술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고 한다. 이는 생산직에 종사하였던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들의 사치를 비판하며 근검 절약을 강조하는 등 『묵자』를 통해서 체면과 의례만을 중시하는 비실용적인 상류층의 생활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분명 상류계층 내지는 지배계층 출신의 사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묵자가 비록 하층민 출신이기는 했지만, 그도 처음에는 유학을 공부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씨춘추』 「당염」(當染)에 따르면 그는 주(周)나라의 귀족이며 『의례』(儀禮)에 밝았던 사각의 후예로부터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묵자』에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등에서 인용한 글이 적지 않은데, 이는 여러 고전과 유가의 경전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가적 사상과 방법론으로는 천하의 혼란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기존의 유가와는 다른 사상과 방법, 다시 말해 비유가적 사상과 하층민적인 삶과 기술자의 생활체험을 통해 형성된 실질적이고도 실용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자신의 철학으로 현실을 타개해 나가고자 하였다.
묵자가 활동하였던 전국시대에 이르면 제후들 사이에 패권을 다투며 전쟁과 회맹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읍국가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이미 춘추시대부터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침략하고 병합하는 약육강식의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언제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일반 백성들이었다. 농작물은 약탈당하고, 성벽과 가옥은 파괴되었으며, 가축은 빼앗겼다. 이렇게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자신도 죽음을 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하여 중노동을 강요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부국강병의 정책 아래 이루어진 농업생산력의 증대는 새로운 가족형태, 이른바 삼족제(三族制)를 형성시켰다. 종족의 대표인 가부장은 종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되었고, 이와 아울러 장자상속제도가 정착되어 적서(嫡庶)의 구별이 보다 뚜렷해졌다. 사상가로서, 그리고 사회운동가로서 묵자는 이러한 사회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묵자는 당시의 불합리한 사회현실을 유가의 사상과 방법론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가의 방법론을 부정함과 아울러 하층민의 삶, 즉 기술자의 삶을 통해 형성된 백성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실생활에 맞는 실제적인 사상과 행동으로 현실을 바꿔나가고자 하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묵자는 하층민 집안 출신이었다. 이러한 출신 배경은 그의 사상을 형성하고 행동을 펼쳐 나감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묵자는 비천한 출신의 사람으로서 왕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위정자들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는 힘 없는 민초들을 대변하면서, 이들의 삶을 기초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애민적(愛民的)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묵자도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유가가 통치계급의 입장을 옹호하고 사치스런 예악을 위주로 하여 서주 초기의 봉건사회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사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가는 예의와 형식을 중시한 나머지 백성들의 생산활동을 저해하고 재물만을 낭비할 뿐이며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묵자는 유학이 귀족들의 예(禮), 악(樂), 상(喪), 장(葬)을 옹호할 뿐, 백성들을 고생시키고 재물을 손상시키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해롭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다투기를 좋아하는데, 유교는 가족관계 및 효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여 인간의 이기주의적 본성을 더욱 조장한다고 생각하였다. 『묵자』가 ‘유가비판서’라고 할 정도로 반유(反儒)와 비유(非儒)의 관점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에 묵자는 하늘과 귀신의 뜻을 받들며, 노예들까지 사랑할 수 있는 애민적이고 이타적(利他的)인 사랑, 즉 겸애(兼愛)를 실천하고 형식과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적 사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행동한다면 만백성의 안녕과 행복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묵자는 이러한 생각을 품고 만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전국을 주유(周遊)하였다. 강대국이었던 초나라가 약한 송(宋)나라를 공수반(公輸盤)이 만든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공격하려고 하자 묵자는 열흘 낮 열흘 밤 동안의 갖은 고초를 무릅쓰고 초나라로 달려가 전쟁을 막았다. 또한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제나라 왕을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전쟁을 막은 적도 있었다. 노나라가 정(鄭)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였을 때에도 묵자는 양문군(陽文君)을 설득하여 전쟁을 막았다. 이처럼 그는 노나라, 송나라, 제(齊)나라, 위(衛)나라, 초(楚)나라, 월(越)나라 등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나라라도 달려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묵자의 사상과 행동에 대해서 맹자는 “그는 머리끝에서 발꿈치에 이르기까지 온몸이 닳아 없어질지라도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하는 사람이다”(『맹자』 「진심상」)라고 평가하였다. 장자(莊子)도 “묵자는 참으로 천하의 호인이니 찾아도 얻기 어려운 분이다. 그는 비록 몸이 빼빼 마른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을 멈추지 않으니 재사(才士)라 할 만하다”, “묵가의 제자들은 모두 거친 옷을 입고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고서 밤낮 쉬지 않고 스스로 고생하며 ‘이렇게 하지 못하면 우임금의 도리가 아니며 묵자가 될 수도 없다’라고 말하였다”(『장자』)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들은 제 한몸의 안녕과 행복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층민의 입장에 서서 경세제민(經世濟民)하고자 하였던 묵자의 정성과 노력, 사상과 행동에 모순이 없었던 그의 삶에 대한 경의와 탄복의 표현이었다.
2. 『묵자』의 내용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묵자』도 유가의 『논어』처럼 묵자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묵자가 죽은 다음에 그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묵자의 말과 행동을 모아 정리하고 편찬한 책이다. 그러나 사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한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학파로서 그리고 사회운동세력으로서의 묵가는 전국시대에 유가와 견줄 만큼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 이후 유가에게 압도당하여 묵자의 사상이 점차 배격되었고, 묵가의 학자들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묵자의 사상과 학설을 기록한 글은 흩어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유가에 의해 가필되기도 하였다고 근현대의 학자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묵자』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후대에 전수되기가 어려웠다.
한대(漢代)를 거쳐 진대(晉代)의 노승(魯勝)과 당대(唐代)의 악대(樂臺)라는 사람이 『묵자』에 주석을 달았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졌으며, 현재에는 단지 노승의 『묵변주』(墨辯注) 서문(序文)만이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에 전할 뿐이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고증학이 번창하면서 『묵자』에 대한 연구와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왕중(汪中, 1744~1794)이 청대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묵자표미』(墨子表微)를 저술하였다고는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어서 필원(畢沅)의 『묵자주』(墨子注)가 간행되었고, 『예기』(禮記)의 형식을 빌어 주석을 더한 왕념손(王念孫)의 『독묵자잡지』(讀墨子雜志)가 탄생하였다. 이후 손이양(孫?讓)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선행제가(先行諸家)의 여러 가지 학설을 집대성하여 『묵자간고』(墨子間?)라는 책을 남겼다.
근대에 와서 양계초는 묵자에 대한 기존의 연구서를 바탕으로 『묵경교석』(墨經校釋)과 『묵자학안』(墨子學案), 『자묵자학설』을 집필하였다. 이러한 책들은 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대표적인 자료이다.
『묵자』에 대해 반고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원래는 71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묵자 15권, 목 1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지금 전하는 『묵자』와 권수는 일치하나, 편수는 맞지 않는다. 지금은 전체 15권 53편이 존재하고 있으니, 18편이 없어진 셈이다. 이 18편 가운데 8편은 그 제목만 남아 있고 나머지 10편은 편명조차 알 수 없다.
『묵자』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첫째 부분은 「경주」(耕柱), 「귀의」(貴義), 「공맹」(公孟), 「노문」(魯問), 「공수」(公輸) 등으로 주로 묵자의 활동 사항을 기록하였다.
둘째 부분은 「비성문」(備城門), 「비고림」(非高臨) 등 11편으로 묵가에서 연구한 방어전술 및 성을 지키기 위한 병기와 도구에 관하여 적고 있다.
셋째 부분은 「천지」(天志), 「명귀」(明鬼) 등 31편으로 묵자가 창시하고 선전한 종교 및 사회사상에 관한 기록으로서 대체로 전기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경」(經) 상ㆍ하, 「경설」(經說) 상ㆍ하, 「대취」(大取), 「소취」(小取) 등 5편으로 인식론, 윤리학, 자연과학에 대한 사상을 담고 있다.
또한 양계초는 『묵자학안』에서 총 53편으로 구성된 『묵자』의 내용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분류방법은 매우 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러 연구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방법으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류는 「친사」(親士), 「수신」(修身), 「소염」(所染), 「법의」(法儀), 「칠환」(七患), 「사과」(辭過), 「삼변」(三辯)이다. 앞의 3편은 뒷사람이 위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뒤의 4편은 묵가사상의 개요를 기록한 것으로서 묵가의 행동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하게 볼 때, 첫번째 부류의 내용은 순수한 묵가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가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묵가의 초기사상을 쓴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후세 유가들이 가필하고 위작한 부분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부류는 「상현」(尙賢) 상ㆍ중ㆍ하, 「상동」(尙同) 상ㆍ중ㆍ하, 「겸애」(兼愛) 상ㆍ중ㆍ하, 「비공」(非攻) 상ㆍ중ㆍ하, 「절용」(節用) 상ㆍ중, 「절장」(節葬) 하, 「천지」 상ㆍ중ㆍ하, 「명귀」 하, 「비악」(非樂) 상, 「비명」(非命) 상ㆍ중ㆍ하, 「비유」(非儒) 하 등 23편이다. 이른바 묵자의 10대 주장으로서 그의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이 부분은 『묵자』의 중심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사상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 ‘자묵자왈'(子墨子曰)로 시작하고 있어 묵자의 제자들이 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부류는 「경」 상ㆍ하, 「경설」 상ㆍ하, 「대취」, 「소취」의 6편이다. 이른바 ‘묵변'(墨辯)이라고 불리는 부분으로서 묵자의 논리학 분야의 성과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경」은 묵자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하며, 「경설」은 묵자의 말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는 중국 고대 논리학의 정수라고 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비록 중국 고대의 작품이고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기하학, 광학, 역학, 물리학 등에 관한 중국인들의 인식과 지식을 엿볼 수 있다.
넷째 부류는 「경주」, 「귀의」, 「공맹」, 「노문」, 「공수」의 6편으로 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서 『논어』의 문체와 같이 모두 짤막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다만 「공수」만은 그 내용이 구체적이다.
다섯째 부류는 「비성문」, 「비고림」, 「비제」(備梯), 「비수」(備水), 「비돌」(備突), 「비혈」(備穴), 「비아부」(備蛾傅), 「영적사」(迎敵祠), 「기치」(旗幟), 「호령」(號令), 「잡수」(雜守)의 11편이다.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방어하는 수어(守禦)의 병법을 말하고 있다.
3. 묵자의 사상
앞에서 말한 대로 묵자의 사상은 하층민 출신으로서 유가에게서 느끼는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한 극복의지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대표 사상인 겸애를 비롯하여 천지, 명귀, 비공, 절용사상 등이 이러한 하층민들의 진솔하고 실용적인 삶과 반유가적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겸애 ─ 유가의 인애(仁愛)를 뛰어넘은 종교적 인류애
묵자의 모든 사상과 행동은 겸애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겸애는 묵자의 중심사상이다. ‘겸애’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박애주의 내지는 범애주의 사상과 그 의미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가깝고 멀고 친하고 소원함, 즉 친소 원근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아끼고 남의 이익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보고, 남의 집을 자기 집처럼 보며, 남의 몸을 자기의 몸처럼 보라”는 것이다. 묵자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남을 아끼고 사랑하여야 하고, 자신의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어버이를 사랑한다면 천하 사람들의 이로움을 증진시키게 되고, 세상의 혼란과 다툼, 그리고 전쟁은 없어진다고 믿었다.
묵자는 사람들 사이의 반목과 다툼의 원인은 겸애의 결여(缺如)에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부자, 형제, 군신 사이의 다툼, 대부들 사이의 알력, 제후들 사이의 전쟁, 그리고 도적의 횡행 등, 모든 불화와 다툼을 겸애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분열과 분쟁을 없애고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겸애사상은 한편으로 유가의 인애와 통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겸애는 친소(親疎)의 구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유교의 인애와는 상당히 다르다. 유가의 인은 가족애를 출발점으로 한다. 인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기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유가에서는 부모와 형제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적 혈연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인애를 행함에 있어서 이러한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친하고 소원한 사람, 가깝고 먼 사람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친소원근(親疎遠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경중후박(輕重厚薄)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남의 아버지보다 자신의 아버지를 먼저 사랑하여야 하고, 남의 가족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의 가족부터 사랑하는 이른바 “인애는 차등이 있다”[愛有差等]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묵자는 사랑을 베풂에 있어 경중후박과 선후를 반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친소원근에 관계없이 남의 이익을 존중하고, 사랑을 펼침에 있어 남과 자신을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묵자는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하늘의 신하이다”라는 논리와 함께, “여자 노예인 획(獲)은 사람이다. 획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남자 노예인 장(臧)은 사람이다. 장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노예까지 하나의 똑같은 인격체로서 사랑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묵가의 겸애사상은 바로 유가의 인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당시 맹자를 비롯한 유가들이 묵가를 비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맹자는 묵자의 이러한 주장을 두고 아버지를 무시하는[無父] 학문이라고 혹평하였다. “남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묵가의 겸애는 아버지가 없는 것과 같다. 아비도 없고 왕도 없는 것[無父無君]은 짐승의 사랑과 같다”(『맹자』 「등문공하」)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묵자는, 겸애는 남에 대한 사랑은 남에 대한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모든 사람들이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 위하듯이 하면 누가 남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남의 도성(都城)을 자기 도성처럼 위한다면 누가 남의 도성을 정벌하겠는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으며, 남의 집을 자기 집 위하듯이 하면 누가 남의 집을 어지럽히겠는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다.”
“이익은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생겨났다고 말하여야 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도 역시 그를 사랑해 주고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남들도 역시 그를 이롭게 해준다.”
이처럼 겸애가 결국에는 이익으로 되돌아온다고 주장하면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겸애가 반드시 옳은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겸애를 종교적인 신앙의 의미로 승화시켜 하늘의 뜻에 의거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겸애는 신적 존재로서의 하늘의 뜻이고 행동이라는 것이다. 천하에는 여러 나라가 있지만, 모두 하늘의 나라로서 하늘은 겸애를 베풀고 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장유귀천(長幼貴賤)의 구별이 있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늘은 모든 나라들을 똑같이 보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겸애한다고 주장하였다.
혈연관계가 중시되면 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는 폐쇄적이고 종족적이기 쉽다. 묵자의 겸애는 혈연관계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서로 대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종교적 인류애와 같은 것이다. 묵자는 겸애사상을 주창함으로써 유교의 종족애적 인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대립과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교적인 범인류애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비전(非戰)ㆍ비공(非攻) ─ 침략전쟁의 부정과 방어전쟁의 인정
묵자는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겸애사상과 함께 비전과 비공을 주장하였다. 비전과 비공은 부족과 부족,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겸애사상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과 비공은 말 그대로 남에 대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다시 말해서 침략전쟁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논리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귀족 내부에서조차도 공벌(攻伐)과 겸병(兼倂)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집단과 나라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에 벌어지는 이같은 전쟁은 묵자에게 있어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묵자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전쟁의 승리자에게도 전쟁은 고통과 폐해만을 갖다줄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침략전쟁을 중지할 것을 호소하였다.
침략과 전쟁 때문에 일어나는 살인과 파괴를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혐오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한 공동체의 이익 내지는 나라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자행될 때에는 합리화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묵자는 이런 예를 들었다.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훔친 자도 벌을 받고, 남의 집 가축을 훔친 자도 벌을 받는다. 사람을 죽이면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데, 한 사람을 죽이면 한 사람을 죽인 데 대한 벌을 받고, 열 사람을 죽이면 열 사람을 죽인 데 대한 벌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 어떤 한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면, 수많은 백성들의 재물을 파괴하고 생명을 빼앗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서는 비난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비호하고 정의라고 칭송한다. 그는 이렇게 제왕과 제후를 중심으로 하는 위정자들의 욕심과 편협한 애국심에서 나오는 모순을 꾸짖고 있다.
묵자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제왕이나 제후들은 모두 자신들의 나라는 사랑하지만 남의 나라는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자기 나라만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은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며 나라를 망치는 행위로서, 그것은 패배자에게는 물론이고 승자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통해 비전과 비공의 논리를 설파하였다.
“요즘의 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더 늘리기 위해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자가 많다. 그에 따라 희생되는 자는 죄 없는 백성이고, 재산이나 생명을 잃는 자는 수없이 많다. 이것은 겸애를 바라는 하늘의 의지를 거스르는 중대한 죄악이니 결코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묵자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한편, 몇몇 사람들의 독단으로 벌어지는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전쟁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공격'[攻]은 반대하지만, ‘방어'[守]는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수성을 위한 방어 기계를 만드는 데에 뛰어났으며,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기계로 성을 지키게 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방어전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하나의 예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비공은 겸애에서 파생된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겸애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상이라면, 비전과 비공은 강자의 침략전쟁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는 겸애사상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절용(節用), 절장(節葬) ─ 근검과 음악 비판을 통한 백성애의 표현
묵자의 중심사상인 겸애를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애민(愛民)과 이타(利他)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묵자에 있어 애민과 이타의 의미는 진정으로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겸애의 궁극적인 목적은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의 추구였다고 할 것이다. 근검과 절용에 대한 묵자의 주장 역시 이러한 애민과 이타를 실천하며 진정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는 철저한 근검 절용주의자였다. 순자는 묵자가 실용주의자로 겉으로 꾸밈[文飾]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장자는 그가 금욕주의자로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인정(人情)에 따르지 않는 자라고 말하는 등 당대의 다른 사상가들은 묵가들이 근검과 절약의 생활을 지나치리만큼 몸소 실천하였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근검과 절용이란 모든 일에 검소하고 절약하며 생활한다는 뜻이다. 이를 사회적으로 볼 때, 실리적이고 실용적 입장에 서서 사치를 금하고 물자를 절약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함으로써 온 백성이 골고루 잘살 수 있다는 사회개혁의 한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묵자는 근검과 절용의 방법론을 백성의 이익과 결부시켜 실리주의적 입장에서 전개해 나갔다.
묵자는 “모든 소비가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다”, “모든 재물과 노력의 소비는 이익이 되지 않는 짓이면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자와 노동력이 모두 사람들에게 이익을 갖다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묵자 자신의 철저하였던 근검과 절용주의 정신과 아울러 이를 위한 실천방안인 실리주의 입장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실용과 실리주의 입장의 한 예로서 묵자는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을 정도면 되고, 담장은 도둑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면 그만이다. 이 모든 것은 화려하기만 하고 사용에 편리하지 않은 것은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묵자는 왕와 귀족들의 사치가 실리주의 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백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근검과 절용의 생활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근검과 절용주의 정신의 실천은 유가에서 매우 중시하는 장례의식이나 연회의식과 같은 예악(禮樂)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리하여 묵자는 장례를 간소하게 하라는 절장(節葬)과 음악을 배척한 비악(非樂)을 주장하였다.
먼저 묵자는 유교에서 행하는 성대한 장례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사치스러운 장례[厚葬]와 오래 끄는 상례[久喪]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였다.
“왕공과 대인이 삼년상을 모시게 되면 삼년 동안 정치를 못하게 되고, 백성들 또한 삼년 동안 생업에 종사하기가 어렵게 된다. 농민들은 그동안 경작을 할 수 없게 되고, 공인들은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기구와 도구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 또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 좋은 관을 써야 하고, 또 관속에 금은 보화 같은 것을 넣어야 되니 이는 그만큼의 유용한 재물을 사장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백성들의 부담과 고통으로 남게 된다.”
그 다음으로 비악의 주장도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과 이타 정신의 한 발로였다. 그래서 음악 역시 왕과 백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음악을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왕공과 대부를 비롯한 귀족들이 예악을 중시한 나머지 자주 음악연주회를 성대하게 벌이는 경향이 있었다. 음악연주를 위해 높은 누각을 짓고 화려한 악기를 모아야 하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더욱더 무거운 세금에 시달려야 하고, 따라서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으므로 음악을 완전히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예악을 매우 중시하였고, 또 예악의 정치가 시행되는 정치가 바로 이상적인 정치라고 하였다.
이렇게 묵자는 절용사상과 절장, 비악을 통해서 유가의 정치사상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은 물론 당대 귀족과 지식인 등, 기득권자의 특권까지 부정하였다는 사실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라 하겠다.
4) 천지(天志)ㆍ명귀(明鬼) ─ 유신론적 종교사상
묵자는 모든 인간의 행동과 가치기준에 있어 하늘을 최고의 표준으로 삼았다. 묵자는 위로는 왕과 대부 등 귀족들이 정치를 하는 일에서부터 온 세상의 백성들의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천자만을 존경하여 화합하려 들지, 하늘을 존경하여 화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난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하늘의 뜻이 있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자에게 그림쇠[規]가 있고, 목수에게 굽은 자[矩]가 있는 것과 같다. 세상에 있는 네모꼴이나 원을 재어 여기에 들어맞으면 바른 것이고 들어맞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말하여서 하늘이 천하의 모든 일에 있어서 기준이 됨을 주장하였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은 위로는 왕이나 대신들이 사법과 행정을 함에 있어 법도가 되고, 아래로는 천하의 만백성들이 학문을 하고 이론을 펼 때, 기준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을 살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면 훌륭한 뜻으로 행동한다고 말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나쁜 뜻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모두가 서로를 이롭게 할 것이니 반드시 상을 받게 된다. 하늘의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사람들을 차별하며 서로 미워하고 모두가 서로 해칠 것이니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
“하늘은 숲속, 골짜기, 사람 없는 으슥한 곳이라 하더라도 속일 수가 없으니 분명히 반드시 보고 있다.”
하늘이 모든 일의 기준이라는 주장을 넘어서 묵자는 하늘을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신의 존재로 생각하였다. 묵자는 하늘은 만물을 창조하고 천자, 제후, 백관, 유사(하급 담당자)를 두어 정치를 맡겼으며, 사회의 안녕과 백성의 행복을 도모하게 하였고, 또한 위아래를 감독하고 상과 벌을 주관하고 있으며, 아울러 모든 인간을 골고루 사랑하며 감싸 주고 이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묵자가 하늘을 의미적이고 관념적인 존재가 아닌 구체적 인격체로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유가들은 하늘을 천도(天道)와 천리(天理)라는 상징적 존재 내지는 범신론적 존재로서 받아들였다. 순자는 하늘을 하나의 자연물로 보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묵자는 하늘을 유가나 도가에서 생각하는 관념적 존재에서 벗어나 의지와 감각을 지닌 실재적이고도 구체적인 신의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묵자는 하늘을 관념적 존재가 아닌 구체적인 인격적 존재인 ‘상제'(上帝)와 비슷한 의미로 보았다. 또한 그 상제는 명확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천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의지는 바로 겸애인데, 하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여 이에 따르는 자에게는 행복을 주고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하는 ‘섭리’를 베푼다고 하였다.
묵자는 이처럼 하늘의 뜻을 모든 행동이나 이론의 규범으로 삼음은 물론,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의(義)와 선(善)으로,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불의(不義)와 악(惡)으로 생각하여 천지에 절대자의 섭리라고 하는 종교적 의미를 확실히 부여하고 있다.
묵자는 천지의 의미와 그 이론을 귀신론을 통해 거듭 강조하였다. 모든 인간들의 행동을 상제는 물론 귀신에 있어서 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벼슬아치들이 관청을 다스림에 있어 청렴하지 않거나 남녀가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을 귀신이 보고 있다고 하였다. 백성들이 음란한 짓, 난폭한 짓, 반란, 도적질…… 등을 귀신이 있어서 보고 있다.”
“(귀신이)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고, 포악한 사람들에게는 벌을 준다.”
묵자가 상제와 귀신의 실재 존재를 증명한 방법은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전적이나 어록에서 찾으려고 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묵자가 사람들이 상제와 귀신을 반드시 믿게 하려고 하였던 것은 그들이 단지 존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믿음을 통해 사람들을 쉽게 설득하고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철학을 백성들에게 적극 주입시키기 위해 일반 백성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민간 신앙을 적극 이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 친사(親士)
이 편의 주제는 현명한 인재를 가까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晉)나라 문공(文公), 월(越)나라 구천(句踐)과 같은 현명한 왕과 걸왕과 주왕 등의 어리석은 폭군이 현인을 대접하여 기용함에 있어서 보여 준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비교하였다. 그 다음에 어진 인재를 등용하지 못함이 나라의 흥망성쇠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왕은 “인재를 가까이하여 현명한 자를 등용함”[親士用賢]에 있어 관용과 양해의 정신을 가지고, 다양한 인재를 널리 기용하며, 또한 그들이 국정에 관해서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말하게 하고, 언제 어디서든 서로 꾸밈없이 이야기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천하를 제패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겸왕(兼王)의 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을 잡은 왕이 어진 선비들을 가까이하여 아껴 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곧 망할 것이다. 어진 이를 보고도 그런 사람을 기용해 쓰는 데 서두르지 않는다면, 그들도 왕을 소홀히 할 것이다. 어진 이가 아니라면 쓰는 데 다급할 게 없고, 어진 선비가 아니라면 함께 나라를 걱정할 상대가 못된다. 어진 이를 소홀히 하고 또 선비들을 잊고도 자신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왕는 일찍이 없었다.
옛날에 진나라 문공 은 외국으로 망명한 일이 있었으나, 천하를 바로잡았다. 제나라 환공 도 나라를 떠난 일이 있었으나 제후들을 제패(制覇)하였다. 월나라 구천 은 오(吳)나라 왕에게 치욕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중국에 위엄을 떨친 현명한 왕이 되었다. 이 세 사람이 명성을 얻고 천하에 공로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자신의 나라에서 오히려 큰 치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일은 실패가 전혀 없는 경우이지만, 그 다음은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를 밑바탕으로 성공을 이루는 경우이다. 이것을 일컬어 사람들을 잘 등용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편안한 집이 없어서 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재물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은 어려운 일을 맡고 남에게는 쉬운 일을 하도록 해주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은 쉬운 일을 맡고 남에게는 어려운 일을 하게 한다. 군자는 관직에 있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물러나서도 역시 그러하다. 비록 낮은 백성들과 함께 있다 하더라도 끝내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데,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게 된다. 그가 바라는 대로 하면서도 그가 싫어하는 결과를 모면하였다는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간사한 신하는 왕를 망치고, 아첨하는 신하는 윗사람을 상하게 한다.
왕에게는 반드시 간언하는 신하가 있고, 윗사람에게는 반드시 직언하는 아랫사람이 있어야 한다. 논쟁이 진지하게 벌어지고 서로 훈계하며 따져 논하게 된다면, 그 왕은 오래도록 살면서 나라를 보전하게 될 것이다. 신하가 자신의 자리만을 소중히 여겨 간언하지 않아서, 가까운 신하들은 벙어리가 되고 멀리 있는 신하들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는다면, 백성들 마음속에 원한이 맺히게 된다. 아첨하는 자들이 곁에 있어 바람직한 논의들이 막혀 버린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걸왕 과 주왕 은 천하의 어진 선비가 없었으므로 천하를 잃고 자신의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나라에 바치는 보물로는 어진 이를 추천하고 선비를 천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지금 다섯 개의 송곳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뾰족한 것이 반드시 먼저 무뎌질 것이며, 다섯 개의 칼이 있다면 이들 중 가장 날카로운 것이 반드시 먼저 닳아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맛있는 우물이 먼저 마르고, 쭉 뻗은 나무가 먼저 잘리며, 신령스러운 거북이 먼저 불에 지져지고, 신령스런 뱀이 먼저 햇빛에 말려진다. 그러므로 비간 이 죽음을 당한 것은 그가 강직하였기 때문이며, 맹분 이 죽음을 당한 것은 그가 용감하였기 때문이며, 서시 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은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며, 오기 가 몸이 찢겨져 죽은 것은 그가 개혁적인 변법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장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너무 튀어나온 것은 지키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현명한 왕이라 하더라도 공이 없는 신하를 사랑하지 않으며, 비록 자애로운 아버지라 하더라도 쓸모없는 자식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책임을 견뎌 내지 못하면서도 그 벼슬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 지위에 있을 사람이 못되는 것이며, 그 벼슬을 견뎌 내지 못하면서 그러한 봉록을 받는다면 그 봉록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되는 것이다.
좋은 활은 잡아당기기 어렵지만 화살을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게 할 수 있다. 좋은 말은 타기 어렵지만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 훌륭한 인재는 부리기 어렵지만 왕을 도와 왕이 존경받는 왕이 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는 작은 시냇물이 자기에게 흘러 들어와 가득 차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므로 커질 수가 있었다. 성인은 일을 하는데 사양함이 없고 사물에 대하여 어긋나는 것이 없었으므로 천하의 그릇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강이나 황하는 한줄기의 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수천 냥의 갖옷은 여우 한 마리의 흰 털가죽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자기와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은 취하여 쓰지 않고 자기와 뜻이 같은 자만을 취하여 쓰겠는가?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왕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은 환하기만 하지 않고, 큰물은 맑기만 하지 않으며, 큰불은 밝게 타기만 하지 않으며, 왕의 덕은 높고 빼어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천 사람의 우두머리가 될 사람은 곧기가 화살 같고, 평평하기가 숫돌과 같지만, 만물을 덮어 주기에는 부족하다. 또 좁은 골짜기의 물은 마르기 쉽고,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은 바닥이 드러나기 쉬우며, 돌이 많은 땅엔 식물이 자라지 않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왕자의 은혜와 혜택도 궁중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라면 온 나라에 흐를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