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미국의 자본주의 : American Capitalism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 Pelican Book / 1951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한마디로 출세한 경제학자다. 게다가 백수(白壽)를 누렸으니 여러 면에서 부러운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버클리,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가르쳤다. 미국경제학회장, 경제인연합회장에다가 대통령 클린턴의 경제 선생이었다. 이렇게 강단과 현실 정치의 양 분야에서 공히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갤브레이스의 기본적인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초기작인 이『미국 자본주의, American Capitalism-The Concept of Coun tervailing Power』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갤브레이스는 이 책에서 그의 대표적인 개념인 ‘길항력(Countervailing Power)’을 소개했다. 길항력이란 두 개의 강력한 집단 사이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힘의 작용과정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러한 힘겨루기를 통해 경제체제에서 특정 집단의 독점을 막고 성장과 안정 간의 균형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저자소개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John Kenneth Galbraith, 1908 ~ 2006)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1908년 10월 15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에서 태어났다. 토론토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과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34년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부의 물가청에서 근무하다 전후에는 대학에 복귀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이었던 1961~1963년 인도 대사를 지냈으며, 미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자문역으로 일하는 등 민주당 지도자들의 사고와 노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문을 쓰는 등 명문장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역사학, 사회학에도 밝았다.
정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트라이엄프’ (1968) 등 소설 3편을 포함해 모두 33권의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풍요로운 사회 : The Affluent Society’ (1958), ‘새로운 산업국가 : The New Industrial State’ (1967), ‘불확실성의 시대 : The Age of Uncertainty’ (1977) 등이 있다.
2006년 4월 29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책 속으로
American Capitalism – The Concept of Countervailing Power is a book by John Kenneth Galbraith, written in 1952.
Not as well known as some of his other works, it contains a critique of the view that markets, left to their own devices, will provide socially optimal solutions. Galbraith agrees[1] with F. A. Hayek as far as the assertion goes that “the price system will fulfil [its] function only if competition prevails, that is, if the individual producer has to adapt to price changes and cannot control them.”
Galbraith builds on work by Prof. E. H. Chamberlin of Harvard and Joan Robinson at Cambridge and the work done by Joe S. Bain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arguing that the America of the early 1950s no longer complied to a textbook definition of Perfect competition. on page 66 he sets out the conclusions which result from the abandonment of competitive behaviour in favour of oligopoly or crypto-monopoly:
“The producer now has measurable control over his prices. Hence, prices are no longer an impersonal force selecting the efficient man, forcing him to adapt the most efficient mode and scale of operations and driving out the inefficient and incompetent. one can as well suppose that prices will be an umbrella which efficient and incompetent producers will tacitly agree to hold at a safe level over their heads and under which all will live comfortably, profitably and inefficiently.”
Just as the market at the micro-level may not always work to society’s advantage, Galbraith concludes that Keynes was correct in his explanation of the deficiencies of the macro-model where an equilibrium was possible below the full employment level of output and that without outside intervention, this equilibrium might persist.
Galbraith highlights the role of “Countervailing Power” in dealing with market failure & outlines its operation at the micro, and at the macro levels. At the micro level, firms might merge or band together to influence the price. Individual wage earners might also combine in unions to influence wage rates. Finally, government might intervene in the market place where required to provide regulation where countervailing power failed to develop but was nevertheless required. He concluded that Countervailing power was legitimate and welcome as the alternative of state control would be much less palatable to the business community. Without countervailing power, Galbraith concluded (p181):
“private decisions could and presumably would lead to the unhampered exploitation of the public, or of workers, farmers and others who are intrinsically weak as individuals. Such decisions would be a proper object of state interference or would soon so become.”
In concluding that his findings were unlikely to meet with applause from the business community (p183), Galbraith was correct.

‘미국 자본주의 – 상반된 권력의 개념’은 1952년에 작성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저서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시장에 자체 장치를 두고 사회적으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다. Galbraith는 “가격 체계가 경쟁이 우세한 경우, 즉 개별 생산자가 가격 변동에 적응해야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경우에만 기능을 수행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 F.A. Hayek에 동의한다.
Galbraith는 케임브리지의 하버드(Harvard)의 E. H. Chamberlin 교수와 Joan Robinson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의 Joe S. Bain이 1950년대 초 미국이 더 이상 경쟁에 대한 교과서 정의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66 페이지에서 그는 올리고 폴리 또는 크립토 모노 폴리에 유리한 경쟁 행동의 포기로 인한 결론을 제시한다.
생산자는 이제 자신의 가격을 측정할 수 있는 통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가격은 더 이상 효율적인 사람을 선택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힘이 아니므로 가장 효율적인 모드와 규모의 운영을 조정하고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사람을 몰아 낼 수 있다. 가격은 효율적이고 무능한 생산자들이 안전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수익성 있고 비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우산이 될 것이다.
Galbraith는 소액의 시장이 항상 사회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Keynes는 전체 고용 수준 아래에서 평형이 가능하고 시장에서 평형이 가능했던 거시 모형의 결함에 대한 설명에서 Keynes가 정확하다고 결론지었다. 이 균형은 지속될 수 있다.
Galbraith는 시장 실패를 처리하는데 있어 “상쇄 능력”의 역할을 강조하고 미시적 및 거시적 차원에서의 운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미시적 수준에서 기업은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합병하거나 묶을 수 있다. 개인 임금 소득자는 임금 조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결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상충되는 권력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규제를 제공해야하는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그는 국가 통제의 대안이 비즈니스 커뮤니티에 덜 적합 할 것이기 때문에 상충되는 권력은 합법적이고 환영한다고 결론지었다.(p181).
개인의 결정은 아마도 개인이나 본질적으로 약한 노동자, 농부, 농민 등의 무단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한 결정은 국가의 간섭의 대상이 되거나 곧 일어날 것이다.
그의 발견이 비즈니스 커뮤니티 (p183)의 박수를 맞출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서 Galbraith는 정확했다.
○ 독자의 평
이관형의 서평에 의하면, 그가 말하는 경제는 사기란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총체적 사기란다. 먼저 ‘자본주의’를 ‘시장(체제)’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사기다. 이런 말 바꿈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주는 역사적, 부정적 의미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현대에는 기업이 권력을 지니는데 기업의 권력은 자본가(혹은 주주)가 아니라 경영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하면 경제 권력이 ‘자본가’라는 게 딱 떠오르는데 ‘시장’이라고 말하면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은폐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역사적’ 개념임에 비해 ‘시장’은 ‘초역사적’ 개념처럼 보일 수 있다. “자! 쭈-욱, 이대로!” ‘소비자 주권’도 사기다. 소비자가 조종, 통제되는 것이 실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봉이다.” ‘노동의 즐거움’도 사기이다. 일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필수다. 일에서 해방된 부자는 칭송과 부러움을 받는다. “일해서 돈벌어. 누가 벌지 말래냐? 나처럼 되긴 어렵겠지만 말이야!” 여가는 부자들에게는 용납된다. 가난한 이들이 여가를 즐기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다. “없는 놈이 여가생활은 무슨…하여간 꼴값을 떨어요.” 현대 기업은 고루한 ‘관료주의’를 비난하지만 이 또한 사기다. ‘생동감 넘치는 기업 경영’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대기업화한 오늘날의 기업은 자신이 바로 ‘관료주의’에 처해 있다. 게다가 소유자나 주주의 권한은 예의 그 ‘경영’에서 배제된 허울뿐인 이미지만 지닐 뿐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선진 경제 제도라 좋은 거라던 경제학 교과서의 말씀이 뻥이라는.” 나아가 기업 권력은 고삐가 풀린 상태다. 기업 권력은 관료화한 경영자의 몫이다. 이러한 관료주의가 기업의 업무와 보수를 통제한다. 자기 업무의 감시자는 사실상 자기이다. 자기에게 보수를 주는 이도 자기이다. 감시는 지나치게 없고, 보수는 지나치게 많다. “생선을 고양이에게! 그것도 셀프에 무한리필로!”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이 나뉘어 있다고 보는 것도 사기다. 공공 부문의 이름 아래 공사 협력 체제라는 형태로 실제로는 민간 부문이 일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도 민간 기업이 대행한다. “로보캅이 현실로, SF가 다큐로!”
금융계는 사기가 만연된 세계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진실이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하는 직업은 사람들이 좋아할 기대를 이야기해준다고 해서 두둑한 보상을 받는다. “하나의 예. 보험 많이 드셨어요? 아유 든든하시겠네. 근데 한번 확인해 보세요. 진짜 많이 주는 건지. 아니, 주기는 하는 건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명성도, 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만 주력했을 뿐 경기 조절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우아한 현실 도피로서 사기일 뿐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버냉키 사임 예정(2014년) 기사가 올라와 있다. 그나마 그린스펀보다는 백배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허긴 뭘 할 수가 있겠는가? 쩝.” 기업 권력의 사기 행각을 무죄로 만들어주는, 부패한 회계 보고도 사기다. 현대 사회에서 경영진이 행사하는 기업 권력은 민간 부문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으로까지 확장된다. 기업 권력은 국방 정책, 환경 정책, 조세 정책도 좌우한다. 객관적인 실증적 연구도 기업 권력의 로비를 당한 군대나 정부에 의해 배척당한다. 군산복합체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고만해라. 백날 피켓 들고 떠들어도 나 니들 말 안 듣다. 니들이 나한테 돈을 주니, 나 옷 벗고 난 다음에 갈 자리를 주니? 비켜라. 바쁘다. 업체 분들과 회식 있다.” 사기의 끝은 전쟁이며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갤브레이스에 의하면 현대 사회의 최고 권력은 대기업 권력이다. 그리고 그 대기업은 주주나 자본 소유자가 아니라 경영자의 수중에 있다. “한국의 재벌이 주주 혹은 자본가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경영권에 집착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매우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그는 말한다. 기업의 공헌은 경제적 성공, 심지어는 문명화한 성공의 일반적인 척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이 더 많은 자동차와 더 많은 텔레비전과 더 다양한 옷들과 더 많은 소비재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한 더 치명적인 무기의 소유도 성공의 빼놓을 수 없는 척도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업적을 평가하는 척도다.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 즉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 보호받지 못하는 시민들의 건강, 군사적인 행동과 죽음의 위협은 성공을 평가하는 데 포함되지 않는다. “오래되고 찌그러진 차를 타고 다니니까 나를 무시하냐? 이런 차 탄다고 내가 루저로 보이냐고? 내가 분리 수거나 등산 쓰레기 가져오기, 애완견 배설물 치우기 열심히 하는 건 안 보이냐?” 그랬더니 나더러 이런다. “너 루저 맞거든.”
경기 침체기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불경기에 저소득층은 교육과 의료, 기본적인 가계 수입 등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부는 사회 지출을 삭감한다. 오히려 소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소비를 할 사람에게는 이를 박탈하는 정책이 지속된다. 그동안 경기가 호전되어왔을 때조차도 어떤 분명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서 (경기 호전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불경기에는 소비 활동을 할 빈곤층이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정책은 확실한 효과를 낸다. 그렇지만 이는 쓸모없는 동정에 불과하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반면 사회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게 종종 세금 감면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절박한 필요라는 게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돌아간 보상은 소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돈을 확실히 소비할 빈민들은 이런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 돈을 저축할 것이 분명한 사람들에게만 이런 보상이 주어진다. “부자 감세 철회하라. 부유세 거둬라. 공공 복지와 저소득층 지원 정책 확충하라. 그래야 경제가 산다.” 미국 얘긴지 한국 얘긴지 모를 이야기가 이어진다. 끝에 이르러 그의 이야기는 현대 문명의 파국을 예언하는 묵시록으로 바뀐다. 소위 문명화된 삶은 인간의 업적을 찬미하는 하얀 거탑이지만 그 정상에는 영원히 감돌고 있는 거대한 먹구름이 있다. 인간의 진보는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과 죽음으로 점철되어 왔다. 나(갤브레이스)는 이제 독자들에게 슬프지만 의미심장한 진실을 남기고자 한다. 문명은 과학, 의료, 예술 그리고 경제적 복지에서 수 세기 동안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그러나 문명은 또한 무기개발과 전쟁의 위협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대량살육은 결국 문명이 가져 온 것이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살인과 폭력, 문명화된 가치의 정지, 전쟁 직후의 무질서와 같은 (오늘의) 현실에서 탈출구는 없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