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민주사회주의의 딜레마 : 베른슈타인의 맑스에 대한 도전
피터 게이 / 한울 (한울아카데미) / 1994.2.1

미국 역사학 피터 게이 교수의 저서로 반맑스주의자인 베른슈타 인의 수정주의 이론을 집중 탐구, 맑스주의의 본질을 재조명 하였다.
○ 목차
- 정치적 성장
베를린 시대
쥬리히 시대
런던 시대 - 이론
계보
베른슈타인이 아니었다면
수정주의 철학
수정주의 경제학
수정주의 정치학 - 영향
지지와 비판
1차대전
노스케 공화국
수정주의의 수정(?)

○ 저자소개 : 피터 게이 (Peter Joachim Gay, 1923 ~ 2015)
피터 조애킴 게이 (Peter Joachim Gay, 1923년 6월 20일 ~ 2015년 5월 12일)는 독일 출신의 미국의 역사학자, 교수, 저술가로 주로 서양 근대사상사와 문화사를 연구했다.
본명은 페터 요아힘 프뢰흘리히 (독: Peter Joachim Fröhlich)로 미국 시민이 된 직후 성을 게이로 바꿨다.
1923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9년 쿠바를 거쳐 1941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 명예교수를 역임했으며,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신분석을 역사 연구에 도입한 선구자로서 ‘역사학계의 프로이트’로 불린다.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신론자 아버지 슬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자각 없이 자랐으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9년에 고향을 떠나 1941년에 미국에 정착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9년부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계몽주의’로 1967년에 전미도서상 (National Book Award)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문화사 분야의 혁신적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마르 문화’를 출간했다.
1970년대 중반 ‘웨스턴 뉴잉글랜드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프로이트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 등장의 전주곡으로 인식되던 독일 근대 문화가 지닌 가치를 올바로 해석하려는 목적에서 쓴 ‘프로이트, 유대인, 그리고 다른 독일인들 : Freud, Jews, and Other Germans’ (1978)에서 게이는 특히 유대인이 독일 문화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프로이트는 학문적 관심사는 물론이고 개인적 배경에서도 게이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인물이었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유대교와 상관없이 무신론자로 자랐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어권 국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설명은 프로이트와 피터 게이에게 공통되는 사항이었다.
10년에 걸친 연구와 2년 반의 집필 기간을 거쳐 1988년에 출간한 ‘프로이트 : Freud – A Life for Our Time’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저서로 ‘역사가를 위한 프로이트’, ‘모차르트’, ‘부르주아 전’, 5부작 ‘부르주아의 경험 : 빅토리아에서 프로이트까지’ 등이 있다.
2004년 미국역사협회가 뛰어난 업적을 거둔 역사학자에게 주는 공로상을 받았다.
- 역자 : 김용권

○ 출판사 서평
현실사회주의의 파산은 자유민주주의에 승리의 확신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현실사회주의로부터 오랫동안 변절자 로 매도되던 사회민주주의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의회를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는 20세기 서유럽에서 상당한 정치적 세력을 구축 했으며, 독일사회민주당은 그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 책은 독일 사민당의 이념적 기초를 만들었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베른슈타인은 19세기말의 유럽사회가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사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가 던진 화두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많은 마르크스의 후계자들과 달리 베른슈타인은 민주주의를 수단인 동시에 목적인 것 으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을 이은 레닌주의가 세계를 풍미한 오랜기간 동안 베른슈타인에게는 수정주의자의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상황은 진보진영의 기피인물이었던 그를 복권시켰다. 저자는 레닌주의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1952년에 베른슈타인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를 내놓으면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시대의 산물이다. 수정주의가 개량주의적 조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개량주의적 조류가 그러한 이론을 요구했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