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바이킹 시대의 탄생과 업적
원제: THE BIRTH OF VIKING AGE & ITS ACHIEVEMENT
이희숙 / 이담북스 / 2017.3.31
스칸디나비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바이킹 시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바이킹 시대 (850 ~ 1050)는 유럽의 광대한 지역을 점령한 스칸디나비아 항해 전사들이 활동한 황금 시기이다. 이교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인들로 이들은 유럽에 무역, 식민지, 약탈을 위해 일련의 항해를 시작, 거의 250년 동안 영국 제도, 프랑스, 이탈리아와 러시아까지 활동하였다. 특히 동쪽에서는 붉은 머리 북구인 (Norseman)의 루스 (Rus, 레드)란 이름을 남겼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 한 통로를 설립한 첫 유럽인이며 세트란드 섬, 파로에 섬,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그리고 빈란드를 확장하였다. 그들의 정력과 풍부한 예술은 옐링게, 맘멘, 링게리케, 우르네스 스타일의 동물 장식에서 표현된다. 또 11세기 노르웨이에 기독교 도착은 스테브 통나무 교회들을 훌륭한 조각 공예로 기여하였다.

○ 목차
들어가며
ONE
초기 바이킹 왕국
왕국 설립
도시 성장
사회생활
계급
폭력과 형벌
옷과 장
저울과 동전
TWO
부와 영토 확장: 약탈·정착·무역
바이킹 배
바이킹의 습격
서유럽 약탈
무기 점검
습격 타입
무역, 동쪽의 연장
바랑기언 친위대
영국과 아일랜드 정착
THREE
이교도 믿음
8세기 후~ 11세기의 매장
이교도 믿음
신들의 아버지 오딘
천둥의 신 토르와 그의 해머
비옥, 생식의 신 프레이와 프레야
발키리
영웅 시구르드
그 외의 이교도 신
신성한 말
FOUR
기독교 개종
기독교의 도착과 발전
FIVE
돌 기념비 룬스톤
룬 문자
룬스톤의 이미지와 비문
SIX
바이킹 예술: 다섯 스타일
바이킹 예술
오락과 무덤 배 오세베르그
브로아, 오세베르그(750~840) 스타일
보래(835~970) 스타일
옐링게(c.880~1000) 스타일
맘멘(950~1060) 스타일
링게리케(980~1080) 스타일
우르네스(1035~1150) 스타일
SEVEN
노르웨이 스테브 교회
스테브 교회의 시작
건축 스타일
현존하는 28 스테브 교회
EIGHT
부록
용어 해설
참고 문헌
○ 저자소개 : 이희숙
학자, 예술가, 디자이너, 저널리스트.
힌두교·불교·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나타나는 여러 공통유산을 바탕으로 종교 간의 상호 영향과 교류를 연구해온 이색 예술인이자, 이를 연구하는 가운데 영감을 받은 건축·오너멘트·디자인·사상 등에 독일 시성 괴테의 작품을 통합하여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그리그의 ‘솔베이지송’이 흘러나오는 북구의 매력에 반해 동양 최초의 스칸디나비아 유학생이 되었다. 노르웨이 국립예술디자인대학에서 회화, 그래픽디자인 등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기독교신학과 문화를 공부하였으며,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이슬람과 관련한 응용미술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옥스퍼드브룩스대학에서 힌두교·불교·기독교와 이슬람 건축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개 국어에 능통하여 세계 각지를 다니며 강의와 전시회를 열었으며, 인도주의적인 일 (Humanitarian Work)에 앞장섰다. 2019년 현재 핀란드에서 연구와 창작을 통한 다각적인 국제 활동 외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의 연구, 보존, 이해 증진과 전파를 위해 적극 활동하고 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ICOMOS)의 ‘무형문화’ (ICICH) 학술 분과 회장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언론과 방송에 스칸디나비아를 알리는 데 힘써, 한국을 알린 공로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The Order of Civil Merit Medal’을 받은 바 있으며, 외국 정부·사회·학술단체 등으로부터도 여러 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나의 스칸디나비아』(2011), 『(세계를 감동시킨)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 37』(2013), 『스칸디나비아 예술사』(2014), 『이슬람 캘리그라피』(2014), 『자바이슬람의 건축문화유산』(2015), 『이슬람건축의 동양과 서양』(2016), 『바이킹 시대의 탄생과 업적』(2017), 『스칸디나비아 원주민 사미의 사회·문화·종교』(2017), 『중세 승원 회랑의 초목과 꽃 조각 장식』(2018), 『중세 승원 회랑 조각에 나타난 동물 우화 마뉴스크립의 종교적 상징』(2019) 등이 있다. 또한, 영어로 쓴 저서와 연구 페이퍼들이 있다.

○ 책 속으로
스칸디나비아에 관한 첫 기록은 서기 79년 로마 철학가 플리니 (23~79)가 쓴 『자연역사 (Naturalis Historia)』로 여기서 그는 스칸디나비아를 “물 위의 위험한 나라”로 묘사하였다. 지리상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의미하는 바이킹 민족 시대의 이해는 특히 8세기 후 이곳 사회, 문화가 유럽의 식민 영토에 어떻게 채택, 융합되는지 변화들을 조사함이다.
전 유럽 대륙의 12%와 인구 3%의 약 천7백만을 가지는 스칸디나비아국 중 덴마크는 최밀도의 5백만, 스웨덴은 8백만, 노르웨이는 4백만이다. 바이킹 시기에는 인구 분배가 비교적 동등하여 덴마크 유트란드 (Jutland)의 모래 황무지, 노르웨이의 산악, 스웨덴의 숲을 제외하고 남쪽 스웨덴은 광대한 정착지였다.
따라서 현 스칸디나비아국들은 바이킹 시대의 시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당시 사회는 앵글로-색슨 영국과 유럽 대륙의 왕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동안, 여전히 옛 구조를 유지하며 귀족과 일시적으로 족장들에 통치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유럽에서 활동한 군사 지도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르면서 스칸디나비아는 점차 기독교 개종을 시작하였다. 12세기 귀족주의는 옛 이데올로지에 기초한 권력 구조를 바꾸며, 이것을 특권, 문서, 법으로 정의하여 다음 세기에 서부 유럽 패턴에 따라 왕국을 세워 국가 정체성을 획득하였다.

- 덴마크(Denmark)
스칸디나비아국 중에서 가장 일찍 개발된 덴마크의 접두어 mark는 그 의미가 불확실하나, 나라 이름은 국민 “데인 (the Danes)”에서 유래한다. 영토는 유트란드 반도, 핀과 셀란드의 큰 섬들, 약 500개의 작은 섬, 발트에 위치한 보른홀름 섬이다. 바이킹 시대, 스코네, 할란드, 블레킹게도 포함하였는데 이들은 1658년 스웨덴으로 양도되었다. 참나무와 자작나무의 광활한 숲에 모래 언덕과 열린 불모지를 가지며, 바다에서 55km 안이 모든 생활의 기본 영역이었다.
유럽 문화가 유트란드에 처음 도착하면서 덴마크는 10세기 통일 왕권의 중심지가 되었다. 투르의 그레고리 (538/9~594)는 515년 『프랑크 역사 (The History of the Franks)』에서 덴마크 함대가 해안으로부터 골 (현 프랑스)을 침략하였으며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그들 왕이 얼마나 큰 지역을 통치하며 어떤 권력을 행사하였는지 알 수 없음을 보고하였다. 또 6세기 출처는 덴마크인을 강력한 군대로 기록, 프로코피우스 (c.500~c.565)는 헤랄리가 스칸디나비아로 가는 길에 다노 (Dano) 지역을 지나갔음을 알린다.
로마 영향이 유트란드에 도착한 점은 덴마크 철기 시대 매장의 진귀한 외교 선물들이 반영하지만, 스칸디나비아는 지리와 문화상 로마 제국 바깥이었다. 따라서 이 선물들은 국경 지역을 안전키 위한 수단으로, 선물교환 경제를 통해 지방 족장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 권력을 합병하려는 의도였다. 족장들은 이 선물들을 가지고 바이킹 이교도 신들의 직무를 대행하였으며 전쟁의 이데올로지 설정에 이용하였다. 즉, 전쟁 약탈물을 땅에 매장함은 신에게 봉납을 뜻하여, 예로 유트란드에서 발굴한 진기한 매장 저장물(hoard)은 그들이 공동체를 대신하여 이교도 신들과의 소통을 설립하고 합법화하는 특수한 요소를 증명한다.
7~8세기 출처에서 덴마크인과 그들 왕에 관한 몇 정보가 있다. 우트렉의 주교이며 선교사 빌리브로드 (c.658~739)는 “덴마크의 사나운 부족”을 통치한 왕 온겐두스를 방문하였음을 기록하였으며, 9세기 첫 중반기 프랑크 연감은 왕 살레마네와 그의 계승자들의 적대 수로 나타난 덴마크 왕들에 관한 가득 찬 정보를 제공한다.
8세기 유트란드에 조직화한 중앙 권력의 고고학적 증명에 의하면, 통나무로 줄 지운 해협에 위치한 전략 장소의 삼쇠 성은 726년 설립, 750년경 수선, 885년에 사용하였다. 또 유트란드 최하부에 놓인 다네비르케(Danevirke)의 14km 길이 성벽은 서쪽 북해로 흐르는 강 주위의 늪 지역들과 동쪽 프욜드 사이의 슐레스베그의 통과를 막았다. 첫 성벽이 737년 설치, 808년 왕 고드프레드에 의해 확장되었다. 다네비르케는 방위를 위한 순수한 메커니즘 외에도 사람과 동물의 활동 움직임을 조정하였다.
“덴마크”는 영국 요크의 대주교 불프스탄 (사망 956)에 의해서도 불렸고, 10세기 이미지가 돌에 담긴 옐링 룬스톤에도 나타나 왕 고름의 계속적 왕권 계승을 알 수 있다. 덴마크 왕권은 960년 초 노르웨이를 정복한 아들 하랄드 불루투스 (Harald Bluetooth, 사망 c.987)1에 확장 되었다. 987년 하랄드가 축출되며 고름의 손자 스바인 포크비어드와 증손자 카눝2은 영국에 대항하려 군대를 이끌었다. 카눝이 앵글로-스칸디나비아 왕 (Great Canute, c.995~1035)이 되면서 두 나라 문화의 활발한, 규칙적 교환이 있었다.
1 하랄드 불루투스는 왕 고름의 아들이며 스베인 포크비어드의 아버지, 크눝의 할아버지로 그의 이름은 고대 스칸디나비어어로 블로탄드 (Blåtand), 어두운 얼굴색이다. 약 960년 옐링의 초기 룬스톤에서 그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합, 덴마크 기독교화함을 주장하였다. 969년 다네비르케를 헤데비로 연장, 성벽을 재건하였다. 그가 세운 요새들은 V 모양 개울로 둘러싸며 땅과 잔디의 둥근 성벽으로 4컴퍼스 점에 관문을 가져, 왕권의 지역 권력을 대표, 약 10년간 사용되었다.
2 카눝 대왕은 크눝 (Cnut)으로 알려지며 덴마크, 영국, 노르웨이 (앵글로-스칸디나비아) 왕이다. 그의 죽음, 10년간 상속자들 죽음, 1066년 영국의 노르만 정복 후 거의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카눝은 덴마크 출신으로 앵글로-색슨 역사 가운데 최고로 실력 있는 왕이다.

- 노르웨이 (Norway)
이름 “노르웨이”는 북해 서쪽 해안의 보호된 경로에서 유래된 것으로 norvegar, “북쪽 통로 (north way)”의 의미이다. 해안은 셀 수 없는 프욜드로 움푹 패여 실제 길이는 20,000km이며, 우뚝한 산들을 가진다. 바이킹 시대의 인구는 프욜드 꼭대기 좁은 경계와 작은 평원에 한정, 사회 공동체가 비교적 고립되며 자체의 전통과 문화를 이루었다. 국토의 반이 600m 위에 위치하며 부드러운 경사의 몇 비옥한 지역은 남서의 야렌, 남동의 오슬로 프욜드, 북동의 트론데락이다. 현재까지도 경작 땅은 전 표면의 3%, 숲이 23%로 철, 나무, 순록, 엘크 등 야생동물과 바다 고래, 물개가 주요 생산이다. 북쪽 하고란드 해안은 인구가 옅으며, 이곳 바이킹은 북쪽의 스칸디나비아 원주민 사미 (Sami)에게서 공물을 받았다.
노르웨이는 880년경 하랄드 파인헤어 (Harald Finehair, c.860~940)에 의해 처음 통합되었는데, 그는 남노르웨이와 해안 지역들을 통치한 베스트폴드의 왕이었다. 약 930년 하랄드의 사망 후, 영토는 악명 높은 아들 에릭 불라드악스 (Erik Bloodaxe, c.885~954)로 계속되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국경을 나누며 덴마크와 육지 소통의 어려움으로 바다로 향한 기회를 찾았다. 따라서 영국 제도에 첫 기록된 바이킹 약탈은 서노르웨이 호다란드에서 시작, 북서 제도, 파로에 섬,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로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 스웨덴 (Sweden)
이름 “스웨덴”은 중부 지역에 사는 스베아 (svear) 인들에서 근원을 가진다. 국토는 땅, 기후, 렐리프 등 변경하는 풍경으로 스코네 북쪽에서 스모란드의 낮은 초원까지 거의 인구가 없으며 덴마크와 지리적 경계를 나눈다. 중앙 평원지는 두 개의 비옥한 지역인 우프란드에 중심 둔 스베아와 바나르 동쪽에 고타르이다. 더 북쪽의 노란드는 숲과 암석으로 인구가 드물다. 남쪽 스웨덴의 해양 기후, 그리고 북쪽의 빙하와 눈의 추운 겨울로 국토의 57% 숲은 사냥과 어업 기회를 제공한다.
비록 스웨덴 왕들은 서쪽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 수차례 바이킹의 정복에 합류하였지만, 동쪽으로 눈을 돌려 발트 해에서 남쪽 비잔틴 제국과 연결한 국제 무역을 개발하였다. 그들의 통치 범위는 알려지지 않으나 9세기 여러 왕이 도시 비르카 (Virka)를 언급한다. 11~12세기가 되어서야 국가는 마침내 통합, 이것은 어스터고트란드와 배스터고트란드 간의 오랜 권력 투쟁 탓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북쪽 지역은 사미와 접촉되었다. 사미3는 바이킹 역사에 대부분 제거되어 19세기 바이킹 연구가 학문화되며 민속, 신화, 역사를 통해 스칸디나비아의 근원과 혈통을 추적하면서 사미가 원시 사냥-채집자로 연구되었다. 매장에 나타난 자료에 의하면 바이킹의 접경선이 사미의 활동 범위로 연장하였고, 발견된 자작나무 껍질과 음식물은 사미 활동이 남쪽에서도 순록에 의존함을 증명한다.
한마디로 지리, 문화, 지역적 차이에도 초기 스칸디나비아는 바다의 인접으로 서로 연합되며 다국적 정체성을 이룬다.
…..
3 어휘 “사미 (Sami)”는 언어와 주관적 기준의 배합을 바탕 두어 정의되며,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을 구성하는 토착민이다. 자체 영토, 인구, 언어를 가지며, 거주 지역 사프미 (Sápmi)는 스웨덴 남쪽 달라르나의 이드레에서 북노르웨이 북극해와 러시아 코라 반도까지 영토 157,487km²로 펼친다. 사미는 내륙 빙하의 퇴각으로 해안선을 따라 거주, 현재 약 70,000 (노르웨이 40,000, 스웨덴 30,000, 핀란드 6,000, 러시아 2,000)명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스칸디나비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바이킹 시대를 만나다
바이킹 시대 (850 ~ 1050)는 유럽의 광대한 지역을 점령한 스칸디나비아 항해 전사들이 활동한 황금 시기이다. 이교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인들로 이들은 유럽에 무역, 식민지, 약탈을 위해 일련의 항해를 시작, 거의 250년 동안 영국 제도, 프랑스, 이탈리아와 러시아까지 활동하였다. 특히 동쪽에서는 붉은 머리 북구인 (Norseman)의 루스 (Rus, 레드)란 이름을 남겼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 한 통로를 설립한 첫 유럽인이며 세트란드 섬, 파로에 섬,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그리고 빈란드를 확장하였다. 그들의 정력과 풍부한 예술은 옐링게, 맘멘, 링게리케, 우르네스 스타일의 동물 장식에서 표현된다. 또 11세기 노르웨이에 기독교 도착은 스테브 통나무 교회들을 훌륭한 조각 공예로 기여하였다.
본래 바이킹은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8세기부터 무역, 약탈, 식민지 확장으로 바뀌었다. 죽음에 대한 경멸, 영광을 위한 갈증, 그리고 전투의 탁월에 홀려버려, 영웅심과 정열이 그들을 강하고 위험한 민족으로 만들었고 여기에 훌륭한 상업 기술도 추가되었다. 초기 승원 역사가들은 바이킹을 호전적인 교활, 잔인함으로 기록하였지만, 아이슬란드 사가 문학은 바이킹의 관대함, 똑바름, 유명한 전사들의 훈련성을 강조한다. 바이킹 이미지는 이 상반되는 특징이 강조됨에 따라 각각 다르나, 한 공통성은 그들의 대담스러운 결심이다. 따라서 바이킹 시대는 스칸디나비아 역사에 가장 위대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