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밤주막
막심 고리키 / 범우사 / 2008.11.20
희곡 『밤 주막』은 작가 고리끼가 방랑 생활을 하며 직접 만나게 된 몰락한 민중들의 이야기이다. 경제체제와 사회제도의 변화 등 사회 전반의 혼란 속에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부랑자가 양산되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남작, 배우, 가죽 공장 경영자 출신의 주인공들은 화려했던 옛날을 뒤로 한 채 부랑자가 되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밤 주막』은 이들의 삶에 어느날 갑자기 끼어든 루까라는 노인이 이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의 말을 전하고, 결국 이들은 노인의 말을 점차 믿게 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짐과 동시에 이들의 희망도 깨어져 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보예도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공연으로도 올려져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이 작품은, 밑바닥 인생들에게 무작정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하는 철학적 문제를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당시 공연은 소련 정부 당국에 의해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며, 작가 고리끼는 이 일과 관련하여 러시아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다가 무효화되기도 하였던 문제작이었다.
○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등장인물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저자소개 : 막심 고리키 (Maksim Gorky, Aleksey Maksimovich Peshkov, 1868 ~ 1936)
막심 고리키 (Maksim Gorky, 1868년 3월 28일, 러시아 제국 니즈니노브고로드 ~ 1936년 6월 18일, 소련 모스크바주, Максим Горький, Aleksei Maksimovich Peshkov)는 러시아 소설가로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 Aleksei Maksimovich Peshkov)이다.
1868년 3월 28일 니즈니 노브고로드 출생으로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가난하게 살면서 각지를 방황, 독학으로 문학 공부를 하였다. 이런 그의 생활은 자전적 소설 3부작 『유년시대』(1914), 『사람들 속에서』(1916), 『나의 대학들』(1923)에 잘 나타나 있다.
1892년 「마카르 추드라」로 문단에 데뷔, 단숨에 문학적 성공을 이루었다. 하층민 출신이라는 그의 독특한 작가 이력은 러시아 독자와 문단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상의 묘사가 주를 이룬 그의 소설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가 되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는 등 소비에트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00년대 들어서는 문학적 성공으로 거둔 재력을 바탕으로 러시아 혁명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그의 혁명가적 기질은 그의 문학 작품 속에 점차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첼카시』(1894), 『노파 이제르길』(1895), 『뗏목 위에서』(1895), 『밤 주막』(1902) 등이 있다.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과 같은 황금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도시 빈민과 부랑자, 노동자의 삶과 의식을 대담한 낭만적 문체로 그려냄으로써 20세기 초 러시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에서 강력한 대정부 성명을 발표하여 곧바로 투옥되었으나 세계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항의로 석방, 1907년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 7년간 어머니와 자전적 삼부작 이탈리아 이야기 등의 작품을 쓰면서 러시아 혁명을 적극 지원했다. 1917년 볼셰비키의 폭력성고 권력욕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갈등을 일으킨 그는 레닌의 비호 아래 소련 정부와 타협하고 문화예술인 보호와 문화재건 운동에 앞장섰으나, 1921년 신병 치료 명목으로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망명 아닌 망명 생활에 들어간다. 1932년 완전 귀국하여 소련 작가동맹 초대 의장을 맡았고 스탈린과의 내적 갈등 속에서 클림 삼긴의 생애를 집필하던 중 1936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세기 러시아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문학을 잇는 가교였다. 황금세기 문학의 찬란한 빛이 뒷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 요란한 방울 소리를 내며 문단에 나타나 20세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추앙받았으나, 정작 예술가로서의 막심 고리키는 소외되었다. 막심 고리키 작품의 시기적 배경이 1905년 혁명 이전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 누구도 20세기 소비에트 시대를 진정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 역자 : 장윤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어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로 재임중이다.

○ 출판사 서평
- 고리끼가 방랑생활 중 만나게 된 여러 유형의 부랑자들을 싸구려 합숙소를 무대로 그려낸, 러시아 그리보예도프 문학상 수상작!
고리끼는 러시아 중부에 위치한 니즈니 노브고라드에서 오랜 시간 관찰한 여러 유형의 부랑자들을 싸구려 합숙소를 무대로 하는 작품 <밤주막>에 옮겨 놓았다. 이들 중에는 한때 남작이었던 사람도 있고, 배우였던 사람도 있으며, 가죽공장을 경영하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의 화려했던 삶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금 그들은 부랑자의 일원이 된 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급변하는 새로운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밑바닥 삶으로 끌어내려진 이들 낙오자를 소재로 한 <밤주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공연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끼 (1868 ~ 1936)는 불우한 삶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 살 때 선박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어머니와 외가인 까쉬린 가에서 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재혼함으로써 혼자 외갓집에 남게 된 고리끼는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잠시 동안이었으며, 염색공장을 하던 외할아버지가 파산으로 무너지게 되자 고리끼는 열 살 무렵부터 무일푼인 채로 홀로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신발가게 점원과 선박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굶주림을 채워 가던 중 배에서 만난 주방장 덕분에 여러 가지 책을 접하게 된다.
열여섯 살 무렵 대학에 진학코자 결심하고 까잔으로 향했으나 학비가 만만치 않아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막노동으로 일하면서 대학생들의 비밀 모임에 참석하게 되며,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아지트인 제렌꼬프 빵집 기술자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 때 인민주의자들의 서클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사상적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후 인민주의 혁명가들과 까잔 근교 농촌에서 혁명사업에 착수하지만 일이 실패로 끝나자 1888년 러시아 민중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러시아 순례를 떠나기로 한다.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온 고리끼는 인민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석방 후 변호사 서기로 일을 시작했는데 이 무렵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인 꼬롤렌꼬와 만나게 된다. 이듬해 다시 러시아 순례를 떠난 고리끼는 찌플리스에 머물며 여러 혁명가와 문학가와 교류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1892년 찌플리스 지방신문 <까프까스>에 첫 작품 <마까르 추드라>를 발표하였다. 이는 젊은 집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사랑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소개된 작품 <밤주막>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다가, 공연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러시아 정부는 그 동안 자신들의 걸림돌이 되었던 고리끼의 작품들에 대해 내용이 불건전하다며 공연금지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 신발가게 점원, 선박 근무, 막노동 일과 변호사 서기 등을 거쳐 러시아의 최고작가의 반열에 오르다.
정부는 1902년 고리끼가 러시아 학문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자 이를 무효화시켰다. 계속된 감시 하에서도 고리끼는 민중의 평화 시위를 유혈진압한 사건에 대해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써 냄으로써 또다시 한 달여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후 1906년 노동자를 위한 후원금을 모집하고 러시아 정부에 대한 외국의 차관을 막기 위해 미국으로 간 고리끼는 귀국이 어렵게 되자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에 희곡 <적들> (1906)과 장편 <어머니> (1906)를 발표하였다.
고리끼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동시대를 산 러시아 민중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서전적 3부작을 발표했는데, <어린 시절> (1913)과 <세상 속으로> (1916), <나의 대학> (1922) 등이 그것이다. 1924년 망명지에서 레닌의 사망소식을 접한 고리끼는 레닌을 진심으로 민중을 사랑한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한 회상기를 쓰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긴 고리끼는 자본가 3대와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다룬 장편 <아르따모노프가의 사업> (1925)을 완성한데 이어, 마지막 장편 <끌림 쌈긴의 생애> (1927~1936)를 10년 넘게 공 들인 작품임에도 미완으로 남기고 1936년 6월 18일, 6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러시아 최고의 작가이기도 한 고리끼는 폐렴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타살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명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태어나 작가와 혁명 투사로서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고 간 고리끼는, 작품 속 주인공처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함으로써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