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백전기략
유기 / 나들목 / 2004.2.25
적과 대치한 상태에서 도로가 막히고, 군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계략으로 적을 유인해도 덫에 걸려들지 않고, 뇌물로도 적장을 매수하거나 설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정전(正戰)이란 병법을 시행한다. 이는 정규 전법을 말하며, 병사들을 정예화하고 병기를 잘 손질하며, 상벌을 분명하게 시행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전진하며 공격하는 방법이다. 이는 『당태종·이위공문대』에 소개된 것으로 ‘정규전을 수행하지 않고 어찌 원정을 단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이 책에는『삼국지』『열국지』『손자병법』『오자병법』『논어』『맹자』『사기』등 중국 최고의 고전에서 가려 뽑은 병법들이 실려 있다. 이것들은 첩자를 이용해 적을 이간시키기거나 적을 교만하게 만들어 자멸시키고 적의 예상을 뒤엎고 갑자기 공격하는 등의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모두 100가지의 병법이 소개되고 있으며 해당 병법이 사용된 전쟁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볼 수 있다.역사서이자 처세서로도 읽을 만한 책이다.

○ 목차
계전
모전
간전
선전
보전
기전
주전
차전
신전
교전
중전
과전
애전
위전
상전
벌전
주전
객전
강전
약전
교전
교전
형전
세전
주전

○ 저자소개 : 유기(劉基)
1311-1375. 중국 원말과 명초에 활동했던 정치가이며 사상가이자 걸출한 문학가로 선진 이후 가장 훌륭한 성과를 올린 우언 자가 중 한 사람이다. 자는 백온伯溫, 시호는 성의백誠意伯, 문성文成으로 오늘날의 절강성 문성현 소재 청천에서 태어났다. 진사에 급제하여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원 왕조 말년에 절강유학부 제거, 절강행성도사와 같은 직책을 맡아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했다. 북방 몽고족의 통치 하에 장강 이남의 한족이라는 한계와 권력자와의 의견 차이로 47세의 나이에 파직되었다.
고향 청전산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욱리자>를 저술하는 한편 군사를 모아 훈련시키며 후일을 기약했고 3년 후 50세의 나이로 주원장朱元璋의 초빙에 응해 명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실력자 호유용의 질시와 참소로 61세 때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고 65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 역자 : 엄기헌
1954년 경북 김천 출생. 동국대학교 법학과 및 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대에서 공기업고급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81년 한국토지공사에 입사하여 중국사업팀장 등을 거쳐 현재 단지사업처 용지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30여 년 동안 중국의 명리학, 한의학, 무술 등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특히 명리학 중에서도 ‘자미두수’ ‘사주추명’ ‘기문둔갑’ ‘매화역수’ ‘풍수’ ‘양택’ 분야에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로는 <복을 부르는 관상 화를 부르는 관상> 이 있고, <양택3요의 풍수이론적고찰><양택경관풍수>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Goodday-365 등에 20여 편의 글을 연재한 바 있다.

○ 책 속으로
용병은 치밀한 계획의 수립을 첫 번째 도로 삼는다.
전장에서 적과 대전하기 전에 먼저 상대편 장수가 현명한지 어리석은지, 군세가 강한지 약한지, 병력은 많은지 적은지, 작전 지형은 험준한지 평탄한지, 군량은 충분한지 부족한지 등 적의 정황을 반드시 먼저 살펴야 한다.
이렇게 치밀한 계획과 계산으로 적과 아군의 형세를 판단한 다음 출병하여 싸우면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손자병법>에 ‘적의 정황을 살펴 승리할 방도를 찾고, 작전 지형의 지세와 도로의 원근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파악하는 것이 뛰어난 장수의 기본적인 직능이다’라고 했다.— p.16

○ 유기 (劉基, 1311 ~ 1375) 관련
《백전기략》은 유기 (劉基, 1311 ~ 1375)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자들의 고증을 거치면서 유기의 이름을 빌린 병법서일 뿐 작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유기는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개국 후 주원장의 무자비한 공신 숙청을 피한 현명한 인물로도 그 이름을 남겼다. 유기는 고향 이름을 따서 유청전 (劉靑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자는 백온 (伯溫)이다.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활동한 군사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였다.
유기는 유가 경전과 역사는 물론 천문과 지리, 그리고 병법에 정통하여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제갈량에 비유하여 “제갈량은 천하를 삼분했고, 유백온은 강산을 통일했구나. 앞에는 제갈량이 뒤에는 유백온이 있다”라고 칭송했다.
주원장은 여러 차례 유기를 가리켜 ‘나의 자방 (子房)’ (자방은 한나라를 개국한 고조 유방의 일등공신 장량 張良의 자 字)이라고 칭찬했다
《욱리자 郁離子》 등의 저서가 있는데, 훗날 《성의백문집 誠意伯文集》에 수록되었다. 《명사 明史》(권128)에 그의 전기가 남아서 전한다.
유기는 주원장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특히 군사가, 정치가, 문학가로서 그 명성을 크게 떨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입덕 立德’ ‘입공 立功’ ‘입언 立言’ 세 방면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긴 위인으로 평가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