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법철학 강요
G. W. F. 헤겔 / 홍신문화사 / 1997.9.1
‘법철학 강요’ (Elements of the Philosophy of Right)는 헤겔이 처음부터 출판을 위해 저술한 것이 아니고, 법철학 관련 강의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 목차

서문
서론(법철학의 개념, 의지·자유·권리 내지 법의 개념;1~33)
구분
제1부 추상적인 권리 내지 법(34~104)
제1장 자기 것으로서의 소유
A. 점유취득
B. 물건의 사용
C. 자기 것의 외화 내지는 소유의 포기
– 소유로부터 계약의 이행
제2장 계약
제3장 불법
A. 순진한 불법
B. 기만
C. 강제와 범죄
– 권리 내지 법으로부터 도덕에의 이행
제2부 도덕(105~141)
제1장 기도와 책임
제2장 의도와 복지
제3장 선과 양심
– 도덕으로부터 윤리에의 이행
제3부 윤리(142~360)
제1장 가족
A. 결혼
B. 가족의 자산
C. 자식의 교육과 가족의 해체
– 가족으로부터 시민사회에의 이행
제2장 시민사회
A. 욕구의 체계
(a) 욕구의 방식과 만족의 방식
(b) 노동의 방식
(c) 자산
B. 사법활동
(a) 법률로서의 법
(b) 법률의 현존재
(c) 재판
C. 복지행정과 직업단체
(a) 복지행정
(b) 직업단체
제3장 국가
A. 국내공법
1. 그것 자신으로서의 국가체제
(a) 군주권
(b) 통치권
(c) 입법권
2. 대외 주권
B. 국제공법
C. 세계사
헤겔의 생애와 사상
○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해겔의 ‘법철학 강요‘
헤겔이 본격적으로 법철학 관련 강의를 시작한 것은 베를린 대학의 1818-1819년 겨울 학기부터다. 헤겔은 이 겨울 학기에 ‘자연법과 국가학’이라는 강의를 시작했으며, 유사한 강의를 1825년까지 개설했다. 이렇게 강의를 위해 준비된 강의록이 ‘법철학 강요’라는 체계적 형태의 저서로 출판된 것은 1820년이다. 물론 베를린 시기 이전에도 헤겔이 법철학이나 실천철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헤겔은 예나 시기에 흔히 ‘자연법 논문’이라고 알려진 글을 발표하거나 ‘인륜성의 체계’와 같은 글을 쓰기도 했으며,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정신철학을 체계적으로 기획하면서 ‘법철학 강요’의 기본 골격을 준비하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헤겔이 ‘법철학 강요’에서 ‘인륜적 삶’을 통해 정초하고자 한 공동체의 모습에는, 분열된 삶을 극복하고 조화롭고 통일된 삶을 지향하던 초기 헤겔의 문제의식이 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철학 강요’는 헤겔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총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철학 강요’를 제대로 이해하면, 헤겔이 품고 있었던 실천철학적 문제의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법철학 강요’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독일이 취할 정치적 태도에 관한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헤겔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독일이 어떤 헌법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법률을 성문화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고려하며 자신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법철학 강요’다. 하지만 ‘법철학 강요’를 정독해 보면 이러한 시대적 문제에만 제한되지 않는 헤겔의 철학적 깊이를 접하게 된다. ‘법철학 강요’ 전반에 걸쳐 헤겔은 고대와 근대의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과 지속적으로 대결하면서도 그것을 아우르고 뛰어넘는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한 시도가 과연 성공적이었는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대의 실체적 세계관과 근대의 주체적 세계관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려는 헤겔의 문제의식으로 인해, ‘법철학 강요’는 철학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그리고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더불어 정치철학 및 도덕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되어 왔다.
○ 독자의 평
– ‘법철학 강요’로 살펴본 사랑
서론
사랑을 이루는 첫 번째 계기는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스스로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 두 번째 계기는 내가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하고 이 타자 안에서 인정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역으로 타자도 역시 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을 얻는다는 데 있다.
사랑은 시대, 문화,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뜨겁고 흥미로운 주제다.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현실 세계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의 원동력에는 대부분 ‘사랑’이라는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온갖 불법적인 행동 역시 사랑이라는 하나의 추상적인 동기 때문인 경우도 무척 많다. 맑시즘과 유물론의 사상적 방법론적 진원지인 헤겔 역시 사랑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형이상학, 논리학, 절대정신, 사회 전반적인 구조, 체계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도 관심이 많았고 철학적인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철학자였다. 신에 대한 종교적 사랑은 물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사랑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헤겔은 사랑을 이성과 유비적인 어떤 것을 지닐 수 있는 도덕적인 감성으로 고찰하며, 따라서 감성 내에 존립하는 일종의 도덕적 추동력으로서 이해했다. 하지만 이성적인 관계 맺음과 이해 역시 중요하다고 헤겔은 주목했다. 한편 인간 대부분은 사랑에 빠지면 인생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되고, 상대방의 내면에서 나의 모습을 찾고 행복해한다. 헤겔의 여러 저술과 사랑에 대한 언급을 종합하여 헤겔이 가진 사랑, 나아가 결혼, 가족, 자녀와 같은 전반적인 영역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한편 우리가 경험하는 일체의 대상은 모두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경험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대상들에 원래 의미가 내재해 있는 것처럼 경험하기 쉽다. 그런데 이 점은 우리 자신에게도 통용되는 것이다. 가령 사랑이라는 의미가 발생하면, 타인은 나의 연인이 되고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사랑받을 만한 본성이 나에게 미리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나에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랑받을 만한 본성’ 혹은 ‘사랑할 수 있는 본성’등은 모두 사랑이라는 의미가 발생한 후 생기는 환상일 뿐이다. 따라서 의미 창조 혹은 의미 부여 행위가 먼저라고 할 수 있고, 주체 혹은 대상의 성격은 이로부터 구성되는 사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랑
사랑은 운명과 부딪친다. 사랑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불행한 일상성에 둘러싸여 있다. 사랑은 특히 소유관계를 배제함으로써만 성립된다. 소유관계야말로 자기와 타자의 구별과 대립이 첨예화하는 마당이며, 사랑마저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소유라는 운명에 거듭해서 부딪치는 것에 대해 헤겔은 처음부터 고심하고 있었다
헤겔도 초기 저작에서 사랑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립을 배제하며, 차이가 있는 분열태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성상 감성과 이성으로 복합된 존재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이성적인 감성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헤겔을 보았다. 즉 사랑은 타자 내에서의 자기발견 또는 자기 망각을 뜻한다. 인륜적 가치를 지닌 사랑이라는 존재를 통해 타자와 나의 일체성을 깨닫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다. 헤겔은 사랑이 그 자신의 통일성에 대한 정신의 감정이며, 개인은 독립적 인격이 아니라 그 성원으로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개인이 자신의 독립적 존재를 포기하고 타자와 합일을 이루는 과정은 두 명의 ‘내’가 하나의 ‘우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타인에 대해 헌신하고 기존의 독립성을 상실하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찾고, 표현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다. 결국, 독립적이지만 사랑이 없는 존재는 결함 있고 불완전하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타자와의 차이의 극복, 개별 인격의 상호 포기를 가져오지만 재통일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사랑을 만들어 간다. 즉 헤겔은 사랑을 통해 인격적 고립으로부터 자유를 달성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기를 상실할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모습에서 괴물같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절망적이고 슬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2. 결혼
이것은 동시에 칸트적인 파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 즉 개인의 존립을 절대화하여 사회적 · 공동적 관계를 인간의 본질에 있어 외적 · 파생적 관계로 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인륜적 · 공동적 관계의 현실적 형태가 직접적으로 형성된 관계로서 결혼을 파악하는 시도이다. 이와 같이 파악된 결혼에서는 개인이 서로 헌신함으로써 일심동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하여 상대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구조가 되는 한에서 결혼은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로 된다.
헤겔의 사랑과 결혼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자유로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족을 구성한다. 마침내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김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가족이 완성된다. 이렇듯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헤겔의 사유는 나만의 사랑이 아닌 상대방의 사랑도 고려한다.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한다.”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타자도 내가 사랑한다는 것, 나와 똑같이 내 마음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타자의 자유문제를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자연스레 헤겔이 두 사람의 주관적인 내면, 사랑과 자유에 대한 두려움도 간파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실체화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단순히 인류의 종, 생명의 유지 및 보존을 위한 성적 관계 이상으로 헤겔은 결혼을 생각했다. 칸트가 결혼을 단순히 시민사회의 단순한 계약관계로서만 파악한 것을 뛰어넘어 헤겔은 사랑의 가치를 확인, 인식하며 객관적,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하나의 실체적인 의식이라고 규정했다. 즉 헤겔에게 있어서 결혼은 단순히 의례의식을 넘어 매우 중대한 사회적 체계인 것이다.
3. 가족
가족은 자연적인 공동체다. 가족의 구성원들은 신뢰와 자연적인 복종에 의해 결속되어있다. 가족은 정신의 직접적 실체성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상의 통일을 기초로 성립한다. 여기에 요구되는 마음가짐은 가족이라는 완전무결한 본질의 일체성 속에 스스로의 개성이 스며들어 있음을 자각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서가 아닌 그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데 있다.
타자였던 남녀가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며, 실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둘의 주관적인 사랑이 우리라는 객관적 사랑으로 변화하는 하나의 선포로서 결혼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이라는 통일체 안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고 일원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을 느낄 수 있다. 부부 사이, 가족 내에서는 공동소유가 가능하며 남녀는 서로 속에서 보편성을 본다. 가족은 자연적인 인륜적 공동체로서, ‘정신’이 직접적으로 실체로서 존재하는 모습이다. 부부가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기초한다면 그것은 주관적, 우연적,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적 결합으로 이뤄진 가족 관계를 통해 법률적으로 계약 관계를 맺고, 생활 전체를 공유하며 나아가 재산을 공동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시민사회의 계약관계로서 가족을 살펴보면 서로 합의된 이용 관계, 뿔뿔이 흩어진 개인을 묶어 주는 하나의 체제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헤겔은 가족이 공동 관계의 증표이며 국가 공동체에 버금가는 공동관계의 마당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시민은 조금 더 의식 있는 공동체로서 국가 공동체와 연계된다.
4. 자녀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사랑의 감정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객관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통해 비로소 이런 객관성을 갖게 되며 또한 바로 이들 자녀를 통해 결합의 전체를 목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통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자녀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하게 된다.
헤겔은 부부와 자녀가 똘똘 뭉친 하나의 가족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헤겔에 따르면 아이는 현실적 절대자로서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다. 헤겔이 지향하는 객관적인 사랑이란 것이 결국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는 형식을 띠게 되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객관적 사랑으로서 자녀를 낳는 행위로 드러난다. 즉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된 결과물이 바로 자녀이다. 자녀를 바라보며 부부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을 때를 기억하며 그때의 사랑을 직감한다. 인륜적인 형태로서의 가족의 원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단지 직접 느껴서 아는 것만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자기 의식적이어야 한다. 자녀 역시 각자의 권리라는 점을 언급하며 자녀와 부모 관계를 검토한다. 자녀는 가족의 공동재산에 의해 양육되고 교육될 권리를 갖는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녀의 중요성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물론 자식을 낳은 뒤 두 사람이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그저 과거의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식은 사랑의 객관적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억지로 둘을 결합하게 하는 하나의 족쇄나 제어 장치로 변모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5. 더 생각할 문제
– 헤겔은 거듭 결혼, 자녀의 출생을 강조하며 객관적인 실체적 통일을 확인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언제나 행복한 결말만을 낳지는 않는다. 자유의지를 가진 내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타인이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오히려 주관적 감정에 푹 빠져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개인은 사랑의 영원함을 쉽게 착각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오히려 이런 개인의 특성과 사랑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더욱 이런 제도적 결합에 집중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을 사회적, 국가적 제도의 도움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21세기는 다양한 부부의 형태가 존재한다. 물론 헤겔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며 문헌을 읽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성애 부부, 편부모, DINK족 등 새롭게 생겨난 가족의 형태가 많다. 이는 헤겔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남편, 아내, 아이 정반합의 구조가 아니다. 헤겔이 주목한 사랑, 결혼, 가족의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한다면 과연 이런 결합을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하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