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비극의 탄생
프리드리히 니체 / 아카넷 / 2015.4
–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쌓아올린, 니체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어 그리스 비극의 탄생 및 완성을 ‘아폴론적’ ·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두 원리로 해명하고, 이어 ‘소크라테스적’ · ‘주지주의’에 의거하는 유리피데스에게서 이미 그 몰락을 보았으며,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 재건을 기대하고 확인한다.
‘비극의 탄생’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니체가 불과 28세에 쓴 처녀작으로서 니체의 청년기 철학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탄생(1~11장)과 죽음(11~16장), 재생(17장 이하)을 다루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그리스 비극은 서로 대립하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화해하면서 탄생하게 되었고, 아폴론적인 것이 소크라테스적인 논리적 지성주의로,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일상적인 거친 감정의 표출로 전락하면서 비극은 죽음을 맞게 되었으며 바그너의 음악을 통해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책은 그리스 비극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기원과 그것이 몰락하게 된 계기에 대한 고전문헌학적 탐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책은 당시의 고전문헌학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철학사에서 갖는 의미 또한 더욱 컸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 서양 형이상학과 거기에 입각한 서양 역사는 논리적 지성에 입각한 학문을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로 내세우면서 비극적인 음악과 신화를 비하해 왔는데, 이 책은 그러한 흐름과 벌이는 대결이라 할 수 있다. 니체의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아도르노와 하이데거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서양 형이상학 및 서양 역사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음악과 비극이란 무엇이고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 철학적 문제, 세계의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문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들까지 다루고 있다. 이러한 다차원적 성격에 힘입어 이 책은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비극론과 예술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 되었고, 이 책에서 니체가 전개하는 ‘디오니소스’에 대한 사상은 예이츠(W. B. Yeats), 말라르메(S. Mallarm), 릴케(R. M. Rilke), 토마스 만(Thomas Mann) 같은 예술가들에게도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한편 이 책은 니체 자신의 사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후일 그가 전개하는 영원회귀 사상과 힘에의 의지 사상, 관점주의 철학의 단초를 담아내고 있다.
○ 목차
역자 서문
자기비판의 시도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역자 해제
찾아보기
○ ‘비극의 탄생’ 개론
‘비극의 탄생'(독: 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은 니체가 1872년에 출판한 책으로 바그너에게 헌정한 저서이다.
니체는 고대 문헌학자로서의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야말로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알았다. 이 책은 그리스 해석을 전개하면서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친구 바그너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고 한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개체적 생은 죽음과 파괴를 면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려는 자에게는 생은 고뇌와 비극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예감한 그리스인들은 광명과 예술의 신인 아폴론에 의해 상징되는 몽환적(夢幻的)인 미(美)의 세계를 구상하고, 이에 의해 생의 암흑을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적인 위안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함으로써 모든 것을 새로이 창조하는 자연의 근원적인 생산력을 상징하는 풍요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주재하는 운명적 필연의 흐름에 개아(個我)의 생을 몰락시켜 가는 비극적인 도취의 체험이야말로 보다 근원적인 생의 체험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 몽환의 이데아계와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충동계(衝動界)의 긴장된 일체관계(一體關係)에 있어서 생을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써, 지적 합리성에 의거하여 형태를 갖추어 보려고 하는 천박한 인생 파악보다 훨씬 심원한 예지의 결정인 것이다. 독창적인 그리스 해석을 전개한 이 책은 실증적 과학성을 중시하는 당시의 문헌학계로부터는 완전히 무시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비극’을 인내하여 독창적인 사상가로 탄생한다.
이듬해 출판한 ‘반시대적 고찰’은 이러한 예외자의 입장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독일문화의 승리로 착각한 19세기 말 독일 사상계의 속물성을 날카롭게 비판한 경세(警世)의 서이다.
○ 책 속으로
디오니소스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다. 마이나데스는 ‘광란하는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표범 등 짐승의 가죽을 걸친 그녀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에는 뱀이나 포도송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표지인 지팡이를 든 채 노래하고 춤추면서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디오니소스 신에 의해서 접신이 되었을 때 이 여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괴력을 발휘하여 나무를 뿌리채 뽑는가 하면, 야수를 갈갈이 찢어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이 여자들을 거느리고 리디아, 프리기아, 그밖의 동방 여러나라에서 자신을 포교했다.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의 본고장인 트라키아나 프리기아에서 디오니소스 제의가 있을 때 열광적으로 난무하던 여신도들의 신화적 반영이 아닌가 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제의가 행해지는 동안 자신 속에서 신을 느끼면서 일상의 습관이나 금기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맛보았다. ― <비극의 탄생>
○ 출판사 서평
.정확하고 전문성 있는 번역에 친절한 해제와 주석까지 실어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비극의 탄생’이 여덟 차례나 번역되었다. 이위범 번역본(양문사 1960), 김영철 번역본(휘문출판사 니체전집 1권, 현대세계사상교양대전집 16권 1969), 이일철 번역본(정음사 1976, 운암사 1983), 김병옥 번역본(대양서적 세계대사상전집 10권 1978, 범조사 1980), 박준택 번역본(박영사 1976), 곽복록 번역본(동서문화사 1978, 범우사 1984, 학원출판공사 1993), 김대경 번역본(청하 1982), 성동호 번역본(홍신문화사 1989), 이진우 번역본(책세상, 2005)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박준택 번역본은 박영사 문고판으로 출간되어 1970년대에 널리 읽혔으나 일본어 번역의 중역이면서도 일본어 번역본이 범하지 않은 오역이 많은 편이었다. 한편 김대경 번역본은 1982년에 출간된 이래 1997년까지 16쇄가 나왔을 정도로 1980년대와 90년대에 가장 많이 읽힌 번역본이다. 이 번역본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곳에서 오역을 범하고 있으며, 원문의 몇 줄씩을 빠뜨리기도 했다. 반면에 근래에 출간된 이진우 번역본은 김대경 번역본에 있는 오역을 상당 부분 바로잡았으며 번역을 빠뜨린 부분도 없다. 하지만 이 번역본은 여러 곳에서 오역을 범하고 있고 부자연스러운 표현 때문에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한편 곽복록(독문학) 번역본, 이일철(영문학) 번역본 등은 철학 전문 연구자의 번역이 아니라 전문성이 다소 부족하다. 이들 번역의 많은 곳에서 오역과 부자연스러운 번역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 아카넷에서 펴낸 ‘비극의 탄생'(대우고전총서 021) 번역은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가 맡았다. 박찬국 교수는 국내 니체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로서, 이번 번역에서는 기존 번역본들의 오류들을 바로잡는 등 번역의 전문성과 정확성을 꾀하였다. 또한 상세한 주석과 해제, 색인까지 덧붙여 연구자들을 비롯한 독자들이 좀 더 쉽게 니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근래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니체 철학 연구가 이 번역본의 출간으로 새로운 계기를 또 한 번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저자소개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독일 라이프치히 근교의 뢰켄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는 루터 교회의 목사였다.
슐포르타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바그너의 음악과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의 글에 심취했다. 그러나 뒷날엔 바그너의 음악을 비롯해 낭만주의를 맹비난한다.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녔으며, 24세에 바젤 대학 교수가 되었다.
1872년에 최초의 저서 『비극의 탄생』 출간했다.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선과 악을 넘어서』(1886), 『적그리스도』(1888) 등을 발표했다.
1889년에 신경쇠약을 겪은 뒤로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 역자 :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서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고, 2007년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하이데거와 나치즘』, 『해체와 창조의 철학자―니체』, 『하이데거와 윤리학』, 『들길의 사상, 하이데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실존철학과 형이상학의 위기』, 『니체와 니힐리즘』, 『아침놀』 등이 있다.
○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이해
*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Dionys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포도주와 풍요, 포도나무, 광기, 다산, 황홀경, 연극의 신이며, 죽음과 재생의 신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고 아리아드네의 남편이다. 로마 신화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리베르라는 풍요의 신과 동일시 되기도 하였으며,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프리기아 신화의 사바지오스와 동일시 되기도 하였다.
디오니소스의 초기 숭배 당시 모습은 수염을 기르고 로브를 입은 성인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수염이 없고, 감각적이며, 발가벗고(혹은 반쯤 벌거벗은), 양성적인 모습의 젊은이로 묘사된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는 종종 그를 “여자같은” 혹은 “여성스러운 남자”로 묘사한다.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그의 중심적인 숭배 이미지들은 마치 유명하고 문명화된 국경 너머의 어딘가에서 온 것처럼 그의 의기양양하고 무질서한 도착과 귀환을 보여준다. 그의 행렬(사상)은 거친 여성 추종자들(마이나스)과 발기상태의 턱수염을 기른 사티로스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원 중 일부는 티르소스로 무장하고 있으며 춤과 혹은 음악을 연주한다. 디오니소스는 전통적인 사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호자로 도시 종교로 대표되며, 따라서 그는 인간의 이성을 벗어나고 예측 불가능한 신의 행동에 기인할 수 있는 혼란스럽고 위험하고 예상치 못한 모든 것을 상징한다.
상징 동물은 표범, 사자, 호랑이, 염소, 황소, 여우, 뱀, 돌고래, 노새 등이며, 상징 식물은 포도, 사과, 무화과, 딸기, 아이비 등이다. 끝에 솔방울이 달려있고, 담쟁이 덩쿨로 둘러싼 티르소스라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다른 한 손에는 술잔, 풍요의 뿔을 쥐고 있기도 한다.
– 계보와 유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14편 325)에 따르면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헤시오도스 역시 신통기 940-942에서 세멜레를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로 전하고 있다. 이름의 어원은 디오스 (Διός, 제우스의 소유격) + 뉘소스 (νυσος – 학자에 따라 서는 σνυσος를 뒷뿌리로 잡기도 한다). 그러나 뉘소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확실치가 않다.
디오니소스의 유래 장소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은 없다. 미케네 문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테베에서 숭배된 신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는 에게 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새로운 계절의 활력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숭배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8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 신화가 틀이 잡히면서 널리 알려지고, 디오니소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신화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 주로 에우뤼피데스의 비극 박카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 신화
.탄생 및 부활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의 아들로 나온다. 헤라는 제우스의 내연녀인 세멜레를 무척 미워하였다. 헤라는 세멜레에게 복수하기 위해 유모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접근한다. 헤라는 세멜레로 하여금 자신의 애인이 정말 제우스가 맞는지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헤라의 속임수에 넘어간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본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했고, 스틱스 강에 맹세한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제우스가 신의 모습을 드러내자 세멜레는 공포에 떨며 그 광채에 타 죽어버린다. 세멜레는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제우스는 타 죽어버린 세멜레의 자궁에서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꿰매 넣고 기른다. 달이 차고 허벅지에서 아이가 태어나자 제우스는 아이의 이름을 ‘디오니소스’라 짓는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가 따르는 크레타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지하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성장 및 헤라의 분노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갓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헤르메스에게 맡긴 뒤, 뉘사 산의 님프들에게 양육을 부탁했다고 한다. 제우스는 님프들에게 디오니소스를 여자처럼 키우라고 부탁하였다.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정성껏 돌봐준 뉘사 산의 님프들을 휘아데스 성단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헤르메스(혹은 제우스)가 디오니소스에게 여자 아이의 옷을 입히고 세멜레의 언니인 이노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제우스는 이노에게 양육을 부탁하며 헤라의 눈을 피하고 디오니소스를 소녀처럼 키우라고 말한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말대로 이노의 집에서 여장을 하고 소녀처럼 길러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헤라가 이노의 남편인 아타마스에게 광기를 불어 넣는다. 아타마스는 평소에 사냥을 즐겼는데, 집에 큰 사슴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화살을 쏴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그가 죽인 것은 아들 레아르코스였다. 광기에 사로잡혀 제 아들을 사슴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광기에 미쳐버린 아타마스는 레아르코스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는 아내인 이노와 아들 멜리케르테스마저 죽이려고 달려 들었다. 이노는 아타마스로부터 도망쳐 멜리케르테스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어버린다.
일설에 의하면 제우스는 아들 디오니소스를 키워준 보답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 이노를 레우코테아 여신으로, 멜리케르테스를 팔라이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서는 이노도 광기에 미쳐버려 끓는 물이 든 냄비에 멜리케르테스를 넣고 죽인 뒤, 그 시신을 품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한편 디오니소스는 새끼 염소로 변신하여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헤르메스에 의해 구출 되었다는 설도 있고, 자신도 광기에 미쳐 방황하다 여신 레아에 의해 광기가 풀렸다는 설도 있다.
– 디오니소스에 얽힌 신화
.아리아드네 – 아내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사라진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하였는데 이때 낙소스에 잠시 들른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슬퍼하는 아리아드네를 위로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결혼하였다. 헤시오도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승에서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난 후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발견하여 결혼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몇몇 전승에서는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에게 나타나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두고 떠나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에 대해 싫증이 나서 임신한 그녀를 섬에 버리고 갔다고 한다.
.오리온과 오이노피온
오리온은 키오스 섬의 왕 오이노피온의 딸 메로페와 결혼하려 하지만 왕이 결혼을 승낙 하지 않자 강제로 메로페를 차지하려 한다. 이에 오이노피온은 디오니소스의 도움으로 오리온을 술을 먹여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눈을 멀게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오이노피온은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폴림노스
올림포스의 신이 된 디오니소스는 죽은 어머니(혹은 아내 아리아드네)를 되살리고 싶어했다. 디오니소스는 하이데스를 찾기 위해 아르고스 레그네 부근의 알키오니아 호수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폴림노스라는 양치기 노인을 만났다. 폴림노스는 디오니소스가 지하세계 입구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때 폴림노스는 디오니소스에게 길을 알려준 대신 자신과 성관계를 나눌 것을 요구하였다. 휘기누스의 천문학에 따르면 폴림노스가 디오니소스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폴림노스에게 저승에서 어머니를 구해오는데 성공한다면 소원을 꼭 이루어 주겠다고 말하였다. 이후 디오니소스는 지하세계에서 죽은 어머니를 구해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가 돌아왔을 때 폴림노스는 죽어 있었다. 폴림노스의 죽음을 슬퍼한 디오니소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화과나무의 가지를 남근 모양으로 깎아 그의 무덤에 앉은 채 성행위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미다스 – 소원과 황금의 손
프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의 스승이면서 양부인 실레노스를 잘 보살펴준 댓가로 디오니소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는다. 디오니소스가 미다스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미다스는 자신의 손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디오니소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요청을 승낙했고 미다스는 그 결과에 너무나 만족해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미다스가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음식은 황금으로 변해버렸고, 자신의 부하와 딸 마저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가서 자신의 소원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팍톨루스 강에 몸을 씻으면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였고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의 말대로 팍톨루스 강에 가서 몸을 씻자 황금으로 변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 후 미다스는 부와 영화를 싫어하였고 시골에 살면서 들의 신인 판의 숭배자가 되었다.
.판과 아폴론의 이야기 – 음악대결의 .심판자 그레우스 (오르페우스교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디오니소스).
– 디오니소스교
고대 그리스에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종교가 있었다. 오르페우스교와 깊은 관련을 가진 이것은 주로 부녀자들이 살아있는 산짐승이나 가축, 혹은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일종의 광란에 빠진 상태에서 이 제물들을 산채로 뜯어먹고 그 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리스의 비이성적인면을 보여주는 디오니소스 교는 현대 와서 고대 그리스의 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 아폴론
아폴론(그리스어: Απόλλω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과 예언 및 광명·의술·궁술·음악·시를 주관하는 신이다. 로마 신화의 아폴로(라틴어: Apollo)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와는 남매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월계수와 리라, 활과 화살, 백조, 돌고래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훤칠하고 준수한 미남으로 묘사되며, 그래서 여성 및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헤르메스가 선물로 준 리라를 잘 연주하고 활도 잘 쏠 줄 알았다.
– 신화
.탄생
아폴론이 아직 태어나기 이전에 레토는, 자신이 임신한 쌍둥이들이, 아버지인 제우스 다음가는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헤라는 큰 뱀 피톤에게 레토를 끊임없이 쫓아다니면서, 햇빛이 닿는 곳 어디에서도 그녀의 해산을 어떻게든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출산이 임박하자, 레토는 곤경에 처했다. 헤라의 저주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어느 곳도 레토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토는 해산할 장소를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오르티기아 섬에 당도하였다. 레토가 발을 디디자마자, 포세이돈이 섬 위로 파도를 솟구치게 하여, 햇빛을 막았다. 헤라의 출산 금지령에 어긋나지 않자, 레토는 아르테미스를 낳을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를 낳은 레토는 다시 이웃의 델로스 섬으로 가서, 아흐레 동안 진통을 겪으며, 남은 아이를 낳으려고 애썼다. 그러자 헤라는 분만의 여신 에일레이티아를 붙잡아두면서, 해산을 방해했다. 이에 보다 못한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에일리이티아에게, 황금 목걸이를 뇌물로 건네주어 매수하였다. 뇌물을 건네받은 에일리이티아는 이리스와 함께 비둘기로 변신해, 델로스로 날아가 레토의 해산을 도왔다. 그 덕분에 레토는 무사히 해산하였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아폴론이다.
.유년기
아폴론이 태어난 지 나흘이 지나자, 제우스는 그에게 황금 왕관과 현악기 리라, 백조가 끄는 마차를 주며, 델포이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곳에서 아폴론은 헤라의 명령으로 어머니 레토가 임신한 동안, 줄곧 괴롭혔던 큰 뱀 피톤을 화살을 쏘아 퇴치했다. 이후 아폴론은 피톤이 지키던 가이아의 신전을 차지하고, 피티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고는 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가이아의 뜻이 아닌, 제우스의 뜻을 알리는 아폴론의 신탁에 의하여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델포이에 참배하고 아폴론의 신탁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피티아는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중얼거리면, 사제들이 피티아의 신성한 말을 운문으로 옮겼다고 한다.
델포이 신탁은 오이디푸스의 끔찍한 운명을 예언했으며, 소크라테스를 지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선언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 때문에 신탁이 애매모호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신탁을 잘못 해석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듣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델포이의 아폴로신전에서는 ‘너 자신을 알라’, ‘그대의 정신을 억제하라’는 등의 유명한 금언들이 새겨져 있다.
.니오베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겸손함이 없었던,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레토는 훌륭한 자식을 2명밖에 낳지 못했지만, 자신은 훌륭한 자식을 14명이나 낳았다고 뽐내고 다녔다. 이에 크게 진노한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오만방자한 니오베에게 벌을 내리라고 말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각각 그녀의 아들 7명과 딸 7명을 모두 활로 쏘아 죽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남편 암피온은 자살하였고, 니오베는 계속 한 곳에서 흐느끼다 바위로 변해 버렸다.
.아스클레피오스
아폴론은 코로니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코로니스가 이스키스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결국 결혼하였다는 까마귀의 말만 믿고, 진노하여 코로니스를 죽여 버렸다. 뒤늦게 이를 후회한 아폴론은 까마귀에게 화풀이하여, 몸 색을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어 버린 다음, 재빨리 코로니스의 몸 속에서 자기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를 꺼내어 구했다. 그리고 켄타우로스의 현자인 케이론에게 맡겨 교육시키게 하였다.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피오스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죽은 사람까지 살려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죽음의 신 하데스는 우주 질서가 엉망이 되어버리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제우스에게 찾아가 하소연했다. 하데스의 뜻을 받아들인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던져 죽였다. 그 후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이 되었으며, 고대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하루를 보내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신앙을 가졌다.
.다프네
아폴론은 에로스가 쏜 사랑의 화살을 맞고 강의 신 페네오스의 딸인 다프네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하여 다프네에게 구혼했지만 다프네는 에로스가 쏜 증오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아폴론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달아났다. 아무리 달래봐도 소용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아폴론은 숲을 헤치며 다프네를 끝까지 뒤쫓아가 막 안으려할 때, 다프네가 더이상 도망칠 길이 없자 아버지 또는 가이아에게 자기를 구해 달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해서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하여 아폴론으로부터 구해지게 되었다.
.카산드라
아폴론은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의 딸인 카산드라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를 유혹하려고 예언(豫言)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아폴론이 자기를 끌어안자 그를 밀쳐냈고, 아폴론은 크게 진노하여 그녀의 입 안에 침을 뱉었다. 그래서 카산드라는 늘 미래를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아군에게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어보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트로이군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였고 때문에 그리스군이 들어가 숨은 목마로 인해 전쟁에서 패했다.
.히아킨토스
아폴론은 히아킨토스라는 소년을 애지중지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이 둘은 원반 던지기 놀이를 했다. 아폴론이 원반을 던지자 질투에 찬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그것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다. 자기도 빨리 던져보고 싶어서 원반을 받으려고 달려가던 히아킨토스는 땅에 떨어진 다음 다시 튀어오른 원반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죽어 버렸다. 그때 흘린 피에서 그의 이름을 딴 꽃인 히아신스가 피어났다.
○ 비극의 탄생 : 나는 ‘디오니소스’일까 ‘아폴로’일까

.이성 중심의 서구문화 비판한 니체는 원초적 감정 강조한 그리스 비극에서 디오니소스적 예술 원형을 찾았다.
.이성적 ‘아폴로’와 감정적 ‘디오니소스’, 두 성격 조화 이뤄야 예술이 발전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을 남긴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죽었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삼고 있는 서유럽 문명이 한계에 이르러 더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서구(西歐) 문명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하며,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나누어 설명한.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빛의 신으로 음악·시·예언 등을 도맡았고,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니체는 기독교 중심의 도덕 법칙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내며,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원초적인 예술을 두고 ‘디오니소스적’이라고 표현한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을 ‘아폴로적’이라고 하며 완벽하고 이성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서구의 문화적 전통이 너무 ‘아폴로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지나치게 이성(理性) 중심적이고 개념 위주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이런 전통이 영향을 끼쳐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감정의 절제를 요구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전통에 반대하며, 서구의 또 다른 전통을 찾아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에서 시작되는 ‘디오니소스적’인 전통이다.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예를 ‘그리스 비극’에서 찾고 있다. 그리스 비극이란 기원전 5세기쯤에 그리스의 야외극장에서 펼쳐진 연극을 가리킨다. 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등장하며, 사회적 사명에 따라 영웅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연극이었다. 여기에선 합창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줄거리를 암시하고, 관객의 생각을 대변하곤 했다.
비극적 분위기의 음악과 신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관객들은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지는 비극의 소리에 반응해 연극과 하나가 되어 갔다.
우리가 어떤 그림이나 사람을 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폴로적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위대한 영웅이 절망과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포기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이겨내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2005년에 세상을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게 지내시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아무런 어려움과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특별히 ‘교황’이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더 많은 내적·외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주 담담하고 평안하게 삶을 마감했다.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그의 이러한 태도는 세상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비해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나 삶은 감정의 절제 없이 뿜어내는 신명나는 춤과 같다.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이와 같은 음악의 속성을 악용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인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를 좋아했다고 한다. 바그너의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독일 민족이 우월하다는 감성을 담았다. 니체의 구분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적 특성을 지닌 셈이다. 바그너의 음악에 깊이 빠진 히틀러는 전쟁에 그 음악을 이용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본능적인 충동을 불러일으켜 전쟁에 거리낌없이 나서도록 독려했던 것이다.
나는 아폴로적인가, 디오니소스적인가?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이는 너무 이성적이어서 삶이 건조하고 메말라 보이며, 어떤 이는 너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어서 절제가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니체는 예술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두 가지 특성의 장점이 서로 어우러진다면 삶도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 안진훈(MSC브레인컨설팅 대표)
○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비교
* 아폴론 : 시, 음악, 태양의 신. 님프들에 둘러싸인 아폴론,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예술의 신 아폴론, 현악기가 그의 상징 악기, 인간 세계에서 악기연주를 잘한다던 마르시아스를 응징하러 온 아폴론
‘아폴로니안(Apollonian)’이란 말은 요즘에는 ‘합리적인’, ‘질서가 있는’, ‘제어된’, ‘조화가 이루어진’이라는 의미이지만, 과거에는 단순히 ‘아폴로와 닮은’, ‘혹은 ‘아폴로에 속한’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폴로는 그리스의 태양 신이고, 예술과 시, 음악의 후원자였다. 이 단어는 19세기 말 이전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었다.
19세기 말에 독일의 언어학자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 1872)속에서 고전적인 그리스 예술의 저 유명한 ‘아폴로적(Apollonian)’ 경향과 ‘디오니소스적(Dionysian)’ 경향 사이의 구분을 표현하면서 일반화되었다.
니체에 의하면, 우리들이 그리스 최고의 작품들 속에서 감탄해 온 자제와 균형과 조화와 개성의 아폴로적인 특성은 작품의 절반만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아폴로적 경향은 난폭하고, 억제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자연과 제휴한 힘, 만취, 익명성, 무절제의 디오니소스적인 경향에 저항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아폴로는 정신성의 원리와 보다 높은 지혜(그는 태양 신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예언의 신, 신탁의 후원자이다)를 체현하고 있다는 사상에 의거하고 있다. 현명한 존재인 아폴로는 또한 철학을 일으키고, 그리스의 법률 제정을 감독했다.
그러나 아폴로는 결코 점잖거나 행동이 둔한 것은 아니었다. 아폴로는 화가 나면 공격적이 되고,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용감한 신이었다. 요람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폴로는 악명 높은 거대한 뱀 파이돈(python)을 죽였으며, 나중에 자신의 어머니인 에토(Leto)를 감히 모욕한 어떤 멍청이를 날렵하게 처치해 버리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편, 아폴로는 미녀와 미소년들을 쫓아 다니는데는 아버지 제우스의 맞수였다. 물론 아버지한테는 번번이 당하곤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찰은 아폴로의 예술, 특히 음악에 대한 후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연인 코로니스(Coronis)와의 사이에서 아폴로는 인간의 아들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를 낳았는데, 그는 의술에 뛰어나서 그리스 인들은 그를 의사의 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스클레피우스가 죽은 사람까지 다시 살려내는 뛰어난 의술을 발휘하게 되자 시기심 많고 텃세 의식이 강한 제우스는 그에게 벼락을 떨어뜨려 죽게 했다.
그러자 아폴로는 격노했다. 그러나 제우스를 상대로 해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폴로는 제우스에게 벼락을 빌려 주었던 키클롭스를 죽여 버렸다. 제우스는 진노해서 그 보복으로 아폴로를 데쌀리로 추방을 하게 되고, 그는 그 나라에서 아드메수스(Admetus)왕의 양치기로 일하도록 강요당한다(이렇게 해서 아폴로는 양치기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 일은 태양의 신을 죽도록 따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폴로는 머큐리(mercury) 신과 흥정을 해서, 황금으로 된 양치기의 막대기(그 유명한 카두케우스<Caduceus>)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수금을 교환하고, 머큐리는 그 위에 피리까지 그에게 넘겨주었다.
아폴로는 재빨리 그 두 가지 악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고 그 악기의 가락에 맞춰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내어 후대에 면면히 이어지는 시(詩)적인 양치기들의 시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폴로는 또 뮤즈 신들의 특별한 후원자가 되었다. 물론 시적인 영감의 의무를 자신의 의붓형제이며 라이벌인 디오니소스(Dionysus)와 분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말이다.
*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유사점과 차이점
둘 다 예술을 관장한다. 그러나 아폴론은 질서, 이성, 조화의 미를 추구하는 반면, 디오니오스는 부조화, 파격, 불합리성, 본능, 방만, 익명성, 무절제, 괴기스러운 미를 추구한다. 감각적 쾌락과 잠재적 야만성도 포함한다. 예술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점을 다 필요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폴론은 다소간 위압적인 신이었고 디오니소스는 민중의 신이었다.
아폴로 신은 해마다 델피에 있는 자신의 신전을 떠나 보레아스 (Boreas = North Wind)가 지배하는 최북단의 척박한 고장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는 신비의 부족(Hyperborean)과 더불어 지낸다고 전해진다.
– 아폴로 신이 신전을 비우는 이 3개월 동안 델피는 디오니소스의 차지가 된다
– 이는 이성의 통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갖가지 탈도덕적 에너지로 가득찬 무의식이 번창할 수 있음을 암시
– 이 두 신 간의 공통점
.힘들고 괴이기하기까지 한 상황에서 탄생, 새로운 숭배자들을 끌어 모아 각자의 숭배의식을 확립시킴으로써 자신의 신성성에 대한 일반적 인정을 획득하는데 젊은 시절을 쏟아 부음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모두 황홀경(ecstasy)의 상태와 연관 : 황홀경이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압도적인 정서에 자신을 내맡겨 버리는 상태, 말 그대로 “자신의 바깥에 서 있는” 상태를 의미/아폴로의 영에 사로잡힌 여사제 퓌티아, 디오니소스의 추종자
–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둘 다 시와 노래, 춤에 영감을 불어넣으나
.명쾌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아폴로의 칠현금은 조화와 평정
.디오니소스의 탬버린은 손바닥으로 두들겨 격렬하고 황홀한 리듬을 만들어냄으로써 술의 신의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본성을 표현
* 디오니소스의 탄생
– 디오니소스는 왜 처음에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나고 두번째는 제우스릐 신체로부터 태어나는 등 두번의 출생을 겪는가?
인간인 세멜레에게 잉태되었지만 헤라의 간계로 세멜레가 잉태한 채로 죽자 제우스가 그를 허벅다리에 넣고 꿰매서 열 달을 채운 후 니사 산의 요정들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긴다. 인간에게서 받은 육체만으로는 완전하기 않기 때문에, 더구나 달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신적인 어떤 완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우스의 신체 안에서 기운을 받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신인 디오니소스.
흥분과 도취를 근원으로 하는 신앙의 주인인 그는 그 신앙의 주인공이자 설파자로서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잔인하게 말살시켰다.
그 광기와 흉포함으로 인해 디오니소스는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무서운 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랑의 성격을 표현하는? 그리고 ‘포도주’의 신이기도 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술에 의한 도취의 상태에 대한 묘사이기도 한 듯하다.
또한 창조의 일면에는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생성과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디오니소스는 예수와 공통점이 많다. 그도 예수처럼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며, 죽었다 살아났고, 그가 겪은 과거의 사건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행위로 재현되었다. 영혼의 불멸성과 재생이라는 기적과 연관이 있는 신이라는 점도 같으며, 종교의 전파가 열정적이고 급속도로 진행됐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 아폴로는 델페의 뱀 튀폰을 둑이고 아폴로가 델피의 주인이 되었다. 이런 신격화의 과정과 아폴로가 다른 올림포스의 신들과 구별되는 특성은?
뒤이어 그리스 신화에서 나타날 영웅들의 과제를 수행한 것과 같다. 괴물로 상징되는 악을 죽이고 고귀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다음에 나올 여러 영웅들에게도 공통되는 핵심이다. 퓌톤은 아폴론이 나타나기 전까지 델피의 신이었지만 아폴론이 그를 쏘아 죽이고 델피를 지배하게 되면서 한낱 괴물로 취급당하고 말았다. 다른 신들은 제우스의 결정에 따라 여기저기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과 다르게, 아폴론은 자신이 직접 이전의 신을 죽이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는다. 마치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의 토착 문명을 야만적인 것으로 몰아붙이고 자신들의 문명만 강요한 것처럼 말이다.
– 미완으로 끝나기 일쑤인 아폴로의 사랑 이야기들, 육체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가장 재능이 있는 아폴로가 어째서 거의 항상 성적으로 부당하거나 실연당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은 은밀한 감정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며, 밝은 면만 가지고서는 사랑이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성만으로는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사랑에는 불합리성과 파격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태양 아래보다 달빛 아래에서의 낭만이 더 풍부한 감성을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다.
–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비됨을 표상하는 여러 가지 것들
악기의 문화적 의미로는 악기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장치가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가치가 내포된 상징물이다. 그리스의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각각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대표하는 신인데, 아폴로는 관습적으로 현악기 연주자로 묘사되며, 디오니소스는 관악기와 연관된 장면에 자주 등장한다. 아폴로는 이성 (또는 지성) 을 대표하고 이성은 현악기로 묘사되며, 디오니소스(바쿠스)는 감성을 대표하고 관악기로 묘사된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는 아폴론의 제사에 쓰이는 리라라는 악기가 있었고, 디오니소스의 제사에 쓰이는 아울로스라는 악기가 있었는데 지금의 피리랑 비슷하게 생겼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비적인 성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는 아폴론에, 존 레논은 디오니소스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형 생활인들인 독일인과 영국인은 아폴론형 문화권 , 프랑스, 스페인, 지중해쪽 나라들은 밤늦게까지 마시고 논다고 ‘디오니소스 문화권’ 이라고도 한다.
– 아폴로의 양면성
신화 속의 아폴로는 이성과 빛, 중용을 대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많은 연애 사건에서 보듯이 억제할 수 없는 격정과 욕망에 사로잡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젊은 신이다.
그는 목동들의 신, 음악, 의술, 태양의 신이며, 고전적인 자제력과 중용을 가르치는 아름답고, 강하고, 지혜로운 청년 신으로 진리, 계몽, 조화, 정의 등을 구현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비극의 탄생'(1872)에서 그를 열광과 무질서의 신 디오니소스와 대비시킨 것이다. 그런데 아폴로에게는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특징으로 묘사한 극단성, 폭력적 성향, 열광 등의 비이성적 측면도 깃들어 있다. 자신에게 도전한 마르시아스를 산 채로 가죽을 벗긴 것이 그의 그런 특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