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고의 양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도서출판 치우 / 2012.8.13
화이트헤드가 만년에 행한 몇 차례의 강의와 강연 내용을 엮어 편찬한’ Modes of Thought’ (New York: The Free Press, 1968)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자신이 평생을 추구해 온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깊은 반성을 기록하고 있어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듯한 구절들조차 그의 체계적인 사유의 깊은 뿌리와 맞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의 다른 대표적인 저서인 『과정과 실재』 그리고 『관념의 모험』등이 철학서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손에 꼽히는 것과 달리, 이 저서는 비교적 비체계적인 언어로 자유롭게 쓰여졌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전문적인 술어나 독특한 개념들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독자들에게도 그의 유기체철학의 사상적 윤곽이나 현재적 의의에 접근할 적절한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창조적 충동
강의 1·중요성
강의 2·표현
강의 3·이해
제2부 활동
강의 4·전망
강의 5·과정의 형식
강의 6·문명화된 우주
제3부 자연과 생명
강의 7·생명 없는 자연
강의 8·살아 있는 자연
제4부 맺는말
강의 9·철학의 목적
참고문헌
찾아보기
역자후기
○ 저자소개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 ~ 1947)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 (Fellow)과 수석 강사 (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 (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 (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 (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 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 역자 : 오영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네덜란드 라이덴 (Leiden) 국립대학교 철학대학원을 졸업 (Drs. Phil.)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브리디시 카운슬 펠로우 (1983~1984),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 교수 (Visiting Fellow, 1991~1992), 일본 교토대학교 초빙 교수 (1993),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1972~1997) 등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 한국화이트헤드학회 고문, 미국 학술 전문지 Process Studies의 International Advisory Board 자문 위원 (1994~현재)이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 『문화의 전략』, 『과학과 근대세계』, 『과정과 실재-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상-』, 『열린 사고와 철학』, 『관념의 모험』, 『두 문화』,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교육의 목적』, 『화이트헤드와의 대화』, 『과학과 근대세계』가 있고 공저한 책으로는 『과학과 형이상학』, 공역한 책으로는 『열린 사고와 철학』, 『사고의 양태』가 있다. 제4회 서울철학상과 2006년 ·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 역자 : 문창옥
연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기 근대 철학과 현대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으며 화이트헤드, 베르그손, 니체, 들뢰즈 등의 생성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1999),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2002), 『화이트헤드 철학 읽기: 『과정과 실재』 주해』(2005, 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상징 활동: 그 의미와 효과』(2003), 『사고의 양태』(공역, 2012), 『종교란 무엇인가』(201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과정철학의 문맥에서 본 니체의 생성철학」(2012), 「인과관계와 경험: 흄과 화이트헤드의 경우」(2012), 「유기체철학에서 의식적 경험의 문제」(2013)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14~15
이 일련의 강의 전체에서 내가 목적하는 바는 인간의 규제된 활동에 전제되어 있는 경험의 일반적인 특성들 가운데 몇 가지를 검토해 보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체계적인 철학을 구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짤막한 연속 강의에서 그와 같이 야심적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모든 체계적인 사고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논의는 명시된 목표에 표현되어 있는 것보다 더 기본적인 관념들을 부수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에 대한 언어적인 설명은 체계화의 과정 – 그 어떤 체계화의 과정이건 간에 – 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윤색되고 질서 지어져야 한다.
모든 체계적인 사고는 현학적인 색조를 띠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가 관념이나 경험, 암시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서 그가 궁극적 관념들의 의미를 확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미가 부여된 관념들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주장은 정합성(coherence)을 지닌다고 말한다. 물론 아니라고 하는 꼼꼼한 변명과 함께 그런 것들을 제쳐놓아 버린다. 체계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갖가지 사고를 조작하고 이용하고 비판하는 데에 필요하다.
P.57~58
특정한 분자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자연의 부분이다. 그것은 수백만 년 동안 운동해 왔다. 어쩌면 그것은 멀리 떨어진 성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신체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어떤 식용 식물의 요소로서 들어올 수도 있고, 공기의 부분으로서 폐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것이 입을 통해서 들어온다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될 때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신체의 부분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 후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신체의 부분이 아닌 것이 되는가? 여기서 정확성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어떤 일상적인 규약에 의해 성립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체의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에 도달한다. 즉, 인간의 신체는 표현의 일차적인 장場이 되는, 세계의 한 영역region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분노는 신체적인 흥분을 야기하며 이런 흥분은 다시 그에 상응하는 언어 형식이나 그 밖의 어떤 격렬한 행동 양식으로 표출된다. 이렇게 표출되는 신체적 기능의 특수한 종류를 분석하는 일은 생리학의 다양한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생리학자들에게 맡겨 버릴 수 있다. 철학은 전문적인 탐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철학의 과제는 탐구할 영역을 지적해 주는 데 있다. 어떤 영역들은 수세기 동안 개척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효과적인 출발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집중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P.97~98
과학이 성장해감에 따라 인간의 정신은 그 이해의 폭에 있어 위축되고 있다. 19세기는 개미탑을 연상시키는 위대한 성취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다양한 관심거리와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민감한 식별력을 지닌 지식인들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이 시대는 비판과 타파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이해하려고 했어야 옳았다. 밖에서 바라볼 때, 이 시대가 갖고 있던 관심의 세부적인 구획setting은 그 시대의 모든 세대에 있어서 깊은 이해와 사소한 구획이 조잡하게 뒤섞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세부적인 오류들 너머에 있으면서, 그 세대에 있어 식별될 수 있는 삶의 향상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는 그런 깊이의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조건, 즉 ‘향상이란 것이 있다면’이라는 조건이 첨가되어야 한다.
19세기에, 그 후계자를 낳는 고통의 마지막 국면을 맞았던 르네상스 그 자체는 지성적 관심의 적절한 팽창을 가로막는 여러 한계를 수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명의 유일한 모태로 간주되는 그리스 학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유럽이 그리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리스적 사고는 그리스 – 히브리 – 이집트적 사고로 확장되었을 때조차도, 인간 의식의 주변으로 밀어닥치는 중요성의 다양한 양태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유한한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 출판사 서평
“당신이 첨단이라고 이미 알고 있는 과학기술은 과학계 내부에서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이는 감히 일반인으로서는 과학의 극한의 세계를 가늠하려는 시도조차 단념케 하는 웅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기계론적인 합리성의 거인이 출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원위에서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허나 과연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이 세계를 다시 잉태한 이래로 인류의 역사는 정녕 과학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직선운동을 하는 궤적을 따라 날아가다 언젠가는 과녁에 명중될 수 있는 화살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의 입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나노 단위까지 분석하고, 다시 이를 결합하여, 다시금 통합된 세상을 기계적으로 구성해 볼 수 있다하더라도, 결코 얻어지지 않는 대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관으로서 알고 있다.
과학의 근본인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미래를 예측한다”라는 가치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 전제되고 무엇이 결과되어져야 하는지부터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인류가 이룩해온 역사적 과업에서 증명될 수 있는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문명과 문화의 노정을 주시하고 있는 관찰이 개별 언어로 표현됨에 있어 야기되는 긴장관계는 어디까지나 이성에 의해 객관화 될 수 있다고 부지불식간에 믿어지고 있다. 하지만 혹시 이로 인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오류마저 우리는 객관화로 포장해 버린 것은 아닌가? 인류의 사고는 과연 올바르게 통합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하다면 과연 그 방식은 인간을 포함한 개별 사물의 역사에서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개별 사물과 표현은 과연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자연으로 가치 있는 것이며, 개별자들의 감성적 충동은 과연 어떤 노정을 거쳐 통합으로 조직되는 것인지, 과학의 거인은 해답을 주지 않고 있다.
나사가 25억달러를 투입해 만들어낸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가 얼마 전 첫 컬러 파노라마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화성의 대지는 붉게 메말라 있었다. 과학과 철학, 개체와 우주, 역사와 반역사, 그리고 개별과 통합에 탐구는 과연 이 세계를 온전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지적 성찰 역시 세대의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이며, 이미 화성의 대지처럼 고갈되어 붉게 물들어버린 것은 아닌가?
여기 20세기가 낳은 마지막 대철학자 화이트헤드가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일련의 명강의가 메말라 버린 철학의 대지에 생명의 흔적이 있었음을 다시금 우리 모두를 일깨울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