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기열전 : 사람에게 비추어 시대를 말하다
사마천 / 천지인 / 2009.01.30
사기열전은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 본기(本紀)에 기록된 제왕, 세가(世家)에 기록된 제후왕을 제외한 인물 중에 의롭거나 탁월하거나 대성한 사람들이 여기 열전에 수록되었다. 열전은 모두 70편인데 ‘사기’ 전체는 130편이므로 그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열전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활약했던 기록이므로 본기나 세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단지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각 편마다 해당 열전의 주제 및 취지를 상세히 설명했고, 이어서 감각적이고도 현대적으로 본문을 요약 번역하여 줄거리를 명확히 장악하도록 안배했고, 마지막으로 ‘고전을 넘어선 고전’ 강의를 통해 해당 열전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를 참신한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 목차

머리말 『사기』를 읽는 독자에게
도론 열전(列傳)을 어떻게 읽을까?
제1 백이열전-열전의 작성 기준과 그 의미를 제시하다
하늘은 공정하여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가?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강의
1. 「백이열전」을 열전의 첫 편으로 삼은 이유/2. 글의 흐름이 얽히고설키어 변화무쌍/3. ‘원망 있음과 원망 없음’/4. 기록해야 역사가 된다/5.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었을까?
제2 관안열전-진정한 우정을 그리워하며
지기의 혜안, 사람을 알아보는 눈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2강의
1. 「보임안서」와 함께 읽어야 제 맛이 난다/2. 현명한 군주와 능력 있는 신하의 윈-윈 게임/3. 사마천의 독서와 글발
제3 노자한비열전-춘추전국시대의 도가 및 법가 사상가를 소개한다
법가의 원류, 도가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3강의
1. 노자를 기록한 사마천의 입장/2. 『노자』에서 말하는 도와 덕/3. 장자가 전하는 메시지/4. 노자 사상을 한 꺼풀 벗기면 법가 사상이 된다
제4 사마양저열전-춘추시대 명장 사마양저, 장군의 전형을 제시하다
명장의 조건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4강의
1. 「사마양저열전」은 한 편의 단편소설/2. 사마천이 이상으로 삼은 장군의 모델/3. 사마양저는 실존 인물일까?
제5 손자오기열전-춘추전국시대 병법가 손자·오기를 기록하며, 겸하여 손빈과 방연을 곁들이다
대가의 병법에 담긴 뜻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5강의
1. 『손자병법』이란?/2. 더욱 노골적인 『손빈병법』/3. 실전에 강했던 장군 오기/4. 사마천의 군사학
제6 오자서열전-춘추시대 말기 열혈남아 오자서의 복수를 기록했다
깃털만큼 가볍거나 태산보다 무거운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6강의
1. 「오자서열전」의 인사이드 스토리/2. 삶과 죽음에 관한 사마천의 인생관
제7 중니제자열전-춘추시대 말기 공자 대학교 우수 졸업생을 기록했다
사마천을 매료시킨 두 제자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7강의
1. 공자의 제자는 몇 명일까?/2. 사마천이 좋아했던 공자의 제자는 자로와 자공/3. 공자가 제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제8 상군열전-전국시대 중반 진나라 개혁파의 선봉장 상앙을 기록했다
개혁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8강의
1. 사마천이 상군을 혹평한 이유/2. ‘법’이라는 키워드로 감상하는 「상군열전」
제9 소진열전-전국시대, 합종 전략의 리더 소진의 일생을 기록했다
수치와 모욕이 발분의 거름이 될지니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9강의
1. 「소진열전」의 후일담/2. 소설로 읽어야 할 「소진열전」
제10 장의열전-전국시대, 연횡 전략의 리더 장의의 활약상을 기록했다
전국시대 ‘설득의 기술’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0강의
1. 「장의열전」의 내용도 소설로 간주해야/2. 귀곡 선생은 누구인가?/3. 우화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
제11 저리자감무열전-전국시대, 진나라 제1세대 장군 및 책사들의 권모술수를 기록했다
난세의 외교를 주름잡은 탁월한 총기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1강의
1. 난세에 오히려 기회가 많다/2. 사마천은 특이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제12 양후열전-전국시대, 진나라 제2세대 장군 양후 위염의 공훈을 기록했다
장군의 위업도 천자의 권력 앞에서는 위태로울 뿐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2강의
1. 위염의 실각과 권력의 속성/2. 호견법(互見法), 사마천의 하이퍼텍스트(hyper text)
제13 백기왕전열전-전국시대, 진나라 제2세대 장군 백기와 제3세대 장군 왕전을 함께 기록했다
도대체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3강의
1. 사마천이 개입하여 작동시킨 인과응보/2. 진 제국의 20등급 작위 제도
제14 맹자순경열전-전국시대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 사상가를 기록했다
전국시대 유가의 이상과 좌절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4강의
1. 전국시대 학술계 성지, 직하/2. 공자로부터 맹자를 거쳐 순자까지/3. 정치적 현실과 학술적 이상에 관하여
제15 맹상군열전-전국시대 4대 귀공자 중 제나라 맹상군의 일생을 기록하였다
전국시대의 떠돌이 인재들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5강의
1. 계명구도(鷄鳴狗盜)를 비판한 왕안석/2. 5월 5일생은 부모에게 불리한가?/3. 모순되는 기록/4. 전국시대의 특징을 압축해준 「맹상군열전」
제16 평원군우경열전-전국시대 4대 귀공자 중 조나라 평원군의 일생을 기록하고 우경을 첨부하였다
결정적 순간의 담판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6강의
1. 평원군의 득실/2. 저술에 집착하는 사마천, 그 이면에 담긴 중국인의 영생 관념/3. 우경의 설득술/4. 「평원군우경열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 3개
제17 위공자열전-전국시대 4대 귀공자 중 위나라 귀공자 신릉군의 일생을 기록하였다
사마천이 가장 흠모한 신릉군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7강의
1. 신릉군은 어느 정도로 후덕했을까?/2. 문학적으로 감상하는 「위공자열전」/3. 글쓰기 연습의 좋은 참고서/4. 사마천이 신릉군과 그의 친구들을 흠모한 이유
제18 춘신군열전-속칭 전국시대 4대 귀공자 초나라 춘신군 황헐의 일생을 기록하였다
담대한 외교가의 비운과 업적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8강의
1. 춘신군은 전국사공자인가?/2. 춘신군을 평가하는 다양한 시각/3. 춘신군, 강소성, 소주, 상해, 황포강
제19 범저채택열전-전국시대 말기 진나라 객경으로 활약한 범저와 채택의 일생을 기록하였다
고난을 피해 큰물에 다다라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19강의
1. 범저일까, 범수일까?/2. 객경에 관하여
제20 악의열전-전국시대 말기 객경 장군 악의의 일생을 기록하며 더불어 악간*악승을 첨부했다
군주에게 보내는 편지
고전을 넘어선 고전 읽기-제20강의
1. 연소왕은 어떻게 인재를 모집했는가?/2. 악의의 묘소와 일반 중국인의 문화 의식/3. 진자앙이 창연히 눈물을 떨구었던 뜻은?/4. 「보연혜왕서」 VS 「출사표」
후주
○ 책 속으로
.’백이열전’을 열전의 첫 편으로 삼은 이유
‘백이열전’은 열전의 첫 편이므로 예전부터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중국인들의 저술에서 첫 편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논어’의 첫 편은 ‘학이’편이며 그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로 시작한다. “배운 것을 그때그때 실생활에 적용하여 실습하면…….”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학풍을 주장했던 중국 역사상 최초의 사립대학 총장 공자의 말씀답지 않은가? ‘맹자’의 첫 편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에서 맹자가 양혜왕에게 힐난한 “하필왈리(何必曰利, 하필 이익이십니까)”는 이익보다는 인격을 중시했던 맹자의 주장을 요약하고 있다. 또한 ‘순자’의 첫 편은 권학(勸學)편인데 후천적인 노력을 중시했던 순자의 전체 주장이 요약되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시경詩經’의 첫 편 관저(關雎)는 요조숙녀와 군자로부터 시작하는데, 온유하고도 돈후한 품성을 주장했던 ‘시경’의 전통적 취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또한 ‘문심조룡(文心雕龍)’의 첫 편 원도(原道)편은 문학의 원류부터 밝혔고, ‘노자’는 도가답게 도道에 대하여 첫 마디를 꺼냈으며, ‘장자’는 초월적인 이미지를 거대한 붕새로부터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위에서 거론한 저작들이 설령 후학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편집했다는 데는 역시 변함이 없다. 이렇듯 과거 중국인들의 저서는 첫 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마천이 열전의 첫 편으로 백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 p.41, 제1강의 「백이열전」 중에서
.노자 사상과 법가 사상의 연관성
무릇 노련한 통치자는 노자 사상과 법가 사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노자 사상을 한 꺼풀 벗기면 법가 사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의 아들 효문제는 역사상 유명한 현군이었는데 ‘겸손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능란하게 구사하였다. ‘겸손함’은 노자의 수단이고, ‘잔인함’은 법가의 수단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도가 사상을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법가 사상으로 다스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불리할 때는 어떤 수모라도 꾹 참으며 내색하지 않지만, 일단 득세하면 인정사정없이 적대 세력을 제거해버린다. 노자 사상의 신봉자였다는 효문제를 예로 들어본다.
효문제가 황제에 등극하던 해 황태자를 내정하자는 대신들의 건의가 들어왔다. 효문제는 겸손하게 사양했다. (……) 정말 이렇게 겸손할 수 있을까? 기타 제후왕들이 듣기에 자기들도 언젠가 황제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겠는가. 공신들이 듣기에도 효문제가 붕어하면 자기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겠는가. 모두들 효문제에게 잘 보이려고 몸을 낮추지 않겠는가. 여태후 일족이 제거되고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즉위한 효문제로서는 지존의 황제였지만 바닥을 기는 듯한 ‘수렴하는 겸손한 태도’로써 뒤숭숭한 정국을 안정시켰던 것이다. 노자가 권유했다시피 “받기 위해 먼저 주었던 것이다.” — pp.128~130, 제3강의 「노자한비열전」 중에서
.사마천의 군사학
‘태사공자서’에서 사마천은 자신의 조상 내력을 쭉 서술하고 있는데, (……) 사마천까지 쭉 서술된 내력을 살피면 물론 야철을 담당한 관리도 있고 저자거리를 감독한 관리도 있고 심지어 매관하여 오대부 벼슬을 한 조상도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선조들은 대부분 군대를 통솔한 장군이다. 사마천의 DNA 유전자 속에는 검술을 논하고 작전을 펼치던 장군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마천이 문관에 속하는 태사령(太史令)이나 중서령(中書令)에 근무했다 하여 유순한 지식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 사마천이 27세 전후에 황제 비서관 낭중(郎中)에 임명된 이후 35세 전후에 첫 번째 임무를 받아 정벌대에 참여한다.
(……) 이상을 총괄하여 고려한다면 사마천은 문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마천의 조상 중에 크게 성공했거나 명성을 날린 분들은 대부분 무관 및 장군들이었다. 이런 혈통의 사마천이므로 병법가와 장군들을 범상하게 대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사기’에 등장하는 병법가와 장군들, 이를테면 사마양저, 손무, 손빈, 오기, 백기, 왕전, 이목, 조사, 전단을 비롯하여 항우, 유방, 진섭, 장이, 진여, 장량, 진평, 주발, 주아부, 위표, 팽월, 경포, 한신, 이광, 위청, 곽거병 등을 기록하면서 그들만의 고유색을 부각시키고 아울러 그들의 역사적 공과도 냉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사기’ 곳곳에 등장하는 각종 전투를 생동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실력 역시 사마천의 병법 및 군사학 지식이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항우와 유방의 치열하고도 지루한 공방전을 묘사할 때는 정밀한 지도를 펼쳐놓고 조감하듯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손금 보듯 능란하게 묘사했지 않은가. 그러므로 청나라 때의 대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자고로 군대 이동 및 전투 지역을 상세하게 묘사한 역사책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능가한 것이 없을 듯하다. 사마천의 가슴 속에는 틀림없이 천하 형세도가 그려져 있는 바 후세 역사가들은 따라갈 수 없다”고 경탄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신의 전투를 기록할 때도 다양한 전략과 진출 노선을 조리 있게 정리하여 눈앞에 선하도록 묘사해내는 수완이 남다르다. — pp.194~198, 제5강의「손자오기열전」 중에서
.난세에 오히려 기회가 많다
주위 사람들은 동방삭을 비꼬았다. “사람들은 당신이 튀는 행동을 해대서 미쳤다고 하는데 아시는지? 당신은 박학다식하고 그렇게도 재주 많은 사람인데 어찌 이리 말단에서 고생하시오? 전국시대 소진과 장의는 타고난 달변으로 6개국의 재상을 거머쥐었는데 당신은 제자백가에 통달하고 학문이 당대 무쌍이라 떠들면서도 고작 차지한 자리는 말단에 끼니까지 걱정하다니 무슨 할 말이 있소이까?”
이에 동방삭은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맹꽁이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야. 시대가 달라요. 소진ㆍ장의 시절은 전국시대예요. 정신적 지주가 있던 때도 아니었고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그런 원로도 없던 때라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국력을 강성하게 해야 할 때였기에 소진·장의 같은 허접한 녀석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포부를 펼쳤어요. 그런데 지금은? 위로는 영명한 지도자 한무제가 계시고, 천하는 통일되어 상하질서가 잘 잡혀 있다구. 백성들은 그저 정해진 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시절인데 여기서 튀어봐야 튈 방도가 없는 것이에요. 소진·장의가 나랑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그놈들은 말단관리는커녕 아마도 밥 굶어 죽었을 거요. 요컨대 시대가 다르다오.”
무슨 뜻인가? 한무제 당시는 천하가 이미 통일되었고 제도 또한 나름대로 잡혀 있어서 동방삭의 재주를 가진 사람은 많았겠지만 어지간해서는 한무제의 주목을 받지 못할 뿐더러 대성하기도 무척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제후국들은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국강병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적극 영입했으므로 그만큼 기회가 많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침에는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는 승상의 위치에 오를 수도 있었다. 앞서 나왔던 ‘소진열전’의 소진, 소대는 물론이고 ‘장의열전’의 장의, 진진, 공손연, ‘저리자감무열전’의 감무와 감라 등이 모두 그러한 시대배경에서 출세했던 것이다. 사마천을 비롯한 한나라 때 지식인들이 기회의 시대 전국시대를 은근히 그리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맥락을 동방삭은 그답게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pp.410~412, 제11강의「저리자감무열전」 중에서
.저술에 집착하는 사마천, 그 이면에 담긴 중국인의 영생 관념
정자산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게 된다. “하늘의 길은 멀고, 인간의 길은 가깝다.”
하늘의 길이 멀다니? 따지자면 한이 없고 종잡을 수가 없어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간의 길이 가깝다니?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는 코앞에 닥친 문제이므로 인간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겠다는 뜻이다. 확실하고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면 중국인들은 깊이 있게 논의하지 않았다. 이런 사유방식이 바로 중국인의 전통적인 관행이었다.
한편 정자산이 귀신 문제를 언급하기 14년 전 노(魯)나라의 숙손표(叔孫豹)란 사람이 진晉나라에 들어갔다. 진晉나라 범선자(范宣子)가 물었다. “불후(不朽)란 무엇입니까?” (……) 숙손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당신 집안의 부귀영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지 인간의 영생은 아닙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인격과 덕망이 최고의 영생이요[立德], 공적을 세워 인간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영생이요[立功], 훌륭한 저서를 써서 인간들에게 정신의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 그 다음 영생입니다[立言]. 이 세 가지는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영생이라 합니다.”
(……) 중국 역대의 허다한 인물들이 처음에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성현의 책을 읽으며 수양을 했고, 이어서 정치를 했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작품을 남기며 저술에 매진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이해가 되는가? 중국인들은 숙손표가 제시한 대로 인간은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영생(永生)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입덕(立德)이니 입공(立功)이니 입언(立言)은 모두 인간 세상에서 하는 일이고 그 결과는 당대와 후대의 인간 세상의 사람들 마음속에 대를 이어가며 반복해서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부활 아니고 무엇이랴. 영원히 계속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쾴 영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영생의 활동 공간은 저기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숨 쉬는 이 인간 땅이다. — 600~601, 제16강의 「평원군우경열전」 중에서
○ 출판사 서평
1. 기획 의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책, ‘사기 열전’
‘사기 열전’은 그동안 한글 번역본이 많이 나왔지만 2000여 년 전의 고전을 한글로만 번역해서는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글을 쓰는 방식, 글이 탄생한 배경, 글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그 글이 왜 씌어졌으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해해야 사기 열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사기 열전에 오늘의 숨을 불어넣은 저자의 글은 그간 참맛을 놓쳤던 독자 여러분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금 맛보게 한다.
열(列)은 열거하다, 전(傳)은 전하다. 그러므로 ‘열전’이란 ‘열거하여 전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열거하여 누구에게 전한다는 것인가?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기회를 포착하여 대성한 사람들의 행적을 열거하여 후세에 전한다는 뜻이다. 본기(本紀)에 기록된 제왕, 세가(世家)에 기록된 제후왕을 제외한 인물 중에 의롭거나 탁월하거나 대성한 사람들이 여기 열전에 수록되었다. 열전은 모두 70편인데 ‘사기’ 전체는 130편이므로 그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열전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활약했던 기록이므로 본기나 세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흥미진진하다.
기존의 ‘사기’ 번역본과 다른 이인호 교수의 ‘사기 열전’은 각 편마다 해당 열전의 주제 및 취지를 상세히 설명했고, 이어서 감각적이고도 현대적으로 본문을 요약 번역하여 줄거리를 명확히 장악하도록 안배했고, 마지막으로 ‘고전을 넘어선 고전’ 강의를 통해 해당 열전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를 참신한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다층적 분석을 통해 ‘사기의 세계’를 흥미롭게 훑어낸 이 책 ‘사기 열전’은 상중하 3권으로 나누어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
2. 주요 내용
사마천은 왜 역사를 기록했는가. 역사를 위해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옳은 정치가 무엇이고 어떤 세상이 바람직한지 논하려고 ‘사기’를 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역사를 통해 논하려 했을까. 사변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예로 들어가며 논하면 훨씬 인상 깊고 설득력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마천 당시는 물론이고 ‘사기’에 이어 200여 년 뒤 ‘한서(漢書)’를 썼던 반고(班固)의 시대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사학’이란 개념은 없었다. 반고 당시의 서적 분류였던 ‘예문지(藝文志)’는 사마천의 ‘사기’를 ‘육예략(六藝略)’에 배속시켰다. 말하자면 ‘사기’를 ‘제자백가’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후세 역사의 관점에서 ‘사기’를 읽으면 사마천의 참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역사 기록은 그저 수단이었을 따름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우선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사기’와 사마천을 깊게 이해하는 첩경이다.
.’사기 열전’의 첫 편은 왜 ‘백이열전’인가
백이와 숙제는 주 왕조의 불의를 참지 못해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의인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단지 백이 숙제의 이야기만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백이 숙제가 비록 훌륭하나 공자의 칭찬을 받아 그 이름이 더욱 알려졌듯’ 사기 열전을 통해 과거의 훌륭한 인물을 표창하겠다는 일종의 ‘집필 방침’을 밝힌 것이다. ‘백이열전’은 사기 열전의 작성 기준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사마천이 특별히 선택한 소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방식은 작품의 첫 편에 핵심 주제를 밝히는 중국 고대의 글쓰기 전통과 닿아 있다.
.도가와 법가는 한 꺼풀 차이다
도가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고 하고, 법가는 강제적인 형벌로 유명하다. 그런 두 사상의 원류가 하나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가 노자의 이론을 해설했다고 한다면 도가와 법가 사이의 연관성은 각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노자의 ‘겸손’이 어떻게 법가의 ‘잔인함’이 되는지, ‘노자한비열전’ 강의에서 그 내막을 자세히 풀어낸다.
.유가와 법가 사이에 순자가 있다
지난 수천 년 간 중국 정치의 원형은 ‘겉은 유가, 속은 법가’였다. 즉 유가의 도덕을 내세우면서 법가의 권모술수를 구사하는 방법이 그것. 중국 정치사가 이렇게 전개되기까지는 인, 의, 예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과 성선설과 성악설의 각축 등 치열한 과정이 있었고 그 사이에 순자가 있었다. 전국시대 유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는 순자는 예의 규범성(강제성)과 도덕의 인위성을 간파한 학자였다. 공자 시대의 소박한 유학이 전국시대의 순자를 거쳐 재해석되었고, 순자의 제자였던 한비와 이사는 진나라에서 법가 통치의 기반을 제공했다.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은 팩션(faction)이다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은 각각 전국시대의 종횡가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두 편은 다른 열전에 비해 ‘허구’의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이 많고, 시기상 소진(혹은 장의)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생생히 기술하기도 한다. 사마천은 왜 이렇게까지 날조(?)했을까? 바로 ‘분발’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의 주제는 두 사람의 활약상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이 그토록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근저에는 가난했던 시절의 치욕이 있었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가난과 수치와 모욕도 얼마든지 분발의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마천의 믿음은 ‘소진열전’과 ‘장의열전’ 외에도 사기 열전 곳곳에 드러난다.
.병법의 대가, 사마천
사마천은 우리에게 역사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마(司馬)라는 성씨는 그의 조상이 무관이었음을 암시한다. ‘손자오기열전’을 비롯한 여러 장군들의 열전에 사마천의 병법 지식과 전쟁에 대한 철학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변국과의 전쟁이 많았던 한무제 시절, 대흉노 전쟁과 관련된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풍부한 병법 지식과 전쟁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치국의 정도와 평화공존을 역설했다.
.사마천이 저술에 집착한 이유
사마천이 궁형의 아픔과 슬픔을 감내하며 ‘사기’에 매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왜 그토록 ‘사기’를 완성하려고 했을까. 저자는 사마천의 선택 이면에 중국인들의 영생 관념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현실 이외에 또 다른 하늘의 세계를 믿지 않았던 중국인에게는 위대한 인격이나 공훈 혹은 저술을 남겨 후세에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 곧 영생이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선택한 영생의 길은 저술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