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르트르의 상상력
장 폴 사르트르 / 기파랑 / 2008.7.12
이 책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처녀작인 『상상력』(1936)의 국내 번역판으로 저본은 사르트르의 양녀이자 연인인 아를레트 엘카임 사르트르의 인명색인 첨부 수정판(Paris: PUF, 1989)을 사용했다. 본문 좌우 여백에 프랑스어판 쪽수를 꼼꼼하게 명기하여 독자의 편의를 돕고, 작품해설을 의도하면서 옮긴이의 관련 논문인 「우리는 왜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드는가: 사르트르의 이미지론에 대한 재고」와 단락별 요약과 한글 인명색인을 첨가하였다.

또한 주요 인명과 용어에 대한, 120개에 이르는 상세한 역주를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 목차
일러두기
옮긴이의 말
서론
Ⅰ 주요 형이상학 체계들
Ⅱ 이미지의 문제와 실증적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심리학자들의 노력
Ⅲ 고전적인 견해의 모순점들
Ⅳ 후설Husserl
결론
부록 단락별 요약 / 작품해설 / 인명색인 Ⅰ, Ⅱ

○ 저자소개 :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1980. 파리 출생으로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메를로 퐁티, 무니에, 아롱 등과 함께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슈페리어에 다녔으며, 특히 젊어서 극적인 생애를 마친 폴 니장과의 교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도 그 시절에 만났다. 전형적인 수재 코스를 밟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그는 항구 도시 루아브르에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다가 1933년 베를린으로 1년 간 유학, 후설과 하이데거를 연구하였다.
사르트르는 1938년에 『구토』를 출간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며 신진 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였고,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을 발표하였다. 『존재와 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변증법적 이성비판』 등을 발표하고 『레탕모데른』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차 대전 전후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호평받기도 했는데, 『파리떼』 『출구 없음』 『더럽혀진 손』 『악마와 신』 『알토나의 유페자들』 등은 그 사상의 근원적인 문제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때마다 작가의 사상을 현상화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64년, 『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1980년 4월 15일 작고할때까지 끊임없이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 역자 : 지영래
1984년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유학, 2006년 「『집안의 천치』와 장 폴 사르트르의 상상계의 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르트르의 상상력 이론과 미술 비평: 자코메티의 경우」, 「우리는 왜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드는가」 등의 논문이 있다. 현재 고려대, 한국교원대 강사로 재직 중이다.

○ 책 속으로
“사르트르의 이미지 이론은 서양철학사에서 그 동안 하위의 불순한 인식 기능으로 간주되던 상상력의 위상을 당당히 온전한 의식의 지위 (지각 기능, 사유 기능과 어깨를 견주는)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 바슐라르가 과학적 정신에 기반을 둔 사색가의 관점에서 ‘상상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문제를 성찰하였다면, 사르트르는 철학자(그것도 실존주의를 표방하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상상한다는 의식행위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식의 구조 문제를 분석했다고 생각한다.” —pp. 266-267
“사르트르적 인간은 번민하는 인간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 세계는 무한한 노력을 요구하고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힘겨운 세계이다. […] 의식이 깨어 있는 인간이라면 그 속에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해지 못해 번민한다. 그리고 그 번민과 고뇌가 깊으면 깊을수록 상상의 세계는 우리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 그것은 현실의 세계가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고달프고 힘겹기 때문이고, 이미지의 세계가 우리를 실존의 번민과 현실의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pp.276-277

○ 출판사 서평
– 실존? 아직 모른다… 참여? 아직 아니다 … 스물두 살 사르트르의 패기(覇氣) 또는 치기(稚氣)?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처녀작 『상상력』(1936)의 국내 번역판이 나왔다. 현행 저작권법과 베른 협약 발효 이후 국내 독점 초역. 번역은 불문학자 지영래 씨(고려대, 한국교원대 강사)가 맡았으며, 저본(底本)은 사르트르의 양녀이자 연인인 아를레트 엘카임 사르트르(Arlette Elkaim-Sartre)의 인명색인 첨부 수정판(Paris: PUF, 1989)을 사용했다. 국역본은 본문 좌우 여백에 프랑스어판 쪽수를 명기해 꼼꼼한 독자의 편의를 돕고, 작품해설 삼아 옮긴이의 관련 논문인 「우리는 왜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드는가: 사르트르의 이미지론에 대한 재고」, 그리고 단락별 요약과 한글 인명색인을 첨가했다. 주요 인명과 용어에 대한, 120개에 이르는 상세한 역주도 이번 국역본의 특장.
– ‘상상력’과 사르트르
『상상력』의 프랑스어 초판이 간행된 1936년은 사르트르가 31세일 때다. 곧이어 논문 「자아의 초월성」이 같은해 철학 잡지에 실리고 이듬해 단편 『벽(Le Mur)』, 그 다음해인 1938년 출세작 『구토(La Nausee)』가 잇따라 발표되었으니, 전후(戰後) 프랑스 지성을 대표할 사르트르는 이 때 이미 ‘준비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의 구상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27년(22세), 파리고등사범학교 졸업논문에서부터였다. 사르트르는 지도교수 앙리 들라크루아(Henri Delacroix)의 권유로 「심리적 삶 속의 이미지: 그 역할과 성질」이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을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내기 원했으나, 출판사의 희망에 따라 “비교적 더 학술적인” 전반부만 먼저 『상상력』으로 빛을 본 것이다. (출판 유보된 후반부는 『상상계(L’Imaginaire)』라는 제목으로 4년 뒤 1940년[35세]에야 빛을 보게 된다. 어쩌면 훨씬 더 독창적인 『상상계』[윤정임 옮김, 근간]를 위해 사르트르가 메스칼린 약물까지 투여받으며 환각 상태를 직접 경험한 일화는 유명하다.)

– 상상력과 이미지
붉은색을 보면 아직도 붉은 악마와 2002년의 거리의 물결을 떠올린다는 사람이 있다. 붉은 물결의 이미지(image)는 자연스럽게 그 함성까지 떠올리게 하므로, 이미지는 반드시 시각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 헛것을 보거나 듣거나 느끼기도 한다. 길에서 지나치며 힐끗 본 사람을 친구로 착각했다가 ‘아참, 그 친구는 미국에 이민 갔지’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등뒤에서 얼핏 들리는 이성의 목소리에서 헤어진 연인의 목소리를 연상하고 멈칫하기도 하며, 옷 가장자리의 싸구려 모피 장식을 눈 감고 쓰다듬으면서 고향 본가에 두고 온 강아지의 촉감과 체온과 묵직함에 젖어들기도 한다.
거리의 붉은 물결, 이민 간 친구, 헤어진 연인, 두고 온 강아지의 이미지는 내가 예전에 이미 지각한 것들의 기억이다. 그래서 고대 이래 서양 인식론은 이미지를 ‘희미해진 지각’으로 여기면서, 이미지를 가능케 하는 물적, 심적 기반을 찾아내는 데 골몰했다. 그러나 『상상력』에서 사르트르는 단호하다. 이미지는 지각이 아니며, ‘무엇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즉, 이미지란 허깨비이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인식능력이 바로 상상력(imagination)이다.
이미지가 외적 소여 所與: donee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르트르는 흄(Hume) 이래의 영국 경험론 철학과, 프랑스 사상계의 거목인 텐(Hyppolite Taine)과 베르그손(Henri Bergson), 그리고 전전(戰前) 대륙 심리학계를 평정한 뷔르츠부르크(Wurzburg) 학파의 실험심리학을 조목조목 난도질한다. 선배 지성으로서 그가 유일하게 의뢰하는 것은 독일의 현상학자 후설(Edmund Husserl), 그의 ‘선험(transcendence)’과 ‘지향성(intentionalite)’뿐이다.
– ‘상상력’과 인식, 존재, 예술
나중 『구토』 및 『존재와 무(L’Etre et le neant)』로 대변되는 실존주의자,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기억되는 참여(engagement) 지식인 사르트르의 각인은 『상상력』에서(그리고 『상상계』에서도) 얼핏 보아서는 아직 그림자뿐이거나, 차라리 없다. 게다가, 원문으로 겨우 문고판 162쪽에 불과한 짧은 책인데도 생경한 문체와 때로 불친절하기까지 한 전문용어의 남발로 인해 무척이나 어렵다는 첫인상을 준다(제대로 된 국내 초역이 늦은 것은 부분적으로 이런 사정들에 연유한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성숙한 철학자의 해박하고 친절한 설명을 기다리기보다, 패기 넘치는 신예 철학자의 통찰력과 참신함을 찾아보려는” 너그러운 태도로 눈감아 달라고 당부한다.
그렇다면 ‘어렵고 미숙하고 사르트르답지 않은’ 이 처녀작이 도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상상력』은 사실 후속 『상상계』, 그리고 플로베르(Flaubert)를 다룬 만년의 저작인 『집안의 천치(L’Idiot de la famille)』(1971-72. 옮긴이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바로 이 책이다)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사르트르 ‘이미지론’의 서장(緖章)으로서, 만만찮은 인식론적, 존재론(실존철학)적, 예술철학적 무게를 지닌다.
『상상력』에서, ‘실존’도 아직 모르고 ‘참여’도 아직은 아닌 스물두 살 선머슴 철학자의 패기 또는 치기(稚氣)만을 읽었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독(誤讀)이다. ‘우리 시대 마지막 철학자’(알랭 르노)라는 헌사가 지나치지 않은 거목은 이미 『상상력』이라는 떡잎에서부터 뿌리와 줄기와 잎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