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사회주의 실험 : 쿠바와 니카라과
이범준 / 인간사랑 / 1992.11.1

최근 (2019년)에도 미국 정부는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 중남미 3국을 사회주의 3대 앞잡이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폈다.
특히 쿠바에 대해서는 “이 나라와 손잡은 외국 기업에 대해 미국 시민이 소송을 걸 수 있다”는 법을 부활시키며 공세를 한층 강화했다.
쿠바와 경제 교류가 많은 유럽연합 (EU)과 캐나다는 주권 침해라면서 반발해 파장이 일었다.
이에 출판한 지는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본서를 통해 쿠바와 니카라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현시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 목차
- 라틴아메리카와 사회주의
- 쿠바 공산정권의 형성과정
- 쿠바의 정치제제 구조와 외교정책
- 쿠바의 경제구조와 정책 : 모순과 위기
-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혁명과정
- 니카라과의 정치제제의 기본구조와 대외정책
- 산디니스타 니카라과의 경제적 실험

○ 저자소개 : 이범준
국내 여성 정치학박사 1호로 잘 알려져 있는 이범준 (李範俊, 1933년 6월 29일 ~ 2011년 7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남편은 정치인 박정수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저자 이범준은 1933년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미국 켄터키 대학교 정치학과, 미국 어메리칸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에 임명되었다.
1976년 제2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도 연임하였다.
2011년 7월 14일에 별세했다.

○ 쿠바와 니카라과 개관
- 쿠바 (Cuba)
쿠바 (Cuba), 전체 이름 쿠바 공화국은 북아메리카의 카리브 제도에 있는 섬나라로,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수도는 아바나이다.
카리브해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약 1,000만명의 주민이 살고있다. 카리브해에서 면적이 가장 큰 나라이다.
윈드워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히스파니올라섬에 있는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케이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케이만 제도와 자메이카가,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미국 플로리다주가 있다.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포함되지만, 광의의 중앙아메리카에도 포함된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뒷마당」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뒷마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요로에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공산주의 정권을 기념하여 「카리브에 떠오르는 붉은 섬」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참여한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래 현재까지 공산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경제의 어려움을 자립 경제 체제로 버티면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었으나 2014년 12월 18일 국교정상화 선언을 했다.
1961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산주의 체제로 바뀌었으며, 냉전 시기인 1991년까지 중남미의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주요 지원 국가였다.
쿠바 섬은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면서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

- 니카라과 (Nicaragua)
정식 명칭은 니카라과공화국(Republic of Nicaragua)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400㎞이다. 면적은 13만 370㎢, 인구는 590만 7881명(2015년 현재), 수도는 마나구아(Managua)이다.
종족구성은 메스타죠족이 69%, 백인 17%, 흑인 9%, 인디오 5%이다. 종교는 가톨릭교가 85%, 개신교가 15%이며,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국민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며, 면화·커피·사탕수수 등이 주요 산물이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18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904달러이다.
이 나라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92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자유연합(AL), 입헌자유연합당(PLC),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보수당(PC), 기독사회당(USC), 민족자유당(PLN)) 등이 있다.
.약사
1502년 9월 콜럼버스가 니카라과 동북단에 상륙하여 스페인 국왕의 이름으로 영유권을 선언하면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1821년 9월에 1차로 독립하였으며, 1823년 멕시코가 주도하는 중미연합에 일시 참가하였다가 1838년 9월 15일 스페인으로부터 재독립하였다.
독립 후 니카라과는 레온시를 거점으로 하는 자유주의자와 그라나다시를 거점으로 하는 보수주의자 간의 정치적 투쟁의 격화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외세와 결탁한 양측의 투쟁으로 1856년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불러들인 미국인 워커(Walker,W.)가 니카라과군 총사령관과 대통령직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1912년부터 1933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19년간 미국 해병대가 주둔하였다.
1937년에는 소모사(Somoza, A.)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979년까지 족벌독재정치를 실시하여 왔다.
그러나 1978년 8월 코스타리카 국경지대에서 결성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은 쿠바의 지원하에 반소모사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이 민족해방전선은 1979년 6월 임시정부와 군사평의회를 결성하고, 1979년 7월 19일 수도 마나구아를 점령한 후 국가재건위원회를 구성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1984년 11월 혁명정권 수립 뒤 처음으로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며,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오르떼가(D. Orteg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86년 12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쿠바의 지원을 받는 좌익정권이 들어서면서 니카라과와 미국은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니카라과는 소모사 정권 때까지는 반공국가로서 친서방정책을 추구하였다.
1990년 2월 총선에서 차모로(Chhamorro) 여사가 예상을 뒤엎고 오르떼가에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여, 10년간 지속되어 온 산디니스트 혁명정권을 붕괴시켰다. 1996년 10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알레만(Aleman) 후보가 다시 오르떼가 후보를 누르고 당선, 1997년 1월 제2기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2007년 1월에는 오르떼가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었다. 대외정책은 좌경중립의 비동맹중립외교를 표방하며, 1945년 유엔에, 1979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한 바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