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
최민자 / 모시는사람들 / 2008.6.10
인류와 우주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함께 인간과 지구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을 통해 생명과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류의 사상사는 생명의 본체 [의식계]와 작용 [물질계]의 상호 관통이란 측면에서 전일적 패러다임 (holistic paradigm)에 의해 새로 씌어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 책은 다음 몇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첫째, 물리 (物理)와 성리 (性理),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섭하는 보편적인 지식체계의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둘째, ‘생명의 3화음적 구조’에 입각하여 전일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생명학과 생명정치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셋째, 인간사회의 제 현상을 홀로무브먼트 (holomovement)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 넷째, 현대 물리학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의 상호 피드백 과정 (mutual feedback process)의 필요성에 착안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학제적 접근 (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통해 경계선 없는 통합학문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저자에게 서구 문명의 지양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로운 전일적 실재관의 정립에 관한 뼈대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접근 방법을 통해 새로운 인간학을 정초하고,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 목차

제1부 생명의 본체
제1장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
제2장 참여하는 우주(Participatory Universe)
제3장 ‘지금’의식(Now-Consciousness)
제2부 생명의 작용
제4장 생명정치와 생명문화(Life-Politics and Life-Culture)
제5장 경계선 없는 민주주의(Democracy Which Makes No Distinction)
제6장 생명과 평화(Life and Peace)
제3부 생명의 본체와 작용의 합일
제7장 지혜의 길(The Path of Wisdom) 행위의 길(The Path of Action)
제8장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
제9장 실존적 삶과 실존적 자유(Existential Life and Existential Freedom)
○ 저자소개 : 최민자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Arizona State University) 정치학 석사, 영국 켄트대학교 (University of Kent)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북경대학교 visiting professor 중국 연변대학교 초빙교수[客座敎授]를 역임하였으며, 1994년 장보고 대사의 해외거점이었던 중국 산동성에 장보고기념탑 건립 (건립위원장, 현지 문물보호단위로 지정), 1999년 중국 훈춘에서 유엔측 대표, 중국 훈춘시 인민정부 시장, 러시아 핫산구정부 행정장관 등과 중국· 북한· 러시아 3국접경지역 약 2억평 부지에 유엔세계평화센터 (UNWPC) 건립을 위한 조인식의 경력이 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生態政治學: 近代의 超克을 위한 生態政治學的 對應』(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07), 『天符經, 三一神誥, 參佺戒經』(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06), 『東學思想과 新文明』(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05), 『世界人 張保皐와 地球村 經營』(도서출판 범한, 2003), 『새벽이 오는 소리』(창해, 2002), 『直接時代』(도서출판 범한, 2001), 『길 (道)을 찾아서』(까치, 1997)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The Economic Basis of the Theory of the State in the Mature Hegel」, 「天符思想과 新文明」, 「檀君朝鮮의 建國理念과 政治思想」, ‘張保皐의 超國家的 發展패러다임 硏究’, 「生態政治學的 思惟와 現代 物理學의 實在觀」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1) 현재 인류가 처해 있는 지구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복합적이며 다차원적인 세계적 변화에 따른 총체적인 인간 실존의 위기는 패러다임 전환 (Paradigm shift)의 필요성에 따른 인류 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울리히 베크 (Ulrich Beck)가 제시한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제2의 근대화’ 개념, 새뮤얼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이 제기한 세계질서의 ‘문화적 재편 (cultural reconfiguration)’, 아시아의 경제발전과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광범하게 운위 (云謂)되고 있는 ‘문화적 르네상스 (cultural renaissance)’, 토플러가 말하는 ‘제3물결’의 새 문명,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가 제시한 ‘제3의 길’, 그리고 20세기 역사의 중심 주제가 되었던 ‘서구의 몰락 (The decline of the West)’과 같은 일련의 논의들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논의 방향은-비록 그들 자신은 예측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가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실재관과 동양의 실재관 사이의 심오한 조화를 깨닫는 것이 문화적 대전환의 요체가 되는 것으로 본 것과 기본적으로는 그 맥을 같이 한다.
2) 오늘의 인류가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 재앙과 정치적?종교적 충돌, 나아가 인간 실존의 위기와 같은 총체적인 난국 (impasse)에 처하게 된 것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관한 진지 (眞知)의 빈곤 (poverty of true knowledge)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자연적 (natural)이고 불가양도적 (inalienable)이며 불가분적 (inseparable)인 신성불가침 (sacred and inviolable)의 생명권 (rights of life)을 갖는다. 이러한 생명권 선언은 생명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죽임’의 반생명문화에서 ‘살림’의 생명문화에로 문화적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의 목적성을 가지며 그 어떤 의미에서도 소유화하거나 수단화할 수 없다. 이제 후천 (後天)의 초입 (初入)에서 우리 인류는 정녕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운명 (destiny to create)’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인류의 운명이 생명권 자각의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을 때 새로운 역사의 장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3) 오늘날 양자혁명 (quantum revolution)이 가져온 사상적, 사회적 및 기술적 영향력의 심대함은 이제 양자론이 물리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사실상 끝나고 있음을 반증한다. 상호배타적인 것이 상보적이라는 양자역학의 전일적 실재관은 동양철학의 유기론적 세계관과 유사하여 비전문가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 영국 등지에서의 철학, 인문학의 부활과 더불어 통합학문의 시대를 촉발시키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전일적 실재관의 결정적인 기여는 입자-파동의 이중성 (wave-particle duality)에 기초하여 생명의 파동적 성격을 규명해 낸 점이다. 생명의 전일성과 자기근원성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러한 본체계와 현상계를 관통하는 생명의 파동적 성격을 깨달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 우주는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의 세계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까닭에 물리, 화학적인 분석방법만으로는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체와 사회의 제 현상은 복잡계 현상이며 그 특성은 전체가 부분의 총화 이상의 것으로 부분은 단지 전체 조직과의 맥락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천, 지, 인의 통합성에 대한 자각이 없이 생명현상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4) 생명의 본체인 신 (神)은 하늘 (天)ㆍ 천주 [하느님, 하나님, 창조주, 유일신, ALLAH神]ㆍ 도 (道)ㆍ 불 (佛)ㆍ 태극 [無極]ㆍ 브라흐마 (Brahma: 梵, 創造神)ㆍ 전체의식 [근원의식, 보편의식, 우주의식, 순수의식, 一心, 참본성, 神性]ㆍ우주의 창조적 에너지 [우주의 근본 질로, 至氣, 一氣, 混元一氣, 하늘기운]ㆍ우주섭리 [진리, 自然]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고 있는 근원적 일자 [유일자, 유일신] 또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우주의 본원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본체인 신 [天]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 작용인 우주만물의 존재성 또한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명의 3화음적 구조 (the tread structure of life), 즉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이라는 변증법적 논리 구조에 대한 명료한 인식은 진정한 문명의 개창을 위한 인류의 지상과제다.
모든 종교에서 유일신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는 것은 유일신이 곧 참본성이며, 참본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이 없이는 인간의 자기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명의 생명의 전일성에 대한 깨달음, 즉 생명의 본체인 신과 그 작용인 우주만물의 합일성-천인합일의 이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주의 본질은 생명이고 그 원리가 사랑이니, 사랑의 빛이 최고도로 발현되기 위해선 생명에 대한 명료한 인식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주요 내용
1) 우리 모두는 생명과 평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와 우주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함께 인간과 지구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이다. 이제 인류의 사상사는 생명의 본체 [의식계]와 작용 [물질계]의 상호 관통이란 측면에서 전일적 패러다임 (holistic paradigm)에 의해 새로 씌어져야 한다. 본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부는 3장으로 이루어져 3부 전체는 모두 9장이고, 각 장은 9개 조로 이루어져 9장 전체는 모두 81개조로서 ‘천부경’ (九九經)과 마찬가지로 ‘구구 (9×9)’의 구조를 갖는다. 특히 본서는 ‘생명의 3화음적 구조’에 입각하여 제1부 ‘생명의 본체’, 제2부 ‘생명의 작용’, 제3부 ‘생명의 본체와 작용의 합일’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에 관한 테제를 81개조로 한 것은 천부경 81자, 도덕경 81장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본서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물리 (物理)와 성리 (性理),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섭하는 보편적인 지식체계의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둘째, ‘생명의 3화음적 구조’에 입각하여 전일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생명학과 생명정치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셋째, 인간사회의 제 현상을 홀로무브먼트 (holomovement)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 넷째, 현대 물리학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의 상호 피드백 과정 (mutual feedback process)의 필요성에 착안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학제적 접근 (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통해 경계선 없는 통합학문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2) 오늘의 인류가 처한 딜레마는 다양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생명에 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거기서 파생된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눈부신 진보는 종교의 영역에 갇혀있던 동양적 지혜의 정수를 과학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보편적 지식체계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물리 (物理)와 성리 (性理),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섭하는 보편적인 지식체계는 여전히 구축되지 못한 채 생명에 관한 지식의 파편들만 난무하여 진정한 문명의 개창을 위한 생명문화의 창출이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사회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생명에 관한 논의가 배제되어 있어 문제의 본질에 닿지 못하고 있다. 생장하고 변하여 돌아가는 현상적인 측면만 논하는 것은 마치 물은 논하지 않고 파도만 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명정치의 구현을 위해서는 개체성과 전체성의 소통성을 보여주는 ‘생명의 3화음적 구조 (the triad structure of life)’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이라는 ‘생명의 3화음적 구조’는 필자가 천부경 81자의 구조를 궁구 (窮究)하다가 그렇게 명명한 것으로 그 구조가 하도 명징하여 필자는 천부경을 ‘생명경 (生命經)’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삼신불 (法身, 化身, 報身)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聖父, 聖子, 聖神), 그리고 동학의 내유신령 (內有神靈), 외유기화 (外有氣化), 각지불이 (各知不移)는 천부 (天符)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천, 지, 인 삼신일체의 가르침과 그 내용이 같은 것으로 모두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이라는 생명의 3화음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 서구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생태적 홀로코스트 (holocaust)를 초래하게 된 것도 인간 존재의 ‘세 중심축 (天地人 三才)’의 연관성 상실로 인해 생태적 마인드를 갖지 못한 데 기인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신에 맞서는 인간 이성의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졌음에도 근대는 진정한 인간학[생명학]을 수립하지 못했다.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는 사실 그대로의 존재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인식에 기초한 학문적 불구의 산물로서 자연 억압과 인간 억압을 추동하는 원리로 작용해왔다. 그리하여 국가안보 내지는 성전 (聖戰, 지하드)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폭력이 자행됨으로써 인류의 생명권은 이제 심대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왜곡된 신성이 인간 이성을 학대하며 신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세의 불합리했던 상황과, 오늘날 왜곡된 이성이 내재적 본성인 신성을 학대하며 근대 과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서구적 근대의 불합리한 상황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리하여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es)의 합리적 절대자아로부터 실증주의와 실존철학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근대세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인 성찰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해체주의다. 중세 신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로 실증주의와 실존철학이 나타나 절대자로 군림한 왜곡된 신성을 해체시키려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이성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로 해체주의가 나타나 절대자로 군림한 왜곡된 이성을 해체시키려 한 것이다. 탈근대 논의에서 인간 이성의 절대성과 중심성이 거부되는 것은 이성이 참본성 [신성, 영성]으로부터 멀어져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성이 배제된 객관적 이성 중심주의이며 개성과 다양성이 배려되지 않은 전체성의 관점을 띠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합리주의의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에 기용되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은 주로 현대 물리학이 제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구 문명의 지양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로운 전일적 실재관의 정립에 관한 논의가 확산되게 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인간학의 수립이 절실한 것은 그것이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토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생명은 본래 분리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절대유일의 하나인 까닭에 때론 ‘하나 (님)’ 또는 유일신 [유일자]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우주만물에 편재해 있는 ‘하나’인 참본성 [참나, 大我]이 곧 하늘 (天)이요, 신 (神)이니 우주만물을 떠난 그 어디에 따로이 하늘이나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본체인 하늘 (天)과 성 (性)과 신 (神)은 하나이다. 유일신 논쟁, 창조론•진화론 논쟁, 유물론•유심론 논쟁, 신•인간 이원론, 종교적 타락상과 물신 숭배 사조, 인간 소외 현상 등은 하늘과 참본성과 신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으로 분리시킨 데서 오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인 유일신은 특정 종교의 신도 아니요 섬겨야 할 대상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며 우주만물 그 자체다. 천인합일 (天人合一)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초승달과 십자가의 충돌로 표징되는 십자군전쟁 (1095~1456)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문명 충돌의 본질은 종교 충돌이며 그 핵심에는 유일신에 대한 인식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유일신 논쟁은 단순한 종교 논쟁이 아니라 존재론과 인식론의 바탕을 이루는 진리 그 자체에 대한 논쟁이다. ‘참나’의 자각적 주체에 의한 진정한 문명이 개창될 수 있기 위해서는 유일신 논쟁이 명쾌하게 종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5) 인간사회의 지배관계는 선 (善)도 악 (惡)도 아니며 단지 거칠고 방종한 자아를 길들이는 (taming), 그리하여 의식을 확장시키는 교육기자재로서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을 뿐이다. 의식의 진화 [영적 진화]를 위한 학습의 장으로서의 물질계의 존재이유를 직시하지 못하고서는 지배적 쾌감이 주는 사디즘 (sadism)적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따라서 생명을 경외 (敬畏)하는 마음도, 헌신적 참여도 일어날 수가 없다. 소통성의 완성을 위해선 부단한 의식의 자기교육과정을 통해 즐거움과 괴로움,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등 일체의 양 극단이 한 맛임을 알아야 한다. 양 극단이 조성하는 긴장감에 의해 의식의 확장과 더불어 궁극적인 초월이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성과 부정성, 이 양 극단의 변증법적 통합에 의해 진정한 앎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진화의 각 단계에 따라 그에 부응하는 교육기자재가 필요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귀영화란 것도 의식의 진화를 위한 학습기자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비록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의식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집중 (執中)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지금 여기 (now here)’에서의 삶이야말로 의식의 진화에 부합하는 순천의 삶이다. 자유와 행복, 평화와 같은 인간이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공공선의 실현 또한 생명의 근원적 평등성과 유기적 통합성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구체적 현실태가 될 수 없다. 생명에 관한 진지 (眞知)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6) 생명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그 가치가 상호 결합되어 있다. 인류의 생명권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평화란 한갓 헛된 신념을 추동하는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의식의 성장을 위한 학습의 장으로서 생명의 정원이고 인류는 그 정원사이며 물질계의 모든 제도와 조직은 의식의 성장을 위한 학습여건 창출에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는 현실적인 것이 된다. 그럼에도 객관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근대 과학과 이에 편승한 물질만능주의는 생명과 평화의 보전이라는 지상과제를 외면한 채 의식 차원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드디어는 생명의 본체까지도 부정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야말로 존재론적 자살 (ontological suicide)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러한 존재론적 자살이 만연하게 되면 생명문화가 정착될 수 없을뿐더러 생태적 가치가 활성화될 수도 없으므로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한갓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된다. 생명의 전일성과 자기근원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하여 자율성과 평등성을 그 본질로 하는 순환경제 사회의 구축이야말로 생명과 평화의 보전을 위한 핵심 과제이다. 이는 곧 물질적 성장제일주의가 아닌 인간의 의식 성장을 전제로 하는 사회의 구축이다.
7)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는 인간의 내재적 본성인 신성 회복을 통해 인류의 삶을,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개변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낡은 교의나 철학을 떠나 있으며, 에고 (ego, 個我)가 만들어 낸 일체의 장벽을 해체할 것을 선언한다. 그것은 우주적 생명권에 대한 선언이요, 영원에 대한 갈파 (喝破)이며, 미망 (迷妄)의 삶을 잠재우는 진혼곡 (鎭魂曲)이요, 진정한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곡 (神曲)이다. 실로 참본성이 열리지 않고서는 공 (功)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부정한 의식의 철폐를 통한 진지 (眞知)의 회복, 바로 여기에 제2의 르네상스가 있고 제2의 종교개혁이 있다. 그것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체를 창출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 인류는 제2의 르네상스, 제2의 종교개혁을 통해 신성과 이성의 통합시대를 열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은 유럽적이고 기독교적인 서구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과는 달리, 전 인류적이고 전 지구적이며 전 우주적인 존재혁명이 될 것이다. 삶과 학문, 삶과 종교, 학문과 종교, 종교와 종교의 진정한 화해는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진리 [根本智]에 대한 명료한 인식이 없이는 새로운 계몽시대를 열 수가 없다. 인류 의식의 성장으로 물신 (物神)들이 황혼을 맞고 있는 지금, 만유의 중심에 내려와 있는 신성이 바로 신의 실체이자 우리의 참본성임을 직시함으로써 천·지·인 삼재의 융화에 기초한 진정한 문명을 개창하는 것이 문명의 대전환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다. 이제 성직자의 마지막 사명은 종교의 성벽 속에 가두어 놓은 하늘 [‘하늘’님, 유일신, 根本智]을 만인의 하늘로 되돌려주고 사라지는 것이다.
○ 책 속으로
에필로그 : 소제목 및 발문
제1부 생명의 본체
제1장 생명의 그물 (The Web of Life)
“우주만물은 ‘하나’의 자기복제 (self-replication) 와도 같으므로 일즉다 (一卽多)요 다즉일 (多卽一)이다. 생명은 필연적인 자기법칙성에 따라 스스로 생성되고 스스로 변화하여 스스로 돌아가는 ‘스스로 (自) 그러한 (然)’ 자, 즉 자연이다. 자연은 외재적인 동시에 내재적이다. 내재적 자연 (intrinsic nature)이란 일심 [참본성, 근원의식, 전체의식, 보편의식] 즉 ‘하나’인 이치 [理]와 기운 [氣]을 말하며, 외재적 자연 (extrinsic nature)이란 음양의 원리와 기운의 조화 (造化) 작용으로 체 (體)를 이룬 것이다.” ―제4조 ‘생명의 근원’ 중에서
제2장 참여하는 우주 (Participatory Universe)
“생명의 본체인 ‘하나’의 묘리 (妙理)의 작용으로 하늘과 땅이 열리고 사람과 우주만물 (人物)이 생겨나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작용하는 주체가 없는 작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 하여 무위의 천지창조라고 한 것이다. 우주만물은 ‘하나’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복귀하므로 자본자근 (自本自根), 자생자화 (自生自化)하는 것이니, 창조하는 주체도 없고 창조되는 객체도 없다. … 모두가 참여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참여하는 우주 (participatory universe)’인 것이다.” ― 제10조 ‘무위 (無爲)의 천지창조’ 중에서
제3장 ‘지금’의식 (Now-Consciousness)
“ ‘지금’의식은 상대적 분별지 (分別智)를 넘어 절대적 근본지 (根本智)로 안내하는 초월의 문이다. 삼라만상은 생성, 유지, 파괴, 소멸이라는 성주괴공 (成住壞空, 生住異滅)의 네 과정을 끝없이 순환 반복하며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게 되므로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탐착하고 분노하는 어리석은 마음은 이러한 무상 (無常)과 무아 (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지금’의식은 무심 (無心)이다. 지금 이 순간 속에 전적으로 몰입함으로써 행위자가 사라지면 무상과 무아의 이치는 저절로 체득되게 된다.” ―제24조 ‘초월적 ’지금‘의식’ 중에서
제2부 생명의 작용
제4장 생명정치와 생명문화 (Life-Politics and Life-Culture)
“인간불평등은 표면적으로는 가치박탈의 한 형태이지만, 보다 심층적으로는 의식의 진화를 위한 학습여건 창출과 관계된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심오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정신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인간불평등의 기원의 문제를 단순히 소유 관념의 발생과 제도화의 문제라고만 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우주의 진행방향은 의식의 진화 [영적 진화]이며 일체의 상황은 이를 위한 최적 조건의 창출과 관계된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질서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게 되면 주어진 상황을 일단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모든 상황을 자신의 의식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게 되는 것이다.” ― 제31조 ‘인간불평등기원론’ 중에서
제5장 경계선 없는 민주주의 (Democracy Which Makes No Distinction)
“정치체의 생명의 원천은 주권에 있는 까닭에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자유를 팔아 노예의 자유를 사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정치체의 죽음이 일어난다. 자유보다는 이익을 중시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가난을 더 두려워하는 비굴함이 결국 그 자신을 노예 아닌 노예로 만들게 된 것이다. 무분별하고도 잔인한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창조주의 모든 선물 중 가장 귀중한 ‘자유’라는 선물을 무제한으로 방기 (放棄)했던 노예와도 같이, 오늘날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의 고용인에 불과한 대표자를 주인으로 받들고 나라 일은 주인의 일이며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됨으로써 공공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도 대표자의 이익도 아닌 제3의 이익, 즉 그 누구의 이익도 아닌 것으로 방기되어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제41조 ‘정치체의 죽음’ 중에서
제6장 생명과 평화 (Life and Peace)
“지구는 의식 성장을 위한 생명의 정원 (the Garden of Life)이고, 인류는 그 정원사이며, 모든 제도와 조직은 의식 성장을 위한 조건 창출에 관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객관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근대 과학과 이에 편승한 물질만능주의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의식 차원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드디어는 생명의 본체까지도 부정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녕 존재론적 자살 (ontological suicide)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러한 존재론적 자살이 만연하게 되면 생명문화가 정착될 수도, 생태적 가치가 활성화될 수도 없으므로 평화란 단지 권력정치가 표방하는 슬로건에 불과한 것이 된다.” ― 제54조 ‘생명과 평화’ 중에서
제3부 생명의 본체와 작용의 합일
제7장 지혜의 길 (The Path of Wisdom) 행위의 길 (The Path of Action)
“일체의 분별지 (分別智)에서 벗어나 본래의 근본지(根本智)로 되돌아가면 이분법을 초월한 참자아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적인 의미에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물질 차원의 기운을 초월하게 되므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하나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나’인 참자아 [참본성]는 생각의 저 너머에 있으므로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변화의 저 너머에 있으므로 그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참자아는 만유의 본질로서 내재해 있는 동시에 만유를 초월해 있으므로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이다.” ― 제55조 ‘귀일심원 (歸一心源)’ 중에서
제8장 홀로무브먼트 (Holomovement)
“참자아는 존재성과 비존재성, 물성 (物性)과 영성 (靈性) 그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생성, 유지, 파괴의 전 과정을 주재한다. 이는 곧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 [混元一氣, 至氣]인 신 [神性]이 기 (氣)로, 다시 정 (精)으로 에너지가 체 (體)화 하는 과정인 동시에 정 (精)은 기 (氣)로, 다시 신 [神性]으로 화하여 본래의 근본자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참자아는 그 어떤 것에도 영향 받지 않는 원궤의 중심축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 생명의 본체인 참자아는 만유의 참자아로 내재해 있는 동시에 다함이 없는 기화 (氣化)의 작용으로 만유를 변화시킨다. 존재성과 비존재성, 물성과 영성 그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변증법적 통합의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이다.” ― 제68조 ‘이중의식의 존재론적 함의’ 중에서
제9장 실존적 삶과 실존적 자유 (Existential Life and Existential Freedom)
“… 그는 절망의 참담함이 부귀영화를 얻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한 그가 갈구하는 자유와 행복이란 것도 세속적 성공의 산물이 아니라 의식의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존재로서의 삶 자체가 의식의 자기교육을 위한 학습과정이며, 의식을 탐구하는 수단으로서 감각기능이 주어지고 학습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학습기자재로서 상대계인 물질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가 이르게 된 폐허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유보된 채 결과에 대한 집착으로 불순한 행위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영성계발을 위해 하늘이 쳐놓은 카르마 (karma, 業)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 ― 제81조 ‘마침내, 존재여!’ 중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