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성의 역사. 3 : 자기배려
미셸 푸코 / 나남 / 2004.5
– 20세기 가장 뛰어난 철학자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푸코
그는 구조주의를 주창한 대표적 철학자로서 사회 구조나 언어 구조 등의 ‘구조’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구조란 ‘짜여진 어떤 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아나 관념 역시 이 틀 안에서 탄생하고 전개, 소멸한다고 그는 보았다.
그리고 그의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의 신체가 있었다. 그는 신체야말로 권력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성’과 그것을 행하는 ‘인간’ 그리고 그것들을 조직하는 권력(혹은 담론 – 힘있는 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해진 ‘성정치학’ 논의에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저작물이기도 하다.
제1권 앎의 의지, 제2권 쾌락의 활용, 제3권 자기 배려의 3부작으로 이뤄진 『성의 역사』에서 푸코가 우선 세운 가설은 “성은 억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의 역사는 오히려 선동과 증대의 역사다. 억압 대신 선동과 증대가 이뤄지고 거기로부터 수많은 ‘말’ 그리고 ‘권력 망’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성이 ‘억압의 역사’를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어찌 보면 사소하달 수도 있는 성 관련 사건에서 정신분석가, 정신의학자, 범죄자, 성도착자, 재판관, 가족구성원, 학생, 선생 등이 등장하여 서로 권력관계를 맺게 된다고 그는 보았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동력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게 되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하게 하는 수음을 금지하게 하거나(실제로 그런 캠페인이 있었다), 그것의 사례로 얘기되는 청교도주의나 금욕주의의 전개에 대해 푸코는 우선 의심했으며, 그 이면을 파헤쳤다.

그 결과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당시에는 ‘성 담론’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고해, 성의학, 정신분석학 등 수많은 지식들이 그것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오늘날 서양인이 봉착한 난관 또는 정신적 위기의 책임이 육체를 폄하하는 ‘유태-기독교 전통’에 있고 보았다.
1권과 상당한 시간 차이를 두고 발행된 2권과 3권은 기독교 권력이 고착화되기 전, 고대 그리스-로마의 성 윤리와 고대 이교도의 사례들을 들어 그의 주장을 더욱 풍부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는 말로 권력의 속성을 정의한 미셸 푸코.
책에서 주장하는 바, 성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 목차
1. 자신의 쾌락을 꿈꾸기
2. 자기함양
3. 자기와 타인들
4. 육체
5. 아내
6. 소년들
○ 저자소개 : 미셸 푸코 (Michel Paul Foucault)
기존 사회이론의 문제제기와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프랑스 쁘와띠에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니체, 하이데거, 바따이유, 바슐라르, 깡길렘, 알튀세르 등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대학 반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臨床)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을 저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

그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사회 구조나 언어 구조 등의 ‘구조’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구조란 ‘짜여진 어떤 틀’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자아나 관념 역시 이 틀 안에서 탄생하고 전개,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의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인간의 신체가 있었다. 그는 신체야말로 권력의 시발점임과 동시에 저항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저서인 『광기의 역사』는 근대 서구사회에 있어서 나병의 쇠퇴와 나병의 폐쇄에 따른 광인을 감금하는 장소가 개설된 사실에서 이론적 비판을 전개한 논문이다. ‘광기’의 개념이 형성되고 유포된 과정을 고고학적 방법으로 추적하여, 이성주의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역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이성은 비이성을 질병으로 치부했을까? 어째서 감금하고 억압하고 마침내 침묵 속에 가두었을까? 이성의 독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타자/외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에서 푸코는 정신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적 장치가 아니라 이성중심적 사회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기준으로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로서 인간에 대한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감옥은 범죄자들의 단순한 수용소가 아니라 권력의 사회통제를 위한 전략의 소산이며 그 범죄자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유용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와 사물』(1966)과 『앎[知]의 고고학(考古學)』(1969)에서 무의식적인 심적 구조(心的構造)와 사회구조, 그리고 언어구조가 일체를 결정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든가, 자아라고 하는 관념은 허망이라고 하는 반인간주의적(反人間主義的) 사상을 전개하였는데, 이것이 구조주의 유행의 계기가 되었다.
정상적인 자기가 어떤 지식의 배치를 통하여 마련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푸코의 초기라고 본다면, 중기에는 니체의 권력, 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근대 사회에 작용하는 미시권력의 다양한 장치와 테크놀로지를 추적한다. 주로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을 연구하고 많은 논문을 써온 양운덕 선생은 근대인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푸코는 권력이야기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답으로 푸코는 규율 지키기와 몸 길들이기를 통해서 근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즉 권력이 근대 주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개인의 몸에 작용하는 일정한 관계망 속에서 권력의 작용을 살필 수 있다고 말한다. 푸코에게 있어 권력은 작용할 대상을 일정하게 형성하고 그 대상이 스스로 권력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권력은 억압하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생산적, 긍정적인 힘인 것이다.
『성의 역사』는 ‘성’과 그것을 행하는 ‘인간’ 그리고 그것들을 조직하는 권력(혹은 담론 – 힘있는 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저작으로 ‘성정치학’ 논의에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저작물이기도 하다. 3부작으로 이뤄진 『성의 역사』에서 푸코는 “성은 억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성의 역사는 오히려 선동과 증대의 역사다. 억압 대신 선동과 증대가 이뤄지고 거기로부터 수많은 ‘말’ 그리고 ‘권력 망’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성이 ‘억압의 역사’를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동력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게 되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하게 하는 수음을 금지하게 하거나(실제로 그런 캠페인이 있었다), 그것의 사례로 얘기되는 청교도주의나 금욕주의의 전개에 대해 푸코는 우선 의심했으며, 그 이면을 파헤쳤다. 그 결과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당시에는 ‘성 담론’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고해, 성의학, 정신분석학 등 수많은 지식들이 그것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밖에 『광기와 문화』『정신병과 심리학』『비정상인들』『사회를 보호해? 한다』『자기의 테크놀로지』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푸코를 다루는 저서들도 많이 출간되었다. 푸코는 1984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였다.
○ 출판사 서평
제1권 앎의 의지 제2권 쾌락의 활용 제3권 자기 배려의 3부작으로 이뤄진 『성의 역사』에서 푸코가 우선 세운 가설은 “성은 억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의 역사는 오히려 선동과 증대의 역사다. 억압 대신 선동과 증대가 이뤄지고 거기로부터 수많은 ‘말’ 그리고 ‘권력 망’이 생겨났기 때문에 오히려 성이 ‘억압의 역사’를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어찌 보면 사소하달 수도 있는 성 관련 사건에서 정신분석가, 정신의학자, 범죄자, 성도착자, 재판관, 가족구성원, 학생, 선생 등이 등장하여 서로 권력관계를 맺게 된다고 그는 보았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동력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게 되고, 불필요한 노동력을 사용하게 하는 수음을 금지하게 하거나(실제로 그런 캠페인이 있었다), 그것의 사례로 얘기되는 청교도주의나 금욕주의의 전개에 대해 푸코는 우선 의심했으며, 그 이면을 파헤쳤다. 그 결과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당시에는 ‘성 담론’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고해, 성의학, 정신분석학 등 수많은 지식들이 그것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오늘날 서양인이 봉착한 난관 또는 정신적 위기의 책임이 육체를 폄하하는 ‘유태-기독교 전통’에 있고 보았다. 1권과 상당한 시간 차이를 두고 발행된 2권과 3권은 기독교 권력이 고착화되기 전, 고대 그리스-로마의 성 윤리와 고대 이교도의 사례들을 들어 그의 주장을 더욱 풍부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는 말로 권력의 속성을 정의한 미셸 푸코. 책에서 주장하는 바, 성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 독자의 평 1
미셸 푸코의 저서를 읽어야겠다고 각오를 하게된 계기는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나서부터다.그 책은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책을 읽으면서 번역을 너무 어렵게 한 책이라고,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같은 책을 읽은 다른이의 서평을 읽어보고 미셸 푸코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잘 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코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권력’이라는 장치다.<성의 역사1-앎의 의지>,<성의 역사2-쾌락의 활용>은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하지만 푸코의 작품은 어려우면서도 앎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성의 역사3-자기에의 배려> 도 쉽지 않지만 도전해볼만한 책이다. <자기에의 배려>는 고대 이교도의 자아의 테크닉에서 제반 양상들에 대한 논문집을 계획하면서 탄생된 작품이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성윤리를 다룰 때 자아의 테크놀로지와 관련시키지 않고는 그 시대의 성윤리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P5) 성은 이제 더 이상 권력과 연관지어 논의될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존재의 기술’,’자아의 테크닉’으로 사용되는 개인적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P6p)자신과 자신의 신체에 대한 배려는 성적 활동의 가장 중요한 축을 구성하며 성행위에 있어 가치란 곧 ’자제’된 행동으로 귀착된다.
흔히 프로이트를 꿈을 해석할 때 성적인 측면과 관련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푸코는 그보다 앞선 서기 2세기에 활약한 아르테미도로스의 <해몽의 열쇠>를 문헌으로 참고하고 있다.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의 해석에 있어서 현실과의 연관관계에 많은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꿈의 이미지를 통해서 가족적,경제적,사회적 삶의 짜임을 밝혀보려고 한다.
로마,헬레니즘 사회에서 사적 측면과 개인적 행위의 가치,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에 점점 더 많은 자리를 부여하게 된 것은 공권력의 강화라기보다 오히려 과거 개인들의 삶이 전개되던 정치적,사회적 틀의 약화일 가능성이 더 크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와서 절정을 이룬 하나의 현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를 강화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자기연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발단이다.(P59).곧 자기배려의 원칙이다.자기배려는 개인상호간의 관계,하나의 사회적 실천을 형성,어떤 인식의 유형과 지식의 형성을 야기했다.
결혼은 점차 공적 영역 안에 자리잡기 시작한다.즉,가족의 틀을 넘어서게 된다.결혼에 가치를 부여했던 사회.경제적 목적에서 해방되면서 그와 동시에 일반화된다.
기원전 3세기부터 도시국가의 붕괴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고,어떤 자성 행위를 유도해 낼 수 있었다.정치활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촉발하게 된다.다른 사람을 통치할 때의 합리성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의 합리성과 동일한 것이 요구된다.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권력의 행사는 불안정한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즉,스스로 미리 한계를 정함으로써 대비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신체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이러한 틀 속에서 의학은 성적 쾌락의 문제를 제기한다.성적 쾌락의 성질과 메커니즘의 문제,유기체에 대한 성적 쾌락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가치의 문제,성적 쾌락에 따라야 할 양생술의 문제등에서 푸코는 갈레누스의 생리학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너무 어려워서 책을 중간에 덮었다가 한 달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어려운 부분은 그냥 건너 뛰고 읽는 거나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이 책을 반만 이해하기로 마음먹고 읽으니 다 읽을 수 있었다.
<자기 배려>라는 것은 성생활로 인한 자기자신의 건강에 대해 근심하고,걱정하는 것을 말한다.자신의 건강을 너무 염려하다보니 철학,의학,모든 분야에서 성을 죄악시하게 되고,쾌락에 대해 절제가 미덕이 된다.부부간이나 남녀의 관계 뿐만아니라 그리스 특유의 소년애가 주된 관심사에서 강도가 낮아진다. 소년애가 죄악시되거나,성에 대해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기독교적 도덕의 영향인지,이미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부터 예감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지는 확언을 하지 않는다.성도덕의 변모는 결국 자기배려의 결과로 보인다.
○ 독자의 평 2
히틀러의 나치독일이 유태인 뿐 아니라 동성애자까지도 탄압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치는 독일민족의 건강과 복지, 전체 인구의 증식이라는 미명 아래 동성애자들을 수감해왔다.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구분된 다카우(Dachau) 수용소의 ‘포로 분류 일람표’를 살펴보면, 동성애자는 강제수용소 목록에서 유태인 다음으로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생체실험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같은 포로 심지어 유태인들에게까지 극심한 경멸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총리 빌리 블란트의 사과로 유태민족의 크나큰 아픔이 씻길 수 있으랴마는, 적어도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통해 오늘날 유태인들에 대한 차별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하다못해 매년 엄청난 수로 쏟아지는 수용소를 다룬 영화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오락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던 유태인들과는 달리, 동성애자들은 수용소를 나온 뒤에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경멸 섞인 싸늘한 시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들이 겪는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성, 성적 시선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도 크게 변화하였다. 언뜻 보기엔 이전만큼 동성애자를 매스껍게 바라보는 시선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두 돈이 되는 경우 안에서만 허용되는 ‘차이’일 뿐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는 패션경향을 주도하는 모델로서, 혹은 여성과는 또 다른 섬세함으로 유행을 창조하는 일종의 상품으로서 주목받을 뿐, 본질적인 문제에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다. 예컨대 세련되고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드라마속의 뉴욕 게이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우리 주변의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랴. 마찬가지로 동성애만큼 돈이 되지 않는 또 다른 성적 취향들, 즉 관음증, 물신주의(fetishism), 사디즘, 마조히즘, 아동성애 등은 여전히 비정상적인 우리 사회의 수치로서 사람들의 의식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이렇듯 언제부터인가 억제된 금욕적 성욕과 정상적인 성행위가, 건강한 신체 그리고 건전한 도덕의 요건이 되었다. 각자는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성, 건전하고 건강한 성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였으며,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저항감 없이 이 사회가 정의한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곤 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성인 남성은 소년과 연애하고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을 동성애자, 양성애자, 소년애자, 이성애자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성의 역사』2권과 3권의 제목에서처럼 고대 그리스인은 성을 정상/비정상의 표지가 아닌, ‘쾌락을 활용’하고 ‘자기를 배려’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들은 소년과 연애를 했을 때조차도 ‘소년’과 성행위를 한다는 사실보다,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가 훨씬 중요한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리스인들의 덕목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성은 과학의 얼굴로, 의학의 눈으로, 법률의 귀로 우리를 도처에서 관찰하고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성의 윤리로부터 근대적인 성 관념으로의 변화는 갑작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 간의 공통점은 도시국가의 수명이 다하고 기독교가 전파되는 지점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의 윤리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서 생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 둘째, 가정에서 아내와 집안사람들에게 행하는 우월함. 셋째, 폴리스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행하는 우월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던가. 그리스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기에 대한 우월감은 가정과 폴리스에서의 우월감의 기반이 되었다. 여기서 수신(修身)이란 ‘절제’를 통해 욕망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함으로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윤리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 누구도 이들에게 공통된 가치나 규칙들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이들 또한 오늘날 우리를 얽매고 있는 도덕적 법칙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윤리적인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면, 단지 ‘절제’와 ‘능동성’을 갖는, 다시 말해 스스로를 고양하기만 하면 됐다. 소크라테스가 존경받은 것은 그가 수입 좋고 이름난 직업 철학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그리스사람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가장 높고 고귀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결혼관습의 변화와, 정치구조의 변화로 인해 크게 흐트러지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격언처럼 그들은 ‘육체적 영원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가서 후손을 얻고, 반대로 정신의 영원성을 얻기 위해서는 미소년에게 가서 그의 머릿속에 자기 생각의 씨를 심어주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제도는 자손을 얻고 양육하거나, 폴리스에서의 피로를 푸는 휴식공간인 가정을 얻기 위해, 신부의 아버지와 미래의 남편사이에 맺은 계약·흥정에 불과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에도 신분제가 남아있는 나라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들(왕후·귀족)들에게 결혼은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두 가족을 혈연관계로 맺어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찾지 않아도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연애결혼보다는 ‘선’봐서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요즘에도 이른바 ‘조건 좋은’ 사람들은 결혼정보업체 등을 통해 일종의 계약으로서 결혼하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그리스 사회에서 로마시대로 점차 이행하게 됨에 따라 결혼에 대한 의식도 변화한다. 이제 부부사이는 말 그대로 단순한 계약이 아닌,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원조하며 정신적 도움을 받는 일종의 ‘동반자 관계’로 변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생활범위가 확장되면서 군주(귀족) 혹은 다양한 사업가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짐에 따라, 집안끼리의 계약 관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진 것과 연관이 있다. 집안 어른보다 군주(벼슬아치)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결혼에서 계약이 갖는 성격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부담을 덜게 되면서 결혼은 지난 세기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워 졌다. 존재가 가치를 규정짓는다고 했던가! 사회제도와 구조가 변하면 사람들의 의식구조 또한 바뀌게 된다. 이제 부부사이는 이전의 종속적이던 관계에서 더욱 깊어져, 책임과 의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비록 오늘날과 같이 평등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밀착된 형태의 부부생활이 요구된 것이다.
이제는 남편 혼자 잘난 척하며 ‘절제’하고, ‘능동적인 관계’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철학 운운하며 산다면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에게 바가지 긁힐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부부의 문제가 된 순간 서로에 대한 의무가 점점 늘어나는 것에 반비례해, 개개인을 개성 있게 만들어준 차이는 점차 사라지고 만다. 이제 스스로 윤리적 주체가 되는 것보다는, 가족에 충실하고 가족의 이름에 종속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변하였고 충분히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나를 철학적 주체로 삼는 것 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진 셈이다.
정치적 틀의 변화 역시 고대 그리스의 윤리와 단절을 가져온다. 제국이 점차 확장하게 됨에 따라 사회제도들은 복잡해지고 동시에 방대해지는데, 이 행정적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관료제가 등장한다. 과거 그리스 사람들은 각자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의 미학에 의거하여 살아갔다. 그래서 최고 권력을 잡은 니코클레스는 자기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는 잠자리를 갖지 않음으로서 다른 시민들에게 우월감을 행사했던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닥치는 대로 소년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취함으로서 니코클레스와는 또 다른 삶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때 니코클레스에게 신분에 따라 행동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알키비아데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른 행동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사람들은 그때의 선택(철학)을 존경한 것이다.
그러나 관료제에서 개인들의 차이는 너무나도 눈에 잘 드러난다. 사실 일개 시골 주사와 도지사간의 철학적인 깊이는 쉽게 알아챌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시골 주사가 철학적인 완성이 클 수도 있으며 고만고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공무원 급수에는 심연의 벽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을 철학적으로 존경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직업을 존경하는 것이 훨씬 쉽지 않던가. 이처럼 사람들은 관료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철학적 성찰 따위는 집어치우는 대신, 눈에 잘 보이는 요소들, 즉 신체적 거동이나 옷, 집, 관대한 몸짓, 소비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치우치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의 철학으로 우월감을 보이기 어렵게 되자, 신분을 드러내는 표지를 강화시킨 것이다.
더불어 관료제의 관료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직업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합당한 윤리적 주체를 스스로 구성했다. 하지만 관료제의 관료는 군대에서의 호칭인 ‘일병 김**’, ‘소위 박**’와 같이 철저히 개성을 죽인, 직책으로서의 개인일 뿐이다. 이들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한다면, 전시에는 ‘즉결 처분’ 평시에도 군교도소를 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이처럼 지위에 따른 윤리적 사고방식을 개인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관료제하에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잦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를 부각하고 남들과 다른 개성을 어필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만 해도 조직에서 짤리기 십상이다. 군인이 생각이 많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표현은, 관료제와 철학이 절대 공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결혼 제도의 변화가 가족적 측면에서 개인의 윤리적 의식 형성을 방해했다면, 정치구조의 변화는 사회적 의미에서의 개인 윤리의식의 형성을 어렵게 하였다. 예전에는 스스로를 지배하고 주인이 될 때, 가정에서도 그리고 폴리스에서도 도덕적 주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방식이 너무 복잡해졌다. 아니 어쩌면 별다른 고민 없이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는 측면에서 너무 쉬워졌는지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의 개인,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주도하고 능동적으로 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고대 그리스 식 윤리는 종말 하였다.
자기 혼자서 건강을 관리하다가 실패한 경우 흔히 의학적 처방이 뒤따른다. 아마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리라. 이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남들과 똑같은 방식이 가장 안심이 된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최고는 될 수 없다 해도 중간은 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완성하는 철학이 실패한 고대 그리스 사회 끝 무렵에는, 객관성·보편성의 윤리가 서서히 마수를 드러낸다.
이전에는 성에서의 윤리가 개인적 측면에서 ‘절제’와 ‘능동성’을 함양함으로서 가능하였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다. 가정의 변화, 정치구조의 변화 앞에서 스스로를 고양시키기만 하면 됐던 윤리는 무가치해 보여 진다. 즉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던 윤리 주체 형성이 실패한 셈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면 제3자가 개입한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결국 ‘IMF구제금융’으로 까지 연결되지 않았던가. 개개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이제 사회는 객관적이며 보편성을 따를 새로운 윤리주체를 요구한다.
인류는 성행위를 쫒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성적 활동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사회적·심리적·생물학적 압박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의 경우 무엇보다도 정액의 ‘손실’이라는 측면에서 그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에로스는 타나토스(thanatos)와 짝을 이뤄 오늘날까지 존재해 왔으리라.
열매의 씨앗이나 동물의 알이 최고의 영양덩어리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일찍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정액은 생명 속에 있는 가장 강한 것을 모아놓은, 생명 그 자체로 보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정액을 보전함으로서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생명으로 충만한 수컷의 우월성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성행위를 귀중한 물질을 소모하는 행위이자 생명력을 빠져나가게 한다는 측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동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는데, 오히려 도교의 방중술(房中術)은 서양의 그것보다도 역사가 오래되었고 훨씬 더 예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허준 선생도 「동의보감」에서 “양생(養生)의 도(道)는 정액을 보배로 삼는다. 이 중요한 보배를 고이 간직하라. 여자 몸에 들어가면 아이가 태어나고, 제 몸에 간직하면 자기 몸을 기른다. 아이를 밸 때 쓰는 것도 권할 일이 아닐진대 아까운 이 보배를 헛되이 버릴 수 있는가. 없어지고 손상됨을 자주 깨닫지 아니하면 몸이 약해지고 쉬이 늙어 목숨이 줄어들게 되리라”고 말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유발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성적행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관능적 쾌락과 생식(2세)의 필요성 등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쾌락의 적절한 활용으로서 스스로 ‘절제’를 통해 해소하였다. 절제란 용어는 대단히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말인데 그 말의 중심에는 항상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는, 능동적으로 자신이 선택하고 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타인의 의지나 강요에 못 이겨 시행하는 수동적인 ‘억제’나 ‘강제’와는 분명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지배와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자기긍정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폴리스가 종말 했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이전만큼 ‘철학적’이지 못했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급변하는 시대에 그냥 살기도 바쁜데, 철학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 고귀한 영혼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성윤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 사랑들이 질적 변화와 필요성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성관계의 유형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객관성·보편성의 미명아래 분석에 의거, 미리 단정된 정확한 숫자의 성행위 횟수, 연령, 체질에 따른 바람직한 체위, 심지어는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계절까지 정해지며, 이것에 벗어나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폭발적 생명력을 내재한 성행위의 고유의 특징 즉 자발성과 능동성은, 획일적인 수동성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사람들은 정언적 명령의 얼굴을 한 보편적 규칙들을 배우며, 그것을 습득할 경우에만 ‘도덕’적인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윤리는 스스로 설정했다면, 새 시대의 윤리는 개개인이 끼어들 공간이 사라진다. 단지 윤리이므로 마땅히 따라야 할뿐! 왜소해진 인간.
소크라테스는 심히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물을 마심으로써, 물을 마실 때마다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배고픔, 목마름, 사랑의 욕망, 수면, 우리가 이러한 욕구들을 가능한 한 최고로 기분 좋게 충족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참았을 때, 비로소 먹고 마시고 사랑을 하고 잠자고 쉬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향연』” 성교를 절제한 소크라테스의 금욕은 결코 쾌락을 포기한 기독교적인 처녀성의 도덕이 아니다. 그의 성에 관한 ‘절제’는 쾌락의 포기가 아니라 더 큰 쾌락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고대 말에 이르러 소크라테스의 ‘절제’는 ‘금욕’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기독교 문명이 시작되면서 영혼은 육체를 경멸하고, 성행위와 쾌락은 그 자체로 악한 것으로 천대된다.
“너 자신을 배려하라”(우리에겐 ‘너 자신을 알라’로 더 잘 알려졌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을 ‘배려’해야 함을 알려줄 뿐이다. 애당초 인간은 하늘이 내려준 것도, 인간의 틀에 스스로를 껴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드는 그것’일 뿐이다. 보편적 윤리나 도덕규범을 개인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이렇다 할 금지 없이도 흐트러짐 없이 스스로 형식과 스타일을 부여하는 삶.
팔이 썩어 절단한 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팔이 잘리기 전과 똑같이 행동할 수 없다. 그렇다고 썩은 팔을 매달며 살면 결국 염증 때문에 몸 전체가 썩게 될 것이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만들어진 주체에 너무나도 익숙해졌기에, 자기를 스스로 만드는 방식을 학습한다 하더라도 신화에 나오는 영웅, 거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익숙해진 우리 사회가 편하다고 마냥 난쟁이로 지내면 안 된다. 당장은 좋을지라도 결국은 우리 자신을, 모든 인간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거인의 포효를 잊지 말자! 그 메아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인내를 요구할 지라도, 건강을 되찾은 자의 맑은 웃음은 심연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으리니.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