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지훈출판 / 2005.12.26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깊이 생각하기,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쓰기, 생각하며 읽기의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한 책. 저자는 사색과 습득을 통해 얻은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며,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사색을 바탕으로 문법, 논리, 수사라는 3가지 기본 형태를 갖추면서 간결한 문체와 적확한 표현으로 쉬운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며 독자 또한 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읽고 생각하기 위한 독서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목차

사색; 깊이 생각하기
사색은 주관적 깨달음이다
사색적인 두뇌와 독서적인 두뇌
스스로 이해하는 힘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
사색처럼 유쾌한 활동은 없다
사색하는 인생은 남다르다
사색하는 사람과 평범한 독서광
책상머리 바보
현실의 세계와 가공의 세계
사색보다 경험을 앞세우는 사람
평범한 것
스스로 결정하는 힘
권위를 앞세우는 사람
아름답고 풍요로운 정신의 행복
영혼과 연인
사색의 가치
자신을 위해 사색하는 사람
생각하는 동물
글쓰기와 문체;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쓰기
모호한 글쓰기_쓰기 위해 쓴 글
글쓰기의 3가지 유형
욕망의 패러독스
번역의 폭력
제목의 중요성
소재의 중요성_참신한 소재와 진부한 소재
언어의 발견과 사색의 상실
붓과 지팡이
낡은 사고
풍자의 위험
불후의 작품
유행의 오류와 전락
쓰레기 작품과 평론
작품의 익명과 가명에 대한 경고
익명의 비평과 사기꾼
멋대로 고치는 문장과 위조화폐
문체와 개성
문체의 독자성
짜깁기 수법과 문법, 논리, 수사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쓰기
간결한 문체, 적확한 표현
문법상의 오류
객관적인 것, 주관적인 것
노력의 결과와 문체
간결한 표현과 사족
문법과 언어감각(1)
문법과 언어감각(2)
풍요로운 사상과 문체의 탄생
객관적인 표현과 문장력
모국어의 죽음(1)
모국어의 죽음(2)
작가의 의식구조
올바른 글쓰기_작가의 양심
분석적인 판단
비유의 기능
언어와 문법의 창조와 파괴
독서; 생각하며 읽기
무지와 쾌락
생각하는 독서
올바른 독서의 기능
눈과 활자의 크기
도서관의 서가
두꺼운 도서목록
고전과 악서
고전을 읽어라
진정한 문학과 거짓 문학
올바른 책의 선택
영원한 생명_진리
옮기고 나서
○ 저자소개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 역자 : 김욱
서울대 신문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서울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언론계 최일선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어려서부터 꿈꿔온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은퇴 후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자 전원생활을 시작했으나 잘못 선 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하며 시제(時祭)를 지내주면서 입에 풀칠한 세월도 있다. 벼랑 끝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떨어지느니 스스로 뛰어내려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각오로 번역에 매진하여 묘막살이를 접고 당당한 가장으로 다시 섰다. ‘한국 생산성 본부’ 출판 기획위원 및 현재는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한국 교직원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간 20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으며 현재는 인문, 사회,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하며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 『희망과 행복의 연금술사』,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성공한 리더십, 실패한 리더십』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지로 이야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의 벽』, 『약간의 거리를 둔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 『니체의 숲으로 가다』, 『동양기행』, 『노던라이츠』, 『지식생산의 기술』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사상은 주관적인 논리와 스스로 터득한 지식을 기초로 세워지는 건축물이다.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 사색은 주관적 깨달음이다. (11쪽)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12쪽)
책의 효용을 비유하자면, 우리가 지도를 통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미로를 거쳐야 하며, 어떻게 그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를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 (16쪽)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다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점이다.
(…)
산의 정상일지라도 오르는 사람의 개성과 방법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 (17쪽)
마치 파이프오르간의 기본 저음이 모든 음계를 관통하여 울려퍼지는 것처럼, 사상가의 철학도 습득된 학문적 지식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 사색처럼 유쾌한 활동은 없다.- (21쪽)
책상에 앉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곧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책상머리 바보 (25쪽)
뛰어난 사람들은 독일제국의 제후처럼 정신의 제국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꿈꾼다. – 스스로 결정하는 힘 (31쪽)
:사색과 습득을 통해 얻은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다.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어떤 환경에서도 구속받지 않는다.
:스스로 이해할 때 생각의 꽃이 핀다.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다.
:사색의 유쾌함을 즐겨라.
:사색하는 인생은 남다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사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그 소재를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최고의 정신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는 데 있다.
:가장 큰 가치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색한 결과에서 얻어지는 사상이다. – (43쪽)
○ 출판사 서평

–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을 전해주는 책. 쇼펜하우어가 만년에 쓴 인생론집『여록과 보유』(1851) 중에서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을 옮긴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가지 요소로 사색, 글쓰기와 문체, 독서를 제시한다. 위대한 철학자가 제시하는 글쓰기와 문장론에 대한 뚜렷한 주장과 명쾌한 논리가 남다른 감흥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사색, 글쓰기와 문체, 독서의 각 장의 글 묶음에 소제목을 달았으며, 각 장의 소제목에 있는 내용의 핵심을 경구처럼 함축시켜 한번 더 음미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글쓰기에 고민하는 수험생과 취업준비생은 물론 글쓰기와 문장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다른 지침을 전해준다.
○ 독자의 평 1
사색, 독서, 작문의 중요성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진부할 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위 지성인 또는 교양인이 되고픈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 능력을 어느 수준 정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독일의 대철학자이자 생(生)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견해는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결과적으로 이 책의 독후감을 쓰는 일이 두렵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독서, 사색, 글쓰기 모두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수준에서)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쇼펜하우어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류에 바로 자 자신이 속하는 건 아닌지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철학자를 평하거나 토를 다는 주제넘은 짓은 자제하고, 개인적으로 인상 깊거나 의미 있었던 내용 일부를 소개하고 감상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 하고자 한다.
독서와 작문의 전제이자 목적인 ‘사색’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일관되게 이 책 내내 강조하고 있다. 사색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단순히 ‘깊은 생각’을 뜻하지 않고 오늘 날 통찰, 사상, 철학의 개념을 차용해서 이해하면 그의 의도를 크게 오해하지는 않을 듯하다. 사색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서양에서 소크라테스 이후 전통적으로 사색을 강조하는 바는 어느 학파, 어떤 부류의 철학자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쇼펜하우어는 자기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책, 권위,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주체적인 자세로 주관적인 깨달음에 이를 것을 주장한다.
그에 도움을 얻기 위해 독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의도로 쓴 책(즉 어떤 책)이냐, 그리고 어떤 의식을 갖고 책을 읽어야 하느냐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상식과 부합하는 측면도 있고, 독서에 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주장도 있다. 가령 본문 중에 ‘거의 하루 종일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근면한 사람일수록 조금씩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책상에서 책과 씨름하며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일수록 주체적인 사색을 하지 못하는 바보라는 뜻이 된다. 어떤 책이든 많이 보는 것이 아예 보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얼핏 동의하기 힘들지만, 책의 저자의 생각에 지배받지 말라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서 산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살 수 있듯이 말이다.
작문, 문법, 문체, 기교와 비평 등에 대해서도 쇼펜하우어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독설적인 비판을 많이 하는데,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인 ‘헤겔’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모국어인 독일어에 대한 사랑은 언어학자 이상의 순수함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으며, 오늘 날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수많은 서적이 쏟아지지만 진실한 작가적 양심만을 순수하게 내세우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 하에서 저술 의도와 목적은 돈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표현대로) ‘서적 철학자’ 또는 (지식 수집가로서의) ‘학자’는 많아도 진정한 ‘사상가’는 찾아보기 힘든 건 그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지적은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래서 대철학자로 역사에 남았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대해 느끼는 바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쇼펜하우어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책에 대해서만 예외를 둔다면 대철학자로서의 자격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다음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에는 (160년이 지났음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인류의 철학이야말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철학이 죽어가고 있다.”
○ 독자의 평 2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을 읽다. 몇 일 아니 몇 주전에 읽은 문장론인데 게으름이 온 몸을 감싸고 있어서 이제서야 이 책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정리한다. 쇼펜하우어, 실제 많이 들어는 봤으나,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철학자이다. 이 책을 보던 시기는 한참 글에 대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관련 책들을 뒤지던 때였다. 이때 지인의 추천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몇 장 안 되는 페이지에 크기 또한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가벼운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써야 할 지를 이야기 한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흥미를 느끼고 집중한 부분은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글쓰기와 문체’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색’, ‘독서’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생각을 따라 그 생각에서 배움을 얻으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 역시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무조건 읽으려 하고, 배우려 한다. 비판은 그 다음이다. 내 생각은 저자의 생각에서 다분히 파생된 약간의 변형된 생각 뿐이다. 그런 결과 나의 생각들은 어느 책에서 읽은 그 저자의 생각, 또 다른 책에서 읽은 저자의 생각들, 그 생각들의 연결고리 없는 합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고 그간 공부해온 내 시간들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깨달음이 사색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이 일었다. 독서에만 관심을 가지고 객관적인 앎에만 초점 맞춰졌던 그간의 노력이 독일의 염세주의자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통해 한 단계 더 발전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절감했다.
다음은 문장론을 통해 채찍으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뜨인 문장들이다.
“학자란 타인이 남긴 책을 모조리 읽어 버리는 소비자이며, 사상가란 인류를 계몽하고 새로운 진보를 확신하는 생산자라고 표현 할 수 있다.”
“독서는 사상의 분출이 잠시 두절되었을 때 이를 만회하기 위한 휴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독서를 위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잃게 한다.”
헤겔과 앙숙지간 이었던 쇼펜하우어 그의 말처럼 스스로 사색하는 자의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답고 생생한 회화에 비유 할 수 있다. 책상머리 바보가 아닌 아름다운 사색가. 그 모습을 그리며, 조금씩 깨우쳐 나간다. 그리고 평생 공부라 일컬어지는 철학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기고 있다. 독일의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프랑스의 데카르트 그리고 철학자는 아니지만 데카르트에 관심을 가지게 한 폴 발레리 그들의 생각들을 조금씩 좇아가고 싶다.
○ 독자의 평 3
글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상을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로 담아내고, 신작보단 고전으로 돌아가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독서를 하다보면 아주 가끔씩 이상한 일을 겪곤 한다.내용이 갑자기 머릿속이나 가슴속에 확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보통 이런 경험은 읽다가 다시 뒤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는 잘 쓰여진 책에서나 가능했다. 위 책은 정말 오랜만에 정신이 맑아지며 작가가 내게 다가오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던 저서이다. 쇼펜하우어의 문체는 정말 간결하고 단호하다. 그가 한 줄 한 줄마다 확고한 신념과 명확한 사상을 담은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문체는 그가 당대를 비판하였듯이 오늘날에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문체는 신념의 표현인데, 신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채 저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혹은 학술지 등을 보면굉장히 난해한 단어로 도배가 되어 있거나 불분명한 표현 및 오탈자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학자나 작가는 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인데, 위같은 행위는 무책임하며 책임회피적이다. 그들은 -판단된다, 사료된다, 평가된다 등의 불분명한 3인칭의 문체를 쓰면서 사상을 전개하는데 이는 자신이 도망갈 구멍을 열어두는 비겁한 행위이다. 게다가 어떤 작가는 대놓고 문법을 파괴하며, 온갖 수식어로 치장하여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책 말미에는 해당 서적에 대한 온갖 찬양만이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저서에 담긴 자신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을지 의문이다. 사상이 명확할수록 글 또한 간단명료하며 누구나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이들이 판을 친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사실 명예와 부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오늘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지듯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학계에서까지 파렴치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 물론 그들이 필자보다는 학문적 업적을 쌓았겠으나, 부를 위한 불법행위는 한순간에 그들의 명예를 몰락시킬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에는 복면을 쓴 괴한들이 즐비하다. ‘익명성’의 어둠 속에서자신을 드러낸 정직하고 올곧은 저자 혹은 일반인을 향해 온갖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이는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당연하다 여겨질 지 모르나, 쇼펜하우어의 입장에서 가면을 쓰는 행위는 책임감을 결여한 파렴치한 이들에 불과하다. 필자의 입장도 이와 같다. 이는 비겁한 행위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은 정당하게자신을 드러낸 인간과 인간과의 대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동은 언어폭력이다. 쇼펜하우어가 살던 당시의 독일의 상황은 오늘날의 국내 상황과 비슷한 듯하다.양심과 책임, 정의, 도덕, 문법, 모국어 등 그 어떤 것도무엇이 옳고 그른 지경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자신만의 확고한 사상을 구축하여 이를 토대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 보았으나, 필자는 그가 얘기했던 일반인과 같아 여전히 가치판단에 혼란을 겪고 있다. 올바른 것이 올바른 것이 되지 않는 사회. 아닌 것이 맞는 것으로 되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한다. 잠시 멈추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분노할줄 알아야 한다.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이 아닌 ‘분노’해야 한다. 저서의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하며, 신간이나 자기개(계)발서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명확한 사상이 담긴 고전으로 되돌아가야 하겠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