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슈바이처의 유산
알베르트 슈바이처,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 / 시공사 / 2003.11.1
막대한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 그의 인생은 1947년 10월 6일 배달된 「라이프」에 실린 슈바이처에 대한 기사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원주민에게 봉사하는 노의사의 삶에 크게 감명을 받은 멜런은 그 자신도 전 생애를 바쳐 아이티 오지의 원주민을 위해 봉사하면서 슈바이처와 18년간 계속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 책은 두 사람이 1947년부터 1965년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으로, 스승과 제자에서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이 지금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전하는 삶의 해답이 스며들어 있다.
○ 목차
추천의 글 …4
들어가는 글 …6
제1부 세상의 초석이 될 사람(1947-52) …15
제2부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니까요(1952-59) …77
제3부 영혼을 나눈 형제(1959-65) …191
부록1. 『라이프』지의 기사 …226
부록2. 잭 보의 편지 …229
주석 …236
옮긴이 후기 …243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
– 저자 : 알베르트 슈바이처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할아버지와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과 신앙의 영향 속에서 자랐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1899년 칸트의 종교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 1900년 성만찬 연구로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부 강사로 활동하다 1904년 의료 선교에 대한 뜻을 정하고 1905년부터 의박 공부를 시작, 1913년 예수의 정신질환 이론에 대한 비판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로 떠나 의료 선교를 시작했다. 의학 공부 증 1906년에는 ‘예수 생애 연구사’를 출판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신학 연구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인이었던 슈바이처는 1917년 프랑스령이었던 랑바레네에서 포로로 잡혀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의사로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8년에 석방되어 연주, 강연 등으로 모금활동을 하고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생을 다할 때까지 의료 선교에 힘썼다.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1965년 91세에 랑바레네에서 딸의 바흐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저자 :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

윌리엄래리머멜러주니어 910년, 미국의 재벌 멜런 가에서 윌리엄 래리머 멜런 시니어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을 중퇴하고 걸프 오일과 멜런 은행에 근무했으나 가업을 잇지 않고 애리조나에서 목장을 운영했다. 37세에 우연히 슈바이처를 알게 되며 슈바이처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수년간 의학 공부를 한 뒤 아이티 데샤펠르에 알베르트 슈바이처 병원을 설립한다. 슈바이처와 18년간 우정을 쌓았고 아이티에서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트라스부르 대학 신학과의 젊은 교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05년 30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벌써 세 권의 저술을 가진 작가였으며, 음악[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905], 종교[예수 생애 연구사][1906], 철학 방면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거둔 학자였다. 또한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자로 명망이 높았고, 교회 부목사[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 1910]로, 신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1913년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당시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현재는 가봉 공화국인 된 그곳 랑바레네에 병원을 열기에 이른다. 1920년에 그는 이곳에서 활동한 사연을 모아 이 유명한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집필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거의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들과 오고우에 강 유역에 병원을 지은 이야기, 그리고 원주민을 더욱 존중하게 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슈바이처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 국적을 가진 두 사람은 의료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급기야 아프리카를 떠나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구금당한다. 1924년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설과 모금 활동을 위해 유럽을 다녀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1928년에 괴테상을, 195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65년 90세에 병원 일을 돌보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랑바레네의 병원 주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 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E.M.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20만 매에 달하는 번역 원고를 주무르는 동안 글에 대한 안목이 희미하게 생겨났고 번역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유현한 문장의 숲을 방황하는 동안 흘낏 엿본 기화요초의 추억 덕분에 산문 30여 편을 모아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자일득(愚者一得: 어리석은 자도 많은 궁리를 하다 보면 한 가지 기특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의 넉자를 마음에 새기며 더 좋은 번역, 글을 써 볼 생각을 갖고 있다.
○ 출판사서평
얼마 전 한 중소기업 회장이 305억 재산을 기부한다고 해 한 차례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는 액수―로또 당첨금보다 많다―이리라. 연일 들리는 이야기라고는 차 트렁크에 100억을 실어 보냈다느니 파출부 아줌마가 굴러다니는 돈다발을 청소했다느니 하는 현실감 없는 기사뿐인데, 간만에 접하는 미담에 많은 이들이 반가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아직도 TV 모금 방송에서 수천만 원씩 기부하는 얼굴에는 별 감흥이 일지 않으니, 아마도 한국에서 부자는 아직 ‘돈 많은 놈들’일뿐 존경받는 상류층이 되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상류층이다. 하지만 손가락질을 받는 일부 부자들뿐 아니라 우리들까지 뜨끔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는 멜런 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멜런 가는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149위를 차지한 멜런 파이낸셜과, SK(주)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를 합작 설립하며 우리나라에 알려진 걸프 오일, 그 외에도 암코와 알코아 같은 대기업을 소유한 재벌 가문이다. 또한 카네기멜런 대학을 공동 설립하고 재무장관을 배출한 미국의 명문가이기도 하다. 이런 가문 출신의 주인공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후계자 수업에 들어 갔지만 경영에는 별 뜻이 없었고, 시골로 내려가 목장을 운영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인생은 1947년 10월 6일 배달된 『라이프』에 의해 완전히 방향을 틀게 된다.
그가 본 것은 바로 알베르트 슈바이처에 대한 기사였다. 생소한 이름의 그 노의사가 보여 준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그는 크게 감복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 가야 할 새로운 삶의 방향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곧장 슈바이처에게 편지를 썼고, 슈바이처는 멜런에게 아버지와 같은 책임감을 느끼며 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멜런은 수년 동안 의사가 되기 위한 힘든 공부를 견뎌 냈다. 그런 다음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인 아이티의 아르티보니트 계곡을 찾았다.
화장실도, 마땅한 배수 시설도 없는 그곳에서 멜런은 처음 지독한 열대병과 폐결핵을 겪는다. 하지만 그는 전 재산을 털어 그곳에 병원을 지었고, 자비로 의사들을 고용했으며, 무료로 환자들을 돌보고, 교육 시설 등을 마련했다. 슈바이처는 죽는 날까지 멜런과 편지를 나누며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18년간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것들과, 병원의 인력을 뽑는 방법, 사람들을 관리하는 법 같은 실용적인 지식에서부터 자신의 종교와 철학, 봉사하는 정신에 대한 마음까지 멜런에게 하나하나 물려 주었다. 슈바이처와 멜런은 스승과 제자에서 같은 곳을 향해 걷는 동료이자 형제가 되었다. 멜런은 슈바이처가 그러했던 것처럼 1989년 파킨슨 병과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이티에 슈바이처의 사상을 전파했다. 멜런을 도와 봉사에 힘썼던 아내 그웬 멜런은 2000년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현재 아이티의 알베르트 슈바이처 병원에는 멜런의 자식과 손자들이 슈바이처와 멜런 부부의 뜻을 잇고 있다.
이 책에 담긴 큰 감동은 “어떻게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슈바이처의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류층의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선량함이라는 힘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낸 용기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책은 한 아름다운 영혼이 타인과 인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울림으로 말하고 있다. 쌍문동 슈바이처, 몽골의 슈바이처 등 오늘도 세계의 각 지역에서는 새로운 ‘슈바이처’가 탄생하고 있다. 이렇게 슈바이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어떠한 학문적인 업적보다 이루어 내기 어려운, 숭고한 인류애와 그의 사상을 잇는 멜런과 같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종종 저희에게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용기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박사님을 생각하면 다시 힘을 얻어 인도주의의 길로 나서게 되지요. ― 멜런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행동하는 용기’ 그리고 ‘그의 영혼을 따르는 사람들’을 인류에게 물려 준 슈바이처와 멜런. 이 책에 담긴 편지들은‘내가 부자라면 저렇게 살지 않겠다,’혹은 ‘돈만 많으면 베풀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우리들을 뜨끔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만약 두 사람에게 부러움이 생긴다면 그것은 많은 재산이나 지고한 명예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용기 있게 그 해답을 따라간 결단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연히 배달된 한 권의 잡지가 멜런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듯, 우연히 집어 든 이 책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보여 줄지도 모를 일이다.
○ 독자의 평
이 책은 참 특이하다. 간단한 설명이 나온 뒤에는 전부 편지들로만 이어져 있다. 슈바이처 박사와 그의 자극을 받아 같은 길을 걷게 된 후배가 18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놓은 것이다. 해상도가 좋지 않은 흑백 사진도 여러 장 들어 있다. 슈바이처 박사의 인류애를 실천한 삶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나처럼 그냥 감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감히 모범을 따른 사람이 있었구나. 명문 재벌가의 아들, 성공한 사업주로 약속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서른일곱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멜런의 삶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자식을 의대로 진학시키려 하고 저마다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십억 만들기 붐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