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 : 나의 청춘 5000마일
레슬리 스크리브너 / 동아일보사 / 2005.8.31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 (원제 TERRY FOX; HIS STORY)는 캐나다의 국민적 영웅 테리 폭스를 다룬 평전입니다. 테리 폭스는 암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암 연구 기금 모금이라는 공공선을 위해 캐나다 대륙횡단에 나섰던 인물입니다. 개인적 동기에서 시작된 여느 인간 승리 이야기와 달리 이타적인 동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점에서 테리는 더욱 빛이 납니다. 그의 삶을 다룬 이 책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역경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 국내에서는 해마다 10만 명의 암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미약하기만 합니다. 암을 이기기 위한 연구기금도 기대에 못 미칩니다. 이런 때에 암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테리 폭스’ 평전이 나온 것은 국내 암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목차
테리가 달린 길 지도
추천의 글 하나/ 조안 배론 –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 회장
추천의 글 둘/ 김성규 – 1급 장애인
저자 서문
1. <오즈의 마법사>보다 더 굉장한 모험
2. “모든 일이 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면”
3. 수줍음 타는 아이
4. 운명의 장난
5. 깡 마른 송아지에서 근육질 청년으로
6. “엄마 캐나다 대륙을 횡단할래요”
7. 희망의 마라톤 일기
8. ‘진짜 기사 거리가 될지 한 번 알아봐’
9. 온타리오의 열광
10. 영혼을 고양시키는 달리기
11. 너무나 고통스러워 숨조차 쉴 수 없다
12. 옛날의 적과 다시 맞서 싸우다
13.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 용기있는 영혼
14. “그는 우리 마음 속에서 언제나 달리고 있어요”
15. 함께 했던 사람들의 추억
16.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어요”
테리 폭스의 짧지만 큰 삶
○ 저자소개 : 레슬리 스크리브너
– 역자: 용호숙

○ 책 속으로
1980년 4월 12일 테리 폭스는 캐나다의 동쪽 끝 세인트존스 해변에서 뒷짐을 진 채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의 마음은 먼 해변에 고정되어 있었다. 8530km의 먼 거리, 10개 주에 이르는 거대한 캐나다가 그의 눈앞에 꿈처럼 펼쳐져 있었다. 잠시 뒤면 그는 캐나다 횡단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디게 될 것이었다.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주의 세인트존스에서는 평범한 몽상가들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대서양의 거대한 바위섬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이 도시는 대륙 횡단 여행가들의 출발점이거나 혹은 종점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테리 폭스처럼 강하고 확신에 차서 대륙 횡단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어쩌면 일주일에 한 명 정도씩은 나올 만큼 흔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큰 꿈을 위해 캐나다 대륙을 뛰거나 혹은 자전거로 횡단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좀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혼자만의 고독한 행사로 그치기도 한다. 겨울이 여전히 떠나지 않아 추운데다가 비까지 내리던 이날 아침. 세인트존스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대륙 횡단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비는 조촐한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무리 가운데 테리는 단연 눈에 띄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 덕분에 그는 캐나다 암연구센터와 국영방송 CBC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방송 카메라는 그의 출발을 녹화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테리는 잘생긴 얼굴에, 건강한 치아를 가진 곱슬머리 청년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다리였다. 왼쪽 다리는 성했지만 오른쪽 다리는 의족이었다. 무릎 위 15센티미터까지 다리를 잘라냈기 때문에 그 아래는 다리를 감싸는 통 (bucket)과 강철 심을 그대로 드러낸 의족을 차고 있었다. 장애인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보잘것없는 다리를 드러냈다. 추운 날씨에도 그가 짧은 팬티를 입은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반면 왼쪽 다리는 누구의 다리보다도 더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다.(26~27p)
포코(PoCo)의 농구팀 코치인 플레밍은 병원으로 테리를 만나러 가면서 무척 초조해했다. 내일이면 다리를 절단해야 될 처지의 젊은 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적잖이 고민되었던 것이다. 테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코치는 테리에게 뭔가 낙천적인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그는 최신판 <러너스 월드 (Runner’s World)>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이면서 뉴욕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던 딕 트라움 (Dick Traum)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테리는 처음에 그 잡지를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치는 언젠가 테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사실 테리가 그 기사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기사를 본 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나도 그 사람처럼 뭔가를 해볼 수 있을까? 나도 달릴 수 있다면, 어쩌면 캐나다 대륙을 횡단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물론 당시 그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구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구체화됐다. “불가능한 꿈이었죠.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어요. 잡지를 보면서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었지요. 그러다가 그가 해냈다면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또 그것을 해냅니다. 물론 꿈일 뿐이었지요. 저도 믿을 수 없었어요. 제가 다시 걸을 수 있으리라고는 저 역시 알 수 없었으니까요.” 테리는 자신이 왜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캐나다를 횡단하려고 마음먹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뉴욕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거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횡단하는 꿈을 세우지 않고 왜 하필 캐나다 횡단이었을까. “글쎄요. 왜 그렇게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도전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포기하기 싫어하는 성격, 아마도 그것 때문일 거예요. 해야겠다고 마음먹자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졌습니다. 어정쩡한 것은 싫거든요.”
3월 9일 아침 6시 주디스 레이가 도착했을 때 병원에는 부모님과 형 프레드가 함께 있었다. 테리의 수술 시간은 오전 8시로 잡혔다. 그날 가장 먼저 시행하는 수술이었다. 테리는 레이를 보자마자 그 전날 플레밍이 가져다 준 잡지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언젠가 그 사람처럼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71~72p)

○ 출판사 서평
<개요>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 (원제 TERRY FOX; HIS STORY)는 캐나다의 국민적 영웅 테리 폭스를 다룬 평전입니다.
테리 폭스는 암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암 연구 기금 모금이라는 공공선을 위해 캐나다 대륙횡단에 나섰던 인물입니다.
개인적 동기에서 시작된 여느 인간 승리 이야기와 달리 이타적인 동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점에서 테리는 더욱 빛이 납니다.
그의 삶을 다룬 이 책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역경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 국내에서는 해마다 10만 명의 암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미약하기만 합니다.
암을 이기기 위한 연구기금도 기대에 못 미칩니다. 이런 때에 암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테리 폭스’ 평전이 나온 것은 국내 암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주요 내용>
이 책은 캐나다의 최고 영웅 테리 폭스의 감동적인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인상적으로 그린 평전입니다. 저자는 캐나다 유수 일간지 ‘토론토 스타’ 기자 레슬리 스크리브너 (Leslie Scrivener)로, 테리 폭스의 대륙 횡단 ‘희망의 마라톤’을 취재한 뒤 테리의 일기, 테리 생전의 인터뷰, 테리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등을 재구성해 이 평전을 완성했습니다. 저자는 유려한 글솜씨로 독자들이 마치 테리 폭스와 함께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특히 테리 폭스가 왜 달려야 했으며, 달리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얻었으며, 그리고 테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영웅이 되어갔는지를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좋아하고 무슨 일에든 집중력을 갖고 열심히 하던 테리는 17세이던 1976년 겨울 오른쪽 다리에 종양이 생겨 병원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결국 이것이 당시만 해도 완치율이 아주 낮았던 암인 악성 골종양 (Bone cancer)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사들은 처음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지만 결국 암세포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수술 전날 테리는 자신이 따르던 농구 코치 플레밍의 병문안을 받습니다. 플레밍은 테리에게 마라톤 잡지 ‘러너스 월드’를 던져줍니다. 거기에는 뉴욕마라톤에 휠체어를 타고 출전해 완주한 딕 트라움에 대한 얘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본 테리는 ‘나도 그 사람처럼 뭔가를 해볼 수 있을까? 나도 의족을 하고 달릴 수 있다면, 어쩌면 캐나다 대륙을 횡단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 그는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아무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처지였지만 그 아이디어는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수술한 뒤 한쪽 다리가 없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테리는 주변의 도움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10대 후반이었지만 소아병동에 머물게 된 테리는 그곳에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암으로 고통 받고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무척 안타까워 합니다. 자신도 화학요법을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나가고 몸이 말라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의 암 극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테리는 암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연구가 우선적이라고 생각했고, 암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한 캐나다 대륙횡단 마라톤을 기획하게 됩니다. 이후 테리는 1년반 정도 준비기간을 갖습니다. 처음엔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나중엔 의족을 차고 걷기 연습부터 하지만, 마침내는 걷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제법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됩니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무렵 그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희망의 마라톤 (The Marathon of Hope)이라고 이름 붙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갑니다. 포드 재단에 편지를 띄워 잠을 잘 수 있는 캠핑용 차를 지원 받고, 둘도 없는 친구 덕을 설득해 차를 운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1980년 4월 11일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캐나다의 동단 뉴펀랜드의 세인트 존스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테리는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테리는 전체 8000km에 이르는 여정을 완주하기 위해 거의 쉬지 않고 하루에 28마일 (약 42km)씩 달리기 시작합니다. 매일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테리는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달리기 여정은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테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먼저 캠핑차를 운전해 1마일 앞으로 나가 기다리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던 친구 덕과도 불화가 생깁니다. 거기에다 살을 에는 추위, 사람들의 무관심, 의족의 고장과 절단 부위에 생기는 상처 같은 문제들이 ‘희망의 마라톤’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테리의 의지는 더욱 강해집니다. 처음엔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서서히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십시일반 기금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은 대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사회 분위기였지만 테리는 자신의 ‘치부’이기도 한 의족을 드러낸 채 달리기에 나섰다는 것에 사람들은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암 연구기금이라는 이타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테리가 수많은 고난을 딛고 143일을 달려 캐나다 대륙의 3분의 2 (5373km)를 횡단했을 무렵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암이 재발했고, 암세포가 허파로 전이돼 ‘희망의 마라톤’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전 국민이 이를 슬퍼했고,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그는 “설령 제가 끝을 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희망의 마라톤을 계속할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 없이도 계속돼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희망의 마라톤’ 기간에 300억원의 암연구기금이 조성됐고, 이후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아 전세계 56개국에서 해마다 ‘테리 폭스 달리기 대회’를 개최하면서 암연구기금을 조성해 이제까지 2억5000만달러가 모였으며, 수많은 암 연구자들이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가고 없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캐나다에서는 테리 폭스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25주기를 맞아 올해 봄 캐나다는 1달러 화폐에 테리가 달리는 모습을 새겨넣었고, 9월 16에는 캐나다 전역의 학교에서 같은 날 ‘테리폭스달리기’를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테리 폭스 달리기’는 국내에서도 1991년 25명이 시작해 해마다 참가 인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3000여명이 참가해 그의 뜻을 기렸고, 이제까지 모인 25만142달러가 암퇴치기금으로 한국의 연구단체에 기증되었습니다. 올해 테리폭스달리기 (주한캐나다상공회의소 주최, www.ccck.org/social_event/terryfoxrun_info_kor.htm)는 9월 10일 여의도에서 개최됩니다. “노력하기만 하면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꿈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라고 말했던 테리 폭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 추천의 글
저는 제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테리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테리는 저 개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왔고,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이 뭔가 큰일을 해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수천억 원에 이르는 암연구기금뿐만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가 보여준 용기와 단호함, 그리고 헌신이라는 위대한 정신입니다. 이 책을 통해 테리의 진면목을 알고 여러분의 삶도 크게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_ 조안 배런 ·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 회장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인 테리가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도 달리기 힘든 그 먼 여정을 의족을 한 채 수없이 엎어지고, 물집이 잡히고, 피를 흘리며 달렸다. 그는 걸은 게 아니라 달렸다. 왼쪽 다리로 두 번 쿵쿵 뛰고 다시 의족으로 땅을 쾅 박차고, 다시 두 번 쿵쿵 한 번 쾅 이렇게. 손은 단호하게 움켜쥐고, 균형을 잡기 위해 엉덩이를 있는 대로 씰룩거리면서 어깨까지 동원해 희망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_ 김성규, 1급 장애인
“대한민국에 2002년 월드컵의 열광과 영광이 있었다면 캐나다에는 테리 폭스에 대한 열광과 하나됨이 있었다.” – 브라이언, 캐나다인 강사
<저자의 글>
1980년 여름 테리 폭스가 한쪽 다리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모습에 열광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테리는 용기와 기쁨 그리고 가슴 저린 아픔을 함께 줬던 그해 여름의 청춘으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동안 테리가 자랑스러워한 고국 캐나다에서 테리를 지지해 온 캐나다인들뿐만 아니라 암 치료 해법을 찾는 데 바친 테리의 꿈과 노력에 감동받은 전세계 사람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 (원제·Terry Fox: His Story) 1판은 테리가 살아 있을 때 출간됐다. 이번 재개정판은 그의 ‘희망의 마라톤’ 20주년을 기념해서 출간됐으며, 테리의 유산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 놓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모은 2억 5000만 달러 (약 2150억 원)의 암연구기금,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야기, 기금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과학자들의 암 퇴치 연구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고통을 견디며 캐나다의 도로 위를 쿵쿵거리며 달렸던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선물은 역시 ‘희망’이라는 메시지 아닐까. 이 책은 테리의 동생 대럴 폭스가 다시 한 번 테리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요청해서 나오게 됐다. 나는 테리에 대한 책을 다시 한 번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 드린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테리를 알게 된 사람들과 얘기하기 전까지는 테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얼마나 생생하고 감동적인 체험을 안겨줬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나 역시 그로 인해 삶의 큰 줄기가 바뀌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쓰면서 결국 나는 굉장한 즐거움과 특권을 누린 셈이다.

○ 의족으로 5373㎞ 뛴 캐나다 영웅 테리 폭스, 암 연구 기금 위해 143일간 달려… 암 전이로 22세에 사망
“나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테리 폭스가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단체에 지원을 요청한 편지)
캐나다 위니펙에서 태어난 테리 폭스는 고등학교 시절 올해의 육상선수로 선정될 만큼 촉망받던 운동선수였다. 사이먼 프레이져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교내 농구팀 주전으로 활동했고 대학 졸업 후 체육교사가 되는 꿈도 꿨다.
이 소박한 꿈은 어느날 갑자기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나이 만 18세에 골육종 (무릎뼈에 생긴 암) 진단을 받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이다. 16개월간의 항암 치료와 재활 훈련 끝에 그가 얻은 건 다리 대신 의족.
그 순간 그에겐 다시 해야할 일이 생겼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암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암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테리 폭스는 암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자신이 의족을 달고 캐나다를 횡단하는 마라톤을 해 암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시 캐나다 국민이 2400만명이었는데 테리 폭스는 국민 1인당 1달러씩 총 2400만 달러를 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암 단체 등에도 편지를 써 자신의 계획을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의 계획에 무관심했고 가까운 이들은 그를 말리고 나섰다. 성공할 리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 4월 테리 폭스는 결국 무관심 속에서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시작했다.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에서부터 매일 약 42km씩 달려 서쪽 끝 빅토리아 태평양까지 닿겠다는 계획이었다.
그에겐 매일 매일이 도전이었다. 부어오른 오른쪽 허벅지 살갗이 의족에 쓸려 피가 흘러내렸고 발바닥은 물집으로 엉망이 됐다. 하지만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언론에 “저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인터뷰했다.
폭스 테리는 143일간 매일 42km씩 달렸다. 그 사이 폭스 테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유명 인사들도 그를 지지하며 모금에 참여했다.
테리 폭스의 계획은 순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44일째 되던 9월1일 온타리오 주 선더베이를 지나던 그의 발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침으로 숨이 가빠지더니 급기야 쓰러지고 만 것이다. 5373km를 달린 지점이었다.
진단 결과 암이 폐로 전이된 상태. 테리 폭스는 치료를 위해 마라톤을 멈추고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온 테리 폭스에게 캐나다 정부는 국민 훈장을 수여했다.
1980년 올해의 선수로 꼽히면서 캐나다 최고의 운동선수 중 한명으로 인정받았고, 1980년~1981년 2년 동안 ‘올해 캐나다의 뉴스메이커’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1년 2월 그가 목표로했던 2400만 달러의 기금 모금도 완료됐다.
테리 폭스는 그 해 6월 28일 생일을 하루 앞둔 22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라톤을 끝내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1981년부터 매년 약 60개국에선 그가 달리기를 멈춘 9월의 어느날을 정해 테리 폭스 달리기 (Terry Fox Run)를 개최하고 있다. 수만 명이 참석하는 이 대회는 기록도 우승자도 없는 ‘암 연구를 위한 1일 자선 운동’ 형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테리 폭스 달리기가 열린다.
캐나다에선 테리 폭스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건물과 도로, 공원 등이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같은 삶은 1983년 ‘더 테리 폭스 스토리’ (나의 청춘 5000마일)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됐다. 이 영화는 1984년 캐나다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등 5개 부무을 수상했다.
테리 폭스는 최근까지도 캐나다 최고 영웅으로 꼽히는 등 캐나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_ 머니투데이, 2016.06.28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