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시간과 권력의 역사
외르크 뤼프케 / 알마 / 2012.1.2
-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 인간은 어떻게 시간을 소유했는가
일주일은 언제부터 7일이 되었을까?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 2001년? 요일은 어째서 행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까? 이런 질문의 답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기 위해 달력이 필요하다. 달력은 일상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다. 『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이렇게 ‘일상적인’ 달력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의 수단이었는지,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달력을 조명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과 민회가 열리는 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거나, 개력을 통해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등, 책은 권력 통제의 수단으로 달력이 이용된 다양한 예를 보여준다. 이미 고대부터 달력은 시간을 객관적으로 측정해 중립적으로 구성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달력에 대한 지배는 인간과 인간의 의식에 대한 지배를 의미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달력의 역사를 살펴보고 시간을 표시해주는 달력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의 수단인지 알려준다. 아울러 시간과 권력에 대한 근본적이고 놀라운 통찰력을 던져준다.

○ 목차
01 달력, 달력 그리고 달력
달력은 곧 역사가 아니다│달력은 작은 변화의 역사가 아니다│달력은 문화의 역사가 아니다│달력 문화와 문화 달력│달력과 사회의 상관관계│달력의 문화사
02 로마의 달력, 태양 또는 달
멋지게 빛나는 달│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시간 기호와 시간 제작자│달력이 문자화되다
03 시간의 전문가들, 농부와 선원 그리고 수도사
자연과 달력의 시간│천문학과 항해│시에스타를 정오 이후로 정한 이유
04 시간을 법으로 규정하다
플라비우스의 배신│달력의 새로운 규정│은행 휴무일 아니면 법정 휴일│법과 시간 경제학
05 인간과 신의 시간
신들이 소유한 시간│콘스탄티누스가 제정한 일요일에 관한 법│축제의 기쁨을 노래하다│축제일의 제정에 관하여│달력에는 나와 있지 않은 축제들
06 변화 속의 축제
지역에서 만들어진 축제력│초기 기독교의 축제력│도시와 농촌의 축제│결혼식과 축제 참가자들│축제를 지속시키는 요인들
07 달력을 둘러싼 역사
벽걸이 달력 속의 시詩│달력이 지닌 역사 기록의 성격│기억은 장소와 연결된다│읽을거리로서의 달력│달력 속으로 그림이 들어오다│달 이름으로 시를 짓다
08 달력으로 역사를 쓰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시인│오비드는 어떻게 파스티를 사용했을까?│달력에 주석을 다는 작업은 언제 하는가?│달력이라는 장르의 가능성과 한계│오비드의 시적인 기획│달력은 어떻게 읽는가│달력 속의 역사적인 것과 달력을 둘러싼 역사적인 것│비텐베르크의 파울 에버│달력의 여러 가지 형태│달력의 역사적 흐름
09 달력에 숨어 있는 정치
달력에 대한 정치적인 개입│달력 이름의 변화│대리석 달력들은 왜 일찍 사라졌을까?│축제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에 대하여│근대 정치와 축제의 정치성│달력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다
10 머릿속의 달력
요일을 알려주는 소리들│연, 월, 주, 일; 시간 의식의 구조│일요일에 관한 짧은 이야기│일주일을 며칠로 정할까
11 달력과 시간 속에 담긴 의미
행성과 별자리│달력의 시간 조합술│기원후 2000년 새천년의 시작
12 달력이 정치를 바꾸다
카이사르의 개력; 끝이 없는 해│두 개의 유럽 달력; 그레고리우스 개력│프랑스의 개력이 실패한 이유│일본에서의 그레고리력
13 시계 없이 네 번째 1000년으로
감사의 말│용어풀이│주│참고문헌
○ 저자소개 : 외르크 뤼프케 (Jorg Rupke)
저자 외르크 뤼프케 (Jorg Rupke)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포츠담대학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를 지냈고, 1999년부터 에르푸르트대학에서 비교종교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독일학술진흥재단DFG의 후원으로 진행된 로마 종교에 관한 연구 사업에 참여했으며, 소르본대학 (2004년)과 스탠퍼드대학 (2005년)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로마의 종교 개론 Die Religion der Romer: Eine Einfuhrung》 (2006), 《로마제국의 종교 집단: 형태와 경계 그리고 업적 Gruppenreligionen im romischen Reich: Sozialformen, Grenzziehungen und Leistungen》 (2007, 편저) 들이 있다.
– 역자 : 김용현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무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지겐대학교에서 일반문예학, 독문학, 미디어학을 수학했고, ‘미디어사회에서의 문학적 글 읽기’라는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서와 이해, 문학 교육, 번역 등에 관해 연구하면서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 책 속으로
01 달력, 달력 그리고 달력
여기까지 봤을 때 고대에 만들어진 것 가운데 달력만큼 지금까지도 그 형태에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것도 거의 없다. 그래서 달력의 개정과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역사라는 재미보다는 따분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달력의 역사는 타성과 단조로움, 실패한 개혁의 이야기다. 달력은 역사가 아니지만, 역사가 아니라는 그 사실 때문에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주목받는 다른 문화사의 경우를 보면 단추와 속옷의 형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달력은 왜 고대 중부 이탈리아의 농경사회부터 현재의 세계화된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 p.13
02 로마의 달력, 태양 또는 달
달은 누구나 큰 비용을 들이거나 힘들이지 않고 그 모양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적인 시계다. 하지만 이 시계를 이용해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기는 어렵다(하루나 이틀 정도 어긋날 수 있다). 그래도 약속을 준비할 수는 있다. 달이 꽉 찰 때마다 열리는 월례 행사를 위해서는 그 어떤 신문도 필요 없다. 이런 행사는 철기시대의 이탈리아반도와 서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달과 비교했을 때 태양은 요구하는 것들이 더 많다. 즉 태양의 운행과 아침이나 저녁노을 즈음에 뜨고 지는 별들을 관찰하는 데에는 필요한 것이 더 많다는 말이다. 예컨대 제도화된 기억이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갖춰졌다고 해서 그 결과가 그렇게 정확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낮이 다시 길어진다는 주장은 몇 주일이 지나서야 마침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태양에 따른 역법을 사용하려면 그 결정을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이때 자신을 단순히 시간 번역자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 시간 제작자의 술책이다. 곧, 천문학적인 시간 기호에 대한 지시를 통해 사회적인 시간 표준이 합법화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시간 정하기 혹은 시간 구성에 관해서가 아니라 시간 측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pp.39-40
03 시간의 전문가들, 농부와 선원 그리고 수도사
천문학이 여러 수도원에서 장려되었지만, 시간을 알 수 있는 더 실용적인 방법을 찾으라는 압력이 커졌다. 물과 모래 외에도 이슬람 문화에서처럼 양초를 사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었다. 13세기가 되어서야 마침내 종과 연결할 수 있는 기계적인 톱니바퀴 방식의 시계가 보급되었지만, 시간을 비교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한 시계의 타종은 도시적인 발명이었다. 이런 과정은 고도로 발전한 이탈리아 북부의 경제 중심지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은 또한 공공장소에서만 볼 수 있고,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계와 관련된다. 똑같은 길이의 시각을 나타내는 시계의 시간은 자연에 의지하는 농부나 선원 그리고 수도사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조정의 도구로서 등장했다. 문자로 된 달력도 마찬가지다. — pp.60-61
04 시간을 법으로 규정하다
공공 달력의 규정은 공적으로 통제되는 기관, 즉 법정이나 정치적 집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즉 프랑스공화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공공 기관에 의존해야 했다. 여기에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기관으로 학교가 추가된다. 달력 규정을 새롭게 이해하는 움직임은 고대 로마 후기에야 비로소 기독교의 일요일 규정과 함께 로마력에 도입된다. 그때부터 보편적인 휴무일과 기독교 예배가 주요 기관으로서의 법정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법정이 맡았던 역할이 교회적인 성격을 띤 영역으로 이행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노동운동과 노조활동의 성과인 토요일 휴무의 의미는 경제 우위의 상황이 적용된 달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토요일 휴무는 비교적 새로운 성과물로 20세기 후반에 관철되었다. 또한 기계 작동 시간이나 상점 개점 시간에 관한 토론을 통해 사회가 달력에 관해 논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그가 축구 경기를 일요일 오전에 해도 되는지, 아니면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일요일 오후에 해야 하는지 논의했던 일은 1970~80년대 서독의 법 발전 과정에 속하는 사건이었다. 이 일은 현재의 상황에 비춰보면 진부해 보인다. — p.75

○ 출판사 서평
- 달력은 공정하지 않다, 그 안에는 종교와 정치, 사회와 문화를 움직이는 권력이 숨어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새로 인쇄되어 나온 달력들이 넘쳐난다. 벽걸이 달력에서부터 탁상용 달력, 기호에 맞게 직접 제작하는 달력까지 달력의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지만 그 겉모습은 사람들의 필요에 맞게 계속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달력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다. 만약 달력이 없다면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오늘은 며칠일까?’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와 같은 개인과 집단 기억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달력은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달력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다. 달력에 적어놓은 기념일이나 그날의 일정에 따라 우리는 선물을 준비하거나 약속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러한 달력이 가진 힘은 아주 오래전부터 통치자들의 권력을 향한 도구로 이용되어왔다. 다시 말해 달력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에 대한 지배를 의미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축제일을 제정하거나 이전에 만들어졌던 유명한 축제일에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여는 것으로 축제일과 행사를 동일시함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했다. 기원전 45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중요한 승전일을 페리아이 (로마의 휴일 혹은 축제일)로 높인 것이나 카이사르의 생일이 로마에서 국가적인 희생제로 기념된 것 등이 대표적이 경우다. 그러나 권력이 바뀌면 이러한 축제일은 작은 규모로 기념되거나 달력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이처럼 고대와 중세의 정신적인 지도자와 세속적인 권력자 그리고 근대의 지배자와 현대의 독재자들은 달력을 통제의 도구로 중요하게 사용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일상의 삶과 생활 리듬, 사고 그리고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7일 주기의 일주일 리듬도 이러한 경우다. 7일 주기의 일주일은 헬레니즘시대에 생겼다고 추측되는 행성에 따른 일주일 리듬, 즉 일곱 행성의 신들 (토성 Saturnus, 목성 Jupiter, 화성 Mars, 태양 Sol, 금성 Venus, 수성 Mercurius, 달Luna)에게 하루 24시간과 일주일 168시간을 부여한 것과 유대교 안식일 형식이 결합함으로써 만들어졌다. 유대교의 안식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은 토성의 날을 기념하는 형식으로 로마에서 수용되었는데, 이후 유대교로부터 나온 기독교도들이 안식일 다음 날, 즉 온종일 행해지는 행사가 없는 안식일로부터 첫째 날인 일요일에 공동예배를 드렸고,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착되었다. 즉 우리가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하고 쉬게 된 데는 이런 역사가 있는 것이다.
- 달력, 강력한 권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다
이 책은 “율리우스가 달력 개혁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주일은 언제부터 7일이 되었을까?”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일까? 아니면 2001년일까?” “요일은 어째서 행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까?” “일본이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인 이유는 한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까?”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시간을 표시해주는 달력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의 수단이었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달력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단순하게 달력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달력에 접근하는 책이다.
권력 통제의 수단으로 달력이 이용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예는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민회가 열릴 경우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장날과 민회가 열리는 날이 겹치지 않도록 날을 계속해서 구분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장날을 민회가 열릴 수 있는 파스 (fas)가 아닌 네파스 (nefas)로 규정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는 민회를 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법안은 기원전 287년 제정된 호르텐시우스법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사례는 황제가 바뀔 때마다 통치에 용이하도록 수시로 발생했다.
근대에 들어서도 달력을 통치 도구로 이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873년 일본 천황 정부는 단 20일의 공지 기간만 두고 그레고리력 개혁을 단행해버렸다. 다음 해 달력이 이미 인쇄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천황 정부가 개혁을 이렇게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태음태양력에 따르면 1873년에 윤달이 있는데, 이때는 모든 관료에게 한 달 급료가 추가로 지급되어야 했다. 따라서 태음태양력을 따르게 되면 일본은 한 달 치 급여 지급으로 1873년 일본 국가 재정에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혁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줄어든 12월은 달력 교체까지 단 이틀만 들어 있었기 때문에 급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개력을 통해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권력자들은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달력, 즉 시간을 통제해왔는데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 40시간 근로제에 따른 휴일 문제와 법정공휴일에 대한 대체휴무일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는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권력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통치권 강화 수단이었던 달력에 관한, 다시 말해 시간과 권력에 관한 근본적인 통찰을 보여준다.

○ 언론소개 : 달력 속에 스며있는 종교·정치 권력의 역사
- 자신 이름 딴 축제일 만들고 시민 통치 수단으로 활용 등 시간을 통제해온 이야기 다뤄
새해를 맞은 많은 사람들이 새 달력을 앞에 놓고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곤 한다. ‘작심삼일’에 무너지고, “다음 주부터 다이어트”, “다음 달부터 금연” 등의 다짐을 하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달력에 적힌 날짜와 주 (週), 달 (月)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데 과연 달력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일까?
고대에 만들어진 것 가운데 달력만큼 지금까지도 그 형태에 변화가 없는 것도 드물다. 현재의 365일 달력은 기원전 46년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단행한 율리우스력 개혁에 기원을 두고 있다. 7월을 뜻하는 July는 율리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기원전 8년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해 ‘August (8월)’로 달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 달력에서는 기독교의 종교 행사일인 부활절이 매년 오락가락했고 기독교 교권이 강성했던 16세기의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4년에 한번씩 윤년을 구분하는 현재의 양력 달력인 그레고리력을 발표하게 됐다. 이처럼 달력에는 정치ㆍ종교적 ‘권력’이 개입돼 온 것이다.
독일 고전문헌학자인 저자는 달력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문화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달력이 지배층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 전례를 곳곳에서 찾아냈다.
기원전 2세기 로마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과 민회 (民會)가 겹치면 시민들이 모여 정치적 목소리를 낼까봐 전전긍긍했다. 이에 독재관 호르텐시우스는 장날과 민회가 겹치지 않도록 달력을 개정했고 기원전 287년 이를 명문화한 것이 ‘호르텐시우스법’이었다. 또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축제일을 새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강화하곤 했다.
비슷한 사례는 근대 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 1872년 일본 천홍은 단 20일의 공지 기간만 두고 그레고리력 개혁을 강행했다. 이듬해 달력이 이미 인쇄 중인데도 천황 정부가 개혁을 서두른 것은 윤달 때문이었다. 1873년에는 윤달이 끼어 있어 모든 관료에게 한달 급료가 추가로 지급돼야 했기 때문에 국가 재정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천황은 달력 개혁으로 관료들에게 지급할 윤달치 급여를 주지 않게 됐고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7일 주기의 일주일에는 종교적 요인이 작용했다. 일주일은 헬레니즘 시대 토성과 목성, 화성, 수성 등 7개 행성에서 따온 시간 체계에 유대교 안식일 제도가 결합하면서 일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 일주일 주기가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이렇게 정치ㆍ경제ㆍ종교적 이유로 권력자들은 달력, 즉 시간을 통제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현재에도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주 40시간 근로제에 따른 휴일 문제와 법정공휴일에 대한 대체휴무일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권력자 (혹은 관리자)들에게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 시간은 달력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달력은 지배자인 동시에 피지배자이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문화적 생산물로서 모두가 참여해 만든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했다. _ 서울경제 (2012.01.06)
○ 독자의 평 1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나는 시간과 권력. 이 둘의 연관성을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 세상에서는 이미 달력과 시간은 존재하는데 시간과 권력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르고 달력도 세계적인 공통인데 그것을 어떻게 권력이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달력이 정착하지 못하던 시기에 달력은 모두에게 전하는 나라의 공지사항이었다. 시계가 없을 시절에는 종소리로 시간을 알렸다. 하지만 이는 못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세상은 그 점때문에 혼선을 빚었다.
이를 타개할 달력이 나왔는데 나라들은 모두 그 나라의 역사와 소식등을 달력으로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국가가 만들어 배포했다.
정치를 한 사회의 의식적인 자기 조정, 다시 말해 자연적으로 또는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사회의 소통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달력의 정치와는 달력의 더 좁은 부분인 날과 주 혹은 달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 집단에 관계된 내용에 집중한다. 하지만 달력의 정치화는 달력 텍스트에만 머무리지 않는다. – 202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법정공휴일도 많이 줄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점도 정치적으로 권력적인 성향이 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읽어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달력, 어쩌면 국가 생각하는 중요한 날들의 표시이자 그 국가를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이 국가마다 다르고 학교의 시작이 한국은 3월이지만 미국, 유럽등은 여름에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두고보자면 학교의 예산은 교육청에서 나오고 이는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그때에 맞춰서 예산이 편성되고 학교의 방학이 끝난다. 그런 사이클은 국가가 정한 달력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달력의 어원과 역사를 찾아보는 것은 좋았지만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의 머리를 들여다 보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역시 달력의 역사와 권력간의 관계는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 독자의 평 2
2012년 2월 29일은 4년에 한 번 씩 돌아온다는 윤일이다. 이것도 기념일이라고 버거킹에 가니 와퍼주니어를 1500원에 팔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요즘은 무슨무슨데이라고 하는 게 참 쉽게 만든다. 숱하게 욕을 먹는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는 이제 역사가 제법 된 기념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숫자에 착안한 기념일도 많아져서 3월 3일을 삼겹살 데이,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쯤되면 너무 경박하고 장난스러워 보인다. 대신에 법정공휴일을 둘러싼 논의는 ‘허락된 노는 날’과 관계가 있는만큼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몇년 전에는 나라에 공휴일이 많다며 몇몇 공휴일의 지위를 낮춘 바 있었는데, 이제는 법정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대체 휴일’에 쉴 수 있게 해 준다는 법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월급 받고 사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허락된 노는 날’이 많을수록 좋지만, 이게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월 29일이 나와서 말인데, 다들 알다시피 태양의 공전 주기가 정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365.24xx)에 1년의 길이는 4년 주기로 366일이 된다. 그런데 어쩌다 2월 29일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이런 규칙은 참 몹쓸 것이 된다. 농담도 아니고, 생일이 4년에 한 번 씩 찾아오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달력은 의외로 임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루(day)를 정하는 것은 태양의 움직임과 일치하지만, 달(month)이나 주(week)를 나눈 기준은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법은 없어 보인다. 년(year)의 경우는 태양의 공전주기와 최대한 비슷하게 맞춘 결과기는 하지만, 정수로 맞춰야 하는 한계 때문에 이러저러한 꼼수를 적용한 임의적인 것이다.
이 책 <시간과 권력의 역사>는 이런 달력의 의외의 임의성 그리고 임의성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합의, 즉 문화에 주목한다. 태양력의 도입, 공휴일과 축제의 지정 등을 살펴보면서 달력이 오늘날과 같은 구조를 띄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달력을 둘러싼 역사, 축제의 기록에서 확장된 역사 도구로서의 달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달력의 임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달력의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이 책은 대체로 달력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 강한데, 서론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달력과 관련된 천문학이니 수학이니 기타 잡학적인 사실들의 언급은 되도록 피하고 있다. 또한 달력의 대략적인 형식이 이미 로마 시대에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야기는 로마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달(moon)은 누구나 쉽게 그 모양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시간 표현의 수단이 된다. 고대 로마인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고대 로마의 달력 역시 태음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부분의 의식은 보름달이 뜰 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달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계절의 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태양의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태양은 하루 이틀 관찰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사람들에게 쉽게 전파시킬 수 없다. 기술력과 권력이 뒷받침 되어야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 체계를 정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로마의) 규모가 커지고 지배 체계가 복잡해지자 민회를 개최하는 날, 법정(court)이 쉬는 날, 장날, 축제일 등의 주기를 관리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주 (week)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다신교를 신봉하던 고대 로마에서 신들은 로마 사회의 일부분이었고, 사람들은 신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 중 많은 날짜를 여러 신들에게 봉헌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축제의 형태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이후 제국으로 확장된 로마는 크고 작은 승리와 황제의 위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생겼고 달력은 이런 목적으로 채워지게 된다.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된 뒤에는 유대인들의 7일 주기의 주 (week) 체계가 도입이 되며, 각종 성인 (saint)들을 기념하기 위한 내용이 달력의 빈 칸을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국의 승리와 황제의 대소사가 기록된 달력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큰 대리석으로 새겨 넣어졌다고 한다. 이는 통치 권력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테지만 달력이 ‘역사를 기록한 매체’로 기능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오늘날의 달력도 기념일을 중심으로 본다면 작은 역사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통치자 (정권)들에 따라 강조하는 기념일이 조금씩 다른 점을 그들의 역사관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달력을 시대에 따라 모아 놓으면 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달력만으로도 역사책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위해서 달력이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혁명력, 러시아력처럼 새로운 달력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으며, 러시아, 일본의 경우처럼 그레고리력을 도입하여 나라를 일신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달력의 개정은 합의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위에서 내리는 지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달력의 여러 측면 중 임의적인 특징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메이지 유신 때 이루어진 나라의 재정 상태를 고려한(?) 달력의 개정은 흔히 생각하는 달력의 객관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달력이라는 것이 이미 율리우스력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띄었고, 저자가 고대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책의 대부분은 고대 로마에 초점이 맞춰 있다. 덕분에 복잡하고 낯선 어휘와 이야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야만 했다. 또한 나름 천문학과 역법이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 이슬람, 중국의 이야기가 같이 있었다면 책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더군다나 밀레니엄을 전후해서 등장한 달력에 대한 여러 책들과 차별화 하고 싶었던 저자의 욕심 때문일까 정작 알고 싶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제목에 비해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 독자의 평 3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달력’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서 2000년을 기점으로 달력에 관한 글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 글들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내용들을 이 책에 쓰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읽기 시작한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말 난해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앞부분에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공화력, 로마력 등 개인적으로 이름이나 겨우 들었거나 처음 들어봤던 달력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강 선후관계와 각각의 특징을 시대순서로 정리를 해주었으면 뒷부분의 이해가 더 빠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또 고대 및 중세 동서양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렇지만 인상적이고 흥미로왔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달력과 권력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달력의 내용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제도나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의문시 될 수 있다(p.10)는 점이다. 더 나아가 시간을 공간에 비유하면서 독재자의 동상과 초상화로 뒤덮이듯이, 시간도 달력의 모습으로 뒤덮이면서(p.24) 권력의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을 아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바로 이 권력과 제도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만든 대목이다. 7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념하기 위해서 July로, 8월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서 August가 되었다(p.13)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도 비교적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다. 또한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 경에 그나이우스 플라비우스에 의해 달력이 처음으로 인쇄되었으며(p.41), 이집트에서는 한 해의 모든 날에 대해 그 날이 길일인지 흉일인지 여부를 설명해 주는 문헌도 존재했다고 한다(p.43) 로마력이나 그리스력 등에서는 일주일이 10일, 9일 또는 8일이었던 반면에 그 이후에 유대-기독교의 영향으로 7일이 되었다(p.44)는데 그 당시에 달력은 모두에게 공개된 대상이기도 했지만 구두로 일정을 통보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인 정보 전달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p.48).
로마 공화정 시대에 달력은 축제의 기록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적인 축제와 비종교적인 축제를 포함하여 신께 예배하는 날은 노동을 해서는 안되고 기쁜 축제의 날로 지내야했다. 이를 기록하고 지키도록 한 것이 달력의 역할이었다(5장, 6장). 이 달력에 기록되는 축제는 거대한 의례적인 행사만 기재되는 기회를 얻었다(p.203). 9장의 내용에 따르면 달력이 기록될 수 있는 축제는 그 시대의 정치적인 영향이 많이 작용되었다. 축제를 달력에 표현하고 기간을 연장함으로서 축제의 의미를 높이는 등의 모든 영향은 지배자의 권력과 정치적 영향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달력에 기록된 시간은 공간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는 다른 학자의 문헌을 인용하며 “달력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다”라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p.227).
7장과 8장은 달력을 역사의 기록물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으며 달력의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10장에서는 일주일이 7일이 된 사연, 그리고 각 요일의 이름 제정, 기독교의 집회일이 토요일(유대교의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옮겨간 이야기 등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몇년 몇월 몇일 이라고 하는 ‘현재 시간의 기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했지만 왜 이런 시간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달력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한 이런 달력의 형태가 나오기까지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들이 작용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에는 어떤 달력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번역서인 관계로 이 궁금증은 책을 읽는 동안 해결할 수는 없었다.
최근 읽었던 책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문장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페이지에도 모르는 인물,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툭툭 터져나오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더뎠다. 물론 대부분 용어에 대해 번역자주가 달려있어 그나마 읽는데 조금은 도움은 되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랄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쌓았다는 점에 만족한다.
책 마지막 장에 감사의 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매사에 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많은 일이 달력에 적혀있지 않고 게다가 좋지 않은 때에 찾아온다. 남은 일은 우리가 가진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것 뿐이다. – (p.292)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