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식인과 제왕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1995.5.31
이 책은 원시문화에서부터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힘든 인류 생활양식의 근거와 의식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해리스의 대표저작 중 하나다. 이 책에서 해리스는 전쟁·기아·남녀차별·착취 등 반문명적 행위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목차

옮긴이의 말 = 3
서론 = 9
1. 문화와 자연 = 17
2. 에덴 동산에도 살인은 있었다 = 23
3. 농업의 기원 = 39
4. 전쟁의 기원 = 57
5. 동물성 단백질과 여자와 ‘사나운 부족’ 야노마모 = 79
6. 남성지배제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기원 = 93
7. 원시국가의 기원 = 113
8. 콜럼버스 이전 메소아메리카의 시원국가들 = 141
9. 식인 왕국 = 161
10. 고마운 어린 양 = 185
11. 육식 금기 = 209
12. 어째서 ‘거룩한 암소’인가 = 227
13. 물의 ‘올가미’ = 249
14. 자본주의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 265
15. 거품 같은 공업 = 283
에필로그 = 299
○ 저자소개 :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 ~ 2001)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로 문화유물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성사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유물론적 접근법을 구축했다.

1953년부터 1981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플로리다 대학으로 옮겼다. 미국 인류학협회 인류학분과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미 『작은 인간: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와 『문화의 수수께끼』, 『문화 유물론』, 『식인과 제왕』 등의 책을 통해 국내에도 폭넓은 독자를 갖고 있는 마빈 해리스는 브라질과 에콰도르, 모잠비크, 인도 등에서 수행한 현지 조사를 통해 수많은 이론서와 대중적인 문화 분석서를 출간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의 수수께끼』(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식인문화의 수수께끼』(Cannibals and Kings: The Origins of Cultures), 『음식문화의 수수께끼』(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Riddles of Food and Culture) 등이 있다.
– 역자 : 정도영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했으며 합동통신사 등에서 외신부장, 경제부장, 출판국장 등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에릭 홉스봄의 명저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를 비롯해 윤건차 (尹健次)의 『현대일본의 역사의식』, 마빈 해리스의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이 있다.
○ 독자의 평 1
마빈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꽤 유명하다. 몇년 전 돌아가신 지인이 추천해준 책인데, 그 당시 사놓고 쟁여만 놓고 있었다. 책도 좀 오래돼 보이고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그닥. 한물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일주간 매일 반나절 정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행운덕에 그동안 구매만 했던 책들을 본격 소비하고 있다. 모처럼 소비가 구매를 초월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재 제일 아랫칸에 묻힌 이녀석을 발견했다. 이녀석을 본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지인이 죽고나서도 꽤 오랜기간 가상공간에 여러 흔적이 있었는데 며칠전 우연히 지워진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보였을 것이다.
책은 놀라웠다. 책의 출간 시점이 94년인만큼 97년 정도인 총균쇠를 앞선다. 그게 아니었음 총균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책으로 오인했겠지만 사실은 당연히 반대다. 어찌보면 총균쇠는 이 책을 다양한 사례와 균 정도를 보충하고 좀더 전시대를 자세히 보며 자신만의 의견을 강하게 보충한 책에 불과할지도 모를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계의 도킨스인 셈이다.
문화인류학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이 책은 지리책에 가깝다. 상당히 지리적 결정론적 관점에서 쓴 책이다. 그 문화라는 것이 철저히 지리로 인한 생산력과 기후, 동물 및 생태계군에 절대적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문화보다는 그를 파생한 지리 이야기가 대다수다. 해리스는 공식을 보이는데 처음 정착지에서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이 생겨나고 이를 위해 생산력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하여 문명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이를 문화유물로적 결정론이라고 했으며(지리적 환원로이나 지리적 결정론이 더 잘어울리는데……) 이래 놓고서도 애써 자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책은 수렵시대부터 농경의 시작, 원시국가, 전쟁, 식인, 자본주의의 탄생과 그 한계를 다룬다. 인류역사 전체를 다룬 셈이고 시기순으로 다루었음에도 좀 시기마다 도약하는 듯한 모습과 주제별로 다룬 면이 있어 통사적인 느낌은 의외로 별로 없다.
수렵시대에는 인류는 평방마일당 2-3인의 인구밀도를 유지했다. 그 이상이면 생산력 저하가 급격히 오기 때문인데 마땅한 인구조절 방법이 없던 시기 해결책은 노인 살해 및 영아 살해였다. 당시 평균수명이 30세정도였고, 여성의 가임기시작부터 그 나이까지 생존하면 8회 정도의 임신이 가능하다. 절반정도의 아이가 여러 이유로 초기에 자연사해도 위의 인구밀도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정도여야 한다. 그러면 2-3명정도를 살해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영아 살해는 수렵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이르기직전까지 암묵적으로 꾸준히 유지되며 주로 여아에 집중된다. 해리스는 그 증거로 각 시대마다 인구밀도 과잉으로 인한 생산력 위기시에 등장하는 비 정상적 성비를 보여준다. 남아선호가 한창이던 20세기 말의 한국의 저리가라 할정도이며 1자녀 정책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중국역시 명암을 못내밀 정도다. 이런 수렵인들에게도 나름의 인구조절 피임법이 있었는데 자로 수유기간을 길게 갖는것과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이다. 이는 출산후 생리를 현저히 늦춘다
재밌는건 수렵시기라고 해서 인간에게 농경시대의 특징은 가축화와 재배기술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미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고, 정식 농경까지는 아니지만 농경기술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현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직 충분히 많은 수의 잡아먹을 동물과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결핍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끝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BC 1만3천년경 온난화로 동물의 터전인 목초지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숲이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인간이 수렵기간동안 상당수의 대형동물을 절멸시킨 상황이어서 상황은 설상가상이었다. 자연히 인간의 식생활은 토끼나 사슴따위의 전에는 눈여겨 보지도 않던 작은 동물로 향하게 되었으면 조개류나 물고기도 주요 식량원이 되었다. 거기에 식물재배에도 노력을 기울여 농경이 시작되었고 육식위주의 오랜 식습관에서 채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아마 온난화로 식물을 매우 잘 자랐을 것이다.
동물이 귀해짐에 따라 농경과 더불어 가축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염소나 소등의 가축들이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먹지 않는 식물의 다른 부위를 먹기에 무리없이 가능했다. 불행히도 아메리카는 구대륙보다 더 빠르게 대형동물이 절멸하여 딱히 가축화할 동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구대륙만큼 농경에 적합한 식물도 많지 않았다. 총균쇠에 나온 것처럼 이 커다란 차이는 향후 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가축은 생산력증강과 단백질 공급은 물론이요 힘쓰는 동물로 사용한 경우, 바퀴나 축, 도르레등 기술발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 바퀴가 고작 애들 장난감으로만 쓰인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스는 이런 가축화를 전무후무한 동물 보호운동이라 했는데 정말 기가막힌 표현이었다.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수렵채집인들에게 가능했던 피임법은 사용이 불가해졌고, 인구증가와 이를 위한 생산증강활동으로의 농경과 가축화는 삼림을 파괴하고 토양을 산성화 시키며 가축을 통한 질병까지 불러왔다. 농경시대의 전쟁은 이 해결책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의 기원은 조금 다르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과거 국가 시스템이 전무하고 영토개념이 없던 시기 전쟁은 인근 부족을 쫓아내어 인근 배후 지역에 무인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무인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 향후 생산활동에 필요한 농물과 식물보호 역할을 하였다. 전쟁의 다른 이유는 인구조절기능이다. 전쟁에서는 주로 남자가 죽지만 사실 남자의 살해를 통한 인구조절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이나 세계2차대전후 세계 각국은 베이비붐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인구를 수년안에 회복한다. 하지만 몇세대 걸리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여성의 살해다. 남성은 수가 적더라도 여러 여성을 상대함으로 인해 인구조절에 기능이 없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인구의 수는 여성의 수만큼 늘수가 있다. 때문에 초기 인류의 전쟁에서 인구조절은 여아살해에 초점이 이루어졌고, 전쟁을 통해 남성을 중시하게 되는 남성위주의 문화를 통해 남아선호를 통한 일상적 여아살해기능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스는 원시국가의 기원을 태평양지역 부족의 빅맨에서 찾고 있다. 빅맨은 부족 전체를 돌보고시혜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이는 재산상 빅맨에게 상당한 마이너스인데 이들 빅맨과 그 추종자들은 그럼에도 그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행한다. 하지만 집약적 농업과 곡물이 대량수확되면서 이들 초기 지도자들은 상설 군대의 유지와 생산수단으로의 접근권을 제한할 권력을 갖게되며 본격적인 지배자로 올라선다. 이들 초기국가는 인구밀도가 과해지면서 분리되는 다른 촌락에 대해 재분배 기능을 제공하는 조건 혹은 패한 다른 촌락에 대해 추방대신 복종을 요구하며 성장해나간다. 초기 중심국가 주변에는 제2기 국가들이 들어서는데 이들은 초기국가에 대한 군사적 방어의 필요성과 초기 국가의 부로 인핸 무역 및 그 약탈을 위해 발생한다.
이런 국가의 성장을 이야기하던 해리스는 갑작스레 아즈텍의 식인문화로 향한다. 구세계의 주요 종교와 문화 및 관습들은 대개 식인을 금기시한다.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부 허용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즈텍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권장된 곳은 없다. 해리스는 정말 놀랍게도 이를 가축화할만한 동물이 부족하여 만성적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던 아즈텍의 자연환경에서 찾는다. 아즈텍의 신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에 굶주려 있는데 피라미드위에서 산체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후, 신관들은 이 시신을 피라미드 아래로 굴린다. 문제는 이 시신이 아래쪽의 사람들에게 고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해리스는 아즈텍에서 포로로 잡아 인신공양에 사용된 사람의 숫자가 전체 사람들에게 충분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람고기는 비싼법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는 하위관리와 일부백성에게 지급되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반란을 막는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아즈텍에도 칠면조와 개라는 고기가 있긴 했지만 칠면조는 사람이 먹는 곡물의 낟알을 먹으며 개는 고기를 먹는다. 때문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매우 부적격이었기에 왕이나 일부 신관만이 사치스럽게 즐겼다. 또한 적절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리마나 기니피그를 가진 잉카문명에 식인습관이 없었던 것도 이를 어느정도 뒷받침한다.
그 다음엔 정확히 반대로 고기를 안먹는 쪽으로 간다. 바로 중동지역의 돼지금기와 인도의 소금기다. 농경이 심화되며 전세계 문화권은 늘 먹던 고기를 금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재배지가 넓어지고 이에따라 가죽을 위한 유휴지가 부족해졌기때문이다. 게다가 가축은 노동력제공, 비료 공급, 섬유질 공급등 쓰임새가 많았다. 때문에 고기는 모두의 음식에서 사치품이 되어갔으며 종교차원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교리가 생겨나게 된다.
돼지는 고기공급원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지만 젖을 제공하지도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힘든 동물이다. 따라서 사치품이 되어갔다. 특히나 돼지는 스스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습기가 많은 지역을 선호하는데 사막지역인 중동에서는 정말 쥐약인 셈이다. 거기에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돼지감자, 과일, 견과류등 비싼것만을 먹어치우니 자연스레 중동지역에서는 돼지에 대한 혐오감을 발달시키고 금기시하게 되었다.
소는 정확히 반대다 소의 금기는 신성화로 나타났다. 돼지는 필요없음에 소는 너무나 필요했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인구밀도는 매우 조밀했다. 거기에 여건상 관개수로가 매우 약하다보니 변덕이 심한 몬순의 강우량에 지역전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때문에 농경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소의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밌는건 암소의 신성화다. 수소는 노동력의 제공으로 가정에서 사육되지만 암소는 방목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크게 필요치 않은 암소도 기근이 심하여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지거나 수소의 재생산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보호받는 수소에 비해 일상에서는 보호하지 않은 암소를 신성으로 보호했다는 것이 해리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소의 신성화의 경우 소를 사용한 다른 몬순 아시아 지역에서는 어째서 소의 신성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해리스는 중국의 예를 든다. 중국에서도 역시 소는 농경을 위해 귀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와 인구는 비슷하면서도 몇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는다. 거기에 농경생산성도 인도의 두배에 달해 소에 대한 의존도가 인도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다른 가축을 위한 땅 및 기후조건도 좋아 굳이 소의 신성시까지 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자본주의외 의회민주주의다. 해리스는 왜 이 것이 세계 다른 지역이 아닌 알프스 이북의 북유럽에서만 등장할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우선 아시아지역을 살피는데 인도및 중국 지역의 문명을 비트포겔의 개념을 빌려 수력사회로 간주한다. 수력사회는 문명이 주로 건조 및 반건조지역에 위치에 하천의 물을 끌어다쓰는 평원과 계곡에 발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에서는 생식압력에 대처하고자 필연적으로 수리시설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관료제를 동반한다. 수력사회에서 왕조의 순환은 다음과 같다. 초기 왕조는 치수-관개생산양식을 회복하거나 개선한다. 이로 인해 인구가 다시 조밀해지며 생산력을 한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에 따라 이를 해결해야할 관료조직 역시 부패해지며 생산력이 더욱 떨어져 일반 백성은 극빈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패권을 다툴 반란 혹은 외부 침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여 이 쳇바퀴를 다시 돌리게 된다.
이런 수력사회는 관개의존성으로 인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를 갖게되며 국가가 대내적 수탈 대외적 수탈, 공공기관을 통해 국내의 모든 재산을 통제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생기기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이게 된다.
반면 알프스 이북의 기후는 겨울의 많은 강설량과 봄비로 연간 충분한 습기가 공급된다. 게다가 이렇다할 큰 강도 존재하지 않아 강 주변에 문명이 집중하는 수력사회에 적합치 않다. 이로 인해 인구가 전역에 분산되며 문명이 지방 분권적 경향을 갖게 된다. 국가형성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져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장원경제체제하에서도 왕과는 별도로 장원경제가 돌아갔다. 생산수단에 대한 확실한 접근제한권을 갖고 있던 수력사회와는 달리 유럽지역을 왕이 이렇다할 칼자루를 갖지 못했던 셈이다.
이런 장원경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해리스의 공식처럼 장원경제체제의 생산력이 인구밀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연스런 여아조절로 성비가 130대 100에 달할정도로 인구조절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장원의 생산성에 관심이 많은 영주와 농민들은 수입원 보충 수단으로 양모를 얻기 위한 양치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을 위한 목초지가 재배지를 집어삼키면서 농민의 토지는 감소하였으며 땅을 잃은 농민들은 빈민화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발달하고 있는 도시노동자로 변모한다. 이는 도시노동자의 임금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효과를 낳아 제조업이 발달하는 최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의 부 축적을 방해하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제약을 풀어헤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생산력 약진을 가져온 제도로 해리스는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해리스는 화석연료에 의지한 지금의 생산력이 화석연료의 고갈 및 생태계 파괴로 인해 다른 문명들처럼 곧 생산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한다. 책을 쓴 시점이 94년이니 그럴만도 한데 무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화석연료에 충분히 의존하고 아직 그 고갈에 큰 신경을 안쓰고 있으며 환경을 더욱 크게 파괴되었지만 매우 더워진 지구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4차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인류를 보면 저자가 어떤 혜안과 반응을 보일지 자못궁금하다. 하긴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고 심각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 독자의 평 2
역사에 관해 친구들과 논의를 할때면 신기하게도 오타쿠처럼 관심이 유독 많이 가는 부분이 있다.
나는 종교에 관심이 많고 친구는 전쟁, 그리고 다른친구는 과학기술에 중점을 두고 역사를 해석해나간다.
물론 이 세가지를 완벽히 나눠서 이야기할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공부하다보면 모두 공부하게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가 공리주의에 관해 설명하면서 하나의 예시를 들었다.
바다에 표류하는 4명의 사람이 있는데 먹을게 없는 상황에서 한명이 바닷물을 많이 마시고 죽었다.
이런상황이라면 바닷물을 마시고 죽은 자를 먹어도 되는가였다.
물론 나는 그 문제가 공리주의의 예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이 식인과 제왕의 책을 들고와 먹어도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인육을 먹은적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동료를 잡아먹기도한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인간을 먹느냐 나는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싶다.
우리가 안정된 식량이 공급되고 공권력에 의해 치안이 안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그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 그 인간성을 강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정적인 사회가 붕괴된다면 그때도 인간성을 유지하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일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안정적인 사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 식량자체가 잘 나지 않거나 단백질 공급원인 동물이 부족하다면 자연스레 인육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때도 인간이 인간을 먹는데 있어 꺼리침했던 것은 있었나보다.
종교를 만들어 우리가 먹는 행위가 꼭 먹기위한 행위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일정부분 쇄뇌를 시키는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낙후된 시설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비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그들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발달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그 나라의 지형, 기후, 주위 국가와의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될 것이다.
○ 독자의 평 3
인류학 분야의 책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인류학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인류는 앞으로 위로 전진하고 상승하는 진보를 계속 거듭해 나아간다고 보는 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을 들여앉히는 데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물질적․정신적 복지와 생산증가 및 인구억제를 위한 여러 제도의 비용과 효과, 그리고 이 양자 간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인풍습, 사랑과 자비의 종교, 채식주의, 유아살해 그리고 생산의 비용과 효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와 도덕적 선택이 사회제도의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후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16세기 유럽사람들이 발견한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이 전쟁을 벌이고 적의 목을 베어 전리품으로 모으고, 포로를 산채로 불태우거나 종교의식에서 인육을 먹는 것을 보고 이들이 미개하다고 단정한 것을 두고, 저자는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유럽 사람들도 인육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대륙의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는 공통된 문화적 틀을 유지하게 하고, 변화에 최초의 시동을 걸며, 같은 또는 다양한 방향으로 변환과 변혁을 결정짓는 프로세스가 있으며, 그 프로세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합니다.
석기시대 이래로 인류는 식량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손쉽게는 유아살해나 노인살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채집과 사냥으로 식량을 구하던 인류가 농업과 목축을 통하여 식량을 얻게 되었지만, 이는 삶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을 수는 있지만, 투입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집단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차선책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원시국가의 형태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신대륙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을 인용했습니다만, 마야와 아즈텍에서 식인풍습이 자리하게 된데는 마땅한 단백질원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선주민들이 야생동물들을 남획하여 멸종하면서 이를 대체할 가축을 개발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구대륙에서 소, 돼지, 말,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가축화하고 있었고, 안데스지역에서는 라마나 기니피그를 가축화하고 있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백질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에게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보면 고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인신공양과 더불어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배경까지도 재화와 용역의 배분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세 무렵까지도 문명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던 중국의 국가체제가 벌전하지 못한 것도 재화의 배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출산율 저하나, 영아살해 자녀유기 등의 끔찍한 사회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어린이 양육이 가져오는 순이득이 그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유리할 때는 자녀를 많이 낳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진화의 방향이란 누구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발전 방향이 제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열려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자유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 독자의 평 4
시원해 보이는 강물 줄기, 연초록의 가뿐한 나무들, 외국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지층. 컴퓨터 바탕화면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인다. 체온을 넘어서던 2018년의 여름을 가까스로 넘겼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묻은 바람이 분다. 파란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강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는 문명들이 떠오른다. 물을 지배하던 절대 권력과 전제군주제 아래에서 ‘수력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물은 더 이상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1977년에 쓴 책이다. 처음에는 주춤했다. 과학이 발달되어가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되는 세상인데, 40여 년 전에 쓰인 내용이 얼마나 실효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 절판된 책이라 중고로 구입해야 한다는 점도 망설임의 이유를 더했다. 꾸준히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니. 따분하지는 않을까. 40년의 간극이 이질감으로 채워지지는 않을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 모든 망설임보다 호기심이 조금이나마 컸던 것이 책장을 펼친 이유다. 나는 책이 쓰인 시점으로부터 4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이미 아는 입장이니, 문화의 흐름을 읽는 저자의 예측이 요즘 세상과 얼마나 일치될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옮긴이는 책을 번역하면서 1994년 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2018년 여름, 독자에게는 어떤 느낌을 줄까.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인류의 기원을 향했다.
문화인류학이라니! 생소한 분야였다. 내게 있어 ‘문화’란 움집, 초가집, 이글루, 수상가옥 등 거주 형태의 다양성이거나 한식, 양식, 분식, 중식, 일식 등 음식의 나열이거나 의복 형태의 변천사 같은 의미였다. 학창시절, 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서 스치듯 배운 내용이 아는 지식의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인류라는 거창한 말까지 결합되니 규모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서 내가 이해할만한 분야가 아닐 것만 같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아서 어쩌자는 건지 싶기도 하고.
『식인과 제왕』이라는 제목부터 탐탁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도 식인종이 있다지만 극히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목으로 대표하기에는 과하다 싶어서. ‘식인’과 ‘제왕’이란 말 역시 아무리 연관을 지어보려 해도 접점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식인 문화는 일부 독특한 인종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기에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문제 등이 인과 관계를 이루며 사람들과 얽혀있었다. 일련의 역사가 야만적이라며 무조건 비난할 수 없을 만큼 합리적인 이유로 존재했다.
에세이형식이면서도 인류학에 대한 이론이 풍부하게 담겨있어 교과서를 공부하는 듯 했다. 저자는 문화 발전에 일종의 프로세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에서 시작한 과정은 생산증강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생태 환경의 파괴와 고갈이 발생하면 새로운 생산 양식이 출현한다고 설명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제껏 발생했던 문화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과 자기조절 과정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유적들과 현존하는 일부 부족의 모습과 동서양의 사례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인류 문화의 발달 과정을 말한다. 문화를 바라보는 거대한 틀을 제시하는 책이다.
교과서를 저런 식으로 배웠으면 어땠을까. 어른이 되어서 접하는 내용들이 새삼스럽다. 나이 들면서 생긴다는 통찰력은 죽어가던 지식에 생명력을 주는가. 학교 다닐 때에는 글자로만 인식되던 지식들이 마음에 들어와서 꿈틀댄다. 종종 느꼈지만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줄의 문장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세월의 무게가 벅차고 먹먹했다.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석공 기술의 흔적이나 엄청난 뼈 더미는 석기시대의 생활이 지극히 어려웠을 거라는 가정을 여지없이 깨어버린다. 남자 177cm, 여자 165cm. 구석기 시대 성인의 평균 신장으로 추정되는 데이터라고 한다. 생각보다 풍족한 삶을 누렸을 거라는 증거다.
일부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움직일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광합성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동물과는 달리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인간이 천성적으로 정착하기를 원해서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석기시대에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고대로부터의 인류의 생활은 비례관계 그래프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발달되었다고. 근거 없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농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빙하 시대 말기, 지구의 온난화로부터 출발한다. 기후 변화로 목초지가 소멸되면서 육식하는 인간에 의해 거대 동물의 멸종이 일어나고, 좀 더 작은 짐승을 거쳐 곡물 쪽으로까지 관심 대상이 확산되면서 농업적 생산 양식이 유발된다. 짐승이나 농사에 이용되는 가축의 분포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의 구세계와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신세계의 촌락 생활에도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저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기원을 이렇게 본다.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발생한 생산 양식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환경이 소모되고 자원이 고갈된다. 생활수준의 하락을 막기 위한 대가가 필요해진다. 인간과 자원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렵․ 채집인들의 선택은 전쟁과 여아 살해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과 연관이 되어 부계제나 모계제가 출현한다. 저자는 남성지배제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원인도 전쟁에 있다고 본다. 남성에 의한 무기 독점의 부산물로 성차별적인 관습과 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농업 생산을 강화하다보니 이를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가 생긴다. 원시국가가 발흥한다. 국가는 자유로부터 예속으로 내려앉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안에서 생산의 증강을 이끄는 자들은 ‘빅맨’이나 ‘무미’라 불렸고, 식량을 분배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권력은 막강해진다.
강도 높은 생산 활동으로 다시 인구가 증가한다. 가축이 드물었던 메소아메리카(중부아메리카와 멕시코)로서는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인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과정은 정황상 이해가 된다 해도 섬찟하다. 아즈텍이나 톨테카족, 마야족 등의 문화에서 종교적 희생의식으로 거행되었다는 인신공희. 인신공희를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주로 포로들이 식인의 대상이 된다. 상당수의 노예나 청년, 처녀들도 희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간을 죽이는 과정이나 인육으로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은 매우 원초적이었다. 육식동물이 피식 동물을 취하는 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 자주 움찔했다.
가축이 이렇게나 고마운 존재였던가. 적국의 병사들은 덕분에 식량의 생산자로 이용된다. 인육이나 가축이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이다. 라마의 먹이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풀들이다. 잉카는 다행스럽게도 라마 덕분에 인육을 먹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게 된다.
유목민 사회의 돼지고기 금지도 필요에 의해 생겨난 문화이다. 육식의 계속적인 이용이 기존 생존 양식을 위태롭게 했기에 생겼다고 한다. 금기 대상은 물질적인 비용과 이득을 따져본 결과로 정해진다. 힌두교에서의 소고기 금지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동물 고기에 대한 일반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자, 육식은 브라만 등 선택된 계층만이 누리는 특권이 된다. 인구밀도가 증가하면서 농사기간동안 쟁기를 끌어야했던 소는 금기시된다. 불규칙한 몬순 강우에 의존해야 하는 농사의 특성 상 암소와 황소 보호가 긴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힌두교도의 채식주의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가 아니라 생산력에 대한 생식력의 승리라고 본다.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은 물을 지배하는 고대 제국적 통치제도의 복원이다. 생산을 집중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제주의가 통치 형태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물에 의한 올가미는 몇 천 년 동안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무력화시킨다. 물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명사회에서 거대한 성곽, 피라미드 등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구조물의 건축이 가능했던 이유다.
자본주의가 유독 유럽에서 발달한 이유도 생산 양식과 무관하지 않다. 봉건 제도로 농노제가 실시되고 생산의 기본 단위가 장원의 영지로 분화되면서 출발한다. 전염병과 전쟁과 여러 가지 요인 등으로 장원 제도가 붕괴될 위기가 오자 과학 기술과 기계 생산에 기초한 제도가 절실해진다. 이윤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문화 발달 과정에서 꾸준한 희생양이 되어왔다. 구석기 시대의 유아 살해율은 50%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행된 잔인한 행위가 석기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유아 살해는 취락 규모의 지나친 팽창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다.
직접 살해뿐 아니라 간접 살해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정부가 세운 영아 양육원이 사실상 어린이의 살해 장소로 이용된다. 수천 명의 기아들을 ‘죽이는 유모들’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 높은 출생률과 못지않게 사망률도 높았다. 19세기 초까지 양육기관에 있는 유아의 80%~90%가 출생 후 첫해에 죽어갔다니 경악할 일이다.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드디어 어린이의 사망률이 감소하는데 그 이유에 화가 치민다. 어린이를 노동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니. 생존의 문제라 어쩔 수 없던 면도 있었을 거다. 어른들의 이기심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렵기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
자식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회면 뉴스를 보니 다시 답답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방법이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속속들이 이어져온 역사적인 사실이 함께 떠오르면서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
19세기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구 증가율은 감소된다. 인구통계상의 과도기로 불리는 시기가 나타났다. 저자는 그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한다. 연료와 피임과 직업의 혁명이다.
직업의 혁명으로 경제 활동의 구조가 달라지면서 어린이에 대한 양육비가 증가한다. 이에 비해 극소 부분만 돈이나 재화나 용역으로 돌아온다. 이는 출생률의 감소로 나타난다. 21세기인 지금도 우리나라를 본다면 마찬가지 아닌가. 올해 우리나라의 2분기 합계출산율이 0.97명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0명대는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나 나타날 법한 현상이라는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구 감소 현상은 자원 분배라는 단순한 시각으로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연료의 혁명에 있다. 석탄이나 석유라는 연료가 재생 불가능하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현재의 식량 생산은 절대적으로 석유 공급에 의존한다. 저자는 감소되는 인구 증가율에도 불구하고 투입된 연료가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대체에너지 전환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후 요 며칠 장마처럼 비가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뉴스 보도에 귀를 기울이며 기상 위성 사진을 가장 많이 보았던 지난주였다. 태양을 향해 정밀한 탐사선을 쏘아 올리고 우주여행상품이 개발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인간은 자연재해에 무기력하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은 상상 이상이다. 일기예보조차 보란 듯이 추측을 벗어난다.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만든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분이다.
다양한 문화는 환경의 영향을 받은 인류가 생존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문화현상들의 연결고리가 놀랍다. 나타날 수 없는 문화의 형태는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함부로 속단하면 안 된다는 점도 배웠다.
저자가 제시한 문화 발전 과정으로 본다면 대체적으로 지금 이 시기는 생태환경의 파괴와 고갈이 일어나는 단계로 판단된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과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한 데이터가 쏟아질수록 점점 분명해진다. 새로운 생산 양식이 나타날 시점이 온 것이다.
역사적 결정론을 지닌 저자의 입장에서 문화는 패턴처럼 되풀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 과정만을 본다면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나 하고 비관적인 듯 보이지만 저자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는 인간들의 대응방식에 주목한다. 유사한 듯 동일하지 않고, 확정적인 듯 확률적이라는 것이다. 하고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 선택을 하는 데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의식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이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어왔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채 살을 편 듯 확 늘어난 느낌이다.
도미노를 떠올린다. 인접해있는 블록이 다음 블록을 건드리면 쓰러지지만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지면 가다가 멈추고 만다. 도미노의 성공여부는 미세한 차이를 두고 바뀌는 방향에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책을 쓴 마빈 해리스로부터, 책을 옮긴 정도영에게로, 책을 읽은 나로부터, 이 리뷰를 읽는 당신에게로 이어지는 인식 변화의 도미노. 거대한 폭풍이 나비 효과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될지 불확실하지만 이렇게 이어지는 과정 어딘가에 아직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