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 원문수록, 학술고증의 완결판
이순신 / 도서출판 여해 / 2021.3.22
- 최대 규모의 문헌고증으로 국보 76호 난중일기를 완전 해독한 교감 역주본 : 새로운 발굴 자료와 고증 내용을 망라한 소장가치 높은 불후의 명저
저자는 35년 동안 한문과 초서를 연구한 고전 학자로서 ‘난중일기’ 원전을 깊이 있게 연구한 이순신 전문가이다. 그의 역서’교감완역 난중일기’ (민음사, 2010)는 최초의 교감 (校勘) 완역본으로서 개정 2판 (여해)까지 간행되도록 학계에 가치를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널리 애독되어 왔다. 특히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가 등재 될 때 심의자료로 제출되어 크게 기여한 바가 있다. 이번에는 다년간 모은 이순신과 관련된 한국과 중국의 방대한 문헌자료를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중일기’ 를 더욱 정밀하게 교감 역주한 교주본 (校註本)을 간행하였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 내용들을 소개하고, ‘난중일기’의 난해한 전고와 용어, 인명, 지명 등을 모두 완벽하게 고증하였다.
새로운 일기 36일치를 포함한 ‘난중일기’ 93,022자를 완전 해독하고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하여 수준 높은 고전번역의 전문성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 교감주석한 원문도 함께 수록하여 번역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했다. 새로 발굴된 내용은, ‘독송사’ (讀宋史) 출전, 이순신의 둘째 아들 열의 이름 풀이, 고전 인용문, 노비 인물, 셋째 아들 면의 전사 기록 등이다. 부록에는 이순신의 전사와 노량해전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다. 이러한 연구내용들이 이순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학술적인 가치를 더욱 높여 줄 것이다.

○ 목차
서문
Ⅰ. 《난중일기》의 역사
Ⅱ.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해제
일러두기
《난중일기 교주본》 번역문
임진일기(1592)
계사일기(1593)
갑오일기(1594)
을미일기(1595)
병신일기(1596)
정유일기(1597)Ⅰ
정유일기(1597)Ⅱ
무술일기(1598)
《난중일기 교주본》 원문
부 록
-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전사
- 《난중일기》 교감 대조표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충무공 (忠武公) 이순신 (李舜臣, 1545 ~ 1598)
이순신 (李舜臣, 1545년 4월 28일 ~ 1598년 12월 16일 / 음력 11월 19일)은 1643년 (인조21년) 3월 ‘충무 (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 (德水)이며 서울 건천동 (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 (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 (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 역자 : 노승석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와 『주역』을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여해 (汝諧) 고전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힘쓰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했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 (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 (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15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난중일기가 베트남어로 간행되었다.
주요 역서로는 『쉽게 보는 난중일기』, 『교감완역 난중일기』, 『단양한시선』,『이충무공종가 유물도록』초역, 『충무공사료집성』, 『충무공유사』, 『한국의 차문화 천년』(공역), 『사호집』, 『교서』(현충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충무공, 최후까지 충성을 다하다〉(교보문고 / 길위의 인문학)가 있다.

○ 책 속으로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힘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이를 따르리라.” – 계사년 9월 15일 이후 기록
이 구절은 이순신이 《통감절요》〈후한기〉희평 (熹平) 원년조에 나오는 송나라의 묵재 (?齋) 채정손 (蔡正孫)이 말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는 이번 문헌고증을 통해 처음 밝혀졌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4백여 년 전 암호같은 이순신의 초서 필적에 담긴 의미를 고스란히 밝혀내다 : 고전전문가의 문헌고증으로 10여 년 만에 가장 완벽한 번역서를 출간하다
- 저자의 ‘난중일기’ 연구 업적은 어떠한가.
《난중일기》에 대한 한글 번역 작업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홍기문과 이은상의 국역본《난중일기》가 오늘날 번역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용어와 명칭에서 전고 미상과 오독 등이 남아 있어 학계에서는 새로운 교감 (校勘)과 재번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저자는 《난중일기》 백여 곳을 교감하여 2008년《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논문 이후로는 교감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연구재단 등재논문 기준). 2010년 이를 기초로 한 《교감완역 난중일기》 (민음사)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최초의 교감 완역본으로서 개정 2판이 간행되기까지 저자는 하나의 발굴 역사를 이루었다. 즉, 《충무공유사》〈일기초〉의 32일치를 일기에 합본하고 《난중일기》에 적힌 《삼국지연의》 내용과 홍기문의 《난중일기》(2013), 《태촌집》 〈충무공난중일기〉의 새로운 일기 3일치, 《임진기록》의 금토패문 전문 (2016), 《삼도실기》의 새로운 일기 1일치 등을 찾아 처음 소개했다. 이를 쉽게 엮은 《쉽게보는 난중일기》가 2016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대학 신입생의 추천도서로 선정하였고, 개정2판이 2020년 대구교육대학교에서 DNUE 50Greatbooks 교양도서로 선정하였다.
- ‘난중일기’ 해독은 초서 해독방법이 관건이다
《난중일기》의 난해한 초서 글자는 간혹 해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독된다. 그러나 초서와 고전을 정통으로 연구한 학자라면 자형보다는 문맥을 중시하는 문팔초이 (文八草二, 문맥 8, 자형 2) 방법으로 해독하기 때문에 견해가 거의 일치한다. 자형이 맞더라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문맥을 따르는 것이 초서해독의 원칙이다. 자형을 위주하면 오독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일본인의 판본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예컨대 《난중일기초》병신년 9월 14, 15일자의 “여진입 (女眞卄)”과 “여진삽 (女眞?)”글귀가 바로 대표적인 오독 사례다. 이 두 가지에 대한 해석만 봐도 전문가의 번역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스물입”과 “서른삽”을 “공 (共)”자로 수정했는데, 명나라 학자 장자열의 《정자통 (正字通)》에, “共은 옛날에는 ‘두손으로받들 공’자로 썼다 (共, 按古作?)”는 내용을 새롭게 찾아 “共”은 “공 (?)”과 통용하는 글자로서 초서로 쓸 때 호용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밝혔다. 다수의 고전 및 초서전문가들도 이에 공감하였다.
그 외 교감과 관련하여 《이충무공전서》《난중일기》(1795)를 보면, 문맥과 실용성을 고려하여 간혹 긴 문장을 줄이거나 어려운 글자를 쉬운 글자로 대체한 경우가 있다. 이는 육서 (六書)의 가차 (假借)법과 동음가를 사용한 한자표기 방법을 적용한 것인데, 이를 모르면 오자로 착각할 수 있다. 때문에 17년 전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 DB에 실린 전서본 글자는 이본의 글자일 뿐 오독된 글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은 기존의 책과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교감완역본이 《난중일기》원문을 축자 (逐字) 형태로 완역한 책이라고 한다면, 교주본은 이순신과 관련된 한중 최대규모의 문헌자료를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중일기》를 더욱 정밀하게 교감 역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내용들을 소개하고, 《난중일기》의 난해한 전고와 용어, 인명, 지명 등을 모두 완벽하게 고증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난중일기》판본의 오류를 교감한 내용을 모두 망라하였고, 이견과 논란이 있는 내용도 모두 바로잡았다.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반영된 교감본 《난중일기》원문을 번역문과 함께 수록하였다. 간혹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나 학자들의 의견차이가 심한 글자의 경우에는 문헌 내용과 이순신이 쓴 용례로써 판단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초서를 연구한 고전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해독방법이다.
이 교주본의 특징은 문헌으로 용어와 인명, 지명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 점이다. 용어는 중국의 24사 (史)를 포함한 고전적에서 관련 내용을 일일이 찾아 고증하였다. 또한 《난중일기》에는 관직만 나오고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인물의 재직 시기를 일일이 추적하여 해당 인물을 찾았다. 《선조실록》의 임면 사항과 방목류, 경상 · 전라도 읍지의 〈선생안〉, 교서, 《선무원종공신록》과 《호성원종공신록》등을 참고하였다. 4백여 곳의 지명과 유적지는 저자의 역저《난중일기유적편》 (2019)을 토대로 향토사료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완하였다.
이제 10여 년 만에 새로운 일기 36일치를 포함한 《난중일기》93,022자를 완전 해독하고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하여 가장 완벽한《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을 출간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한학과 초서를 연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한 조예가 있는 전문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교주본은 고전 학자들이 통용하는 해독 방법으로 《난중일기》해독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에 새로 발굴한 14건의 내용은 고전학자의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연구 성과이므로, 이 교주본은 역시 최고의 노작이자 불후의 명저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