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시몬 베유 / 새물결 / 2021.11.30
이 책은 베유가 신비체험 이후에 쓴 글들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글들 8편을 골라 옮긴 것이다. 4편은 신학적인 글, 2편은 프랑스 중세의 카타르 파 (les cathares)에 대한 글, 나머지 2편은 각각 철학적, 정치학적인 글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2편도 배후엔 신학적 사고가 깔려 있다.

첫째 글인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에서 베유는 “가짜 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짜 신을 믿는 이유를 선 (善)과 행복이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헛된 기대를 하고 헛된 희망을 갖는 것에서 찾는다.
베유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이곳엔 우리가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 그 무엇이 전혀 없음을 알려면,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베유는 이 세계를 서로가 악을 교환하는 세계로 여긴다. 나의 악을 상대에게 떠넘기면 상대가 그 악을 다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고선 베유는 “여기 이곳에 현존하는 신인 완전히 순수한 것”과의 접촉이 어떻게 우리를 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지를 다룬다.
○ 목차
옮긴이 서문 7
1장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1942년 4월, 마르세유) 13
2장 신의 사랑에 대한 무질서한 성찰들(1942년 4월, 마르세유) 23
3장 조에 부스케에게 보낸 편지(1942년 5월, 마르세유) 37
4장 개인성과 성스러움(1943년, 런던) 55
5장 데오다 로셰에게 보낸 편지(1941년 1월, 마르세유) 101
6장 옥시타니아적 영감이란 어떤 것일까(1942년 3월, 마르세유) 109
7장 가치의 개념을 둘러싼 몇 가지 성찰(1941년 1~2월, 마르세유) 129
8장 모든 정당의 폐기에 대한 노트(1943년, 런던) 145
시몬 베유 연보 1

○ 저자소개 : 시몬 베유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노동운동가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공장과 농장의 임금노동자로 취업하였고, 스페인 내란에도 참전한다.
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던 베유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합류하고자 귀국을 시도하던 중 런던에서 객사하였다.
《중력과 은총》, 《억압과 자유》, 《신을 기다리며》, 《뿌리를 갖는 일》 등 주로 사후에 출판된 논문과 유고는 전후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역자: 이종영
파리8대학 정치사회학-정치인류학 박사.
『내면으로』, 『영혼의 슬픔』, 『마음과 세계』 등의 저서가 있고 『에크리』 (공역) 등의 번역서가 있다.

○ 책 속으로
“누군가를 경청한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동안 그의 입장이 된다는 겁니다.
불행으로 인해, 임박한 존재론적 위험으로 인해 마음이 훼손된 존재의 입장이 된다는 건 자기 자신의 영혼을 무 無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행복한 삶을 사는 아이가 자살을 하는 일이 생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은 경청되지 않습니다.” (「개인성과 성스러움」)
“유럽인들의 공공적 삶에 정당이 자리 잡은 건 한편으론 공포 정치의 유산이고, 다른 한편으론 영국의 영향 때문입니다.
존재하고 있다고 해서 정당을 보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善만이 보존의 정당한 동기를 이룹니다.
정당들의 악은 자명합니다. 검토해야 할 것은 정당들에게 어떤 선이 있어서 악을 상쇄하고도 남아 그 존재를 정당화해줄 지입니다.
… 정당들에겐 손톱만큼이라도 선이 있을까요? 정당들은 순수한 형태의 악 또는 거의 그러한 악이 아닐까요?
…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심지어 순수하게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당파적 태도를 취하는 것,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을 대체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의 세계에서 비롯된 나병 癩病입니다.
이 나병은 온 나라에 퍼져 생각 전체를 마비시켰습니다. 이제 모든 정당을 폐지하지 않고선, 우리를 죽이는 이 나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정당의 폐기에 대한 노트」)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한 조각의 빵은, 만일 그것이 올바른 방식으로 준 것이라면, 한 영혼을 구하기에 충분합니다.
받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그런 겸손을 갖고서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걸하는 자세로 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뉴욕에서 쓴 노트에서」)

○ 출판사 서평
- 1940년대의 시몬 베유가 신, 은총, 성스러움, 침묵, 선악, 불행과 기쁨, 정의, 가치, 정당을 말하다.
시몬 베유는 아주 활동적인 철학자입니다.
그녀는 1931년 7월 22살의 나이로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해 프랑스 중남부의 르 퓌 (Le Puy) 여자고등학교로 부임한 뒤 곧바로 노동조합 활동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7일엔 실업자들과 함께 르 퓌 시의회 회의장에 쳐들어가 발언을 해서, 큰 물의를 일으킵니다.
1933년 12월 31일엔 망명 중인 트로츠키가 베유 가족의 집에 머물면서 베유와 격렬한 논쟁을 합니다.
1934년 12월 4일부터 1935년 4월 5일까진 파리의 알스톰 (Alsthom) 공장, 1935년 4월 11일부터 5월 7일까진 파리 근교 불로뉴-비양쿠르에 있는 바스-앵드르 (Bass-Indre) 철공소, 같은 해 6월 6일부터 8월 23일까진 역시 불로뉴-비양쿠르의 르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합니다. 베유는 공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노예처럼 여깁니다. “나 같은 노예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내고 버스를 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입니다.
1936년 8월엔 스페인 내전에 참여해 부에나벤츄라 두루티 (Buenaventura Duruti)가 이끄는 다국적 아나키스트 중대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8월 20일 끓는 기름이 가득한 냄비에 발을 잘못 디뎌 왼쪽 다리와 발목에 큰 화상을 입고 후송됩니다. 그 후 베유가 속했던 부대원들은 전멸합니다.
이처럼 적극적인 베유가 1938년 12월 신비체험을 합니다. 그는 그보다 앞선 1938년 4월 10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북서부 솔렘 (Solesmes) 수도원에 체류하면서,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완전한 기쁨”을 느낍니다. 또 어떤 젊은 영국인을 만나 조지 허버트 (George Herbert, 1593~1633)를 비롯한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을 소개받습니다. 베유는 파리로 돌아와 조지 허버트의 시 「사랑」을 읽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은 내게 들어오라 하네. 하지만 먼지와 죄로 가득 찬
내 영혼은 뒷걸음치네.
그러나 눈 빠른 사랑은
들어오자마자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가까이 다가와 다정하게 물으시네.
뭔가 빠진 게 있냐고.
나는 대답하네. 여기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이 결여되어 있어요.
사랑은 말하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에요.
이 몰인정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제가 말입니까? 아,
저는 당신을 쳐다볼 수조차 없어요.
사랑은 내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대답하네.
제가 아니라면 누가 그 눈을 만들었겠어요?
맞습니다, 주님. 그러나 저는 그 눈을 더럽혔어요. 제 부끄러움에
걸맞은 장소로 가게 해주세요.
사랑은 말하네. 당신은 모르시나요. 누가 잘못을 떠맡았는지?
사랑이시여, 그러면 제가 당신을 섬기겠어요.
사랑은 말하네. 여기 앉아서 제 살을 먹으세요.
그래서 나는 앉아서 먹었네.
그리고 1938년 12월 베유는 이 시를 읽는 도중에 신비체험을 합니다. 즉 “그 어떤 인간 존재보다도 더 밀접하고 더 확실하고 더 현실적인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하지만 베유의 적극적인 활동성은 신비체험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는 1939년 3월 말에는 「평가를 위한 성찰」을 쓰면서 오히려 그동안 견지했던 평화주의를 포기합니다. 1940년 봄에는 자신이 직접 참여할 생각으로 「최전선 간호사들의 양성 계획」을 씁니다.
1941년 4월과 5월 사이엔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가택 수색을 당하고 여러 차례 경찰의 심문을 받습니다. 같은 해 8월 7일부터는 후에 「중력과 은총」을 편집하는 귀스타브 티봉의 농장에서 농업 노동을 하고, 9월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는 포도 수확을 합니다.
1942년 12월부턴 런던에서 드골이 이끄는 망명 정부의 기안자 (起案者)로 일하면서 프랑스에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길 희망하지만 여러 사람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상심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성과 신비체험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먼저 말해둘 것은 베유가 신비체험 이후 쓴 글들은 거의 모두 신비체험의 각인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전쟁의 본질을 숙고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전쟁 속에서도 주어지는 기적과 은총을 뒷부분에서 다루고 있고, 마르크스주의가 정합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논증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는 무한하게 작은 것에 내재한 초자연적 힘을 유물론의 부조리함에 대립시킵니다.
또 전후 프랑스의 재건을 기획하는 「뿌리 내림」의 핵심적 부분인 제3부 「뿌리 내림」의 내용은 전적으로 베유의 신학적인 사고로부터 도출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구체적인 정치의 문제를 다루는 듯한 「모든 정당의 폐기에 대한 노트」도 “오로지 모든 걸 바쳐 전적으로 진리만을 염원하는 사람의 정신 속에 솟아오르는 생각들”로서의 진리를 당파성에 대립시킵니다.
이런 각인은 베유에게서 신비체험과 적극적 활동성의 내적 연결성을 암시해줍니다. 그 연결성은 어떤 예외적인 헌신성에 터하고 있는 듯합니다.
베유는 사후 「전집」 IV-1~4권으로 출간되는 노트들에서 겸손해야 할 필요를 내세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은 무 (無)에의 동의입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기로 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나는 선 (善)이 아니고 오직 선만이 존재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베유는 또 같은 노트에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한 조각의 빵은, 만일 그것이 좋은 방식으로 준 것이라면, 한 영혼을 구하기에 충분합니다. 받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그런 겸손을 가지고 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걸하는 자세로 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베유는 1943년 4월 폐결핵으로 런던의 미들젝스 병원에 입원하고 같은 해 8월 애쉬포드에 있는 요양원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둡니다. 하지만 그의 사인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에서 굶주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없다고 음식을 거부해 영양실조에 걸린 것입니다.
어쩌면 베유의 헌신은 자신이 주장한 겸손처럼 ‘나’를 버리는 것이었고, 이것이 그의 신비체험과 적극적 활동성의 공분모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은 베유가 신비체험 이후에 쓴 글들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글들 8편을 골라 옮긴 것입니다. 4편은 신학적인 글, 2편은 프랑스 중세의 카타르 파 (les cathares)에 대한 글, 나머지 2편은 각각 철학적, 정치학적인 글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2편도 배후엔 신학적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첫째 글인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에서 베유는 “가짜 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짜 신을 믿는 이유를 선(善)과 행복이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헛된 기대를 하고 헛된 희망을 갖는 것에서 찾습니다. 베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이곳엔 우리가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 그 무엇이 전혀 없음을 알려면,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베유는 이 세계를 서로가 악을 교환하는 세계로 여깁니다. 나의 악을 상대에게 떠넘기면 상대가 그 악을 다시 되돌려준다는 것이지요. 그러고선 베유는 “여기 이곳에 현존하는 신인 완전히 순수한 것”과의 접촉이 어떻게 우리를 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지를 다룹니다.
둘째 글인 「신의 사랑에 대한 무질서한 성찰들」에서 베유는 신과 인간 사이의 먼 거리에 대해 얘기합니다. 신은 사랑으로 그 먼 거리를 거슬러 인간에게 다가와야 하고, 인간 또한 사랑으로 그 먼 거리를 지나 신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온갖 거짓말들, 즉 자기기만들입니다. 그래서 베유는 우리의 시선이 영적인 부동성 속에서 오로지 신을 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신이 부재하는 이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랑을 주길 거부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신을 이곳까지 내려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글인 「조에 부스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유는 선악의 갈림길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한계 시점 내에 선을 선택하지 않으면 곧바로 악에 건네진다는 것입니다. 베유는 그 한계 시점 내에 악을 들여다보고 혐오함으로써 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자신이 육체적 고통과 공장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 얘기를 하고, 자신의 신비체험을 말합니다. 베유는 이어 존재를 파괴하는 불행과 “완전한 아름다움에의 전적이고 순수한 귀속”인 기쁨을 신의 사랑에 가닿는 두 통로로 제시합니다(조에 부스케는 1차 대전 때의 총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침대생활을 한 작가로, 「달몰이」가 번역돼 있습니다).
넷째 글인 「개인성과 성스러움」에서 베유는 “모든 사람에겐 성스러운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성이 아니고 “인간 존재 속의 비개인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개인성은 “우리 안의 실수와 죄의 부분”인 반면, 사람 속에선 비개인적인 모든 게 성스럽다는 겁니다.
베유는 개인성은 집합성에 종속되는 것이라 하고, 집합성에서 탈출하려면 비개인적인 것에 진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집합성은 우상숭배의 성격을 갖는 것인 반면, 비개인적인 것은 신에 이르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베유는 권리와 민주주의 개념을 개인성과 결합한 “허공에 뜬”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는 권리, 민주주의, 개인성의 개념에 신, 정의, 진실, 아름다움 등의 개념을 대립시킵니다. 이 후자의 개념들은 “위험하고 불편한 동반자”이지만, 전자의 개념들은 “훨씬 편한” 것입니다. 베유는 “인간적 관념 속에 가둬질 수 없는” 핵심을 포착하기 위해 후자의 개념들을 잘 사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다섯째 글인 「데오다 로셰에게 보낸 편지」는 카타리즘과 관련된 여섯째 글 「옥시타니아적 영감이란 무엇인가」를 읽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수록한 글로, 베유가 카타리즘에 대해 배우기 위해 전문가인 로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카타리즘은 11~13세기에 걸쳐 남프랑스에 폭넓게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냈던 다소 영지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그리스도교입니다. 이 편지에서 베유는 구약과 교황제도가 그리스도교 부패의 두 원인이라고 하면서 카타리즘에 대한 끌림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카타리즘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베유는 카타리즘 자체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합니다. 베유는 자신의 철학사적 관점에 카타리즘을 편입시키는 추상적 발언을 할 뿐인데, 카타리즘을 “철학이 종교화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예로 제시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여섯째 글인 「옥시타니아적 영감이란 무엇인가」에서 베유는 “과거 속에서 영원성을 식별하는” 작업을 중세 남프랑스 언어인 오크 (Oc)어를 썼던 지방인 옥시타니아를 대상으로 행합니다. 옥시타니아는 13세기에 카타리즘을 절멸시키려는 십자군에 의해 잔혹하게 파괴되고 프랑스에 편입됩니다. 옥시타니아는 로마네스크 문명의 중심지인데, 베유는 그 문명에서 프랑스 고유의 영적 전통을 찾아내려 합니다. 베유는 로마네스크 문명이 진정한 르네상스를 이루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는 가짜이며 오히려 정신적인 것을 위축시켰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로마네스크 문명의 궁정식 사랑, 예술, 공공적 삶에서 평등주의적 속성들을 찾아내고, 마침내 카타리즘을 논의합니다. 하지만 카타리즘에 대한 베유의 논의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소략합니다.
일곱째 글인 「가치의 개념을 둘러싼 몇 가지 성찰」에서 베유는 “모든 가치에서 빠져나오기”를 사고합니다. 베유에 따르면 가치는 “모든 사람 머릿속에 항상 머무는 것”이면서도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가치를 믿는 걸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인간의 삶은 무언가를 행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악순환이 생겨납니다. 1) 모든 가치에서 빠져나오려면 그런 빠져나오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데, 2) 그러려면 이미 모든 가치에서 빠져나와야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베유는 그런 빠져나오기를 은총을 통해 주어지는 기적으로 여깁니다.
베유는 가치 개념이 철학의 중심이라고 하면서, 이 논문을 일관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의 속성을 제시합니다. 특히 모든 가치에서 빠져나오기를 죽음에 비교하면서, 철학은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철학적 전통은 플라톤이 대변하는 것이자 세계적으로 일정하게 공유되는 것으로, 모순을 제거하지 않기 때문에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덟째 글인 「모든 정당의 폐기에 대한 노트」에서 베유는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실현의 두 조건으로 1) 집합적 정념을 배제해야 하고 2) 국민들이 공공적 삶에 대해 의지를 표현해야 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정당이 폐기돼야 하는 건 “집합적 정념을 만들어내는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베유는 정당의 집합적 정념에 사람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들을 세밀하게 제시합니다. 그러고선 집합적 정념의 기계인 정당의 원천을 가톨릭교회의 이단 탄압에서 찾습니다. 정당은 “파문의 위협으로 무장한 세속적 교회”로, 집합적 정념에 따라 진실과 정의를 억압하고, “생각하지 않기의 편안함”을 퍼트린다는 것입니다.
베유는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진실을 염원할 수 있고 또 만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신학적 언어들로 제시합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정당은 그런 진실의 조건들을 파괴하기 때문에 “순수한 악”이고 그래서 정당의 폐기는 “순수한 선”이라는 것.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