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베르너 폴트 / 시공사 / 2003.6.30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가라면 그의 일생이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천재적인 인물’로 추앙받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한 음악가는 19세기 전 유럽을 집단 히스테리로 몰고 갈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음악성을 선보였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존경은커녕 기이한 전설과 소문으로 점철한 채 죽어 갔다. 그가 바로 G현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했던 니콜로 파가니니이다.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놀랍고 파격적인 그의 연주, 그리고 독특한 용모, 드러나지 않은 삶의 이력 등으로 인해 파가니니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무수한 소문과 오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에게는 신들린 인물이니 사탄의 아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수식어가 공공연히 따라다녔고, 해괴한 소문과 유언비어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지병과 더불어 끈질긴 악성 루머, 이를 부추기는 선정적 저널리즘, 그리고 부패한 교권의 횡포 등으로 그는 살아 있는 내내 고통을 당했고, 사망 후에도 오랫동안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파가니니는 죽었으되 그의 이름은 더욱 신비화되었고 불운의 저주는 오래도록 살아 남아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 저자소개 : 베르너 풀트 (Werner Fuld)
1947년생. 작가이며 문학비평가.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고 현재 뮌헨 근교에서 산다. 주요 저서로는 발터 벤야민과 빌헬름 라베를 다룬 두 권의 전기, 그리고 창작 일화집 두 권이 있다. 최근작으로는 『유언 백과(Lexikon der letzen Worte)』와 『고양이와 다른 인간들(Von Katzen und anderen Menschen)』 등이 있다.
– 역자 : 김지선
1965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번역서로는 『베르트람 아저씨는 어디에?』와 『도둑맞은 아이디어』가 있다.
○ 책 속으로
빈 사람들은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간소한 제단을 생각해 냈다. 파가니니라는 성물은 모든 상점에 깔렸다. 제과점은 사탕과자로 만든 작은 파가니니를 팔면서 포장지에 그의 초상화를 인쇄해 넣었다. 파가니니 모자와 장갑도 나왔다. 레스토랑에서는 바이올린 모양으로 만든 파가니니 빵이며 하드롤을 내놓았고, 빈의 명물 에시테르하지 로스트비프조차도 몇 달 동안은 이름을 파가니니로 바꾸었다. 여자들은 너도나도 머리를 대충 풀어 늘어뜨리고 다녔고, 남자들은 바이올린 문양이 새겨진 스카프를 둘렀다. 단추나 지팡이, 담뱃갑, 약상자 등에도 그의 초상이 새겨졌다. 심지어 당구에서는 어떤 동작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이기도 했다. 5굴덴짜리 지폐는 ‘파가니니권’으로 불렸다.— p.138
“얼마나 많은 적들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지, 자네는 차마 믿지 못할 걸세. 내가 누구한테 나쁜 짓을 한다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두고 범죄자라는 둥, 수전노라는 둥, 탐욕가라는 둥 온갖 소리를 써 댄다네. 유럽 각지에서 가징 연주회의 입장료를 더 올려 받아 앙갚음을 할 작정이네.”— p.156
드디어 내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났는데, 가운데 두 개의 현을 풀고 E현과 G현만 남겨 놓은 채였다. 첫째 현은 여자, 둘째 현은 남자로 정해 연주를 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다툼과 화해의 장면을 암시하는 일종의 대화였다. 두 현은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또 금세 한숨을 내쉬었다. 속삭이고, 괴로워하고, 장난치고, 즐거워하다가 마지막에는 기쁨으로 환호했다.— p.62

○ 출판사 서평
G현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했던 니콜로 파가니니.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놀랍고 파격적인 그의 연주, 그리고 독특한 용모, 드러나지 않은 삶의 이력 등으로 인해 파가니니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무수한 소문과 오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에게는 신들린 인물이니 사탄의 아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수식어가 공공연히 따라다녔고, 해괴한 소문과 유언비어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지병과 더불어 끈질긴 악성 루머, 이를 부추기는 선정적 저널리즘, 그리고 부패한 교권의 횡포 등으로 그는 살아 있는 내내 고통을 당했고, 사망 후에도 오랫동안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파가니니는 죽었으되 그의 이름은 더욱 신비화되었고 불운의 저주는 오래도록 살아 남아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 악마라는 낙인으로 점철된, 파가니니 삶 :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 푸른 안경을 쓴 말라깽이 남자가 있었다. 마력적인 아우라로 1830년대 대중을 사로잡았던 니콜로 파가니니!
그는 악마에게 바치는 제사를 거행할 때면 꽤 비싼 입장료를 요구했다. 그래서 신기에 가까운 그의 음악성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얻은 것이며 현란한 기예를 보여 주는 그 G현은 바로 그가 제 손으로 죽인 애인의 장(臟)을 잘라 만든 것이라는 둥 해괴한 소문이 평생 그를 떠나질 않았다. 그 소문대로라면 그는 분명 사탄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아버지의 매질과 고된 훈련으로‘신동’소리를 듣게 된 이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영리한 기술자였다. 성인용 바이올린으로 연습을 해야 했던 어린 니콜로는, 팔길이가 짧아 교본에서 지시하는 대로 바이올린을 몸과 직각이 되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나름의 기술을 터득했고, 그 덕분에 남달리 탁월한 연주가 가능했던 것이다. 파가니니가 탐욕스럽게 비쳤다면, 그 이면에는 아들 아킬레의 장래를 보장해 주고 싶은 부성애와, 병약한 아버지의 노심초사가 있었던 것이다.
– 음악계 대중 스타의 시초 : “파가니니는 명인이라는 개념의 일대 전환점이다.”
고국 이탈리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데 그치지 않고 알프스 이북에서도 일련의 연주회로 가히 마성적인 세기의 기적으로 등극한 저 창백한 대가의 연주를 듣고 나서 로베르트 슈만이 했던 말이다. 제노바 출신의 천재 니콜로 파가니니의 등장은 프로모션, 홍보, 파파라치가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본격적인 현대적 스타 산업의 시대를 열었다. 동경과 몰락이 공존하는 그와 같은 인물상은 19세기 초반 모든 다른 예술가들을 압도하는 것이었으며, 노출증적 시대를 살아 가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는 현대적 스타 숭배 문화가 낳은 최초의 산물이자 최초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 경직된 사회가 낳은 저항의 메아리
파가니니의 퍼포먼스는 오늘날이라면 악의 없는 익살이라고 하겠지만 당시로서는 명백히 정치적인 시위였다. 교권에서 비롯된 기이한 소문과 대중들을 자극하는 선정적 보도는 파가니니를 불굴의 음악가로 만들었다. 바이올린의 한 현으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그가 대중과 사회를 상대로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고 카타르시스였다.
– 숱한 병마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육체적인 질병과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 평생을 괴롭힌 악의적인 소문들과 씨름하는 외로운 인간이었던 그는 폐결핵, 매독, 류머티즘, 후두염, 신경 장애 등 확실히 알려진 병 이외에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병들로 늘 고통을 받아 왔다. 이처럼 처참한 질병을 앓아 온 파가니니였지만, 그는 삶에 대한 끈질긴 집념으로 당나귀 젖과 다량의 수은, 아편, 약초탕, 진흙 목욕 등 의사가 시키는 모든 처방을 필사적으로 따랐다. 그것은 놀랄 만한 그의 의지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① 국내 최초로 출간된 파가니니 전기
파가니니는 그 이름과 명성에 비해 개인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오히려 너무나 전설적인 이미지가 강력한 탓인지 그의 동시대인들에 비해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에서는 파가니니를 다룬 책이 아직까지 선보이지 않았다. 철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하는 이 평전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미지와 개인사간의 차이를 집요하고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출간된 이 책은 파가니니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② 대중 사회 속의 시선으로 바라본 천재 예술가 파가니니의 삶
저자는 음악학적인 접근이나 상세한 연대기적 기술이 아닌 파가니니라는 천재적 음악가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특히 파가니니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괴테,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로시니, 꽤나 회의적인 태도를 내보였던 리스트, 음악성으로 파가니니를 감동시켰던 베를리오즈 등 그 당시 명사들과의 조우를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③ 지인(제르미)과의 편지를 통해 당시 파가니니의 심정 묘사
이 책의 장점은 파가니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이자 재산 관리자인 제르미에게 당시 있었던 일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여과 없이 편지로 적어 보내곤 했다. 저자는 이 편지를 수집하여 책 중간중간에 설득력 있게 배치해 놓았다.
④ 기존의 평전 틀 탈피, 객관적 고증을 통한 재해석
인물에 대한 미화는 완전히 배제하고 시종일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의 천재성이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 음악 애호가들, 그리고 음악인들과 언론에 의해 어떻게 이해되었고, 어떻게 파급되었는지를 당시의 자료들을 통해 재해석하고 있다.
⑤ 파가니니의 주검 표류기를 상세하게 묘사
파가니니의 주검이 36년 동안 여기저기 옮겨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사망한 장소가 프랑스 니스라는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815년 나폴레옹 정권이 몰락하자 당시 제노바와 니스는“이탈리아 북서 지방의 영토적, 종교적 처리 규정”에 의해 대부분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파가니니가 니스에서 죽은 것은 바로 빈에서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의 자유주의를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억압 정책으로 말살시키려 하자 유난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의식이 강했던 제노바인들은 맹렬히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기와 파가니니의 죽음이 맞물려 있었던 까닭에 그들은 파가니니의 죽음에 대해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이렇듯 파가니니가 죽은 장소가 그의 고향인 제노바인들로 하여금 그를 무시하도록 만들었다면 설상가상격으로 파가니니가 죽은 방식은 그의 모국 교회의 원로들에게 격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즉 1815년의 “규약”은 정치적 억압뿐만 아니라 교황의 옛날식 권위도 완전히 회복시켰기 때문에 당시 이탈리아에는 중세적 교회의 모든 권위와 정책이 그 폐습과 더불어 무섭게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파가니니의 유언 속에는 교회를 위한 자선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던 까닭에 수많은 세월을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또 다른 고통의 연장선이었다.
⑤ 알려지지 않은, 파가니니의 초상화 수록
파가니니 흉상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귀중한 그림이나 조각을 발굴해 냈다. 그중 1830년 카롤리네 바르두아가 그린,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을 배경으로 너무도 섬세한 손에 모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파가니니 초상화는 참으로 멋지고 매력적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