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 환기미술관 / 2005.9.23
화가 김환기의 산문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가 아내 김향안 여사의 산문집인 『월하의 마음』과 함께 출간되었다. 1940년대의 청년기로부터 1974년 마지막 의식을 가지고 있던 순간까지, 그가 남긴 수필과 일기, 다채로운 드로잉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1995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작품을 새롭게 펴냈다. 주변의 많은 지인들로부터 칭송 받았던 인간미와 앞서가는 사고가, 각각의 글 속에서 빛을 발한다. 제목으로 쓰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에서 빌려온 것으로, 1970년 ‘한국일보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환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 목차
1
자화상
군담
선
그림에 부치는 시
무제
산처기
파리에서 보내는 편지
신인양성이 급하다
여름 2제
곡마단
여인
서울에 돌아와서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
의욕의 서울
포도
산방기
파시
남풍
무제
수화
호박
순대튀김
서울
예술소론
국전의 명랑성
중세기적 우화의 세계
미술대학의 이상
여인과 지성
서울의 산
그림 안 파는 이야기
가시 울타리랑 걷어치우고
청백자 항아리
놀란 토끼
2
내 아끼는 딸에게
지화상을 그리며
여섯 평 공방에서 허송세월
처녀 출품
파리통신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파리의 지붕 밑
봄이 오고 있는데
하늘
산
빗속의 광채
파리화첩
아내에게 주는 편지
상봉
무제
배꽃
밤섬과 비둘기
비둘기
서울
편편상
3.
고향의 봄
가을의 소리
피카소와 돋보기
상 파울로전의 인상
항아리
무제
새해
둥근 달과 항아리
소냐
자연스러운 생활
뻐꾸기와 꽃향기
어글리 서울
뉴욕통신
4
미술대학의 사명
입체파에서 현대까지
전위미술의 도전
5
편지와 일기

– 저자소개 : 김환기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면 (현 안좌면)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를 졸업하고, 1937년 동경 아마기 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가졌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서울대 예술학부 미술과 교수를역임하고, 1948년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를 조직했다.
1952년, 1959~1963년에 홍익대 교수와 학장을 지내고. 1956년~1957년 파리 베네지트 화랑에서 제 6~7회 개인전을 가졌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회화부분 명예상을 수상했고, 1964년 J.D.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1964년 뉴욕 아시아 하우스 화랑에서 제15회 개인전을 가졌고, 1965년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실에 초대되었다.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을 수상했다.
1973년에는 뉴욕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제21회 개인전을 가졌고, 1974년 루이지애나 슈레브포트 반웰미술관에서 제22회 개인전을 가졌다.
1974년 뇌출혈로 별세했고, 뉴욕 발할라 (Valhalla) 마을의 캔시코 (Kensico) 묘지에 안치되었다.

– 책 속으로
생각하면 참 미술가처럼 악착같은 존재는 없는 것 같소.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참 지독하거든. 만사가 그림을 할 수 없도록만 되어 있는 현실 여건에서 그래도 그림을 해나가는 걸 보면 뭐라 할가 정말 지독한 친구들이오.
예술과 싸운다거나 희생한다는 얘기, 많이 듣기도 했고 또 책 속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이 아니겠소. 그런 것을 읽고 들을 때마다 무슨 문학적 감상이냐고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오. 그런데 우리가 전쟁을 겪고 부산에 내려와 전쟁 속에서 살면서 친구들을 보고 나를 보매 그것이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우리들은 분명히 예술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정말 예술과 싸우고 있는 것이오. 투쟁의 싦감, 현실의 실감, 예술의 실감-이 얼마나 소중한 실감이 아니겠소.
코리아는 예술의 노다지올시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이제 전세계의 예술은 그 주제가 우리 코리아에 있다는 말이오. 혹 어디로 가버리고 싶다가도 그래도 우리나라가 좋거든. 밉던 놈고 가만히 보면 불쌍해지거든. 가까운 친구가 요즘 술잔이나 하면 곧잘 통곡을 하는데 그 심경 알 것 같아. — 「1963년 5월 6일 밤, ‘파리에 보내는 편지 – 중업 형에게」 중에서
– 김환기 화가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캔버스에 유채. 세로 236㎝, 가로 172㎝. 개인 소장.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점화의 작업방식은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 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싸 가는 동안에 색이 중첩되고 번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체 화면을 메꾸어가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을 화면 전체에 찍어나간 작품으로, 무심코 찍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내용
김환기는 1933년 일본 유학을 떠나 1940년대 초반까지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 자유미술가협회, 미술창작가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구성주의 계열의 추상미술을 국내에 도입한 초기 모더니스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일본유학시기 (1930년대 ~ 1940년대 초반), 해방 후부터 뉴욕으로 떠나기 전까지 (1945 ~ 1963), 뉴욕시기 (1964 ~ 1974)로 크게 나뉜다. 해방 이후 그가 신사실파 (1948 ~ 1953)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자연 소재를 기반으로 한 반추상화를 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파리체제시기 (1956 ~ 1959)를 거치면서 달, 여인, 항아리, 매화, 사슴 등의 한국적 소재를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를 낸 화면에 단순화시켜 표현하는 서정적 반추상화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반추상양식이 추상화로 발전한 것은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부터이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난 후 한국화단에서 잊혀질 무렵인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김환기는 자신의 근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반추상화에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찍은 추상화로의 변신은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 (金珖燮)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 수록/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이다.
김환기는 이러한 자신의 점화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그의 일기에 쓰고 있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가로 2m, 세로 3m 정도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대략 4주일 정도가 걸려 1년 동안 평균 10여 점 정도를 제작했다. 캔버스는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들었으며 광목을 캔버스에 매어 아교칠을 한 다음 필요한 만큼의 색을 풀어서 유리병에 미리 준비한 후 점을 찍어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후 그는 화면에 활형의 곡선을 도입한다든가, 하얀 선을 도입하기도 했으며 푸른색, 주황색, 빨강색 등 색조의 다양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요소는 화면 안에서 공간의 확장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신비로운 우주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뉴욕시기 김환기의 점화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색면추상주2과 같이 단색화, 전면 균질적 화면 (all over painting)의 성격을 지니나 색조의 미묘한 변조와 농담의 변화, 발묵주3효과와 같은 번짐 효과 등을 통해 그들과 다른 세계 즉 동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우주적 공간의 이미지를 담은 추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