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 20세기 최고 지성 3인의 반전 평화 아포리즘
톨스토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 해례원 / 2013.12.12
20세기 최고의 지성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프로이트에게 듣는 반전 평화 아포리즘.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반복되는 인류의 살육에 격분, 영국의 런던타임즈에 ‘러일전쟁론’을 기고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은 세계대전이 끝난후 더욱 극렬한 반전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평화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냥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전투적 평화주의자이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전쟁에서 죽는 것보다 내가 믿는 것을 따르다 죽는 편이 낫다.”
전쟁의 세기, 20세기가 가고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전쟁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과연 전쟁을 끝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쟁의 세기를 살다 간 20세기 최고의 지성 3인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전쟁의 세기와 20세기 최고 지성 3인의 반전 평화 아포리즘
끝내 인류는 이런 무서운 대죄를 범해버렸다.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 L. 톨스토이
사람들의 양심과 양식이 잠에서 깨어나, 전쟁이라는 것이 조상이 행한
이상한 행동으로 인식되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A. 아인슈타인
우리는 왜 전쟁에 강한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왜냐하면, 전쟁은 한 사람의 희망에 가득 찬 인생을 완전히 부셔버리기 때문이다. – S. 프로이트

○ 목차
INTRO
전쟁의 세기와 20세기 최고 지성 3인의 반전 평화 아포리즘
Ⅰ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 – L.톨스토이
1. 러일전쟁을 꾸짖다
지식인들의 속임수 / 방향을 잃은 우상, 러시아 황제 /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가? / 공동사업 / 낭떠러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 / 인간성 향상과 종교의 필요성 /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 신이 정한 목적과 나의 삶 / 양심과 종교 /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가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2. 톨스토이 시국담
어느 누가 전쟁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 / 사람들은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본분에 냉담하다 / 세계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 살인자는 어떤 가죽을 써도 미워해야 하는 것 / 어떻게 인간의 진보를 부정할 수 있을까
Ⅱ 애국주의를 반대한다 – A.아인슈타인
전쟁에 관한 나의 생각 / 전쟁에 관한 말들 / 애국주의와 군대에 관한 말들 / 정치와 과학에 관한 말들 / 평화를 갈구한 말들 /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다 / 마지막 메시지
Ⅲ 평화,이성적 인간이 가야할 길 – S.프로이트
1. 전쟁에 대한 환멸
전쟁에 관한 시평
2. 아인슈타인-프로이트 왕복서한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 / 아인슈타인에게 보내는 편지

○ 저자소개 : 톨스토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후 원시 기독교에 복귀하여 러시아 정교회와 사유재산제도에 비판을 가하며 종교적 인도주의, 이른바 ‘톨스토이즘’을 일으켰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금주와 금연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빈민구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899년에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 (현재 톨스토이 역)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 저자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독일 출신의 미국 이론물리학자. 300편이 넘는 과학 논문과 150편이 넘는 과학 이외 일반 분야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그가 이룬 놀라운 업적과 지적인 독창성은 ‘아인슈타인’이란 단어를 ‘천재’란 말과 동의어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게 했다.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1905년은 물리학에서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데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 등 현대 물리학의 초석을 놓은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해 시간, 공간, 질량, 에너지에 대한 고전역학 이래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교수로 있다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가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재직했다. 2차 대전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극도로 강력한 새로운 유형의 폭탄’에 대한 경고 편지를 써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원자탄이 개발되는 데 일조했지만 그것이 무기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했다. 말년에 인생의 가장 큰 실수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사실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 민주적인 세계 정부 수립이라는 이상을 강력히 옹호했고 대중들에게 핵무기와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평화 운동에도 헌신했다. 냉전 체제가 고착화되던 1955년 버트란드 러셀과 함께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 서명한 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되었다. 그가 죽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 저자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Sigmund Schlomo Freud, 지기시문트 술로모 프로이트)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 역자 : 이시언
20여년을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20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주로 고전작품의 기획과 번역(영어와 일어), 편집 일을 해왔다. 최근 쓴 책으로는 《조선 괴서, 조작의 역사》, 엮고옮긴 책으로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톨스토이,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지음), 옮긴 책으로는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나쓰메 소세키 지음) 《광고하는 살인》(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애국주의와 일본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를 맞았을 때, 세계는 ‘제국주의’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었다. 구미 각국은 지구를 분할하는 데 광분해 있었다. 그러나 열강끼리 국가 대 국가로 맞붙는 일은 아직 없었다.
19세기 유럽이 탄생시킨 ‘애국주의(내셔널리즘)’가 20세기의 세계 전체에 퍼져간다. 비(非)구미제국은 구미의 강력한 군사력과 공업력에 압도되어, 스스로도 국민국가를 형성해 이에 대항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애국주의’와 ‘공업화’라는 과제를 20세기 초에 유럽 이외의 민족이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뿐이다. 일본은 마지막에 등장한 제국주의국으로 극동의 분할에 참가하게 된다. 1902년에 영일동맹을 체결, 일본은 영국이 극동에서 러시아에게 대항하기 위한 일익을 담당한다.
‘애국주의’ 국민국가 일본의 구축 과정은 싫든 좋든 러일전쟁에서 완성된다. 이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 극동에서의 패권을 장악, 1910년에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함으로써 대륙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 톨스토이의 ‘러일전쟁론’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반복되는 인류의 살육에 격분, 영국의 《런던타임즈》에 〈러일전쟁론〉을 기고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이 책 1부 1장)
그리고 이듬해 1905년, 프랑스 파리의 《피가로》지는 톨스토이의 저택으로 특파원을 파견해 톨스토이의 ‘러일전쟁관’을 취재한 장편기사를 연재한다.(이 책 1부 2장)
이 두 글에서 톨스토이는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 눈은 무섭게 빛나고 커다란 가슴은 안에 있는 열기로 두껍게 파도치며’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피력했다.
그러나 이 노 대문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은 탓일까,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난 후 끝내 인류는 무서운 대죄를 범해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년(2014년)이 1차대전이 발발한 지 꼭 100주기가 되는 해이다.
– 제1차 세계대전과 독가스
1차 대전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라는 발칸의 한쪽 구석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이 땅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먼저 보스니아를 병합하고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하자 세르비아 암살단이 그들을 살해해 버린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몇주가 지난 뒤, 사건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일본과 독일이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자 세르비아의 뒤에 있던 러시아가 참전을 선포한다. 그러나 독일은 러시아가 아닌 프랑스를 침공한다. 러불동맹으로 러시아의 참전은 곧 프랑스의 참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독일 주력부대는 견고한 프랑스 국경방위선을 우회해, 벨기에로 나아가 국경을 넘는다. 당시 벨기에는 중립국이었다. 이를 빌미로 영국이 참전하게 된다. 그러자 일본이 독일의 식민지인 중국의 칭다오(靑島)를 공격한다. 영일동맹으로 영국의 참전은 곧 일본의 참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대해 간다. 19세기말 이후 열강들의 동맹?협상체제가 전쟁을 빠르게 확대시킨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고착상태에 빠진다. 이에 독일은 1915년 4월부터 독가스를 전쟁에 도입, 전선돌파의 기회로 삼았다.

– 프로이트의 ‘전쟁과 죽음에 관한 시평’
세계는 경악했다. 당시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정신분석의 이론을 구축해 사회과학과 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전통적인 인간관을 크게 흔들어 놓은 프로이트는 〈전쟁과 죽음에 관한 시평〉이라는 글을 발표해 전쟁에 대한 환멸을 드러낸다.(이 책 3부 1장, 여기서는 그 중 전쟁에 관한 부분만 소개한다)
이 글에서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도 지배자 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로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전쟁을 끝내는 개혁의 길을 원활하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독가스의 등장은 전쟁터의 풍경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을 뿐 전세를 결정짓지는 못했다. 이에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쳐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함선을 경고 없이 침몰시킨다. 그 결과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측에 서서 참전하게 된다.
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렸다.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수많은 무기가 발명된 것이다. 전쟁의 막바지에 등장한 탱크와 항공기는 두 번째 대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은 동유럽 네 개의 제국,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를 매장하면서 끝이 난다. 제국들이 전쟁에 패해 스스로 붕괴하든가 혁명으로 흔들려 와해해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조짐
20세기의 키워드 중 하나가 ‘대중 (people. volk)’이다. 산업혁명의 결과 대중이 도시에 출현, 정치, 경제, 문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힘이 되어간다. 드디어 대중에 의한 정치지배가 20세기에서 ‘정의’의 대명사가 된다. 이 대중화에 응해 등장한 것이 서구에서의 의회민주주의, 러시아에서의 볼셰비즘, 그 중간 지역에서의 파시즘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정치형태에 애국주의가 결부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풍부한 인적자원과 공업력을 이용해 군비를 확장해가는 것이다.
제1차 대전 후에 잠시 호황을 누린 일본은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린다. 그래서 중국령 만주에서 활로를 찾았다. 만주는 자원이 풍부했다. 게다가 가상적국인 소비에트를 견제할 수 있는 군사거점도 되었다. 독일은 세계공황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공황 이듬해의 선거에서 나치스가 대약진, 1932년에는 제1당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 드디어 정권을 수립해 대중을 전쟁으로 몰아간다. 1920년대부터 무솔리니가 독재를 하고 있던 이탈리아는 1930년대에 대외로 확장을 노려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편지를 교환하다
이런 국제적 상황에서 1932년, 국제연맹이 아인슈타인에게 의뢰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골라, 가장 의견을 나누고 싶은 상대와 편지를 교환해 주세요.’
‘사람을 전쟁이라는 멍에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선택한 문제였고, 상대는 프로이트였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 이전에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을 깊이 사랑하는 한 인간이었다. 1922년에 그는 국제연맹의 지적협력위원회의 위원에 선출됐다. 프로이트가 아인슈타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이 책 3부 2장)
이 편지가 오간 이듬해인 1933년, 독일에서 나치스가 권력을 잡는다. 나치스는 무기 은닉을 이유로 유대인인 아인슈타인 부부의 별장을 가택수색한다. 이후 나치스로부터의 암살 위협을 느낀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한다.
한편 나치스는 신경분석에 관련된 프로이트의 책들을 모두 금서로 지정했다. 이후 1938년, 나치스는 유대인 사냥의 일환으로 프로이트의 〈국제정신분석출판소〉를 접수하고 집을 가택수사한다. 이에 프로이트는 가족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망명한다. 이듬해, 프로이트는 암으로 런던에서 사망한다.

– 제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
그 사이 1936년에 스페인에서는 내란이 일어나고, 1939년에다시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다. 독일은 폴란드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동에서 침입한 소비에트와 함께 독일은 폴란드를 분할한다. 그런 독일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했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아무것도 강구하지 않았기에, 결국 폴란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있었다.
‘1939년 여름, 물리학자 한 무리가 독일정부의 핵무기 개발을 우려해 이를 논의하려고 모였다. 그중 몇몇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의 위험성을 즉각 알리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초안이 완성되자 서명은 아인슈타인이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본문 144쪽)
대전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자 대립 구도가 완성된다. 한쪽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거기에 루마니아, 헝가리, 핀란드 등이 가세)를 중심으로 한 추축국 (樞軸國, Axis Powers)이고, 다른 쪽은 영국, 미국,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었다.
첫 반 년간 태평양에서 일본군의 공격은 눈부셨다. 그 뒤 반 년간 일본군은 일진일퇴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한다. 유럽에서도 태평양과 거의 마찬가지였다. 추축국 측은 1943년부터 후퇴를 거듭한다.
같은 시기에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전쟁의 추세를 결정짓는 상륙작전이 결행되었다. 모두 정공법의 상륙작전으로, 공군력과 함포사격으로 방위하는 측을 압도한 뒤 상륙을 감행했다. 이런 작전을 수행하려면 막대한 후방지원이 필요했지만 미국은 두 개의 작전을 동시에 수행했다. 독일에게는 무조건 항복하는 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독일의 항복 후에도 태평양에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후의 2개월은 일본의 도시가 하나씩 진토로 화해가는 나날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공습과 포격사격을 반복, 일본의 도시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8월에 들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데다 소련까지 참전하는 사태로 치닫는다. 일본도 결국 무조건 항복을 결정한다.

–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아인슈타인은 더욱 극렬한 반전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말한다.(이 책 2부)
“나는 평화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냥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전투적 평화주의자이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전쟁에서 죽는 것보다 내가 믿는 것을 따르다 죽는 편이 낫다.”
세계대전이 끝났는데 그는 왜 이런 말을 해야 했을까?
그는 어쨌든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그 원자폭탄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인류는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 눈을 감을 때까지 물리학자로서보다는 평화주의자로 살아갔다.
–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이 독립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식민지의 독립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이 발발한다. 또 새로 독립한 국가끼리도 전쟁이 빈발한다.
간단하게 그 목록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1956년, 2차 중동전쟁. 1967년, 3차 중동전쟁. 1973년, 4차 중동전쟁 / 1950년~53년, 한국전쟁 / 1956년, 수에즈 동란, 헝가리 동란 / 1965년, 베트남전쟁. 1970년, 캄보디아의 쿠테타, 미군 캄보디아 개입 / 1960년, 콩고 내란. 1967년~70년, 나이지리아 내전 / 1975년~76년, 앙골라 내전. 1983년, 차드 내전. 1992년, 소말리아 내전. 1994년, 르완다 내전 / 1963년, 키프로스 분쟁.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운동. 1971년, 제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 1974년, 키프로스에서 쿠테타, 터키군 침공. 1975년, 레바논 내전. 1979년, 소련군, 아프카니스탄에 침공. 1979년, 베트남, 캄보디아로 침공. 1979년, 중국, 베트남에 침공. 1980년, 이란 이라크 전쟁. 1982년, 아르헨티나군, 영국령 포클랜드제도로 침공. 1983년, 중미 그레나다에 미군침공. 1986년, 미군의 리비아 공습. 1989년, 미군의 파나마 침공.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1991년 걸프만 전쟁.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1999년, 코소보 자치주에서의 민족항쟁.
이렇게 전쟁의 세기, 20세기가 가고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전쟁은 끝났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과연 전쟁을 끝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쟁의 세기를 살다 간 20세기 최고의 지성 3인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 독자의 평
시리아 내전. 티벳의 독립. 중동의 끊이지 않는 분쟁.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북을 들먹이는 이 사회에서 전쟁이 나와는 무관할까? 그런 생각에 이 책을 펼쳤고 우리는 모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인간이 아닌 제국주의와 얄팍한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파렴치한 권력에 분노를 표하며.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