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여행일기
알베르 카뮈, 까뮈 / 책세상 / 2005.9.15
알베르 카뮈의 여행 기록을 모은 『여행일기』. 이 책은 1946년 3월에서 5월까지의 미국 여행과 1949년 6월에서 8월까지의 남아메리카 여행에 관한 일기 형식의 노트 두 편을 1978년에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카뮈 전집 책임 편집자인 로제 키요가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완성된 문학 작품과 달리 나날의 단편적인 메모들이 담겨 있으며 보다 사적인 영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단상은 작가의 지적 탐구를 드러내며, 사적인 교유와 대화 등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카뮈의 모습이 암시되고, 즉흥적으로 기록한 메모에서는 작품의 밑그림이 발견된다. 여행이라는 비일상의 경험에서 유발되는 낯설음과 불안, 강렬한 인상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여행에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카뮈라는 한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기 위한 산고의 순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일기』는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La Peste』가 어떤 상황에서 구상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부조리의 각성이라는 주제가 인간적 유대의 회복으로 한층 심화된 계기에 대한 단서도 제공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가 거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암시하는 자료로서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저자소개 :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출생하였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초등학교 시절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한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6세가 되던 때부터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방인』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만 29세이던 1942년 이 소설을 발표한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라 평가받는 『이방인』에는 살인 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으로,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부조리에 대한 추론을 시작으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등 철학적 에세이를 엮은 『시지프의 신화』는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벌로 큰 돌을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를 무한정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죄를 모티브로 하여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측면을 명쾌하게 분석한 철학 에세이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그 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 즉 감옥 속의 인간을 상징한다. 카뮈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모순에 찬 삶 평온한 삶 위에 덮친 모순과 허망, 즉 부조리 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낙관적 기대 없이 묵묵히 그 허망과 맞서서 대결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알베르 카뮈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책은 『반항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카뮈의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성찰을 담은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반항하는 인간』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카뮈의 대표적인 시론(試論)이다. 1951년 출간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했던 이 책에서 카뮈는,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철학적·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 외에도 『적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 역자 : 김화영 (金華榮)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했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 –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1946년 미국, 절도 있는 삶과의 만남이 부재한 곳
1946년 3월에서 5월까지 약 3개월에 걸친 카뮈의 미국 여행은 전쟁 전의 프랑스 본토, 체코, 이탈리아 여행에 이은 네 번째의 긴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타자와의 만남, 즉 강연, 회견, 토론 등 문화적 사명의 실천과 관련이 있다. 1946년은 카뮈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지만 레지스탕스 신문《콩바Combat》의 편집자로 더 잘 알려진 때였다. 프랑스를 떠난 지 보름 뒤인 3월 25일 카뮈는 뉴욕 항에 도착한다. 그는 미국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입국했는데 입국 당시 ‘공산당원인가 혹은 공산당원인 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해, 결국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이 와서 그를 구출해낸다. 하버드 대학 등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문명의 위기’나 ‘연극’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연과 토론을 가졌다. 그러나 카뮈의 일기에는 이에 대한 인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여행자로서 받은 인상과 다음해에 발표된 소설《페스트》의 구상 정도가 담겨 있을 뿐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온 카뮈는 물론 미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절도 있는 진짜 삶과 마주칠 수 있는 장소의 부재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카뮈의 뉴욕 도착 소식은 3월 24일자《뉴욕 헤럴드 트리뷴 위클리 북 리뷰》의 한 면 전체에 걸쳐서 발표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두세 명의 작가 중 하나인 카뮈. 사르트르가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베르코르가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를 찬양했다. 우리의 문예지들도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컬럼비아 대학의 로만어문학과 과장 저스틴 오브라이언이 <오늘날의 가장 대담한 프랑스 작가>라는 제목으로 쓴 것이다.
카뮈의 뉴욕 체류 기간 동안 그에 대해 쓴 가장 성의 있고 정확한 소개 글 중 하나다.
– 여행, 자기 완성의 한 형식
카뮈에게 여행은 “어려움에 대한 관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여행은 그에게 일종의 고행이었고 자기 완성의 한 형식 혹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삶의 참다운 얼굴을 발견하는 수단이었다. 카뮈에게 전쟁 전까지의 여행이 고행과 자기 완성의 한 과정이었다면, 엄청난 전쟁의 경험을 치른 뒤의 여행에서 카뮈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발견을 통한 연대 의식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추가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2년 뒤인 1948년에 카뮈는 이집트 여행을 계획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옛 은사요 친구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또한 그는 막대한 사례금을 제안한 일본의 초청도 사양한다. 당시 그의 건강은 장시간에 걸친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밀실공포증이 있어 비행기 여행을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건강 상태는《여행일기》에 그대로 반영된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비행기 여행에 비하여 선상 여행은 장시간에 걸친 여유, 단조로움, 갇혀 지내는 생활, 한가함과 고독이라는 특수 환경으로 인해 반성과 명상과 글쓰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여행 중 일기에 썼듯이 배 위에서는 “모든 인간 관계가 빠른 속도로 형성”되어 그 자체가 관찰 대상인 된다.
로제 키요가 ‘편집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글들은《작가수첩Carnets》의 노트 중에서 별도로 발표하도록 돼 있는 여행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역시 작품을 쓰는 ‘작가’의 시각에서 그때그때 기록한 수첩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늘 언젠가 쓰게 될 작품을 위한 취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남아메리카 여행 중에 카뮈는 노트를 기록하는 요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것도 쓰지 말고, 그날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말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 광대한 공간과 대자연의 남아메리카로 가다
남아메리카 여행은 카뮈가 문화 사절로서 경험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해외 여행이었다. 그의 공식 목적은 라틴아메리카 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연대, 교류, 결속에 있었다. 1949년 초, 프랑스 외무성 문화교류국의 로제 세이두가 그에게 남아메리카행을 제안하면서 다섯 번의 강연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당시 카뮈는 반항에 관한 에세이(훗날의《반항하는 인간》 )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별 진척이 없는데다가 파리 문단과 지성계는 소련 지지와 반대로 양분되어 있었다. 소련은 평화론을 주장하는 지식인 집단을 등에 업고 ‘평화의 운동’으로 대중 동원을 시도했는데 카뮈는 소련과 미국에 대하여 다 같이 비판적이었다. 이런 여러 상황 때문에 파리를 떠나고 싶었던 그는 결국 남아메리카 여행을 택한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카뮈는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만남, 강연과 토론, 축제 관람에서 교도소 방문 등 폭주하는 프로그램에 혹사당한다. 이 여행 후 12년 동안 외국에서의 강연을 수락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유럽인 카뮈는 남아메리카의 광대한 공간과 풍경, 그리고 그 원시적 자연의 힘에서 특유의 긍정적 암시를 받는다. 그리고 이때의 여행은 카뮈에게 작품의 소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본 모습에 대한 통찰을 가져왔다.
– 위기의 미국, 가능성을 발견한 남아메리카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 소음, 거리를 점령한 대형 광고. 카뮈의 눈에 비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전후의 혼란이 복구되지 않은 유럽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카뮈는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이 도시의 위용에 압도당하기보다 미국식 동화의 가공된 환상과 포장된 허위를 본다. 이는 “안개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안개 때문에 기막히게 멋진 광경. 질서, 힘, 경제력이 저기에 있다. 저렇게도 기막힌 비인간성 앞에서 심장이 떨린다”라는 표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편 남아메리카 여행에서 그는 이 대륙이 가진 거친 생명력에 주목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남아메리카의 경관은 그 자체로 경탄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일뿐더러, 동서 진영으로 재편되어가는 세계의 대립을 극복할 제3의 가능성으로 보였다. “두 거대한 제국이 그들의 대륙을 정복하기 위하여 출발했다……새로운 어떤 문명이 탄생하고 여기에 남아메리카가 나서서 기계적인 바보짓들을 좀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바로 거기에 단 하나의 희망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거나, “자연과 원시의 온갖 힘들이 우글거리는 이 거대한 대륙 위에 가냘픈 현대식 뼈대를 입혀놓은 것 같은 브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흰개미 떼들이 점점 더 갉아먹고 있는 빌딩을 연상케 한다”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한다.
– 부조리의 각성에서 인간적 유대의 회복으로
깊이 있는 사유와 밀도 높은 문장, 독자를 끌어당기는 카뮈 문체의 매력은 이 책에서도 발휘된다. 그러나 치밀하게 구상된 작품에 비해 즉흥적으로 기록된 메모는 덜 정제되어 작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날것의 매력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경탄이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격렬한 분노는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 곧장 작가인 카뮈와 함께 호흡하게 해준다.
일기 속에 나타나는 소설에 대한 구상이나 여행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이후 작품들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카뮈는 여러 가지의 새로운 구상을 얻고 이를 발전시켜나갔다. 우선 미국 여행에서는 1945년과 1946년의《작가수첩》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당시의 관심사들, 1947년에 발표된 소설《페스트》에 관한 메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기의 일부분은 <뉴욕의 비Pluies de New York>라는 완성된 원고 속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여행에서 항해 도중에 얻은 직관은 산문시 <가장 가까운 바다La Mer au plus pres>와 장편《여름L’Ete》 에, 이과페에서의 에피소드는 중편 <자라나는 돌La Pierre qui pousse>(《적지와 왕국》)에서 중요한 소재가 된다.
카뮈에게 일상을 벗어난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여전히 치열한 삶의 일부였으나, 고통스럽기만 한 과정이 아니라 타자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카뮈 문학의 주제가 부조리의 각성에서 인간적 유대의 회복으로 차츰 확장되어가는 과정에 이《여행일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