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 / 한길사 / 2007.5.5
오늘날 세계 역사를 주도하고 있는 아날학파는 장기 지속적 측면에서 역사를 관찰하고자 했고 역사의 구조를 중시하는 사회사 의 학문 체계를 제시해 주었다. 마르크 블로크는 이 아날학파의 창시자로서 유럽중세사를 전공하던 프랑스의 대표적 연구자였다.
그러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땅스 활동에 참여하다가 체포되어 죽음을 당했다. 그는 저항 운동의 과정에서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풀고자 했고 역사란 과연 효용성이 있는가를 되물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를 위한 변명 을 작성하기로 하고 별다른 참고서도 없이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가 원래 계획했던 항목들 가운데 약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부분만이 집필되고 그가 죽음을 당함으로서 미완의 형태로 남았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 집필된 부분만으로도 역사학의 입문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받았고 프랑스의 지적 전통과 아날학파의 역사이론 그리고 역사학과 현실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되었다.

○ 목차
역사의 대상은 인간이다 / 고봉만
뤼시앵 페브르에게
서론
1 역사·인간·시간
역사가의 선택
역사와 인간
역사적 시간
기원이라는 우상
과거와 현재
2 역사적 관찰
역사적 관찰의 일반적인 특징
증거
증거의 전달
3 역사적 비판
비판적 방법의 역사적 개요
허위와 오류를 찾아서
역사적 비판 방법의 논리 시론
4 역사적 분석
판단인가 이해인가
인간 행위의 다양성부터 의식의 통일성까지
역사 용어의 체계
역사의 구분
5 역사에서의 설명
원인의 개념
부록: 이 책의 원고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뤼시앵 페브르
마르크 블로크 연보
국내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저자소개 : 마르크 블로크
1886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했으며,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 유학했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중세사 담당 교수로 재직했다.
그곳에서 뤼시앵 페브르를 만나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 잡지 「아날 Annales」을 창간했다.
이로써 프랑스 아날 학파를 결성하여 현대 역사학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했다.
한편 실천적 역사가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했으며, 독일의 프랑스 점령 아래에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투신했다.
1944년 나치 친위대에게 체포되어 58세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기적을 행하는 왕 Les rois thaumaturges』,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 성격 Les caracteres originaux de l’histoire rurale francaise』, 『봉건사회 La Societe feodale』, 『역사를 위한 변명 Apologie pour l’histoire : ou metier d’historien』등을 저술했다.
– 역자 : 고봉만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블로크 대학 (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색채와 상징, 문학 인류학 등에 대한 최신 연구를 번역·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공저서로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2019)이 있고, 역서로는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2022),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2021), 『현대 생활의 발견』(2021),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2021), 『색의 인문학』(2020), 『마르탱 게르의 귀향』(2018), 『파랑의 역사』(2017)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33 어쨌든 나는 여기에서 어린아이의 그 질문을 지금 당장에는 내가 그 아이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는 못하겠지만 기꺼이 하나의 명구로 기억해둘 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아이의 질문을 소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질문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지는 난처할 정도의 정직함과 함께 그 질문 속에 제시되어 있는 문제는 다름 아닌 역사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P.79 그러므로 시간 속의 인간들에 관한 학문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그것은 죽은 사람에 관한 연구와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연구를 결합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것을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나는 왜 역사라는 고대적인 명칭이 가장 적합한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 명칭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덜 배타적이고, 몇백 년 이상에 걸친 노력을 감동적으로 가장 잘 담고 있는, 따라서 가장 좋은 이름이다. 그리고 내가 이처럼 역사를 현재의 인식에까지 확장할 것을 제안하는 이유는 자신의 어떤직업적 요구를 충족시키려 해서가 아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지식은 너무나 광대하여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인류의 총체적인 경험을 홀로 획득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현재의 사실만 연구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석기시대 또는 이집트시대만 연구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단지 역사 연구는 자급자족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홀로 떨어져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조차도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또한 유일한 참된 역사는 상호협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역사‘ (histoire universelle)이다.

○ 독자의 평
“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 몇 년 전 나의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33쪽, 책의 시작)
극적인 순간의 한가운데서 나는 저절로 흘러나온 그 불안의 메아리를 듣게 되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날은 바로 1940년 6월,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던 날이었다. 우리 사령부가 군대를 잃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노르망디 지방의 정원에서 우리는 이 참담한 패배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가운데 하나가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해야 될까?”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서 어런의 고뇌가 좀더 쓰라린 어조와 함께 소년의 단순한 호기심과 결합되었다. 이제 어른의 고뇌와 소년의 호기심 두 가지 모두에 대답해야만 한다. (36쪽 서론)
어린 아들의 질문과 어느 사병의 물음으로 출발하는 서론이다. 이렇듯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학자로서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때문에 <역사 · 인간 · 시간>이라는 1장을 시작으로 2장의 <역사적 관찰>, 3장의 <역사적 비판>, 4장의 <역사적 분석>, 5장의 <역사에서 설명>까지, 각 장의 제목으로도 짐작되듯 블로크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효용과 연구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례를 끌어와 마치 가르치듯 설명을 한다. 또한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겪어야 할…’ ‘우리의 어려움은…’ 과같이 마치 읽는 독자가 같이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인 양 대하는 느낌이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역사학의 전공자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블로크의 이 책은 필독서요, 연구의 기초 길잡이 역활을 한다고 한다. 과거의 기록으로만 머물러 있던 역사학의 전통을 블로크가 깼다고.
역사학의 연구 방법, 분석, 비교, 등은 내게는 의미 없다. 난 전공자도 아니요. 앞으로 역사학을 연구할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건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이 블로크의 생애와 함께 이 책이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이라는 데 있었다. 마지막 5장은 미완성이다. 그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
“한마디로 말해,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사에서의 원인은 가정되는 것이 아니라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5장 역사에서의 설명 222쪽, 책의 마지막 문장)
아직 후배들에게 역사학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그러나 매듭을 묶지 못한 문장이다.
또 하나는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장황하게 이어지는 실질적이고 요긴한 방법들 속에 바로 ‘인간’이 있었다. ‘역사학의 대상은 인간이다’. ‘시간 속의 인간들에 관한 학문’. 아울러 ‘과거 속의 현재’를 찾는 것이 역사학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그대로 기술하는 전통적인 틀을 깨고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현재를 해결할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학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총을 들었다. 그의 생애,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해 종군하였고 본업인 강의와 역사연구를 위한 집필 작업을 하다, 다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5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을 박차고 나가 나치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패전을 겪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하다 1944년 6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변명’이라는 단어가 유독 신경이 쓰였다. 그가 말한 역사를 위한 ‘변명’은 어쩌면, 이렇게 우리가 역사로 인해 패배하고 죽더라도, 그래서 역사를 원망하여도 역사를, 인간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