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예술이란 무엇인가
레프 톨스토이 / 범우사 / 1998.9.15
- 작가 톨스토이가 만년에 내놓은 예술론
현대 예술의 사명은 현재 지배하고 있는 폭력대신 신(神)의 세계, 즉 사랑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만년의 예술관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을 위한 예술’에 대한 ‘인생을 위한 예술’을 가장 대답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선언하였다. 또한 근대 예술은 예술에 있어서의 방언으로 비난 받을 사실주의에 의하여 장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술이란 폭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만이 이것을 행할 수 있다. 예술의 사명이란 신의 왕국, 즉 사랑의 왕국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 톨스토이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견해를 대담하게 역설한 책!
이 책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만년에 예술의 영역에 걸쳐 10년 동안 집필한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예술철학의 정수(精髓)를 요약하고 쉽게 해설하여 일반인에게 예술 전반에 대해 소개할 목적으로 쓴 철학적 사고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참된 예술의 사명이란, 인류의 안녕과 행복이 그들의 융합일치에 있다는 진리를 차디찬 이성의 범위에서 따뜻한 감정의 밭으로 옮기고 있으며, 지금 군림하고 있는 폭력 대신에 신의 나라를, 즉 인류생활의 최고 목적으로 여겨지는 사랑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은 오직 인류애를 위한 것이며, 아름다움과 쾌락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설파한다.

○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5
제1장 15
제2장 24
제3장 35
제4장 60
제5장 68
제6장 76
제7장 84
제8장 92
제9장 99
제10장 106
제11장 140
제12장 153
제13장 164
제14장 186
제15장 197
제16장 202
제17장 223
제18장 235
제19장 240
제20장 248
연보 262

○ 저자소개 : 레프 톨스토이 (Leo Nikolayevich Tolstoy, Lev Nikolaevich Tolstoi)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 역자: 이철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공군사관학교 교관 및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및 서양어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장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있다. 역서로 『부활』, 『러시아 사상사』, 『안나 카레니나』, 『아버지와 아들 · 연기』, 『죄와 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첫사랑』, 『악령』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작가 톨스토이는 1828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82년간의 생애를 살다가 갔다. 그의 생애는 말할 것도 없이 끊임없는 자기변혁의 도정(道程)이었다. 때문에 톨스토이의 일생만큼 드라마틱한 생애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수많은 변전과 기복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것은 대학 중퇴, 카프카스 여행, 결혼, 「참회록」 집필, 가출(家出)의 다섯 가지 사건이다.
톨스토이는 부유한 백작령(伯爵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두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는 불운을 겪었지만, 물질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을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다.
당시 귀족의 습관에 따라 가정교사로부터 초등 · 중등교육을 받은 후, 1844년 카잔 대학의 동양어과에 입학했다. 이때 톨스토이의 나이 16세였다. 그것은 곧 누구나 의식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아울러 최초로 인생의 위기에 직면하는 고뇌에 찬 나이이기도 했다. 유난히 다정다감한 톨스토이로서는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다. 쾌락만을 좇는 상류 사회와 틀에 박힌 대학 시험과 수업의 틈바구니에 끼여, 그는 ‘이래도 좋은가?’ 라고 몇 번이나 자문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보통 청년들이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상류 사회와 대학에 등을 돌리고, 일생을 좌우하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되었다.
1847년 봄,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도시의 상류 사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것은 주위생활을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는 결의였다. 그리하여 이 결의를 굳혔을 때 톨스토이는 자기도 모르게 작가에의 제일보를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 중략 )
톨스토이적 사상이란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귀족 대신 소박한 민중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보아, 그것이 자연과 융합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연의 저편에 신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정신 적인 방황 끝에 카프카스에 도피했다가 돌아온 톨스토이는 독자적인 사상과 신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새로운 문제를 갖고 톨스토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문제란 당시 러시아 사상의 주류를 이룬 ‘진보’의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의 향상과 완성이라는 발상에 적응해 가려는 톨스토이를 방황하게 했다. 하나의 이념이나 이상적 상태를 향해 진보해가는 사회와 인간 그 자체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톨스토이의 중요한 과제였다.
1860년 이후 톨스토이의 독자적인 농민 교육이라든지, 57년과 60년 두 차례의 서구 여행이라든지, 특히 당시의 다채로운 창작 활동은 한결같이 이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후 소피아 부인과의 결혼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삶 속에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함으로써 그는 셰익스피어나 괴테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1897년에 발표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선(善)을 촉진하는 것만이 참된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1889년 봄에 시작하여 근 10년 가까이 퇴고를 거듭한 끝에 1897년 가을에 비로소 완성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모스크바 심리학회지 《철학과 심리한의 문제》에 발표하여,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천명했다. 하지만 이 논저는 검열 당국의 손에 의한 정정과 삭제를 피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다시 뜯어고쳐 에일머 모드에게 넘기었다.
톨스토이가 피력하고 있는 새 해석에 따른 참된 예술의 사명이란, 인류의 안녕과 행복이 그들의 융합일치에 있다는 진리를 차디찬 이성의 범위에서 따뜻한 감정의 밭으로 옮겨놓으며, 지금 현재 군림하고 있는 폭력 대신에 신(神)의 나라를, 즉 인류생활의 최고 목적으로 여겨지는 사랑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번 읽어서 이내 이해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양식과 언어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예술을 위한 예술, 이른바 순수 예술을 부정하고 어디까지나 지상적 · 인간적인 것이 되게 하려고 한 공리적인 그의 간결 · 단순 · 성실이라는 예술에 있어서의 ? 세 표준의 의의에 대하여 이론이 있을지 몰라도 ? 본편은 하나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견해를 대담하게 역설하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 작품을 만남으로써 톨스토이 만년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톨스토이의 후기 작품을 일관하는 특징을 연구하는 데에도 지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옮긴이

○ 독자의 평
레프 톨스토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1. 머리말 : 톨스토이 L.N.Tolstoi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을 도저히 피해가지 못하고, 끝없는 되물음의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예술가들이요, 둘째는 미학자들이다. 물음에 대해 우리가 아는 미학자들의 대답은 모방 imitation, 재현 representation의 전통적 견해로부터 크로체 B.Croce의 표현 expression, 벨 C.Bell의 “의미 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을 지나 웨이츠 M.Weitz 의 예술 정의 불가론이나 딕키 G.Dicky 식의 예술 제도론 institutional theory of art 에 이르게 되었다.
이 글에서 살피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대답은 표현론의 한 형태로, 그 견해의 대략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작가는 직접 경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정을 (예컨대, 일반적인 유개념으로서의 슬픔이 아니라 개별적인 슬픔), 어떤 방식 (노력)으로든 명료하게 하여, 표현의 매개 (선, 형태, 색, 동작, 언어 등)를 이용해 감상자에게 전달하여 감상자도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환기, 전달 transmission, 혹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감염infection 으로서의 예술 표현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로체는 여기에서 ‘표현의 매개’와 ‘감상자에게의 전달’을 제거하고 ‘직관’으로서의 예술 표현론을 역설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이자 또한 사상가였던 톨스토이가 1897년에 발표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10년의 집필 기간 끝에 완성된 노작으로서, 톨스토이 만년의 예술에 대한 고찰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예술가 자신이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논한 것으로서, 철학자들의 다른 미학적 저술들과 구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톨스토이의 작품은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특수성과 러시아라는 지역적 특수성 안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를 지배했던 낭만주의는 후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가눌 수 없을 만큼 커진 몸집으로 해체 직전에 놓였으며, 유럽 각 지역의 민족주의와 함께 현대 예술이 태동하던 바로 그 시기에 톨스토이는 현대 (19세기 말: 이 글에서는 톨스토이의 저서의 ‘현대’ 라는 시대적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여 ‘19세기 말’의 의미로서의 ‘현대’를 사용한다.) 예술을 지적하고 일어났던 것이다. 자본에 의한 사회적 계층구조가 생기고, 상류 계급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현대 예술은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주장했던 사상가 톨스토이에 의해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무정부주의자이자 인도주의자였던 톨스토이의 이 작품은 미학적 측면으로서나, 사상적 측면으로서나 유의미한 저술이며, 작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예술과 사상을 하나로 묶어 정리한 귀중한 시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예술론과 가치론을 정리함으로써 예술과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고찰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2.1.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노예가 존재했던 러시아의 19세기에서 벗어난 현대 (19세기 말)의 예술의 횡포를 지적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력을 희생시키는 예술의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현재까지 미학에서 얻어낸 대답들은 모두 “예술의 목적은 미이고 그 미는 우리가 거기에서 얻는 쾌락으로써 인정하게 되는 것이며 예술에 의한 쾌락은 훌륭하고 중대한 것” (Tolstoi, 이철 역, <예술이란 무엇인가>, 범우사, 2002, p.67.) 이라는 주장으로 귀착된다고 정리하고 비판한다. 예술은 쾌락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생활의 한 조건 (p.69)”으로서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표현인 ‘감염’이란, 내가 타인의 감정 표현을 접할 때, 그 사람의 감정이 옮아서 나 역시 동일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의 감염 능력이 바로 예술 작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톨스토이는 예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술이란 “사람이 자기가 경험한 감정을 타인에게 옮길 목적으로 재차 이를 자기 속에 불러일으켜, 일정한 외면적인 부호로 이를 표현 (p.71)”하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 상호간의 교류 수단이며,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감정으로 통일하는 수단이기에 필수 불가결하다. 때문에 이것을 간과하고 모든 예술을 배척한 사람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쾌락을 예술의 목적으로 삼은 현대 (19세기)인들은 더욱 잘못되었음이 바로 이 글 전체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왜 현대 예술이 이러한 잘못을 범하게 되었는가? 톨스토이는 종교적 세계관을 가지지 않은 상류 계급 사람이 예술의 척도로 개인적 쾌락인 미美를 삼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종교 개혁 이후로 민중과 상류 계급의 종교적 세계관은 갈라졌다. 민중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계속적이고 맹목적으로 따랐으나,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으며 다른 기독교를 대신할 만한 어떤 신앙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가치평가가 종교적 척도에 의한 인생의 의미 해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상류 계급의 종교적 공황상태는 예술의 가치 기준을 뒤흔들어 놓아 결과적으로 타락을 초래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 예술의 잘못된 걸음은 세 가지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파멸에 이르게 된다.
첫째, 예술이 그 고유의 무한히 복잡하고 깊은 종교적 내용을 상실했다. 톨스토이에게 참다운 예술이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을 가리킨다. (p.100) 그런데 쾌락의 욕망에서 나오는 감정은 유한하며 이미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무한히 다채로우며 신선한 종교적 자각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닌 쾌락에서 나오는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이 내용의 빈약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상류 계급의 예술은 도저히 민중들을 포함하는 전체 대중의 예술이 될 수가 없고, 따라서 상류 계급 예술은 종교성과 민중적 요소 모두를 상실한 폭이 좁고 빈곤한 예술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둘째, 예술이 형식미를 잃고 조작해 낸 듯한 불명료한 것이 되어 버렸다. 상류 계급의 무신앙과 배타성에서 자라난 예술은 점차 까다롭고 조작적인 것이 되었다. 톨스토이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현대 예술을 인용하여 지적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예술이 대중에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예술일 수 있다는 확신은 그르다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예술은 반드시 만인에게 이해되는 법 (p.130)”이며 예술은 모든 사람이 그 뜻을 알 수 있고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전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예술이 순진성을 잃고 머리로 꾸며 낸 까다로운 것이 되어 버렸다. 예술가들이 상류 계급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술의 모조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상류 계급의 예술이 민중 예술로부터 분리된 세 번째 결과이자 가장 중요한 결과이다. 톨스토이는 예술가들이 모조품의 창작을 위하여 표절, 모방, 속임수, 흥미의 네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고 지적하면서, 이 모든 것이 예술의 가치 표준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예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비난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현대 사회의 거짓 예술품 제작을 조장하는 세 가지 조건을 예술가의 직업성, 예술 비평, 예술 학교로 요약한다. 예술이 민중 전체가 아닌 부유한 계층을 위한 것이 되자, 그것은 직업이 되었다. 때문에 예술가는 성실성을 잃고, 보수를 받기 위해 상류 계급에 봉사하는 거짓 예술을 창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데 근래에 나타난 비평가들의 논의로 인해 거짓 작품들이 찬양을 받는 결과에 이르렀다. 더욱이 예술가를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을 위한 학교가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인 경험한 감정의 전달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보여준 연구 결과는 한마디로 다음과 같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로 치는 거의 전부가 참으로 훌륭한 예술이 못 되고, 예술 전체도 아니며, 차라리 예술의 모조품 (p.186)”이라는 것이다.

2.2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진짜 예술을 구별하기 위한 확실한 특징으로 예술의 감염성을 제시한다. 즉, 감상자가 예술가와 공감하고, 또 다른 감상자들과 공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진짜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감정을 경험해서 작자와 같은 심경에 감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을 느낄 때, 이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곧 예술이다. 이 감염이 없고 작자 및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의 결합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그러므로 감염력을 의심할 바 없이 예술의 특징일 뿐 아니라, 그 감염력의 정도는 예술의 가치를 재는 유일한 척도이기도 하다. (p.198)
이러한 감염력의 정도는 세 가지 조건에 달려있는데, 첫째는 전해지는 감정의 개성 (독창성), 둘째는 표현하는 감정 방식의 명확성, 셋째는 예술가 자신의 성실성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성실성이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예술가 자신이 체험하는 힘을 의미한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성실성이 민중 예술에는 으레 갖추어져 있으며, 상류 사회 예술 속에는 으레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톨스토이는 내용면에서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종교적 자각을 제시한다. 예술의 목적 대한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감정의 소통’ 에 있는데 그 감정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의 문제는 바로 ‘종교적 자각’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이다. (p.203) 그가 말하는 ‘종교적 자각’ 이란, 그 시대 및 그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선最高善을 규정하는 인생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생관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데, 톨스토이가 현대의 종교적 자각으로 꼽은 것은 바로 ‘만인의 동포적 생활 (p.205)’ 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최고의 종교적 예술 대신 일부 (상류) 사람들의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배타적이고 무의미하며 유해한 예술을 선택한 현대의 예술을 비판한다. 아울러 다음과 같이 만인을 결합시키는 두 종류의 감정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기독교 예술, 즉 현대의 예술은 본래의 의미에서 카톨릭적, 그러니까 전세계적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만인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인을 결합시키는 데는 두 종류의 감정밖에 없다.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신의 아들이고 똑같은 동포라는 자각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기쁨. 감격. 활기, 평안 같은 극히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든지 받아들여지는 감정이다. 이 두 종류의 감정만이 내용면으로 훌륭한 현대 예술의 대상이 된다. (p.211)
이것이 의미하는 바, 톨스토이적 견해에 의한 현대의 훌륭한 예술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협의의 종교 예술이며, 나머지는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보편적 예술이다.
위와 같은 좋은 예술이 되지 못한 현대의 나쁜 예술의 유해한 결과는 무수히 많지만,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1.사람들이 무익하고 해로운 일에 귀중한 인명을 희생시킨다.
2.대량의 오락품이 현대의 부유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연스럽고 문화의 원칙에 어긋나는 생활을 하도록 만든다.
3.아이들과 민중의 사상 속에 혼란을 일으킨다.
4.미의 이상을 최고로 모셔놓고 이에 도덕적 요구를 고려하지 않는다.
5.인류에게 가장 해로운 감정 (미신, 거짓 애국심, 음탕)을 감염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상류 계급의 사람들은 무산 계급의 사람들로부터의 구별로 자신들의 우월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우리 인간의 행복은 모든 사람이 형제처럼 결합되는 데 있다는 진리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글의 마지막에서 미래의 예술은 현대 (19세기)인의 높은 종교적 자각을 실현하는 예술이 될 것이며, 민중 전체가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대중 속에서 천분이 풍부한 모든 사람에 의해 예술가가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래 예술에서 완성의 이상은 감정의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이 될 것이며, 간결하고 명료하며 단순한 표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친다.
3. 맺음말 : 남아있는 질문들과 현대적 의미
지금까지 살펴본 톨스토이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입장은 비교적 명료하게 이해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주장은 단호하며 견고하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견해에 몇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의 주장은 너무 포용력이 없어 보이며, 이후로 100년 남짓의 시간을 통과해 온 현대 예술의 어떤 부분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무엇보다 먼저, 예술에 대한 그의 정의를 문제 삼을 수 있다. 현대 예술에 대한 그의 비난에는 몇 가지 선결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예술의 목적이 소통에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예술이 (특정한 감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모든 예술의 목적이 소통에 있는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가진 현대 예술 중에 거의 예술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어지고 만다. 톨스토이의 견해에 따라 소통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해도 ‘감염’에 대한 질문이 여전하다. 먼저, 예술가와 감상자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의 수가 의심스럽다. 작품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은 감상자가 사실은 예술가의 감정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만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기 때문에 위대한 것 (p.131)”이고 “대중에게 예술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예술이 대단히 졸렬하든지 또는 차라리 아예 예술이 아니든지 둘 중 하나 때문 (p.133)” 이라는 톨스토이의 설명이 정당한가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물음인 것 같다. 예술의 이해의 문제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익숙해짐과 관련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고, 낯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든 시대에 새로운 예술의 대개가 어느 정도 비난을 받았으며 배척을 받았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는 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환영받는 예술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좋은 예술이 과연 익숙한 예술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둘째, 모든 예술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의문이 생긴다. 자신이 경험한 감정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예컨대 비례, 조화를 예술의 본질인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많은 고전시대의 절대 음악은 예술에서 제외될 것이다. 혹은 단순히 모방이나 재현을 한 미술 작품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대 거의 모든 작품을 논외로 하고서라도 아마도 우리가 아는 많은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대로 폐기처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나는 톨스토이의 예술에 대한 정의와 가치론이 아마도 그의 직업적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본다. 어쩌면 언어라는 명료한 수단으로 예술을 건설하는 문학가로서만이 가능한 예술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그의 입장은 극히 닫혀있는 예술론으로서, 현대 우리 시대의 예술의 여전한 방향성의 그 무엇도 끌어안을 수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입장은 가장 단순 명쾌하지만, 어떠한 문제에 대한 창조력도 발휘하지 못한 지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톨스토이의 이 작품의 의미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사회의 자본적 권력 구조와 예술의 관계는 더욱 강하게 물어져야만 할 예술가들의 과제가 되었다. 그의 말대로, 예술이 귀중한 것이어서 만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복지라면, 그것은 당연히 만인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현대의 예술 역시 자본적 계층과 문화 (예술)적 계층이 그 괘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이것은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행복은 인간 상호간의 결합에 있다는 진리를 이성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옮겨, 현재 지배하고 있는 폭력 대신 신神의 세계, 즉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최고 목적으로 간주되는 사랑의 세계를 건설하는 일 (p.260)”이 현대 예술의 사명이라는 인도주의 예술가의 발언은, 온통 전복된 가치 속에 뒤틀려가는 21세기의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따끔한 충고처럼 들리는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