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 녹색평론사 / 1998.3.31
원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부제목으로 출판된 ‘오래된 미래: 세계화에 대한 라다크의 교훈’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이다. 이 책은 1991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이 책의 첫번째 파트에서는 서구적인 사고와 상품들의 유입 이전인 1975년에, 헬레나가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의 행복하고 평등주의의 라다크 지역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라다크 여성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고 가족과 지역사회의 유대가 굉장히 강했다.

두번째 장에서는 ‘개발’이 시작되었을 때 어떻게 라다크가 사회적, 생태학적, 경제적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욕심, 불관용(不寬容), 실업, 인플레이션, 환경오염이 시작되고 지난 몇 세기동안 유지되었던 생태학적 균형과 사회의 조화를 위협하는 동안 라다크인들은 근대화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래된 미래는 진보의 개념에 대해 중요한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산업 사회에서의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탐색했다. 이 책은 약 4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화와 전통적인 지혜의 손실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널리 읽힌다.
○ 목차
1부 전통에 관하여
2부 변화에 관하여
3부 미래를 향하여
○ 저자소개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Helena Norberg-Hodge)
40년 동안 전 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있는 로컬 경제 운동의 선구자.
글로벌 경제와 국제 개발이 지역 사회와 경제,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해 왔으며, 이러한 영향에 반대하는 방법으로 ‘지역화’를 주장해 왔다. 2012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권위 있는 고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래된 미래’는 같은 제목의 영화와 더불어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으며 수상작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제작자이자 공동감독이기도 하다.
‘어스 저널’은 헬레나를 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환경운동가 10인’에 선정했고, 칼 맥대니얼은 저서 ‘살 만한 지구를 위한 지혜'(Wisdom for a Liveable Planet)에서 헬레나를 ‘세상을 바꾸는 선견자 8인’에 올렸다.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찾고 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언어학을 전공, 7개 국어를 구사하여 옥스퍼드와 하버드 등 수많은 대학에서 강연했고, 전 세계의 여러 방송과 지면, 온라인 미디어에도 다수 출연했다.
로컬퓨처(Local Futures)와 국제지역화연합(IAL)을 설립하고 현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국제미래식량농업위원회, 국제세계화포럼, 글로벌에코빌리지네트워크 창립회원이다.
한국 전주에서 매해 열리는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도 함께하며 공동체와 로컬 경제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알려왔다.
○ 책 속으로
전세계를 통해 심리학에서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농사일에서 가정의 부엌에 이르기까지 삶의 온갖 영역에서 모든 생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깨달음이 커지고 있다. 인간적인 규모의 삶과 보다 여성적이고 영성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실상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자연질서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 우리 서로서로의, 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알아보게 하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 p.197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서 보증된다고 한다면, GNP와 같은 단순한 수량적 척도로써,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과 이웃과 자연에 대해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업 문화는 일찍이 간디가 갈파했듯이 오늘날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저주이며 질곡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헬레나-노르베리-호지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유토피아적인 꿈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실 속에서-있음을 태양에너지 등을 이용한 라다크의 ‘적정 기술’의 여러 성공적 실험을 통하여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적정 기술’의 실천도중요하지만, 아마 그것보다 더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아직 구원의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의 진정한 원천은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있다는 이 책의 궁극적 메시지일 것이다.— p. 201
우주는 끝없는 강과 같다고 한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은 끊임없는 움직임속에 있다. 전체로서 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할 수 없다. 흐름을 멈추고 조사해볼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움직임 속에 있고 분리해낼 수 없이 얽혀있다.
타시는 또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하에 있습니다. 나가르주냐가 말했듯이, ‘관계를 통한 근원은 부처의 풍요롭고 심오한 보배입니다.’이 수준에서 우리의 범주와 구분, 이름 – ‘너’와 ‘나’,’정신’과’물질’- 은 하나가 되고 사라져버립니다. 우리가 견고하고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순간순간 변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공인 것과 똑같이 ‘자아’도 공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면 당신 자신도 주위의 모든 것의 한 부분으로 녹아버립니다. ‘자아’는 궁극적으로 우주 속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망상이 아마도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다. 절대적이고 항구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끝없는 욕망의 순환으로 인도하고, 욕망은 고통을 가져온다. 분리된 자아와 하나하나의 사물의 개념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어떤 것을 찾고 구하려 애쓰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던 것을 얻자마자 그것이 지닌 빛은 사라지고 우리는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린다. 만족은 드물고 순간적이다. 우리는 영원히 좌절 속에 있다.—p.81
우리는 아직 하늘에 닿아보려고 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다시 내려오고 있다. ‘그 위는 텅 비어있어.’ 라고 말하면서.
게롱 팔단, 마을의 모임에서, 1990년— p.162
사람들이 개발과정의 한가운데 서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체적인 조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관계되어 있다.— p.145
‘당신들은 언쟁을 하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우리는 늘 하는데.’ ‘마을에서는 안해요. 아니, 하더라도 정말로 몹시 드물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 참 우수운 질문이네요. 우리는 함께 사는 거예요. 그 뿐이죠.’— p.
갈수록 서구문화는 정상적인것, 유일한 방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성향들은 인간 본성 탓으로 돌려진다. 그렇지않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의 지배적 사고는 오랫동안 우리가 본래 공격적이고 , 다원주의적 투쟁에 영원히 갇혀있다고 가정해왔다.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에 관련하여 이러한 관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선이나 악의 내재성을 믿든 믿지 않든간에 인간본성에 대한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정치적 이념의 밑에 깔려있고 따라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제도의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 p. 9
○ 독자의 평 1
우연한 기회가 찾은 이 책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람사이의 인연이외에도 사물과 사람과의 어떤 인연도 믿는다. 그만큼 나는 오래된 미래에서 느끼고 공감했던 점이 많았던 것이다. 누군가 근래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추천할 것이다.
저자는 6개국 언어를 구사할 수있는 언어학자로 라다크를 방문하였고, 단기체류를 계획했지만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자세와 방식에 매료되어 그후 16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자가 써내려가는 본서는 기타 외적인 부분만을 치중하여 보여주는 여타의 여행기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저자는 1975년 즉, 인도정부가 라다크를 개방하고 개발을 시행하려고 했을 때 들어온 얼마 안되는 소수의 외국인이었고, 그래서 라다크의 전통적 사회와 서구적 개발이라는 침입에 의하여 전통적 사회가 변질되는 모습을 긴 시간에 걸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발전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서구적인 개념에 있어서 얼마나 오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75년 무렵의 라다크는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교하게 그리고 자연친화적으로 거의 완벽한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척박한 환경을 전통적 공동체의 테두리에서 그리고 티벳불교의 정신적 기반하에서 평화롭게 그리고 슬기롭게 대처해왔다. 그들은 행복했으며 친절했고, 너그러웠으며 순박했다. 저자는 라다크의 초기체류기간 이러한 라다크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와 긍정적 삶의 자세, 그리고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이 속해있는 서구사회에 대해서 뒤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개발과 진보라는 포장으로 시작된 현대적 문물의 유입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가지 문제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즉, 전통적인 문화는 어느덧 세계화라는 물결 속에서 단일화된 문화에 파묻혀가기 시작했고, 오염이 시작되었으며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간 사람들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애통했을까 생각된다.
물론 저자는 개발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어가는 이전의 사회체제를 어떠한 파라다이스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정도의 차이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전통적 사회에서는 비교적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여유롭지만, 서구적 가치관에 매몰된 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서구사회가 해왔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으며, 건전한 전통문화의 기초위에서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그러한 사회적 운동을 전개하고있다.
이러한 과정을 한국도 물론 거쳤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일본에 빼앗겼고,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 사회와 가치관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었고 심하게 왜곡되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우리스스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화의 물결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세계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큰일이 생길 것같다. 이미 나는 우리 스스로 복구할 수 없는 심한 좌절과 파괴를 경험했다고 본다. 그러나 세계가 서구인들이 말하는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하에서 단일화되고 메마른 사회로 변하는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던 것 처럼 아직 시간은 늦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회복할 기회가 더디지만 있을 것이다.
○ 독자의 평 2
때때로 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빈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대된다. 문제는 그러한 불안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만능을 신뢰하는 이기적인 인본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간 내면의 성선설에 희망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를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된 기본적인 이해와 바램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내가 부단히 인간에게서 그 두려움의 이유를 찾아가듯이 지금은 뭔가 엉뚱한 것에 우리는 정신을 빼앗기도 있는 것 같다. 세계는 인류의 보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심하겠지만 과연 우리의 미래는 긍정할 수 있을까? 이건 지금 신나게 달려 나가는 인터넷, 경제 정보 시대에 제동을 거는 발언이 아닐까? 그러나 모두는 진지하게 이러한 세대의 추세를 고려해 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스웨덴의 여성 학자 노르베리 호지가 인도의 작은 마을(독립적인 곳이다) 라다크에서 너무나 놀라운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말하고 있다. 정말 웃음이 나오고 신기할 정도로 라다크는 전통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천천히 즐겁게 일하고, 조금만 먹지만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예쁜 것, 화려한 것 그러한 것이 그들의 유혹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고 통 넓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용서하는 삶을 그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연적인 곳이 개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다녀 갔고 라다크는 어줍잖은 서구식 개발을 배웠다. 그들은 돈을 만지게 되었고 어 넓은 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웃음이 있는가? 대답은 짐작하겠지만 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의 만능이었던 개발이 라다크의 웃음을 빼앗았다. 생태계와 평화, 천진하던 인간의 마음을 담보로 한 개발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은 더욱 불행해졌을 뿐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 때문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행복의 열쇠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불편해도 전혀 그것을 의식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 그 욕심 없는 마음에 행복은 숨어 있다. 세계의 분쟁과 전쟁,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 이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것을 이 지구상의 마지막 천연 보루였던 라다크도 어느듯 배워 버렸다. 몹시 씁쓸한 일이다. 다만 노르베리 호지가 이 글을 남겼음에서 짐작해야 하듯이 우리는 그녀의 진실한 외침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서구식의 개발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 오! 너무 낭만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 것 같다고 의문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믿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결과는 우리의 믿음대로 되어버릴 것이다. 그녀가 16년간이나 라다크에 있으면서 적고 있는 그녀의 변화들을 들어보자. 6000원에 우리는 그 비싼 경험을 살 수 있다. 책의 종이 마저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냄새까지 날 것 같은 풍경. 이미 나는 그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인상깊은구절]
“곡식이 무겁게 자라서 이랑까지 슥여지기를! 굵게 자라서 백명의 청년들도 벨 수 없기를! 너무나 무거워서 백명의 처녀들이 나를 수 없기를! -라다크의 씨뿌리는 노래
○ 독자의 평 3
언제나 나의 삶의 화두는 ‘나 자신을 아는 것 What am I?’이었다. 물론 철들고(?) 나서의 이야기이지만. 그러기에 나는 나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가족이 무엇인지, 사회란 무엇인지,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문화란 무엇인지.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내 생활의 전부라 할 만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 수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더 걸려야 일단 그 작업을 끝내고 ‘나’를 생각하게 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러한 과정이 ‘나’라는 인간을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이러저러한 경험들을 하고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의 틀이라는 것을 잡아갔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할 수 있는 틀, 그리고 나를 규정해 주는 내 주변을 나로 하여금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시각틀. 제일 처음에 생태학을 접했을 때는 그것이 나의 또 다른 틀로서 작용하지 못했다. 물론 그때는 내 일상을 지배하는 몇 개의 것들이 존재하던 시기였기에 새로운 것이 내 삶에 끼여들 여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4년의 시간을 돌아서 생태학은 다시 내게 나타났고 이제는 제법 영향을 주고 있다. 생태학을 알기 이전에도 언제나 내게 문화라는 것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관계맺음의 방식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를 내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발견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이제는 그것을 좀더 넓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계기는 다름아닌 ‘종’이라는 개념의 도입이다. 이제까지의 내 방식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나만을 생각하는 독단적인 방식이었을 깨닫게 되었다. 전체 속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 그것은 나만을 가지고는 알 수 없다. 나와 관계맺는 다른 종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 문제의 핵심이 아니던가. <오래된 미래>는 그러한 생각이 어떻게 일상의 현실 속에 개입될 수 있는지의 실제의 한 예를 보여 주었다. 이 책을 읽은 이후의 내 삶은, 아니 이미 그 중간에, 변화할 것이다. 발전에 대해서, 진보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그동안의 작은 결론들에 대한 수정작업은 이제까지의 내 과정만큼의 또다른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만큼의 새로운 화두를 내게 안겨 주었다. 힘겨움보다 즐거움이 앞서는 것은 역시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내 생각이 옳았기 때문일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