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비비안 포레스터 / 도도서가 / 2025.3.20
– 트럼프 믿고 폭주하는 이스라엘?! 한 세기 넘도록 이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
“‘가자지구 주민 내쫓고 미 휴양지로 개발’ 트럼프 구상에 중동 쇼크” “춤추는 트럼프, 돈 뿌리는 머스크… ‘가자지구 개발’ AI 영상 공개” “트럼프 발맞추는 이스라엘… ‘가자 주민 자발적 이주’ 부서 신설” “‘트럼프안’ 반대 아랍국가들의 가자지구 대책”
최근 뉴스 헤드라인이다. 트럼프 재취임 후 중동은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다. 수많은 사상자와 전쟁 난민을 낳으며 한 세기 넘도록 지속되는 이 전쟁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 시작부터 거슬러 올라가 살펴야 한다. 유대인 출신의 프랑스 대표 지성 비비안 포레스터는 이 책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류를 좇는다. “우리는 이 비극의 원인을 망각했거나 잘못 이해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시작된 원인과 갈등을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무엇보다 그리고 매번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돌아가야 결국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194쪽)고 저자는 강조한다.
포레스터에 따르면,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 즉 유대인 국가 건설이라는 시온주의자들의 염원 그 자체보다 이를 승인하고 충분히 예상되는 분쟁을 외면하고 묵인한 서구 강대국에 책임이 있다. 서구 강대국은 나치가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을 학살할 때 이를 방관했던 일말의 죄책감을 시온주의자들의 염원을 승인함으로써 털어내려 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늘날까지 이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서구 강대국은 한 세기 넘도록 반복되는 전쟁에서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중재자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중동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반면 그에 책임이 있는 서구 강대국은 더 이상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당시 유럽이나 유럽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중동에서만 답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 목차
1부 비극의 서막
2부 시온주의
미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저자소개 : 비비안 포레스터 (Viviane Forrester)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프랑스의 작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결혼 전 성은 ‘드레퓌스’로, 1925년 9월 29일 파리 16구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검거를 피해 가족과 함께 스페인으로 도피해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프랑스자유군(FFL) 조종사로 복무한 시몽 스톨로프(Simon Stoloff)와 1946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스톨로프와는 1962년에 헤어졌고, 5년 후인 1967년 뉴질랜드인 화가 존 포레스터와 재혼했다.
두 사람은 몇 년 뒤 별거에 들어갔으나 2013년 포레스터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혼하지 않아, ‘포레스터’라는 성을 유지했다.
1970년 첫 소설 《망명자들처럼》을 출간했고, 일간지 〈르몽드〉에서 문학비평가로 활동했으며, 시사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와 문학 격월간지 〈라 캥젠 리테레르〉에도 기고했다.
1983년 《반 고흐, 밀밭에서의 장례》로 페미나 바카레스코상을 수상했고, 1994년부터 페미나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1996년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로 소외된 인간의 정체성 상실을 분석한 《경제적 공포》로 메디치상(에세이 분야)을 받으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은 24개국 언어로 번역·출간되어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이후 1998년 ‘시민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연합(ATTAC)’ 창립에 참여했고, 2009년에는 버지니아 울프 전기로 공쿠르상(전기 분야)을 수상했다.
이 책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에서 저자는 유대인 출신이지만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며, 중동 문제의 원류를 좇아 그 책임이 서구 강대국에 있음을 지적하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역자: 조민영
서울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책을 편집 및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0.1퍼센트의 차이》 《언어의 정원》 《지도로 읽는 아시아》 《우리의 새빨간 비밀》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꼭 필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나는 독이 되는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늑대》 등이 있다.
프랑스 월간 시사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 책 속으로
서구사회는 스스로 만든 극단주의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고, 겉으로는 무해해 보이고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공포로 이어지는 질서를 확립한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확립하자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서구에서 추방되어 동쪽으로 옮겨지고 재편입된 그 긴 역사를 제대로 세우자는 것이다. (28쪽)
팔레스타인 국민과 이스라엘 국민은 지금 전개되는 그들의 역사 및 그들의 현재와 자신들이 얼마나 무관한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른바 지나간 역사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기서 끝없이 되살아나, 부자연스럽고 마무리 지을 수도 없는 원인으로 인한 갈등 속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얼마만큼이나, 한 역사에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피해자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피해자인가? 이것은 유럽의 역사다. 이 역사에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은 어느 쪽도 범죄자나 집행자가 아니다. 아랍인들은 짐을 떠안았고,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재앙의 형벌을 받았다. (…) 유대인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난 서구가 대립하는 두 세력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거만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유대인과 아랍인이, 그리고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는 모습을 보라.(28-29쪽)
이 냉담한 시대에 사람들이 가스실에 들어가거나, 설상가상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 연기를 피워내는 시체 더미의 문명에서, 살해된 시체들은 각자 유린당한 자신만의 일대기와 희망, 일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시체가 아니라 살아서 고문당한 자들의 시체였다. 피해자가 될 운명인 ‘피해자’도, 전문적인 피해자도 없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피해자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모든 이는 그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삶과, 열광적이고 내밀한 삶의 주인이다. 그것은 매순간 사라지는 생생한 이름이고 몸이며 그 몸의 그림자다. 단 하나의 의식이며 수많은 욕망이다.
그러나 피해자 측도 한결같이 선한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58-59쪽)
서구인들은 타고난 오만함과 근본적 우월성을 확신하며 자신들의 보편적 우세를 정당화했고, 이를 명분으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많은 이들이 성가시고 중요하지 않으며, 민족 전체가 인간 이하의 무가치함과 해로움을 지녔다고 결정할 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어떤 증거도 없이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이때부터 흔히 해롭고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는 다른 집단을 약탈하고 억압하고 박해하고 제한 없이 죽이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더 나아가 그런 일을 요구하게 되었다.(79쪽)
식민지 시대의 상황에서, 열등한 민족인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유엔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종주국 입장에서는, 멸시받는 자들이 사는 땅을 다른 멸시받는 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더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95쪽)
종주국들은 60년 전이 아니라 전쟁 직후인 1948년에, 자연스럽게 식민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그 땅을 나눠줄 권리를 무리 없이 가지는 것이 정치 윤리에 전적으로 부합한다고 보았다. 즉 아랍 땅의 일부를 유럽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과 시온주의자의 욕망에, 그들의 의지에 내주는 것이 정치 윤리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오로지 그들 조상의 고향이자 피난처이며 자기들의 나라로 정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영국이 영국인의 땅이듯이,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이 극복할 수 없는 부채의 채무자는 오로지 서구인이었고, 이 부채는 그 원인과 전혀 상관없는 민족을 희생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무시해도 좋은 존재로 여겨진 아랍 민족은 가장 최근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지금까지 다양한 세력에 속박당해온 가난한 아랍인들이었다.(96쪽)
비극과 배신이 반복되고 수많은 희망이 짓밟혀 잔해만 남았다면, 그리고 최근에 공포를 마주한 경험이 있다면, 그런 자에게 자기 영토를 갖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 것은 분명 타당한 일이다. 유대인은 자신이 받은 모욕과 정치적으로 무관하고 이미 주인이 있는 나라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전에 생각했어야 했다. 유럽의 유대인 각자가 모든 민주주의자들이 했던 투쟁과 연결되는 투쟁으로써, 유대인의 고향인 유럽에서 제한 없이, 거리낌 없이, 아무런 유보 없이 보장받을 권리를 먼저 선택했다면, 자기 영토를 갖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은 더 큰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196쪽)

– 출판사 서평
.반복되는 전쟁, 서구 강대국에 그 책임을 묻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으나 끝난 게 아니다. “사람들은 대학살의 극단적 결과에만 집중했지, 본질이나 전혀 근절되지 않은 그 뿌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21쪽) 비비안 포레스터는 서구 강대국의 회피와 암묵적 동의, 묵인이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낳았다고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1937년 필 위원회에서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을 발표했고, 1938년 에비앙 회담, 1947년 유엔 결의안을 거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팔레스타인은 처음에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았다. 당시 서구 강대국들은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으나 지배력은 잃고 싶지 않아 했다. 따라서 ‘서구 사회의 일원으로서’ 중동 지역에서 안테나 역할을 할 존재가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 건설 승인의 배경이다. 영국은 위임 통치기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 서로 모순되는 약속을 함으로써 두 세력을 달래려고 시도했다.
포레스터에 따르면, 세계대전 당시 서구 강대국은 ‘유대인’인 동시에 ‘유럽인’이기도 했던 이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현실보다, 자기네 나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더 공포스러워했다. 이런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서구 강대국은 국경을 닫아걸고, 자국의 유대인 이민 할당량을 줄이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유대인 난민 문제를 이와 전혀 관련 없는 아랍인들에게 떠넘겼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권리와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서구 강대국은 충분히 예상되는 분쟁을 막을 의지도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고 포레스터는 강조한다.
“팔레스타인 국민과 이스라엘 국민은 지금 전개되는 그들의 역사 및 그들의 현재와 자신들이 얼마나 무관한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른바 지나간 역사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기서 끝없이 되살아나, 부자연스럽고 마무리 지을 수도 없는 원인으로 인한 갈등 속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얼마만큼이나, 한 역사에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피해자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피해자인가?”(28-29쪽)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둘 중 누구도 실질적으로 그들이 서로 싸우게 된 위험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포레스터는 분명히 지적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듯, 2025년 중동은 서구 강대국에 의해 다시 한 번 휘둘리려 한다. 힘없는 민족과 나라가 강대국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하는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서구 강대국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비극적 갈등을 때로는 우려의 시선으로, 그러나 대부분은 비난조로 거만하게 바라보았다.” 포레스터는 마치 오늘날의 미 트럼프의 모습을 예측이라도 한 듯 이렇게도 말한다. “대단하신 미국 대통령들은 교과서에 자신들의 미담이 실릴 거란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비비안 포레스터의 말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시로 뒤바뀌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이 서구 강대국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거기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경제적 공포》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의 또 다른 문제작
이 책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는 1925년 프랑스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무렵이던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비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게 유대인이란 가톨릭이 아니라는 뜻일 뿐, 자신은 그저 프랑스인이었다. 그러나 1943년 나치의 유대인 체포를 피해 부모와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살아남는다.
포레스터는 유대인 출신이면서도, 시온주의를 무턱대고 옹호하지 않는다. 19세기 말 탄생한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해지면서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해야겠다는 열망을 품은 데서 출발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기자 테오도어 헤르츨이 1896년에 《유대 국가》를 출간하면서 시온주의 운동의 이념적 기틀이 마련됐다. 이듬해인 1897년 제1차 시온주의대회가 스위스의 바젤에서 열렸고, 여기서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 즉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한다.”(302쪽)
시온주의 선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러면서 당시 팔레스타인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그곳의 거주민도 국민 수준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틀렸다고 포레스터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랍인들은 수 세기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고, 아랍인들에게 이곳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또한 용어로 보나 본능적인 감정의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실상 그들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이 조국은 그들에게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존재이므로 국가國歌나 국기, 헌법은 물론 구체적인 명칭도 필요하지 않았다.”(177쪽)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포레스터는 시온주의자들의 모순을 지적한다. 땅을 빼앗은 자들로부터 되찾아오려는 듯한 시온주의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 땅은 아랍인이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게 아니었다. 2,000년 전 유대인을 쫓아낸 것은 아랍인이 아니라 로마인이었다.”
수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문제제기는 이 책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의 호소력 짙은 문장은 이를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책에서 포레스터가 강조하는 것은 서구 강대국이 아닌 실질적인 이해 당사자들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서서 직접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양측 모두 서구 강대국의 무책임한 행동의 피해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된다. “그들의 고통이 시작된 원인을 파악하고 그 고통의 실제 쟁점이 무엇인지 확인한다면, 정확하고 현실적으로 두 민족이 공유하는 현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물론 이것이 오늘날 중동 분쟁을 단박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포레스터의 목소리는 유대인과 아랍인 두 민족이 공유해온 역사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진정한 평화는 힘의 균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역사와 상처를 직시하고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305쪽)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