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캐스 R. 선스타인 / 후마니타스 / 2015.2.23
국내에서 넛지로 잘 알려진 선스타인이 기업과 조직에서 이견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한다. 가장 건강한 기업은 가장 논쟁적인 이사회를 가진 기업이며, 가장 실적이 좋은 투자클럽은 이견과 갈등을 허용하는 클럽이라는 것.
저자는 이견이 없는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이견과 갈등을 좋은 사회의 제도적 원리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이루어지는 토론이 낳는 현상들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룬 책.
○ 목차

개정판을 내며
서문
서론 : 동조와 이견
동조, 이견, 그리고 정보
두 개의 압력과 세 가지 현상
사회적 영향과 동조의 부작용
1장 다른 사람 따라 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쉬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성과 실수
공직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동조 현상
동조를 증대 혹은 감소시키는 방법
소수의 영향력
충격적인 실험들
경찰과 자백
2장 법에 (불)복종하기
신호로서의 법
왜 그리고 언제
준법의 수준을 높이기
사문화
3장 무리지어 다니기
정보 쏠림 현상
쏠림 현상과 이견
4장 이웃은 어떤 생각을 할까?
긴밀한 정서적 유대, 집단 정체성, 그리고 질식된 이견
다원적 무지와 자기 검열
폭로자, 이견 제시자, 그리고 청개구리
보상
얼마만큼의 다른 목소리?
경제적 인간을 넘어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5장 언론의 자유
어떤 입장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공적 광장
동조, 이견, 그리고 공적 공간
언론 자유의 미래
안데르센의 비현실적 낙관론
6장 집단 편향성의 법칙
집단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배심원과 판사
분노와 테러 행위
숨겨진 정보와 침묵
집단 편향성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몇 가지 설명
수사적 우위
감정
극단주의
집단의 과제 수행 능력, 다양성, 그리고 갈등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첨언
집단 사고와 집단 편향성
7장 헌법 제정자들의 가장 큰 공헌
이견, 전쟁, 그리고 재난
헌법 제정 논쟁과 공화주의적 제도 구성
헌법의 구성
결사 및 사생활
고립된 논의와 억압된 목소리
집단 대표제에 대한 짧은 언급
심의적 여론 조사
8장 판사들 사이에서도 동조 현상이 일어나는가?
증거 : 일반론
몇 가지 조사 결과
이견을 제기하는 판사들의 역할
정치적 신념의 증폭과 완충
두 가지 예외와 하나의 반론
판사들의 극단화를 막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비유를 통한 설명
상원의 역할
헌법과 여론
9장 고등교육에서의 적극적 시정 조치
다양성과 루이스 파웰 연방대법원 판사
적극적 시정 조치를 둘러싼 법적 논쟁
집단 영향력이 파웰 대법원 판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
인종 중립성이란?
다양한 인종의 공존과 인종에 대한 고정 관념
인종을 넘어서
결론 : 왜 이견인가?
○ 저자소개 : 캐스 R. 선스타인 (Cass R. Sunstein)
시카고대학 로스쿨 및 정치학부 법학교수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이며, 오바마 정부에 합류해 규제정보국 Information and Regulatory Affairs을 도왔다. 지은 책으로『최악의 시나리오』등이 있다.
저자 홈페이지 : http://home.uchicago.edu/~csunstei/
– 역자 : 송호창
사회 현실에 눈뜬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10년을 시민운동가로, 10년은 변호사로 살아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으로 경제 민주화를 위해 발로 뛰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으로 거리와 법정을 바쁘게 다녔다.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 대학교에 방문연구원으로 머물렀다. 『같이 살자』는 이때의 경험과 배움을 풀어낸 책이다. 2011년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2012년 19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으로 당선, 정치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공역)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역자 : 박지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에서 수학했으며, 미국 스와스모어 칼리지(종교학, 경제학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 책 속으로
– 판사들 사이에서도 쏠림현상이?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된 연방 법원에서 어떤 판사가 보수적 또는 자유주의적/진보적 신념을 가진 판사와 함께 재판을 진행할 경우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을까? 이런 질문 자체를 부정하면서, 판사들이 법에 따라서만 판결을 내린다면 정치적 신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화당이 지명한 판사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지명한 다른 두 명의 판사와 함께 판결을 내린다면, 그 판사가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판결 (환경에 대한 규제를 무효화하거나, 적극적 시정 조치나 선거 자금법을 무력화하고, 여성이나 장애인들이 제기하는 차별 문제를 기각하는 등)을 내리는 경향은 강화된다. 민주당이 지명한 판사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경향이 나타나는데, 그들 역시 민주당이 지명한 다른 두 명의 판사들과 함께한다면 전형적으로 자유주의적/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커진다. 이처럼 집단 영향은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데, 한 판사의 정치적 신념은 같은 정당의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다른 두 명의 판사들과 함께 판결을 내릴 때 더욱 강화된다. 반대로,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지명한 판사들이 경쟁하는 의견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정치적 신념이 약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 좋은 참모란 누구?
1961년 4월 17일, 미 해군과 공군 그리고 중앙정보부는 피그스 만에서 쿠바를 침공하려는 1천5백여 명의 반카스트로파 쿠바 망명자들을 지원했다. 그 침공은 비참한 실패로 끝났는데, 두 척의 미국 보급선이 쿠바 전투기에 의해 격침되었고, 다른 두 척은 후퇴했으며, 네 척은 제시간에 도착도 못했다. 2만 명의 정예군으로 구성된 쿠바군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를 사살했고 생존자 대부분을 생포했다. 미국은 포로들을 송환받기 위해 쿠바에 5천3백만 달러를 해외 원조의 형태로 제공해야 했고, 국제적인 비난과 함께 쿠바와 소련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쿠바 침공이 실패한 연후에, 케네디는 “내가 어쩌다 그런 어리석은 계획을 추진했을까”라고 한탄했다.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케네디의 참모들이 무능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대단히 노련하고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륜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참모들 가운데 그 누구도 침공에 반대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서 슐레진저에 따르면, 케네디의 측근 가운데 몇몇은 개인적으로 그 계획에 의심을 품었지만 “자칫 ‘온건파’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감히 동료의 시선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들의 의심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 어떤 투자클럽의 실적이 좋을까
투자클럽은 자금을 공동으로 출자하고 주식시장에서 공동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떤 클럽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어떤 클럽이 낮은 수익을 낼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악의 수익을 내는 클럽은 기본적으로 사교적이었다. 그 클럽의 구성원들은 서로 잘 알고, 함께 식사하며, 정에 얽매여 있었다. 반대로 최상의 수익을 올리는 클럽은 그런 사교적 관계를 제한하고 수익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클럽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훨씬 빈번하게 나타났다. 낮은 수익을 내는 클럽에서는 공개적인 논쟁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낮은 수익을 올리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높은 경제적 수익을 얻기 위해 투표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자신의 표를 행사했다. 요약하면, 투자클럽 내에서 이견의 부재는 현저하게 낮은 수익을 낳았다.
– 건강한 기업 이사회란?
21세기 초반 많은 미국 회사들이 부정부패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엔론사의 파산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월드컴, 아델피, 타이코와 같은 회사들 역시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기업의 실패를 가까이서 관찰해 온 많은 사람들은 그 실패에 대한 처방으로, 기업 조직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기보다는 진지한 토론을 장려하고 회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위 간부들에게 거리낌 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집단을 기업 내에 두라고 충고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의 중역들이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때, 직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용히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이득을 보는 주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자료들은 “이견 제시를 하나의 의무로 간주하고 어떤 주제라도 토론할 수 있는” 상당히 논쟁적인 이사회를 가진 기업이 실적도 좋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건강한 기업 이사회라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획일적 견해에 대한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인간은 왜 무리를 짓는가?
.특정 의견이나 태도에 집단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가?
.동조 현상의 장점과 부작용은 무엇인가?
.왜 차이와 이견,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가?
.어떻게 하면 다양한 이견 위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 개정판을 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를 꼽으라면 단연 플라톤일 것이다. 그가 민주주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참된 지식이 아니라 공중의 의견에 기초를 둔 체제였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만인이 의견을 갖는 체제의 귀결은 억지 주장과 그에 휩쓸리는 여론 이상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옳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사람이 체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 사안에 정통한 전문가가 이런저런 파당적 의견과 대중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체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인이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유로운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다양한 의견과 주장 그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플라톤의 도전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에서조차 집단적 쏠림 현상이나 편향성의 집단적 강화 현상은 피할 수 없고, 이러한 사회현상은 국가권력과 같은 외재적 요인들의 개입이 없어도 나타나게 마련인 인간 사회의 본질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무리를 짓는가? 왜 특정의 의견이나 태도에 집단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이 갖는 장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왜 차이와 이견,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가? 이견과 다양성의 존재를 우리는 정당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양한 이견 위에 서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역사적 사례들과 심리 실험의 결과를 통해 따져 보고 있는 이 책은 2009년 번역 출간된 이래로 꾸준히 애독되었다. 다만 출판사 입장에서 늘 아쉬웠던 것은, 지나치게 미국적인 사례나 예시 몇 가지가 국내 독자들의 독서를 방해하는 점이었다. 이에 미국 출판권자과 국내 번역자의 허락을 얻어 원문 가운데 꼭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삭제한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더불어 판형과 종이 선택에도 변화를 줌으로써 좀 더 독자 친화적인 책을 만들고자 했다. 이 개정판이, 이견과 갈등을 민주사회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하면 이견과 갈등 속에서도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데 부디 쓸모 있게 소용되기를 기대한다.
– 이 책을 왜 기획했나
한국 사회처럼 이견 내지 다른 생각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도 없을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총화단결’이 최우선의 가치로 강요되었고, 그 결과 작은 조직 사회에서도 “모난 놈 정 맞는다”는 게 보이지 않는 규율처럼 이야기되었다. 아무래도 그 백미는 “말 많으면 빨갱이다”라는, 논리성으로만 따진다면 정말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이견을 말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의견이 조직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에너지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물론 어느 사회든 일정한 체제(시스템)의 원리로 조직되어 있다. 그 때문에 동질적인 견해나 생각에 대한 일상적 압박이 없는 사회나 조직은 존재하기 어렵다. 국가라는 공동체에서는 이를 충성이라고 말하고, 일반 조직에서는 조직 문화나 팀스피릿과 같은 단체정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예외 아니다. 민주주의도 제아무리 이상적인 형태에 가까워진다 해도 통치 체제의 한 유형이라는 본질을 벗어나진 못한다. 자율적 결사체나 생태 공동체라고 해도 다르지 않고, 하다못해 작은 서클이나 계모임에도 조직과 체계의 원리가 작용한다.
그러한 체계의 힘과 조직의 논리가 있다 해서 모든 사회나 조직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견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 사회나 조직마다 큰 차이가 있고, 이견을 다루는 데 있어 실패함으로써 누구도 바라지 않는 집합적 부작용과 불행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견 없는 사회, 갈등 없는 조직을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견과 갈등을 좋은 사회, 좋은 조직의 제도적 원리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이 주제를 흥미와 깊이를 결합해 다루고 있는 책이자, 오늘의 한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1. 상식과 통념의 옆구리를 찌르는 이견
모든 이견을 찬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견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이견을 억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낳는 이유는, 그런 행위가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동체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견이 옳다면 그런 억압은 잘못을 드러내고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설령 이견이 잘못된 정보라 하더라도, 그 이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넛지’의 핵심은 바로 이견이다. 사람들이, 조직이,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통념에 대한 자극, 이견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 동조, 쏠림 현상, 집단 편향성
인간은 양이 아니지만, 양처럼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다. 이런 동조 행위는 개인적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 대처하는 합리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이자, 문화가 전승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조는 사회적 쏠림 현상을 낳고, 이런 쏠림 현상은 집단 편향성을 낳는다. 과장된 사회적 공포(비행기 사고, 환경오염, 자연재해, 신종플루 등의 전염병에 이르는)에서부터, 극단적인 견해의 대립 모두 대체로 이런 쏠림 현상과 집단 편향성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이루어지는 토론은 그 의견을 더욱 강화해, 사람들이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끈다. ‘예스’만 외치는 사람들은 무임승차자들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사회에 제공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행위로부터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공동체에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득을 준다.
3. 조직과 사회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동조와 쏠림 현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다른 사람의 행동과 판단은 중요한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수의 행동을 따르지 않거나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적 유대를 해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압력은 많은 경우에 개인과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견은 이런 흐름에 대한 중요한 교정 수단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이견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언론의 자유는 사회적 영향이 개인의 행동과 신념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실수와 병리 현상을 막을 수 있는 핵심적인 보호 수단이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도록 조직, 사회, 국가를 디자인하고, 소수가 내는 이견을 경청하는 태도와 문화가 조직과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
4. 이견의 중요성과 다양성을 사회적으로 조직하기
사회적 쏠림 현상, 어리석은 대중들 사이에서만 일어날까? ‘아니오’다. 흔히 사람들은 법관을 법의 ‘입’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법대로만 판결을 내린다고 믿는 것이다. 나아가, 판사들은 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법률을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 결과는 판사들의 의견도 편향성을 띨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가진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집단 편향성과 동조 현상이 법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나아가 극단적인 판결을 피하고, 법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과 판결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판사들 사이의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건강한 기업은 가장 논쟁적인 이사회를 가진 기업이다. 가장 실적이 좋은 투자클럽은 이견과 갈등을 허용하는 클럽이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는 이견을 허용하고, 다양한 견해와 이해를 가진 집단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적 병폐를 해결해 나가는 사회다.
○ 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37) 중에서 _ 7월 20일자
– “동조와 이견”

평범한 일상사에서 나누는 대화에는 병 이견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누가 ‘난 커피’라고 할 때 ‘나도’ 하면서 동조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떤 학문, 주장, 이론, 정책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론이 제기되어야하고 대립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만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기본소득 절대보장’이라고 말할 때 ‘나는 반대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역사는 발전합니다.
이견이 없는 학문, 이견을 수용하지 않는 정부나 사회, 이견을 탄압하는 종교나 신념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모든 일에 비판이나 이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직 동조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런 사람들 끼리만 모이게 되면 역사의 미래는 어두워 집니다.
누군가 ‘나는 성경말씀은 글자 한자 한자가 그대로 진리라고 믿어!’, ‘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무조건 지지해!’, ‘나는 다수의 견해는 무조건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해!’ 라고 말할 때 “Mr. No Man”이 나타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야지 인류의 미래는 조금씩이라도 밝아진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쯤이나 우리 사회에서도 며누리가 시아버지에게 ‘아버님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고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언론과 시민들이 집권자에게 ‘그런 정책은 바꿔야한다’고 말해도 얼굴 붉히지 않고, 부당하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전 정권에 대해서는 Mr. No 였던 언론이나 교수나 학자가 현 정권에 대해서는 바른 말 한마디 하지 않는 Mr. Yes가 되었다면 그 언론, 그 교수, 그 학자는 그에게 주어진 본래의 책임과 기능을 망각한 것입니다. 지성인의 사명은 어떤 한 시대의 특정한 정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권력에 대하여 이견을 말하는 데 있습니다.
이견은 없고 일치와 동조만 있는 사회나 집단은 조용해서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좀 시끄러워도 이견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공동체가 역사 발전을 견인합니다.
추천도서: 왜 우리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R. 선스타인, 박지우, 송창호 옮김, 후머니타스, 2015
Carpe diem!
Bonam fortunam!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