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욤키푸르 1973 (1, 2)
1: 제4차 중동전쟁의 전황을 뒤바꾼 골란 고원의 혈투
2: 무적 이스라엘군의 신화를 깨뜨린 수에즈 운하 도하작전
사이먼 던스턴 / 플래닛미디어 / 2007.12.5

- 플래닛 미디어에서 펴내는 ‘세계의 전쟁 시리즈’ 11, 12번째 책
이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전투들 중 가장 최근인 제4차 중동전쟁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은 이스라엘이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골란 고원에서 펼쳤던 전투를, 2권은 수에즈 운하 일대와 시나이 반도에서 펼쳤던 전투를 다룬다.
『욤키푸르 1973 (1)』은 지금까지 출간된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의 전투인 제4차 중동전쟁을 소재로 이스라엘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제1권은 시리아를 주축으로 한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골란 고원에서 펼쳤던 전투를 담은 책이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게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라는 귀중한 땅을 빼앗긴 시리아와 이집트는 외교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전쟁 준비를 지속했다. 치밀하게 짜인 기만책으로 이스라엘 정보계통의 오판을 유도하고, 정치인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1973년 이스라엘의 고요하고 성스러운 속죄일, 즉 욤키푸르(10월 6일)에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 양쪽에서 동시에 기습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188기갑여단과 7기갑여단은 골란 고원에서 전차 대수로만 6배가 넘는 시리아군을 맞아 ‘기갑전투 사상 최고의 방어전’으로 불리는 혈전을 벌였다. 제4차 중동전쟁은 제4차 중동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골란 고원의 혈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며 병사에서 군사령관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책이다.
『욤키푸르 1973 (2)』는 지금까지 출간된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의 전투인 제4차 중동전쟁을 소재로 이스라엘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2권은 이집트군을 상대로 수에즈 운하 일대와 시나이 반도에서 펼쳤던 전투를 담은 책이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게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라는 귀중한 땅을 빼앗긴 시리아와 이집트는 외교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전쟁 준비를 지속했다. 이집트는 전쟁 개시 몇 시간 만에, 이스라엘군의 자동화기가 불을 뿜고 있는 가운데서, 수만 병력과 기갑차량 수천 대를 수에즈 운하 건너편으로 도하시킨다. 그러나 이집트군의 성공은 골란 고원에서 수세에 몰린 시리아를 지원한다는 정치적논리로 무모한 추가 공격명령이 내려지고 이스라엘군의 운하 역도하 반격이 진행되면서 역전되게 된다.
다급해진 이집트가 먼저 외교 협상에 응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리아가 이에 뒤따르면서 이스라엘을 급박한 위기로 몰아넣었던 제4차 중동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집트 VS 이스라엘, ‘철옹성벽’을 믿고 자만하던 이스라엘이 이집트군의 기습적인 도하에 허를 찔리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며 병사에서 군사령관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책이다.
○ 목차

- 1권
감수의 글
전투의 배경
양측 작전계획
양측 전력
시리아군 / 전투서열 : 시리아 육군, 요르단군, 이라크군
이스라엘군 / 전투서열 : 이스라엘 북부군
양측 지휘관
시리아군 지휘부 / 이스라엘군 지휘부
골란 고원 전투
시리아군의 공세 / 눈물의 계곡 / 이스라엘군의 반격
전쟁의 여파
전장의 현재 모습
연표
참고 문헌

- 2권
감수의 글
전투의 기원
소모전
전쟁을 향한 첫 걸음
양측 작전계획
이집트군 / 이스라엘군
양측 전력
이집트군 / 이집트 육군 전투서열(1973년 10월)
이스라엘군 / 이스라엘 남부군 전투서열(1973년 10월)
양측 지휘관
이집트군 지휘부 / 이스라엘군 지휘부
10월 전쟁
바드르 작전 / 쇼바크 요님 / 이스라엘군의 초기 반격 / 복수혈전 / 가젤 작전 / 대단원
전쟁의 여파
전장의 현재 모습
연표
참고 문헌
○ 저자소개 : 사이먼 던스턴
다년간 전쟁사 및 병기 기술 관련서적 30여 권을 쓴 전문 저술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한국전, 베트남전, 중동전 당시 장갑전투차량의 전술적?기술적 운용에 탁월한 전문성을 자랑한다. 성공한 사진작가이자 영상물 제작자인 그는 뉴욕의 히스토리 채널사를 위해 전쟁사 관련 TV 다큐멘터리 수편을 제작하기도 했다. 런던에 살고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고 있다.
– 그림 : 하워드 제라드
월러시 예술학교 (Wallasey School of Art)를 졸업하고 지난 20년 이상을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왔다. 영국 항공우주기업연합회 상 (Society of British Aerospace Companies Award)과 윌킨슨 소드 트로피 (Wilkinson Sword Trophy)를 수상했으며, 오스프리 출판사의 ‘캠페인 (Campaign)’ 시리즈 『나가시노 전투 1575 (Nagashino 1575)』와 『유틀란트 해전 1916 (Jutland 1916)』 등을 포함한 많은 서적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한 바 있다. 현재 영국 켄트에서 살고 있다.
– 역자 : 박근형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보안 장비를 중심으로 한 기술 번역과 출판 번역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세상보세3: 세계사』, <세계의 전쟁 시리즈> 『욤키푸르 1973』 (1), (2) 등이 있다.
– 감수: 양욱
서울대학교 법대와 국방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합참과 방위사업청의 정책자문위원이며, 이외에도 해군·공군·육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 만 지역에서 대해적 업무를 수행하며 민간군사서비스 회사를 경영한 바 있다. 정부의 각 부처에서 자문역이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밀리터리 칼럼리스트로서 여러 권의 군사전문서적을 출간했으며, 영화 <쉬리>나 <강철비> 등의 군사자문 등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WMD대응센터장으로 대북군사전략을 연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대테러실무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 책 속으로
골란 고원 공략에 동원된 막강한 시리아군에 맞설 이스라엘군은 고작해야 전력 미달의 1개 기갑여단과 2개 보병대대 및 4개 자주포 포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이처럼 놀랄 만한 불균형이 생긴 이유는 단순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전쟁에 나서려면 적어도 3년은 더 걸릴 것이라 여겼고, 시리아가 이집트의 협력 없이 공격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1권 p31 중에서
…싸움은 치열했다. 10월 10일 수요일, 이집트군은 5개소에 걸쳐 아단 사단에 공격을 가했고, 같은 날 이집트 21기갑사단의 일부 병력이 샤론의 사단을 공격했다. 샤론은 능숙한 기동으로 이집트 전차 50여 대를 파괴할 수 있었다.-2권 p102 중에서
○ 욤키푸르 전쟁 개관
욤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 (히: מלחמת יום הכיפורים, Milẖemet Yom HaKipurim, or מלחמת יום כיפור, Milẖemet Yom Kipur), 또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이다. 전투는 대부분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집트의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도 다시 이집트의 통제권에 두기를 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아랍군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격멸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1973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점령지에 기습적인 합동공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의 휴일인 욤 키푸르이자 이슬람의 신성한 기간인 라마단이 동시에 있었던 달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휴전선을 넘어 각각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향해 진격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의 동맹국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했고, 이로 인해 이 전쟁은 두 핵보유 강대국의 대결 수준에 이르렀다.
이집트의 바드르 작전이 성공적으로 개시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군은 휴전선을 건너 시나이반도를 향해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했다. 3일 후 이스라엘은 병력 대부분을 동원해 이집트군의 공세를 정지시킴으로써 교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리아군은 이집트의 공세에 발맞추어 골란고원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초기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3일 후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을 휴전선 지역까지 몰아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4일 간 시리아 종심부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포병이 다마스쿠스 외곽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그의 주요 동맹과의 통합을 우려했다. 그는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2개의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면 전후 협상에서 그의 위치가 강화될 것이라 여겼고, 이에 따라 이집트군에 공세를 지속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반격을 개시해 수에즈 운하에 주둔한 이집트군을 격퇴시켰고,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아에서 격전을 벌였다.1주 간의 격전으로 인해 양측은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10월 22일, 유엔의 중재안이 발표되었고, 양측은 서로 중재안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10월 24일, 이스라엘군은 거점을 강화해 이집트 제3군과 수에즈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게 되었고, 제2차 휴전안이 10월 25일 발표되어 욤키푸르 전쟁은 종결되었다.

○ 출판사 서평
- 6일 전쟁으로 모진 수모를 당했던 아랍 연합군의 복수전, 욤키푸르 전쟁을 해부하다!
4차에 걸친 중동전쟁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전투는 역시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일 것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거둔 놀라운 군사적 성과는 이후 이스라엘에 몇 배에 달하는 영토를 안겨주었고, ‘군사강국’, ‘무적’ 등의 호칭을 따라다니게 했다. 그러나 정치적.군사적 관점에서 약 6년 후에 벌어진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즉 욤키푸르 전쟁이 끼친 파장은 그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전쟁> 시리즈 제11, 12권인 『욤키푸르 1973(1), (2)』는 이러한 욤키푸르 전쟁의 전개과정과 그 영향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 최대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의 현대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게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라는 귀중한 땅을 빼앗긴 시리아와 이집트는 외교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전쟁 준비를 지속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부는 모처럼 얻은 군사적 요충지들을 내주고 싶어하지 않았고, 결국 전쟁을 결심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잃어버린 영토의 탈환을 목표로 제한적인 전쟁을 기획하게 된다.
치밀하게 짜인 기만책으로 이스라엘 정보계통의 오판을 유도하고, 정치인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1973년 이스라엘의 고요하고 성스러운 속죄일, 즉 욤키푸르 (10월 6일)에 골란 고원과 시나이 반도 양쪽에서 동시에 기습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남과 북에서 동시에 물밀듯 밀려오는 아랍 연합군을 맞아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최대한 발휘, 적어도 미국의 지원이 있을 때까지, 얼마나 버텨내는가에 달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세계의 전쟁> 시리즈 중 가장 최근의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욤키푸르 1973 (1), (2)』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1권은 시리아를 주축으로 한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골란 고원에서 펼쳤던 전투를, 2권은 이집트군을 상대로 수에즈 운하 일대와 시나이 반도에서 펼쳤던 전투를 다루고 있다.
- “시리아 VS 이스라엘, 골란 고원에서 기갑전투 사상 최고의 방어전이 펼쳐지다!
이스라엘은 일선 지휘관들과 정보당국의 조언으로 전쟁이 발발하기 얼마 전, 188‘바락’기갑여단이 수비하고 있던 골란 고원에 7기갑여단을 추가로 배치한다. 바로 이들 188기갑여단과 7기갑여단이 골란 고원에서 전차 대수로만 6배가 넘는 시리아군을 맞아 ‘기갑전투 사상 최고의 방어전’으로 불리는 혈전을 벌인 주인공들이다. (7기갑여단의 1개 대대, 77 OZ대대는 눈물의 계곡에서 15배가 많은 시리아 전차를 맞아 36시간이나 버티기도 했다.)
이들은, IAF (이스라엘 공군)가 시리아의 잘 구축된 방공망체계 때문에 ‘6일 전쟁’ 때처럼 위력적인 공격을 펴지 못하고 전략 요충 헤르몬 산 관측기지가 시리아군 특수부대에게 점령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골란 고원으로 쇄도해오는 1,200여 대의 시리아 전차를 맞아 말 그대로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쳐야 했다. 전차 위에 몸을 내놓고 관측과 지휘를 하던 전차장들은 목이 날아간 채 전차 안으로 굴러떨어지기 일쑤였고, 그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전차를 버리고 달아난 승무원들도 부지기수였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상황에 놀라 골란 고원에서 후퇴하자고 건의했고, 골란 고원의 점령과 뒤이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재앙은 피할 길이 없어보였다.

- 간발의 차이로 갈린 희비! 먼저 등을 보이는 자, 그저 밀어붙이는 자, ‘교본’에 얽매이는 자, 승리를 얻지 못하리라!
이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애국심’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 군인들의 의지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벤 한난 중령은 신혼여행 도중 전쟁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공항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장으로 직행했다. 단 라너 장군은 직접 야전헌병 역할을 하며 동원병력이 집결하는 족족 전장으로 투입했다. 많은 병사들이, 어떤 이들은 부상을 입은 채로, 수십 시간이나 잠을 자지 못한 채 전투를 계속했으며, 마찬가지로 지원부대와 공군 조종사들 역시 그렇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전차가 불과 몇 대도 남지 않은 전멸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그들은 시리아군이 400여 대의 불탄 전차들을 남긴 채 전술적 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골란 고원이 점령을 모면하는 순간이었다. 벤 갈 대령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상대방이 어떤 처지인지는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언제나 자기보다 나으려니 생각하기 마련이죠. 시리아인들은 성공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헛짚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저자는 만일 시리아군이 ‘전술적 미숙함’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저 상대를 뚫고 나가려고만 했던 ‘우직함’, 즉 ‘교본’대로만 전투하려던 시리아군의 경직된 전투방식이 가장 중요한 패인이라는 것이다. 시리아 육군 틀라스 장군은 급박한 상황에서 명령을 전달한답시고 전방지휘관들을 소환하는가 하면, 필요한 곳에 병력을 집중하는 유연성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한 시리아 부대는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다른 방해가 없는데도 멀뚱히 서서 후속부대의 도착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것은 소대나 중대 규모의 동원전차들을 도착하는 족족 신속하게 전장에 투입하며 전술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했던 이스라엘군과는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 “그대들이 이스라엘을 구했다.” 제4차 중동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골란 고원의 혈투!
전투 직후 이스라엘군의 한 사단장은 7기갑여단 지휘관 벤 갈과 그의 병사들에게 “그대들이 이스라엘을 구했다”고 치하했다. 골란 고원 전투는 제4차 중동전쟁 전체의 흐름을 결정한 군사적으로 중대한 전투였다. 뜻밖에 강력한 저항을 받은 데다 오히려 반격을 저지해야 할 형편에 처한 시리아는 급박한 나머지 이집트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이집트가 계획에 없었던 무모한 공격을 시작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양쪽 전선 모두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 영토로 침입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포격권에 넣었고 전투 초기에 빼앗겼던 헤르몬 산의 관측지점까지 탈환하면서 전투를 종결짓는다.

-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이스라엘은 전쟁 중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고 실제로 1개 팬텀 비행대대에 핵무기들을 장착시켰을 만큼 절박한 상황 하에 있었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시리아와 이집트 양 국가의 공격을 격퇴하고 오히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포격권에 넣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공포와 혼란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다. 전쟁 수행과정을 조사한 아그라나트 위원회는 골다 메이어 총리를 비롯한 군 지도부의 주요 인사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국민들 역시 총선에서 노동당의 30년 집권에 종지부를 찍어 그 책임을 물었다. 저자는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이스라엘 사회의 혼란이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이 전쟁이 이스라엘이 미국의 군사, 외교, 경제적 지원에 전례 없이 의존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고 갈파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이 ‘10월 전쟁’을 군사강국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 세계에 아랍세계의 자존심을 세운 계기로 평가한다. 특히 가장 실리를 챙긴 것은 이집트라 할 수 있는데,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으며 결국 시나이 반도를 반환, 1978년에는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 총리와 사다트 대통령이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1년 10월 6일, 사다트 대통령이 자신이 주도한 1973년의 수에즈 운하 도하를 기념하는 식장에서 한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손에 암살당하는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곰씹게 한다.
-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사람들의 리더십과 용기!
개인의 행위가 전쟁의 결과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현대전에서도 언제나 사태의 균형을 바꿔놓는 특별한 결단과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며, 개별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지휘관의 판단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 제4차 중동전쟁은 일선 리더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수 있다. 현장 지휘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즉각 반영하고자 노력―그들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격렬한 논쟁을 벌여 서로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다―했던 이스라엘은 위기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고 전과를 확대할 수 있었다. 반면 시리아와 이집트는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권과 역할을 무시하거나 절박한 요청들을 묵살함으로써 확실해보였던 승리를 날려버렸다. 『욤키푸르 1973 (1), (2)』는 제4차 중동전쟁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뿐만 아니라, 병사에서 군사령관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우리에게 리더십, 용기, 헌신 등이 갖는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