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우울한 열정
수전 손택 / 이후 [시울] / 2005.11.11
1960년대 미국 문단에 등장한 이후 철학과 예술, 문학 비평부터 영화, 연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독자적인 안목과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선보인 수전 손택의 세 번째 에세이 모음집이다. 손택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쓰인 글들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일곱 명의 서구 아방가르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 평전이자 수전 손택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이다.
앙토냉 아르토, 엘리아스 카네티, 레니 리펜슈탈, 발터 벤야민, 그리고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 폴 굿맨과 롤랑 바르트와 같이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우울함과 광기, 고통, 천재성 사이를 배회했던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만나볼 수 있다.

○ 목차
폴 굿맨에 대하여
매혹적인 파시즘
토성의 영향 아래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바르트를 추억하며
열정의 정신
아르토에 다가가기
후주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작품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수전 손택 (Susan Sontag)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 (The Benefactor, 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 (Notes on ‘Camp’, 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 ~ 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 (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 역자 : 홍한별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는 『권력과 테러』, 『자라지 않는 아이』, 『위대한 생존』, 『오카방고 숲속의 학교』,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무소녀』, 『네모난 못』, 『자유 방목 아이들』, 『밴버드의 어리석음』, 『식스펜스 하우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사악한 책, 모비 딕』,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웃런』, 『바다 사이 등대』, 『달빛 마신 소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 『가든 파티』, 『밀크맨』 등이 있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미스테리아』 등에 글을 실었다.
○ 책 속으로
벤야민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세상을 공간화하는 방식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사고와 경험은 폐허로 개념화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지형을 이해하고, 어떻게 지도로 그릴지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인물에게 시간은 제한, 부적절한 것, 반복, 단순한 완료의 수단이다. 시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일 뿐이다. 항상 그대로의 삶. 공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벤야민은 형편없는 방향감각과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능력 덕에 여행을 사랑하게 되고 헤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시간은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 p.73
○ 출판사 서평
첫 번째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1966)로 뉴욕 지성계에 스타덤에 오른 수전 손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작가들을 오로지 “광기와 그릇된 소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예술을 옹호하기 위해 집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거기에는 우울과 고독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발터 벤야민도 있었으며, 오만하지만 순수한 윤리적 열정의 소유자 폴 굿맨, 치열한 광기로 시대와 불화한 앙토냉 아르토와 병적 아름다움 집착하는 레니 리펜슈탈도 있었다.
이 에세이들은 발표되는 족족 당시의 문화 지형을 상당히 바꿔놓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인물들은 서구 현대예술사의 다양한 물결에서도 가장 ‘얄궂은’ 유형에 속한다. 그야말로 “학계와 전문가들의 용(龍)”이 지키는 지적 전문 분야에서 “학술적 무단침입자”로 살아온 사람들이자, 뿜어져 나오는 광기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재료 삼아 자유와 예술, 그리고 삶의 진실에 관한 현란한 수완을 발휘한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동시대 대중과 문화예술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아방가르드적 난해함과 그노시스적인 광기로 이해될 뿐인 사람들. 그러한 그들을 손택은 그녀 특유의 냉정하고도 합리적이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들의 언어를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손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정’이 베인 아방가르드적인 언어의 확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로도 사용된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에세이 「토성의 영향 아래」는 사실 이 책에 시종일관 흐르는 기조이자 주제적인 글로 벤야민의 삶과 글을 작가의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독특한 글이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벤야민이 (심리학적 개념을 경멸하여 쓴) 점성술적 개념으로 동원해 스스로를 규정하듯 자신을 우울한 (saturnine) 사람으로 생각했고, 향후 그의 모든 주요 연구와 글쓰기 과제에 그런 그의 기질은 투사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과 심지어는 괴테에서도 토성적(우울한, 혹은 음울한) 기질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구체화된 산책자 (flneur) 상에 19세기적 감성을 결부시키면서, 자기 자신의 감성도 도시와의 몽환적이고 예민하고 미묘한 관계에서 대부분 이끌어”내게 된다.
초현실주의라는 그릇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울 만큼 버거운 인물 앙토냉 아르토에 관한 글 (이 책에서 가장 긴 글인) 「아르토에 다가가기」는 원래 아르토 저작 선집의 소개 글로 쓰인 글로 아르토에 관한한 가장 권위 있는 글로 손꼽힌다. “연극이라는 예술 분야에 아르토가 미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어서, 요즘 서유럽과 미국에서 상연되는 진지한 연극의 줄기를 아르토 전과 아르토 후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라는 손택의 평가는 아직까지도 연극에서의 아르토의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만큼 유명하게 인용되는 문장이다. 손택은 이글에서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아르토의 “결과로서의” 모든 것들을 실패했다고 규정하지만 “완성된 예술 작품이 아닌 독특한 존재, 모종의 시학, 사고의 미학, 문화의 신학, 수난의 현상”과 같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문학적 모더니즘이라는 영웅적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본보기”로 칭송한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아르토를 그에 버금가는 난해한 문체로 해설한 것은 손택 자신이 글에서 주장하고 있듯, 읽을 수 없는, 본질적으로 흡수할 수 없는 작가를 본질은 무시하고 제멋대로 먹기 좋게 요리해 피상적으로 다루는 현대 비평의 경향을 비난하며 아르토가 “문학과 역사에 엄청난 분량의 고통을 남”겼듯 독자들에게도 일정한 분량의 고통을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레니 리펜슈탈에 관한 글인 「매혹적인 파시즘」과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에 관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한때 우리 사회를 달궜던(그리고 현재까지도 의미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의 원형적인 논의로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글들이다. 「매혹적인 파시즘」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이질적인 두 개의 제시물, 즉 수단 남부의 마지막 부족에 관한 리펜슈탈의 유명한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와 “공항 잡지 판매대나 ‘성인’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값싼” 포르노 사진집 『SS 제복』을 병치해 비교하면서, 이들 제시물이 갖는 공통적 근저에는 “아름다움을 병적으로 추구”한 파시즘적 탐닉이 숨어있다고 분석한다. 손택은 그 증거로 리펜슈탈의 나치시대의 작품(영화 『신념의 승리』나 『올림피아』 등)의 근저에 흐르는 “영웅에 대한 대중의 복종”과 찬양이 전후 누바족에 대한 사진집 근저에 담겨 있는 “육체적 기술과 용기를 드러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이 공동체 문화의 통합의 상징인 사회, 싸움에서의 승리가 ‘사람의 인생의 주요한 열망’인 사회를 찬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더 나아가 『SS 제복』에서 드러나듯이 나치식의 제복과 가죽 채찍에 숨은 “제복에 대한 환상, 즉 공동체, 질서, 정체성, 능력, 정당한 권위, 정당한 폭력”의 상징도 전혀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충성을 유고하고 강요하는 고귀한 명작의 범주에 속”하는 1인극 영화 『히틀러, 독일 영화』를 다룬 글이다. “우리가 없었다면 히틀러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도발적인 내레이터의 반복을 발견되듯이, 지버베르크는 나치즘을 독일의 악마성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는 토마스 만의 관점을 수용한다. 손택에 따르면, 지버베르크는 히틀러가 야기한 수천만 명의 살해가 역사적 괴물의 등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며, “히틀러 사후에 여전히 살아있는 일종의 히틀러적 본성, 현대 문화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 현재를 가득 채우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변화무쌍한 악의 원칙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버베르크의 영화는 결코 이러한 ‘실재’에 기반해 “정보의 표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치유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 및 군중심리를 탐구한 『군중과 권력』의 저자이며 “은둔하는 기인의 상으로서, 20세기의 상상력 속에서의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가장 큰 성취이자 순교자의 모습을 한 진정한 영웅” 카네티에 관한 글 「열정의 정신」도 주목할 만한데, 특히 손택의 이글이 발표(1980)된 바로 다음 해,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짧은 글인 「폴 굿맨에 대하여」와 「바르트를 추억하며」는 고인들의 부고를 접하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쓴 애정과 애도, 존경이 어우러진 우아한 감상의 표본과도 같은 글들이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손택의 말처럼 “최후의 심판에서, 최후의 지성인, 현대 문화의 토성적 영웅, 잔해, 반항적 시각, 몽상, 억누를 수 없는 우울함, 내리깐 눈을 지닌 인물들로 자기가 여러 ‘위치’를 가졌음을 설명하고 최대한 공정하고 비인간적으로 지성인의 삶을 그 최후까지” 옹호받아 마땅한 우리시대의 지성이다.
○ 독자의 평 1
30페이지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수 천 페이지를 써야했고 매 페이지마다 30~40개의 초고가 필요했을 만큼의 고통스런 ‘언어’를 통해 “무례한 천재적 아마추어리스트” 폴 굿맨과 “환호, 그리고 정신의 진지한 유희의 분류학자” 롤랄 바르트, “고통을 통해 발언할 권리를 획득한” 앙토냉 아르토, “열렬한 도덕주의자” 엘리아스 카네티, “병적 아름다움의 집착자” 레니 리펜슈탈, “우울한 열정의 소유자” 발터 벤야민, “절충주의적 초현실주의자”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를 ‘투명’하게 복원하려 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우연한 기회에 지적인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후 접하게 된 수전 손택, 그 고집스럽고 완고해 보이는 얼굴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녀의 글들은 쉽지 않았다. ‘우울한 열정’ 속에 선택된 이들은 대중적이지 않은 사상과 지식으로 중무장한 천재들인데다, 그들을 이해하기위해 그녀식대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뤄진 지적인 글들은 휴~ 땀날 정도로 이해불능했다. 그럼에도 이 우울한 천재들을 이해하고 말았던 수전의 노고를 느낄 수 있는 글들이라 정말 멋있다.
‘우울함’과 ‘광기’, ‘고통’, 그리고 ‘천재성’ 사이를 배회하는 전위적 지식인들에 대한 송덕으로서, 예술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로서 자신의 임무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손택은 내면을 향한 열정과 어지럼증 나는 예술에 열렬히 찬미한다. 손택은 늘 그렇듯이 주류 예술 밖에 존재하는 광기어린 예술에 대한, 그리고 때때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인류의 경험이 닿지 않는 철저한 변방의 예술에 관심을 갖는다. 특유의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정’이 베인 전위적인 언어의 확장에 있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이 그 작업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르토의 말처럼 “고통에 길들여지기”때문이다.(서문에서)
주류 예술 밖에 존재하는 광기어린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천재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전위적 예술가들을 찾아내고 그녀의 언어로 그들이 재평가 될 수 있도록 찬미하는 ‘우울한 열정’은 그래서 쉽게 읽히진 않는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읽기엔 부적합한, 정좌를 하고 집중해서 읽어야 할 그런 책이다. 그렇게 정좌를 하고 읽어도 한 글자뿐만 아니라 한 단락조차도 쉽게 넘기지 못하지만, 왠지 수전의 소개에 흥미를 갖게 되어 천재적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검색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지 않을까 한다. 작품을 공유한 후, 그렇게 수전의 우울, 광기, 고통, 그리고 천재성을 이해해볼 참이다. 같은 공간에서 숨쉬면서 말이다.
○ 독자의 평 2
오랜만에 비평서를 읽으려니 조금 피곤해졌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것봐라 맨날 소설만 읽을 때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라며 오히려 고소해 한다. 책은 뉴욕을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수전 손택이 1972년부터 1980년 사이에 작성한 일곱 명의 작가들에 대한 비평 모음이다. 원제인 Under the Sign of Saturn 토성의 영향 아래, 라는 제목은 발터 벤야민에 대한 분석의 글에 달았는데, 이를 전체 책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책에 실린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사회비평가인 폴 굿맨, 나치의 국가사회당 대회에 관한 영화인 <의지의 승리>와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올림픽 기록 영화인 <올림피아>의 감독인 레니 리펜슈탈, 유대교 독일인으로 문화비평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좌파 아웃사이더였던 발터 벤야민, <히틀러, 독일 영화>를 통하여 궁극의 풍자를 보여주었던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였으며 비평가였던 롤랑 바르트, 불가리아 태생의 유태인 작가로 영국에서 활동하였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엘리아스 카네티, 프랑스의 시인이자 연극 연출가로 잔혹극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앙토냉 아르토까지…
작가가 감응을 하거나 호응을 하고 있는 여섯 명의 작가, 그리고 과거의 전력에 대한 세탁 작업을 감행하고 있어 우려를 표하는 한 명의 작가인 레니 리펜슈탈까지 모두 일곱 명을 그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어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며, 작가의 타계 소식 혹은 작가의 전시 소식을 접한 이후 갖게 된 의견 표명의 의지가 반영된 글들이라고 보여진다.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그의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다. 17세기 바로크극(‘음울한 나태’의 여러 국면을 극화한 극이다)이나 그가 가장 뛰어나게 다룬 작가들 – 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의 주제에서 벤야민이 본 것이 바로 그 우울함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어떤 상황에 대한 분석에 그치고 있지는 않으며 거론하는 작가들의 모든 작품 활동과 그것에 깔려 있는 의식의 기저까지를 그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벤야민의 경우 그가 가지고 있는 일련의 경향, 예를 들어 ‘명백해 보이는 해석에 저항하는’ 것과 같은 경향의 경우 아마도 작가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진다. (책의 전체 제목을 벤야민에 대한 분석의 글의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고, 번역된 제목인 우울한 열정에서도 벤야민을 떠올리게 된다.)
“… 지버베르크는 히틀러 이후에도 살아있는 일종의 히틀러적 본성, 현대 문화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 현재를 가득 채우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변화무쌍한 악의 원칙을 환기시킨다…”
이와 함께 히틀러 시절 – 비록 예술 형식적으로는 훌륭하였으나 나치즘의 홍보물로 볼 수밖에 없었던 –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지만 현재 그러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리펜슈탈과 추상적이고도 우화적이며 초현실주의적인 자신의 영화를 통하여 – <히틀러, 독일 영화>를 비롯한 일련의 독일 영화 3부작 – 히틀러 그 이후의 시대에 대한 비판까지 서슴지 않는 지버베르크를 한 책에 삽입함으로써 (비교 아닌) 비교를 하는 구성도 재미있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폭력을 혐오했다.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사랑의 단상』은 무척 슬픈 책이다. 그러나 그는 황홀경을 알고 그걸 찬미하고자 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쓰지 못한 책의 목적은, 삶을 찬미하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가 하면 예순 네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물론 그의 죽음을 접한 이후 쓴 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더불어 그나마 읽은 롤랑 바르트의 책인 <사랑의 단상>에 대한 단상이 삽입되어 있으니 이 또한 반갑다) 또한 잔혹극의 창시자 혹은 옹호자라고 할 수 있는 아르토에 대해서도 꽤 후한 점수를 주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일곱 편의 글 중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앙토냉 아르토의 삶은 문학적 모더니즘의 영웅적 시기의 마지막 위대한 본보기로서, 이러한 가치 재평가 과정을 적나라하게 요약해 보여준다.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아르토는 실패했다… 이 전체는 산산 조각난 스스로의 팔다리를 잘라낸 몸, 파편의 방대한 모음을 이룬다. 그가 남긴 것은 완성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독특한 존재, 모종의 시학, 사고의 미학, 문화의 신학, 수난의 현상학인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시키지 않으며, 그 의식의 흐름까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것이 수전 손택의 비평법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그녀 또한 언제나 행동하는 지성이 되기를 자처하였고, 베트남전 참전 반대나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 등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아르토를 평하는 것에 빗대자면 ‘독특하고, 사로잡히고, 무력하고, 잔혹하게 지적인 의식의 유기적인 일부’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위대하고 대담한 사람 중 하나’인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ps.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리었던 수전 손택은 지난 2004년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중에 동성애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는 하였으나) 게이 감수성에 관한 에세이인 <캠프(camp)에 관하여>(1964)로 이름을 알렸으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인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이오네스크, 앙토냉 아르토, 브레송, 뤽 고다르 등을 뉴욕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파리와 뉴욕을 오고가면서 유럽의 지성을 미국에 소개한 작가인 수전 손택은 베트남전에 반대하였고 9·11 이후에도 부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고, 다섯 명의 여자 그리고 네 명의 남자와 사랑을 했다고 고백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서적소개 – 우울한 열정 (수전 손택 / 이후 [시울] / 2005.11.11)](https://chedulife.com.au/wp-content/uploads/우울한-열정-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