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 이후 / 2002.12.20
– 풍부한 지식, 독창적인 사유, 따뜻하고 깊은 시선
이 책은 원래 각기 따로 출판되었던 두 권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 (1978)과 ‘에이즈와 그 은유’ (1989)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동안 수전 손택은 일관되게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해왔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등이 그녀의 그러한 노력의 표현이었다.
이번 책도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같은 것으로 질병에 대해 사회와 대중이 만든 은유나 상상적 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수와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되는지 고찰한다. 환자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이며, 질병은 다만 고쳐야 할 병일 뿐 다른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수전 손택. 우리 자신이 누구나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 따라서 질병에 대한 은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구속하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1부는 질병에 대한 은유 전반을 논하지만, 특히 결핵과 암에 관한 은유를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상상적 관념과 은유를 분석한다. 문학과 역사, 의학과 윤리학을 오가며 투명한 삶의 길을 찾으려는 손택의 자세는 무언가 가슴 뭉클하게 한는 바가 있다. 특히 저자 자신도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두 번이나 질병과 싸워 이겼으며, 폐암으로 어머니를, 에이즈로 친구들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깊고 따듯하다.
○ 목차
1 은유로서의 질병
Illness as Metaphor
2 에이즈와 그 은유
AIDS and the Metaphors
부 록
수전 손택과의 대화: 에이즈라는 은유 케니 프라이즈
옮긴이 해설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기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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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수전 손택 (Susan Sontag)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 (The Benefactor, 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 (Notes on ‘Camp’, 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 ~ 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 (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 역자 : 이재원
중앙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급진적 문화이론에 관심을 두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와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친화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도서출판 이후>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함께 지은 책으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1, 2』(이후 1997~1998),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문화과학사 1998) 등이 있으며, 함께 옮긴 책으로 『하이퍼텍스트 2.0: 현대 비평이론과 테크놀로지의 수렴』(문화과학사 2001), 『신좌파의 상상력: 전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이후 1999), 『하위문화는 저항하는가?』(문화과학사 1998) 등이 있다.

○ 관련자료
– 은유로서의 질병이 갖는 의의
질병을 신비화하는 모든 언어를 쫓아내려는 수전 손택의 노력은 ‘투명성 (Transparency)’을 찾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한 적이 있다. 손택에게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우리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투명성이다. 따라서 투명성이란 무절제와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 과잉생산과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물질적 풍요를 낳은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버린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케 해주는 그 무엇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예술 작품과 비평에서 투명성을 추구했던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를 통해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좀더 발전시켰다. 손택은 이 책에서 이미지가 우리의 실제 경험이나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직접 체험한 것과 그 체험에서 느낀 감정들을 좀더 추상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런 느낌들을 현실 생활에서 대부분 지각할 수 없게 만든다.” 즉, 이제 투명성은 현실을 추상화해 현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로 발전된 것이다. 요컨대 『해석에 반대한다』의 투명성이 우리의 잃어버린 감수성과 연관된 개념이라면, 『사진에 관하여』의 투명성은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이미지와 연관된 개념인 것이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와 이미지를 쫓아내려는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처럼 투명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중간 결산’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두 번이나 암을 극복했던 수전 손택 자신의 단순한 투병기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택 자신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은유로서의 질병』은 “극히 논쟁적인 전략을 활용해 돈키호테 마냥 지금의 이 세계, 이 신체에 가해진 ‘해석에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책이다. 즉,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을 폭로함으로써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책인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현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이미지를 걷어치워야 한다는 ‘투명성’의 추구는 그런 이미지를 부추긴 사회를 향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최종적으로 건네주는 선물이 바로 이런 비판 정신이다.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일관되게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추구하며 발전시켜온 수전 손택의 노력은 곧 발간될 예정인 『타자의 고통에 관하여』(2003)에서 집대성될 전망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분석할 것이라고 예고된 이 책의 내용은 은유로서의 질병이 열어놓은 이미지 비판의 결산이 될 것이다.
수전 손택은 자신의 이미지 비판을 둘러싼 세인들의 의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은유 없이 사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사고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것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출판사 서평
1939년, 수전 손택은 다섯 살에 결핵으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남편의 죽음을, 그 다음에는 죽음의 원인을, 마지막으로는 무덤의 위치를 딸에게 속였다. 그 당시에만 해도 결핵은 뭔가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였던 손택은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7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자신에게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안겨줬던 <해석에 반대한다>(1966)를 전후로 두 권의 소설, 두 권의 에세이 모음집, 두 편의 영화를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손택은 1976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유방암 제4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손택은 질병 자체, 그리고 질병에 들러붙어 환자의 재활 의지를 꺾는 낙인, 은유, 이미지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손택은 의학적이고 지성적으로 질병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76년 파리로 건너가 유방절제 수술과 화학 요법을 받은 뒤 1978년 완치된 그녀는 질병을 이겼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쫓아내고자 했다. 투병 중이던 1977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자신의 성찰을 실었던 그녀는, 이듬해 그 성찰을 확장해 『은유로서의 질병』으로 발표했다.
그렇지만, 손택의 싸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86년 폐암으로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미처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자신의 친구들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번에는 에이즈였다.
어느 날 자신의 친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 망연자실해 있던 그녀는 단 이틀만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단편 소설을 써 내려갔다. 1986년 11월 24일 <뉴요커>에 실린 이 글은 에이즈로 부모나 친지, 친구를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위로를 전해줬다.
1988년, 손택은 ‘에이즈와 그 은유’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에이즈와 결부된 ‘역병’이라는 은유에 이의를 제기한다. 역병이라는 은유는 에이즈를 도덕적 타락에 대한 천벌로 받아들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일종의 종말론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집증적 정치’의 군사적 은유가 가능해진다. 에이즈는 인류의 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무찔러야 한다는 은유가.
1998년, 손택은 자궁암으로 또 한번 고통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비록 자궁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질병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랜 투병 생활 뒤에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른답니다.”
“에이즈 환자와는 밥도 먹기 싫다”
지난 12월 1일에 있었던 유엔이 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우리나라 성인 1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11월 1일~15일)의 결과다. 이 설문조사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차별을 그대로 보여준다. “에이즈라면 혐오스러운 생각이 든다”는 응답이 73.2%, “에이즈 환자를 법적으로 격리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48.7%로 나왔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대중매체들은 에이즈 환자나 감염인을 보도할 때에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 공포, 환자 판명, 특수전염병 관리대상자 지정, 접대부, 신고 없이 몰래 옮겨가, 매춘(윤락), 상습적 성관계, 잔여 수명, 격리 수용, 잠적, 색출” 같이 마치 범죄자를 다루는 듯한 용어를 많이 쓴다.
에이즈만 이런 일을 빚은 것은 아니다.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죽음을 가져오는 질병,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인식되는 질병, 얼굴을 손상시킨다거나 변형시키는 질병 등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많은 질병들은 늘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부추겼다. 결핵, 천연두, 암 같은 질병들이 그랬다. ‘현대의 흑사병,’ ‘현대의 역병’이라는 불리는 에이즈는 이런 질병들의 ‘새로운 상속자’일 뿐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처럼 특정 질병에 낙인을 찍으며, 좀더 나아가서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게 만드는 질병을 둘러싼 은유를 비판하는 책이다. 질병 자체, 그리고 질병에 들러붙어 환자의 재활 의지를 꺾는 낙인, 은유, 이미지와의 투쟁. 손택의 목적은 질병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쫓아내 우리가 질병,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을 제대로 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어원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만들며, 자신들의 질병에 혐오감을 내비치고 일종의 수치감을 느끼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조기에 치료를 받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손택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유한다. “나는 병을 앓고 있는 나머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설득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라고, 질병은 저주도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고 곤혹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그리고 수전 손택은 질병의 은유를 둘러싼 자신의 사색을 통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궁극적인 이미지, 즉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을 암시하는 재앙의 이미지, 이런 이미지를 발생시키고 부추긴 사회의 현실에까지 눈길을 던진다. 특히,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면서 “국가의 생존, 시민사회의 생존, 세계 자체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편집증적 사회가 손택의 공격 대상이다. ‘최후의 심판’ 같은 재앙을 연상시키는 수사를 남발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손택의 입장이다. 요컨대, “유태인이 국민들 사이에 인종적 폐결핵을 낳는다”라는 히틀러의 웅변이나 “에이즈는 신이 자신의 법도대로 살지 않은 사회에 가한 심판이다”라는 폴웰의 설교는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며 사회적?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자비와 관용을 방종, 우유부단함, 혼란, 타락과 동일시하게 만든다는 것이 손택의 주장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극우주의자 르펭은 “에이즈 같은 sidatique”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물리치는 데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렇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은 건조한 논설이 아니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을 “일종의 문학적 성과물”로 봐달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책은 “과학 저술가들이나 에이즈 전문가, 시사 해설자에게” 보여주려는 책이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책, 자신과 함께 질병의 은유가 가져오는 폐해를 직시해 보자고 초대하는 “사색의 목적을 지닌 전통적 문학 형식인 에세이”다. 즉,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 손택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골드스미스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스티븐슨의 질서정연한 남쪽, 베리만의 외침과 속삭임,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 총 77편에 달하는 소설, 희곡, 에세이, 영화, 오페라, 그리고 각종 의학 서적들에서 질병을 둘러싼 은유를 골라낸다. 다독 多讀으로 유명한 손택의 손에서 이 인용문들은 질서정연하게 저마다의 자리를 갖게 되고, 손택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 주는 강력한 원천이 된다. 따라서, 어느 평자의 말처럼 ?은유로서의 질병?은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독창적인 사유로 질병과 당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자 “사람들에게 보내는 공감 어린 권고다.”

○ 추천평
『은유로서의 질병』은 우리를 심란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은 앞으로 자신의 언어, 태도, 편견, 자신이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뉴욕타임스
손택은 우리의 사회가 질병을 사회, 문화, 도덕적 타락의 은유로 사용함으로써 질병 자체를 모호하고 신비한 것으로 변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읽힐 책이 될 것이다. – 가디언
『은유로서의 질병』은 오늘날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해주는 책이다. – 뉴스위크
『은유로서의 질병』에 실린 두 편의 에세이는 사람들의 공포를 자아내는 치명적인 은유들 앞에서 어떻게 지성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 뉴 리퍼블릭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독창적인 사유로 질병과 당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 이 책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공감 어린 권고다. – 네이션

○ 독자의 평 1
이 책은 원래 각기 따로 출판되었던 두 권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에이즈와 그 은유(1989)>을 하나로 묶은 책입니다. 한국에서는 2002년에 이후출판사에서 번역출판했는데요. <해석에 반대한다>나 <타인의 고통>같은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이후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전 손택은 일관되게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해석에 반대한다>나, <사진에 관하여>같은 책도 같은 선에 놓여 있고요. 이번 책 <은유로서의 질병>도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같은 것으로 질병에 대해 사회와 대중이 만든 은유나 상상적 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수와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되는지 고찰합니다. 환자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이며, 질병은 다만 고쳐야 할 병일 뿐 다른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자신이 누구나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따라서 질병에 대한 은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구속하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는 것이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고 계시죠. 그 전파력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1차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고, 여행도 어렵고, 심지어 출근이나 출석도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병에 걸린 분들이 고충이 더 심하겠지만 걸리지 않은 분들도 이 질병에 걸릴 거라는 공포감 혹은 이미 걸려서 남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이제 우리 모두는 잠재적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 혹은 전파자가 된 것 같거든요. 바이러스 보균 확진자의 동선을 속속들이 파악해 보도하고, 신상이 공유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내 동선도 검열하게 되고요. 여행도 가면 안 될 테고, 사람이 많은 곳에도 가선 안 될 것이며, 남의 영업장에 괜히 들러 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게 되는데요. 내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모든 활동이 움츠러들죠.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대체로는 집에 머물게 됩니다. 저부터도 오늘처럼 녹음이 있어 불가피하게 집 밖을 나서야 할때마다 마음이 무겁죠. 왜 이렇게 막연한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건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결국 우리가 바이러스를 완벽히 통제할 순 없지만, 이 막연한 공포감은 사실 우리가 떨쳐낼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수잔 손택이 잘 쓰여진 질병에 대한 사유가 이 시점에 우리에게 약간의 자유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신적 자유이긴 한데요. 일종의 정신승리를 돕는 지적 훈련을 시켜주는 셈이죠. 질병을 신비화하는 모든 언어를 쫓아내려는 수전 손택의 노력은 세상 모든 예술작품이나 사고방식에서 ‘투명성’을 찾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손택의 대표저서인『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투명성을 요구합니다. 손택에게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해요. 즉, 예술 자체 그리고 예술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우리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투명성입니다. 따라서 투명성이란 무절제와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 과잉생산과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물질적 풍요를 낳은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버린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케 해주는 그 무엇이기도 하죠. 예술을 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손택은 질병도 그 자체로 투명하게 볼 것을 권하고 있어요.
이렇게 질병을 둘러싼 어떤 판단, 즉 인간의 은유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느끼게 하죠. 그 판단을 한 이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어떤 질병에 걸려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은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놀라운 사고과정으로 서로에게 불필요한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질병을 질병 자체로 투명하게 보지 않는 데서 질병보다 더 한 고통이 초래될 수도 있어요. 손택이 1978년에 <은유로서의 질병>을 쓸 때, 작가 본인이 이미 암이라는 질병을 이겨낸 뒤였어요. 암을 둘러싼 부정적인 은유와 싸운 본인의 경험이 녹아 들어간 에세이가 바로 이 책에 있습니다. 손택이 다시 1989년에 <에이즈와 그 은유>을 쓸 때는 뉴욕은 에이즈라는 질병과 싸우고 있었어요. 손택 역시 많은 친구를, 특히 예술가 친구를 이 병으로 잃었습니다. 사담을 좀 하자면, 폴 텍이라는 뉴욕미술계에 유명한 작가가 있었어요. 괴짜로 유명한 작가였는데요. 둘은 서로 오랜 친구였죠. 손택이 암에 걸렸을 때 폴 텍에게 결혼을 청했었대요. 텍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죠. 그때는 폴 텍이 거절을 했고, 후에 텍이 손택에게 결혼을 청하게 되는데 그때는 손택이 거절을 했다고 해요. 바로 이 친구이자 연인같았던 폴 텍을 에이즈로 잃습니다. 그래서 <에이즈와 그 은유>는 폴 텍에게 바쳐진 에세이기도 합니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78년작에선 본인이 결핵과 암이라는 질병을 통해 우리가 질병을 얼마나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89년엔 에이즈가 가지고 있던 은유에 대해서 해석하며, 다시 그 해석을 반대합니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들은 어떤 질병에 낙인을 찍는데요. 거기에 더해 그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도 낙인을 찍습니다. 손택은 우리에게 거듭 말하고 있어요. 질병은 치료해야 할 질병일 뿐이고 그로 인해 사람에게 낙인이 찍혀서도 안되고 그 낙인으로 고통을 받아서도 안된다고요.
질병의 은유를 둘러싼 자신의 사색을 통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궁극적인 이미지, 즉 인간이라는 종의 종말을 암시하는 재앙의 이미지, 이런 이미지를 발생시키고 부추긴 사회의 현실에까지 눈길을 던집니다. 특히,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면서 “국가의 생존, 시민사회의 생존, 세계 자체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편집증적 사회가 손택의 공격 대상이다. ‘최후의 심판’ 같은 재앙을 연상시키는 수사를 남발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손택의 입장입니다. 예를 들면, “에이즈는 신이 자신의 법도대로 살지 않은 사회에 가한 심판이다”같은 설교가 대표적인 예죠. 질병을 은유로 사용하며 사회적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하죠.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기를 더 바랬던 손택은 자신의 바람에 걸맞게 미국 펜클럽 회장(1987∼89)을 맡을 당시인 1988년 서울을 방문해 김남주, 이산하 시인 등 구속문인의 석방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도 있습니다. 2004년 골수성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숱한 별명과 명성을 얻으며 행동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 속에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른답니다.”

○ 독자의 평 2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지금까지 글쓴이가 발표한 책들 중에서 가장 쉽게 읽혀지고 이해되는 글이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고 어떤 동의와 설득을 하려고 하는지 무척 명확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글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 공감해주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글쓴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이리 꼬고 저리 꼬는 기분이 들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은유…’는 (저자의 생각을 모두 다 이해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없지만)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을 주는 질병(결핵과 암, 매독과 에이즈)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오해를 하고 왜곡된 인식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과 일반적인 정서에서 질병을 어떤 식으로 은유하고 잘못된 편견과 그릇된 이해를 하고 그런 틀린 생각이 어떤 문제점을 만들게 되는지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
글쓴이의 글을 읽어가며 나 또한 질병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제멋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었는지, 은유와 왜곡에 쉽게 설득-공감하면서 그 잘못된 언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오해 속에서 사용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결핵, 암 그리고 매독과 에이즈에 대해서 우리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피상적으로 혹은 오해 속에서)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로인해서 생명에 크나큰 위협을 끼치지만 치료에 전념한다면 충분히 완치도 가능한 질병을 애초부터 잘못된 인식 속에서 좌절감과 패배감 혹은 공포와 혐오의 시선 속에서 접근하는지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 혐오의 시선을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결핵과 암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잘못된) 인식과 오해 그리고 문학적 학문적 은유-착각에 대해서 다양한 문헌과 소설, 학문적 논의들을 예로 들며 정확한 이해 없이 은유와 해석(만)을 앞세웠을 때의 문제점을 알아보며 “우리가 은유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사용하거나 끌어 들어오는 은유에는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항상 잊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해주고 있고 본질을 알지 못하고 허상만을 알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도록 해주고 있다.
글쓴이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맞는 생각이고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은유에 빠져들어 여러 질병들을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질병을 질병으로서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인종적으로 온갖 방식으로 뒤틀어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질병의 ‘실체’를 훼손시킨” 사례들을 살펴보며 우리들에게 그런 오해에서 빠져나와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본질을 정확하게 알아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걸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것인지 좀 더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잘못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제대로 바로잡아야 함을 깨닫도록 해주고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글과 “에이즈와 그 은유”라는 2개의 글을 묶은 ‘은유…’는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이후에도(발표한지 10년이 지난 후)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확산되던 시절 과거의 잘못된 점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그릇된 은유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그 잘못된 인식(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인 “에이즈와 그 은유”를 발표했고 에이즈가 갖고 있는 그 당시의 혼란스러운(1988년) 상황 속에서 흔들림 없이 우리들에게 진정하라고 말해주고 있고 제대로 된 실체를 파악하도록 해주고 있다.
2개의 글 모두 결론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끌벅적한 상황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하게 무언가를 알아보고 알맞은 방식으로 대응하라고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은유…’를 읽고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되니 질병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예민하고 경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는 쑥스러움이 느껴지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쉽게 단정하고 평가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질병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오해하고 왜곡된 이해를 했으며 그로인해서 누군가를 소외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잘못되게 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고독하게 만들고 사회로부터 추방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사회적 시선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고 “지나치게 선동을 일삼고, 상황을 지나치게 왜곡하며, 환자들을 고립시키거나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는 데 단단히 한몫”하는 군사적 이미지가 덧붙여지는 문제점들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실체와 본질을 알지 못하기만 하게 될 것을 깨닫게 해준다.
수전 손택의 들춰냄과 폭로는 이번만큼은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 독자의 평 3
이미 읽었어야 했을 책이다. 여러 책에서 인용하는 것을 보아온 까닭에 어쩌면 읽지 않더라도, 수전 손택이 이 책에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런 부스러기가 아니라 온전한 그녀의 문장을 읽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수전 손택은 자신의 경험(암 투병 등)을 바탕으로 썼다.거기에 독서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성찰을 덧붙였다.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시킬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의 사고를 자신의 것으로 주관화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수전 손택의 에세이로도 읽히며, 질병에 관한 보고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수전 손택은 많은 문학 작품 등을 통해서 질병에 관한 은유가 질병을 신화화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질병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질병을 신화하거나 혹은 낙인을 찍는 ‘은유’를 반대한다. 질병(<은유로서의 질병>에서는 결핵과 암,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것이 환자 자신이 그럴 만한 짓을 했다는 것으로,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바로 은유라는 것이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치료되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우리는 은유를 피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인식 활동이 은유를 통한다. 은유 없이 어떤 것을 정의할 수 없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곤란하다. 그러나 그 은유가 어떤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은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떤 은유가 쓰이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수전 손택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질병에 관한 은유를 반대하는 것은 은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질병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 치환시키는 은유를 반대하는 것이다. 특히 군사적인 은유를 반대한다(이 대목에서 조금 뜨끔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병에 걸리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질병을 암묵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을 지 모른다. 내가 병에 걸리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라는 식으로 스스로 은유의 늪에 빠져 버릴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보면 ‘은유로서의 질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형성된 것을 개인이 받아들이는 문제인 셈이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것인 셈이다.
수전 손택이 이 책을 내놓은 게 1970년대이고, 우리말로 번역된 게 2002년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질병을 질병으로 보지 못한다. 이제 암에 관해서, 에이즈에 관해서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수치스럽게 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런 시각이 남아 있으며, 수전 손택이 지적했듯이, 그 줄어든 양만큼의 은유는 또 다른 질병(치매나 정신 질환 등)으로 옮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얘기다. 우리가 은유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며, 수천 년 그런 시각을 가져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갖는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차원에서나 사회의 차원에서나 굉장한 진전이다. 이 책을 읽고 심란해지고, 나와 사회를 돌아볼 수 있다면 이 책이 왜 오랫동안 회자되고 추천받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