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이해의 에세이 1930-1954 – 한나 아렌트 텍스트 선집
한나 아렌트 / 텍스트 / 2012.2.29
.현대 철학계의 거물 한나 아렌트,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한나 아렌트 텍스트 선집『이해의 에세이 1930-1954』.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한 에세이 40편과 대답 자료 1편을 모아 엮은 것이다.
1964년 저자와 귄터가우스의 TV 대담을 통해 저자가 왜 철학적, 신학적 사유에서 정치적 사유에 관심을 옮기게 되었는지 만나볼 수 있다.
저자가 1933년 파리로 망명하기 전까지 독일에서 출간한 에세이 6편과 1944년에 발표한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재평가’, ‘히틀러의 식탁 좌담에 대한 고찰’ 등 모두 22편의 에세이, 그리고 저자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 집필한 에세이 12편 등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였다.
저자의 생애 가운데 24세부터 48세까지 사고의 발전 과정을 오롯이 보여주는 에세이는 1954년 이후 아렌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되어준다.
.다양한 평을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나 아렌트.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전체주의와 유산, 정치와 종교의 관계, 철학의 흐름에 대한 해석, 문학과 정치의 관계, 미국의 대외 이미지 등을 알아본 책
변화를 원하는 자유주의자이자 안정을 원하는 보수주의자로서 정당하게 환영받고, 과거에 대한 비현실적인 열망을 품은 사람 혹은 유토피아적 혁명가라고 혹평을 받은 한나 아렌트. 이렇게 아렌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가 이해의 활동, 끝없고 순환적인 정신 활동에 이끌렸고, 그가 그 활동의 원칙적 중요성을 결과보다는 그 활동 자체에 뒀음은 분명하다. 그는 풍부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새로운 분류를 시도했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으며, 전통적 정치시상의 낡은 범주를 변화시켰다.
《이해의 에세이 1930~1954》는 그러한 그의 사고와 철학의 토대가 된 초기 저작 가운데 책으로 편집되지 않은 에세이들 중 역사적 파국에 대한 에세이 40편과 그가 귄터 가우스와 나눈 대담 자료 1편을 모은 책이다. 에세이는 흔히 수필 혹은 보고서라는 의미로 쓰이는 용어인데 아렌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문학 형식으로 에세이는 정치적 사건이라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사유의 훈련과 …… 자연적인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해 《이해의 에세이 1930~1954》를 편집한 아렌트의 제자인 제롬 콘은 아렌트의 저작들을 에세이라 칭했다. 이 책은 연대순을 따라 글을 구성했으며 제롬 콘은 한나 아렌트의 생애 가운데 24세부터 48세까지 사고의 발전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같은 구성을 취했다.

– 목차
역자 서문
서론
“무엇이 남는가? 언어가 남는다”: 귄터 가우스와의 대담
아우구스티누스와 프로테스탄티즘
철학과 사회학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폰 겐츠
베를린 살롱
여성 해방에 대하여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재평가
미국 내 외국어 신문에 나타난 대외 문제
“독일 문제”에 대한 접근법
조직화된 범죄와 보편적 책임
악몽과 도피
철학자이자 역사가로서 딜타이
국제 파시스트의 발단
기독교와 혁명
권력 정치의 승리
더 이상 아님과 아직은 아님
실존 철학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실존주의
상식의 상아탑
지옥의 이미지
델로스의 《민족》에 대한 서평
카를 야스퍼스께 헌정하며
랜드 스쿨 강연
종교와 지식인들
사회 과학 분석 기법과 강제 수용소 연구
나치 지배의 결과: 독일 보고서
큰 소리로 떠드는 인간들
《히틀러의 식탁 좌담》에 대한 고찰
인류와 테러
이해와 정치(이해의 난점)
전체주의의 본성에 관하여: 이해의 에세이
여우 하이데거
공산주의의 이해
종교와 정치
전후 전향한 공산주의자들
에릭 푀겔린의 서평에 대한 반론
꿈과 악몽
유럽과 원자 폭탄
순응주의의 위협
최근 유럽의 철학적 사유와 정치에 대한 관심
해제
찾아보기
– 저자소개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과 결혼하여 베를린에 정착한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발터 벤야민 등 많은 지식인을 만나 유대인 운동을 하던 아렌트는 다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렌트는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경험한 18년간의 무국적자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을 출간하고, 더불어 정치이론가로서 정치현상의 근본적 의미를 밝히는 데 전념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혁명론』(On Revolution, 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Men in Dark Times, 1968), 『공화국의 위기』(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 1969),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969),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69) 등 중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 가운데 『혁명론』에는 아렌트의 최종적인 ‘정치’ 사상이 담겨 있는데,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혁명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 세미나에서 「미국과 혁명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을 정리해서 완결지은 것이다.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 과 자유를 기리는 혁명송이자, 정치학도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교과서로서 의미 있는 저작이다.
아렌트는 1973년 에버딘 대학에서 ‘정신의 삶―사유’라는 주제로 기퍼드 강의를 요청받은 후 사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듬해 ‘정신의 삶―의지’라는 주제로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정신의 삶―판단’이라는 주제로 정신의 삶 3부작의 마지막 연구를 진행하던 중 1975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쳤으며, 남편이 오랫동안 강의한 뉴욕주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Annandale-on-Hudson, New York)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혔다. 그녀의 사후 『정신의 삶―사유』와 『정신의 삶―의지』가 1978년 출간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3부에 해당하는 「판단」 부분은 유고집으로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1982년 출간되었다. 그후 이미 발표된 글들 및 미발표 원고 등을 주제별로 편집하여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책임과 판단』(2003), 『정치의 약속』(2005), 『유대적 저술』(2007), 『문학과 문화에 대한 성찰』(2007) 등이 출간되었다.
.역 : 홍원표 (洪元杓)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스트라우스, 보에글린, 아렌트」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외교학부에 재직하고 있으며 미네르바교양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무처장, 한국정치학회 편집이사, 총무이사, 부회장을 역임했고, 한나아렌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2002) 『아렌트: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2011)『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행위, 전통, 인물』(2013)『비극의 서시』(2018) 이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역서로는 『정신의 삶: 사유』『혁명론』『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사랑을 위하여』(2007) 『이해의 에세이』(공역, 2012)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2019)등이 있다.
.역 :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사학과 78학번. 민청련 성대 78학번 계반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정책실 산하 [민주화의 길] 편집부에서 일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수선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사에 오랫동안 천착해『이정 박헌영 전집』(전9권, 역사비평사) 간행 과정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사회주의운동사를 총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에 착수해 2003년 그 첫 번째 결실인『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을 내놓았다. 그 밖에 연구논문으로「극동민족대회와 조선대표단」,「3ㆍ1운동 전후 한국민족주의의 변화」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저는 개인적 체험 없이는 어떤 사유 과정도 가능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유는 심사숙고, 즉 동일한 문제 혹은 사건의 반성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는 현대 세계에 살고 있고, 분명히 제 경험은 그 안에 있으며 그 세계와 관련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단순히 노동하고 소비하는 문제는 일종의 무세계성이 현대 세계에서도 특징이 된다는 근거로 또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누구도 더 이상 세계가 무엇으로 보여야 할지를 돌보지 않습니다. – 본문 중에서
전체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이해해야 할 점이 있다. 전체주의는 아주 근본적으로 자유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부정이 모든 폭정에 공통적이며 전체주의의 특별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위협받을 때 결집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도 힘을 결집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상 전례가 없고 십계명에서도 예견되지 못한 범죄에 대항한 외침, 즉 도덕적 경고조차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전체주의 세계 내부에 전체주의 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 즉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야로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에게 전체주의가 미치는 호소력은 전반적인 도덕 구조, 달리 표현하여 전통적으로 자유와 정의의 근본이념을 사회적 관계와 정치 제도의 관점으로 전환하고 구체화했던 명령 및 금지 체계 전반의 붕괴에 대한 탁월한 증거가 된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이란 대작을 출간하기에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한 40편의 에세이와 1편의 대담 자료가 담겨 있다. 제롬 콘은 이 책을 편집하면서 여기에 어떠한 에세이를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에피소드를 밝히고 있다. 편집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초기 에세이에 담긴 아렌트 사유 편린들은 후기 저작에서 구체화되고 그 윤곽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편적인 이 글들은 1954년 이후 아렌트의 저작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 역자 서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철학계의 거물, 자이언트, 한나 아렌트 사상의 기원을 쫓는 《이해의 에세이 1930~1954》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를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하기란 쉽지 않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저작의 사회학적, 역사적 측면을 강조하고, 또 다른 평론가들은 그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특징을 강조하며, 그를 정치학자라고 불렀다. 그 역시 수년 동안 정치학자라는 직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 명성을 얻고 자신의 행보에 대한 설명을 요청받았을 때, 그것을 넓은 의미로 정치 “이론” 혹은 정치적 “사고”라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그는 변화를 원하는 자유주의자이자 안정을 원하는 보수주의자로서 정당하게 환영받고, 과거에 대한 비현실적인 열망을 품은 사람 혹은 유토피아적 혁명가라고 혹평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렌트에게 이러한 갖가지 특징을 부여하는데, 이러한 다양한 특성들은 아렌트에 대한 그들의 다양한 관심을 반영한다.
아렌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가 이해의 활동, 끝없고 순환적인 정신 활동에 이끌렸고, 그가 그 활동의 원칙적 중요성을 결과보다는 그 활동 자체에 뒀음은 분명하다. 그는 풍부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새로운 분류를 시도했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으며, 전통적 정치시상의 낡은 범주를 변화시켰다.
《이해의 에세이 1930~1954》는 그러한 그의 사고와 철학의 토대가 된 초기 저작 가운데 책으로 편집되지 않은 에세이들 중 역사적 파국에 대한 에세이 40편과 그가 귄터 가우스와 나눈 대담 자료 1편을 모은 책이다. 에세이는 흔히 수필 혹은 보고서라는 의미로 쓰이는 용어인데 아렌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문학 형식으로 에세이는 정치적 사건이라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사유의 훈련과 …… 자연적인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해 《이해의 에세이 1930~1954》를 편집한 아렌트의 제자인 제롬 콘은 아렌트의 저작들을 에세이라 칭했다. 이 책은 연대순을 따라 글을 구성했으며 제롬 콘은 한나 아렌트의 생애 가운데 24세부터 48세까지 사고의 발전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같은 구성을 취했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주제들을 다룬 에세이들의 선집인 터라 전체 에세이들 사이에 직접적인 연계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렌트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말한 것처럼, 제롬 콘은 이 책을 음악의 모음곡같이 책에서 총체성보다는 통일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에세이들을 주제별로 넓게 분류하면, 전체주의와 유산, 정치와 종교의 관계, 철학의 흐름에 대한 해석, 문학과 정치의 관계, 미국의 대외 이미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서평 11평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담긴 에세이들은 1954년 이후 아렌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