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인연
피천득 / 샘터 (샘터사) / 2007.12.20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수필문학의 대가 피천득씨의 수필집.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애틋한 가슴저림으로 만났던 수필 ‘인연’을 필두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는 ‘플루트 플레이어’ 등 주옥같은 명수필 80여편을 모아 엮었다.

○ 목차
신판을 내면서
서문
I. 종달새
수필 / 신춘(新春) / 조춘(早春) / 종달새 / 봄 / 빠리에 부친 편지 / 오월 / 가든파티 / 장미 / 여성의 미 / 모시 / 수상 스키 / 꿈 / 선물 / 플루트 플레이어 / 너무 많다 / 보기에 따라서는 / 여성의 편지 / 장난감 / 가구(家具) / 눈물 / 맛과 멋 / 호이트 콜렉션 / 전화 / 시골 한약국 / 장수(長壽) / 황포탄(黃浦灘)의 추석(秋夕) / 용돈 / 금반지 / 이사 / 보스턴 심포니
II. 서영이
엄마 / 그날 / 찬란한 시절 / 서영이에게 / 어느 날 / 서영이 / 서영이 대학에 가다 / 딸에게 / 서영이와 난영이 / 외삼촌 할아버지 / 인연 / 유순이 / 도산 / 도산 선생께 / 춘원 / 셰익스피어 / 도연명 / 로버트 프로스트 I / 로버트 프로스트 II / 찰스 램 / 브루크의 애국시 / 여심 / 치옹 / 어느 학자의 초상 / 아인슈타인
III. 皮哥之辯
나의 사랑하는 생활 / 멋 / 반사적 광영 / 피가지변 / 이야기 / 잠 / 구원의 여상 / 낙서 / 은전 한 닢 / 술 / 순례 / 비원 / 기행소품 / 토요일 / 여린 마음 / 초대 / 기도 / 우정 / 1945년 8월 15일 / 콩코드 찬가 /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 유머의 기능 / 문화재 보존 / 송년 / 만년

○ 저자소개 : 피천득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거쳐 1937년 호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했고, 8·15광복 직후인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46~1974년까지 서울대학교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서 영시(英詩) 강의 시작, 1954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간 영문학을 연구하였으며, 1966년 서울대 대학원 학생과장을 역임했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 (抒情小曲)」을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동광》에 시 「소곡 (小曲)」 (1932),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1933)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대체로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 사상과 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동심에 의해 시정 (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하였다.
피천득 선생은 2007년 5월 25일 서울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98세였다.
슬하에 2남 1녀가 있는데 그 중 외동딸이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를 맡고 있다.

○ 책 속으로
우정의 비극은 인연이 아니다. 죽음도 아니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서 비극은 온다.
마음 놓이는 친구가 없는 것같이 불행한 일은 없다. 늙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에게는 수십 년 간 사귀어온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 둘 세상을 떠나 그 수가 줄어간다. 친구는 나의 일부분이다. 나 자신이 줄어가고 있다. — pp.286-287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 솜씨,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잇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 비너스의 조각보다는 이른 아침에 직장에 가는 영이가 더 아름답다. 종달새는 하늘을 솟아오를 때 가장 황홀하게 보인다. 그리고 종달새를 화려한 공작보다도 나는 좋아한다. 향상이 없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상에 불타지 않는 미인을 상상할 수 없다. — p.45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는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분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 p.76
나는 학생 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해 놓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나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그 여급은 아연한 듯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그후 그가 어떤 나의 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술을 못 먹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할 때 슬픔을 남들과 같이 술잔에 잠겨 마시지도 못하고, 친한 친구를 타향에서 만나도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피선생이 한 잔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 한이 없다. — p.252

○ 독자의 평
<인연>은 교과서에도 실린 그 유명한 수필 <수필>, <은전 한 닢>을 비롯하여 (이 글을 패러디해서 쓴 수능 성적표에 대한 글이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멋’있게 담은 수필들을 모은, 피천득 선생님의 유일한 수필집이다.읽다보면 간결하면서도 소박하고 따뜻한 문체에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문학 작품처럼 다가온다.피천득은 딸의 이름 ‘서영이’로 챕터 한 장의 이름을 지었을만큼 딸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아버지이다. 어머니의 모정 앞에 질투하고야마는 아버지. 서영이, 서영이를 노래하는 그의 글에서 짝사랑으로 가슴앓이하는 이의 애절함마저 느껴진다. 책을 읽다가 어머니가 한낮의 따뜻한 태양이라면 아버지는 집 앞의 가로등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머니의 모정에 아버지의 부정이 가려지기도 하지만은 아버지는 늘 묵묵히 어두운 곳을 밝히고 계신다. 나는 밤 늦게 집에 돌아갈때나 외로이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을 고마워하지만, 아버지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같은 길을 비추며 기다리고 계시겠지? 그런데 어쩌다 한번 가로등이 깜박 깜박 거리며 제 기능을 못할라치면 매정한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아빤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훽하니 돌아서는 딸. 그렇지만 가로등은 잠시 바라본 뒷모습도 사랑스러워 집 안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발걸음까지 빛을 비추어준다.’서영이’ 챕터를 읽는 동안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었다.’서영이와 난영이’를 읽으면서는 입가에 절로 웃음이 묻어났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난영이를 끌어 안고 있는 피천득 선생님의 어린아이 같은 사진을 보고 아 얘가 난영이구나 했다.참으로 멋이 담긴 행복한 글들이다. 책 서문에 산호와 진주가 소원이지만 될 수 없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주워 모아 ‘산호와 진주’라 이름 붙이겠다고 하였지만, 진주와 산호보다 아름다운 조약돌과 조가비들인지라 바다 깊숙히 들어갈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나는 수필이 좋다. 참 좋다. 공일오비의 <수필과 자동차>처럼 노래 제목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왠지 모를 낭만을 풍겨주는 수필의 향기가 좋고,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한 장으로 담아주는 수필의 재주가 좋다.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인연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폐포파립을 걸치더라도 마음이 행운유수와 같으면 곧 멋이다. 멋은 허심하고 관대하며 여백의 미가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 멋청춘이 짧다고 하지만 꽃같이 시들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 서영이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