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장준하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 2019.3.1
한국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책. 저자 김삼웅은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과 같은 한국현대사에 핀 한떨기 연꽃과도 같은 존재’라고 평한다. 장준하 선생의 삶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고통 받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잡지 「사상계」를 한데 묶은 책이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한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성장 과정을 다룸으로써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후반부에서는 「사상계」라는 잡지가 우리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주로 다룬다.
아울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역사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며, 책 부록에 민주당이 직접 조사한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게재했다. 또 장준하 선생 사후 이청준, 고은, 김수환, 법정, 문익환 등 각계 인사들의 추모글도 함께 수록하였다.
– ‘금지된 동작’을 제일 먼저 시작한 위대한 혁명가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과 같은 한국현대사에 핀 한떨기 연꽃과도 같은 존재”라고 평한 저자 김삼웅이 한국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책을 냈다. 『장준하 평전』은 장준하 선생의 삶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고통 받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잡지 [사상계]를 한데 묶어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렸다. 이 책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지난 시절의 암울했던 유산을 추종하는 정치인들, 언론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다.

○ 목차
책머리에
제1장 풀리지 않는 의문사, 반생의 위업
광복군으로 귀국 30년 뒤 의문사
외상 없는 시신
‘실족사’로 볼 수 없는 10가지 의문점
‘거사’ 앞두고 신변정리
‘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혁명가
장준하 장남이 털어놓은 의문점
사생결단 ‘거사’ 앞두고 모살당했을 수도
신구합동의 명동성당 장례식
약사봉 계곡의 진혼곡
부재의 혼
제2장 의주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자라
역사의 길, 현실의 길
정도를 택한 의인의 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첩첩산중의 청계동 마을로 이사
신성중학교에서 사회의식에 눈떠
평생의 동반 ‘함 도깨비 선생’
제3장 가정이 어려워 진학 포기하고 교직생활
신성학교 교사로 3년 재직
동맹시위 벌여 일경과 맞서
창공을 바라보는 소년
일본 유학생활
춘원·육당의 학병지원 강연
제자 김희숙과 결혼
제4장 일본군 탈출, 대장정에 나서
중국 망명 위해 일본군에 지원
‘잔반불식동맹’ 결성
사활을 건 탈출
모험에 나선 4명의 동지들
쫓고 쫓기는 질주
김준엽과의 만남
일본군의 포로교환 요구
불로하에서 부른 애국가
제5장 임천군관학교 활동 3개월
팔로군의 기습
한치룡 사령관의 전사
중국군 사령관의 타락상
임천분교에서 만난 김학규 주임
대원들의 교양지 《등불》 제작
열악한 생활 환경
임시정부 찾아 6000리 장정에 나서다
제6장 파촉령 넘어 중경임시정부 도착
부패한 중국군
노하구에 도착
파촉령을 넘어서다
꿈에 그리던 임시정부
임정요인들의 파벌싸움
“임정청사에 폭탄 던지고 싶다”

《등불》 속간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다
제7장 OSS 대원에서 환국하기까지
서안에서 OSS 훈련받아
새 잡지 《제단》 창간
국내진공정진대에 선발
거듭되는 반전 또 반전
광복군으로 여의도공항 착륙
일본군과 대치하다 중국으로 돌아가
김구 주석과 선발대로 환국
환영객 없는 귀국
김구 주석 연설문 작성
제8장 해방정국에서 백범의 비서로 활동
해방공간에서 김구 주석의 행보
4당 거두의 연쇄회담 준비
임시정부 환국봉영회
지도자들의 처신에 환멸
김구 곁을 떠나 이범석의 족청으로
제9장 시대의 양식 《사상계》 창간
모든 혁명은 이론서에서 시작된다
《사상》 발행하다 《사상계》 창간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부인이 옷가지 팔아 제작비 부담
혼자서 만든 《사상계》 초창기
《사상계》를 향한 집념
한청빌딩 시대
제10장 《사상계》, 정론지로 자리잡아
편집위원 체제 갖추다
《사상계》의 편집방향과 지침
《사상계》 헌장
들사람 함석헌 ‘발굴’
낙양의 지가 올린 [할 말이 있다]
‘신인문학상’ ‘동인문학상’ 제정
친일지식인 ‘최남선’ 기념호 발행
제11장 반이승만 투쟁과 4월 혁명
함석헌의 첫 필화사건
이승만 정권의 탄압
백지 권두언
어용교수의 글, 불순광고 게재 거부
4.19혁명기의 《사상계》 깃발
‘민권승리’의 기념호
전국순회문화강연회와 《사상문고》 발행
제12장 제2공화국 참여와 반군정 투쟁

혁명과업에 대한 인식
국토건설본부의 책임 맡아
박정희 주도의 5.16쿠데타
정론정신 회복, 반군정 투쟁 벌여
함석헌 선생과 함께 체포
‘부패언론인’이란 오명
《사상계》 고사작전에 맞서
김종필과 민족주의 논쟁
박정희 사상문제에 초점 맞춰
제13장 《사상계》의 수난과 반독재 투쟁
굴욕회담 반대투쟁
정치보복 세무사찰 당해
“박정희는 밀수왕초다”
‘정치참여’ 의지인가 숙명인가
정계진출, 국회의원 옥중당선
《사상계》 발행권 부완혁에게 넘겨
《사상계》 몰락의 배경
국회의원 장준하의 활동
제14장 사활을 건 박정희와의 싸움
영구집권을 향한 친위쿠데타
[7.4남북공동성명] 지지선언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반유신 저항운동진영 결집 나서
100만인 서명운동
긴급조치 제1·2호 발동, 세 번째 구속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재야 대통령’의 재야 지도자로
제15장 “선생의 발자국 있으매” – 추모·회상
친일파 세상에 설 땅 잃은 광복군
“민족의 동량을 너무 일찍 잃었다”
동양의 선비, 서양의 인텔리겐치아
청렴·선공후사의 표상
부록
1. 장준하 선생 연보
2. 수기처럼 돌베개를 베고
3. 민주당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4.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상규명 불능’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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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 제주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 등을 맡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송건호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수운 최제우 평전』,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 『운암 김성숙』, 『이승만 평전』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국가의 전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절대권력자가 정서적인 불안에 빠질 때 그 권력행사는 이성을 잃게 마련이다. 이성을 상실한 공권력은 폭력화된다. 테러나 암살은 바로 이성을 잃은 공권력이 낳은 부산물이다. 장준하는 이성을 잃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하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것도 비열하게 ‘실족사’를 가장한 암살극으로 목숨을 빼앗겼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 본문 39쪽 중에서

○ 장준하 개관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예과를 거쳐 도쿄의 니혼신학교[日本神學校]에서 수학하던 중 1944년 일본군 학도병에 강제 징집되었다.
이후 중국 쓰저우 지구에 배속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에 성공하여 김준엽(金俊燁)의 도움으로 중국의 중국중앙군관학교(中國中央軍官學校) 린취안(臨泉) 분교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약칭 한광반)에 입대했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여가를 이용해 잡지 『등불』을 발간했다.
한광반의 훈련에 한계를 느끼고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기로 계획했다.
2개월간 혹한, 배고픔과 사투를 벌인 끝에 1945년 1월 30일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했다.
도착 후 시안[西安]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이범석(李範奭) 휘하에 배속되었고, 유엔군 중국전구사령부(中國戰區司令部) 웨드마이어(Wedemeyer, A. C.) 휘하에서 미국 전략정보국이 주관하는 한미합작 특별군사훈련을 받았다.
특히 국내의 후방에 침투할 목적으로 조직된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에 자원해 수송기를 타고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일본 항복 소식을 듣고 귀환했다.
한편 이곳에서도 교포들의 친목잡지인 『제단 (祭壇)』 초판 300부를 발간했다.
광복이 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비서로,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조국에 돌아왔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교무처장이 되었으나, 학업을 마치기 위해 한국신학대학에서 수학했다.
1951년 1 · 4후퇴 때 부산에 피난한 뒤 1952년 9월 문교부 산하의 국민사상연구원에서 잡지 『사상』을 창간했다.
이어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검거되어 복역하였다. 이듬해 1967년 서울 동대문 을구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옥중 출마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 사장에 복귀했으며, 1973년 통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 참가로 10여 차례 투옥되었다.
1975년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본부의 이름으로「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 자신이 개헌을 발의해서 완전한 민주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정할 것과 긴급조치로 구속된 민주인사와 학생을 무조건 즉시 석방하고 자유언론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에 있는 약사봉에서 등산하다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사망 경위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망경위를 조사했으나, 변사사건기록 폐기, 수사관련 경찰관들의 사망, 국가정보원 자료의 미확보 등으로 2004년 그의 사망이 공권력의 직 · 간접적 행사에 의한 것인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2012년 8월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흔적이 발견되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주요저서로 『돌베개』가 있다.

○ 출판사 서평
– ‘금지된 동작’을 제일 먼저 시작한 위대한 혁명가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과 같은 한국현대사에 핀 한떨기 연꽃과도 같은 존재”라고 평한 저자 김삼웅이 한국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는 책을 냈다.
《장준하 평전》은 장준하 선생의 삶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고통 받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잡지 《사상계》를 한데 묶어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렸다.
이 책 초반부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성장 과정을 다룸으로써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이 광복군으로 일제와 맞서면서 그리고 해방 뒤 김구 선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상의 폭을 넓혔고, 이러한 사상의 성장은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주의 투쟁과 민권 투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사상계》라는 잡지가 우리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주로 다루었다. 저자는 1957년 3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할 말은 있다>라는 글이 이승만 독재 시절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국민들의 입을 대변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사상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사상계》는 시사문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4.19혁명기에는 ‘이론지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러나 저자는 오점도 있다고 지적한다. 친일 지식인 ‘최남선’ 추모 및 5.16쿠데타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계》는 당시 시대정신이었다. 이후 《사상계》는 박정희 정권의 고사작전으로 점차 경영이 어려워져 1970년 5월 1일 통권 20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아울러 이 책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장준하 선생은 1945년 광복군 자격으로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여의도공항에 도착한 지 만 30주년이 되는 1975년 8월 17일에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했다. 여기서 ‘의문사했다’라고 말한 이유는 장준하 선생이 실족사한 과정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정보기관의 자료 미확보’란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이란 판정을 내렸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역사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며 책 부록에 민주당이 직접 조사한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게재했다. 또 장준하 선생 사후 이청준, 고은, 김수환, 법정, 문익환 등 각계 인사들의 추모글도 함께 게재했다.
그렇다면 30여 년 전에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삶을 지금 이 시점에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변)이 장준하, 백기완 선생을 비롯한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면서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당시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 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 정권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즉 장준하 선생이 청산하고자 했던 것들이 다시 현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현 정부, 갈수록 대결 양상을 띠고 있는 남북관계, 어용지식인, 어용언론인들의 반시대적인 칼춤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지난 시절의 암울했던 유산을 추종하는 정치인들, 언론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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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은 광복군으로 일제와 맞서고 해방 뒤 김구 선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상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사상의 성장은 민주주의 투쟁과 민권 투쟁으로 이어졌다. 또 선생은 4·19혁명기의 ‘이론지 역할을 수행했다’고 불릴 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했던 《사상계》를 이끌었다. 선생은 1975년 8월에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했다. 저자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역사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며 책 부록에 민주당이 직접 조사한 ‘사인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게재했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인사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