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전락
알베르 카뮈, 까뮈 / 문예출판사 / 2015.12.10
–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며 카뮈 자신과 동시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낸 작품!
센 강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여자를 구하지 않고 방조한 이후 ‘정상’에서 ‘지옥’으로 추락’을 경험한 변호사 클라망스의 참회와 심판을 통해 카뮈(까뮈)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지식인의 모습, 나아가서는 비극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0세기’를 몸소 겪었던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전락》이 문예 세계문학선 119번으로 출간됐다. 20세기의 양심이라 불리는 카뮈의 작품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광복 후 최초의 프랑스어 사전인 《불한소사전》과 《엣센스 불한사전》 등을 편찬했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아시아 최초로 번역해 한국의 프랑스 문학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불문학자 고(故) 이휘영 서울대 교수가 원전을 직접 번역한 작품이다. 책의 말미에는 변광배(한국외국어대학교 교양대학) 교수의 깊이 있는 해설을 실어 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방인》에서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했던 카뮈는 《전락》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 인간의 반응과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이러한 잘못은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목차
전락
작품 해설 – 카뮈의 《전락》: 참회와 심판의 아이러니(변광배)
알베르 카뮈 연보
○ 저자소개 :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출생하였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초등학교 시절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한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6세가 되던 때부터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방인』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만 29세이던 1942년 이 소설을 발표한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라 평가받는 『이방인』에는 살인 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으로,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부조리에 대한 추론을 시작으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등 철학적 에세이를 엮은 『시지프의 신화』는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벌로 큰 돌을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를 무한정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죄를 모티브로 하여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측면을 명쾌하게 분석한 철학 에세이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그 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 즉 감옥 속의 인간을 상징한다. 카뮈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모순에 찬 삶 평온한 삶 위에 덮친 모순과 허망, 즉 부조리 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낙관적 기대 없이 묵묵히 그 허망과 맞서서 대결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알베르 카뮈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책은 『반항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카뮈의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성찰을 담은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반항하는 인간』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카뮈의 대표적인 시론(試論)이다. 1951년 출간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했던 이 책에서 카뮈는,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철학적·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 외에도 『적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 역자 : 이휘영
소르본대학교 문학부에서 D.S.C.F. 학위를 획득했으며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광복 후 최초의 프랑스어 사전인 《불한소사전》과 《엣센스 불한사전》 등을 편찬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아시아 최초로 번역했으며, 카뮈의 《페스트》, 《안과 겉》, 로맹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사전꾼들》, 르 클레지오의 《홍수》, 《카르멘》, 《독서론》, 《회색 노트》, 《암야의 집》 등을 번역했다.
○ 책 속으로
내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정상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내 천성을 만족시켜주었습니다. 직업 덕분에 이웃 사람에게는 도통 신세를 지는 일 없이 늘 친절을 베풀어주는 편이라 그들에 대한 불쾌감도 없었습니다. 내 직업은 나를 판사와 피고 위에 서게 하여, 오히려 내가 판사를 재판하고 그로 하여금 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했지요. 그러한 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벌받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판결과도 관련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재판정 무대 위가 아니라 천장 어느 곳에 있었던 겁니다. 마치 극 중에 이따금 기계장치로 내려져 줄거리에 변화를 일으키고 뜻을 부여하는 신(神)과도 같았지요. 어쨌든 높은 데서 산다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우러러보이고 존경받는 유일한 방법임에 틀림없습니다. — p.28
별로 중요할 것 없는 이야기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일을 잊어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게 중요합니다. 나에게는 그러나 변명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대항하지도 않고 얻어맞았지만, 나를 비겁하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뜻하지 않은 일격이었던 데다가, 양쪽에서 대드는 바람에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또 클랙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명예를 저버리기나 한 것처럼 나는 불행했습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군중의 비웃는 눈길을 받으며 차에 오르던 내 꼴이 자꾸만 눈앞에 보였어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 내가 매우 말쑥하게 푸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만큼 군중은 더 좋아했습니다. ‘얼간이’라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그런 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 p.55쪽
그날 밤 나는 센 강 왼쪽 기슭으로 해서 집으로 가느라고 퐁루아얄을 건너려던 참이었습니다. 자정이 지나 한 시였는데, 가랑비라기보다 차라리 이슬비 같은 비가 내려서 드문 인기척마저 흩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 친구와 막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었고, 필시 그 여자는 벌써 잠들어 있었을 겁니다. 좀 흐리멍덩한 기분으로 걷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몸은 가라앉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처럼 흐뭇한 피가 전신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난간에 허리를 굽히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 뒤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정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였어요. 거무스름한 머리와 외투 깃 사이로 잔득하게 젖은 목덜미가 드러나 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 p.71
나는 연극을 뒤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세인들의 그 호평을 파괴해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건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모두가 상냥스럽게 “당신 같은 사람은……” 하고 말했는데, 그러면 나는 파랗게 질려버리곤 했습니다. 그들의 존경은 일반적인 것이 못 되었기에 나는 받고 싶지 않았어요. 나 스스로가 그 존경에 동감하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일반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평판이니 존경이니 하는 모든 것을 비웃음의 외투로 덮어버리는 편이 차라리 나았습니다. 나는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어디서나 내세우던 허울 좋은 마네킹의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을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기 위해서, 그것을 부수고자 했던 겁니다. — p.95
나는 모든 사람의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초상화를 만들어냅니다. 말하자면 그건 하나의 가면인데, 사육제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아주 흡사하지요. 여실하면서도 단순화된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이것 보게,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녀석인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저녁처럼 초상화가 다 되면, 나는 그것을 보이고 비탄을 금치 못하며 “이것이 내 꼴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논고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동시대인들에게 보이는 초상화는 거울이 됩니다. — p.139~140
○ 출판사 서평
《전락》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 작품은 운하와 회색빛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파리의 전직 변호사였던 클라망스가 끝없이 늘어놓는 ‘계산된 고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덕망 있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항상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닌 채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또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요컨대 파리에서 변호사로서 ‘양심상의 평화’를 만끽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클라망스가 파리에서 누렸던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만족스러웠던 삶과 ‘양심상의 평화’는 센 강의 퐁데자르를 건너던 중 듣게 된 정체 모를 웃음소리로 인해 급변한다. 그에 따르면 이 웃음소리를 들었던 순간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웃음소리는 그가 파리에서 직접 겪었던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문제의 웃음소리를 듣기 2~3년 전에 센 강의 퐁루아얄 위에서 이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굽어보고 있던 한 젊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 젊은 여자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지만 곧 이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 소리와 이 여자의 비명이 잦아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결국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고 판단하고 길을 계속 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후일 변호사 클라망스의 명성을 더럽히는 얼룩이자 오점이 되고 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어린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퐁데자르 위에서 들었던 정체 모를 웃음소리는 바로 그들로부터 오는 비난어린 심판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그는 ‘정상’에서 ‘지옥’으로 ‘추락(chute)’을 점차 경험하게 된 것이다.
–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통해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에 보이는 반응과 태도이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잘못이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할 몫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카뮈가 《전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실제로 카뮈는 《전락》 에 “우리 시대의 영웅(Un heros de notre temps)”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참회자’의 자격으로 자신을 먼저 심판대에 올려 심판하고 참회하는 클라망스, 그리고 ‘재판관’의 자격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자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면서 그들에게 ‘초상화-거울’을 내밀면서 반성을 단호하게 촉구하는 클라망스는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불려 마땅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