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정의 없는 평화 없고, 용서 없는 정의 없다
장 바니에 / 다른우리 / 2013.5.15
장 바니에의 ‘인간되기’에 이어 ‘정의 없는 평화 없고, 용서 없는 정의 없다’는 여전히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자극하는 글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자신을 돌아보도록 권유하는 지침서이다.
본서는 여전히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자극하는 글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자신을 돌아보도록 권유하는 지침서이다.
본서는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웃과 함께 평화를 찾고 삶을 성숙시키는 방법을 울리들에게 알려준다.
저자는 평화 찾기를 방해하는 개인, 공동체, 국가 등이 지닌 대립과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 목차
글을 시작하며
1. 평화를 찾는 첫걸음
경계를 허물고 장벽을 넘기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라
소외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의 인간
가족 간의 갈등 해소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
자유를 찾는 여정
2. 변화의 필요성
변화하는 곳에서 얻는 평화
3. 사람 사이의 장벽 넘기
인간관계의 틀 깨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
위험에 맞서는 용기
용서하고 사랑하기
진정한 자유 찾기
4. 우리 안의 장벽 넘기
내 안의 평화 만나기
정화된다는 것의 의미
5.평화 찾기
펑화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평화의 사람
글을 마치며
주석
옮긴이의 글

– 저자소개 : 장 바니에 (Jean Vanier)
장 바니에 (Jean Vanier, CC, GOQ, PhD, 1928년 9월 10일 ~ 2019년 5월 7일)는 전 캐나다 총독인 조지 바니에의 아들이며,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국제적 공동체인 라르슈(l’Arche)의 설립자이다.
13세의 나이에 영국왕립해군대학에 입대하여 8년간 복무한 뒤, 여러 수도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토론토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교수로 재직하다, 프랑스의 정신요양원을 방문한 뒤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적장애인 두 사람과 함께 라르슈를 세웠다.
현재 라르슈는 30개국에 100곳이 넘는 공동체가 설립된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또한 마리 엘렌느 마티유(Marie-Helene Mathieu)와 함께 믿음과 빛(Faith and Light) 공동체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믿음과 빛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 가족, 친구들을 불러모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믿음과 빛도 전세계 75개국에 1,300여 곳의 공동체가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인간 되기』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희망의 사람들 라르슈』 『사랑에 사랑을 더해가는 이야기』 『공동체와 성장』 『두 세계 사이의 하느님 나라』 『장 바니에의 우울증 편지인간』 『눈물샘』 『정의 없는 평화 없고, 용서 없는 정의 없다』 『장 바니에의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전』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글을 시작하며
지난 38년간 라르슈(L’Arche,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제적공동체)에서 살아온 지적 장애인들은 평화와 갈등에 대한 나의 사고를 탄탄하게 형성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평화 만들기를 위해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반, 나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려고 영국 왕실 해군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다가 평화와 자유를 위하는 또 다른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1950년에 해군을 제대했습니다. 사람들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성과 사랑을 더 심화시키면서 그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1964년 라르슈 공동체의 설립은 그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실행에 옮기는 시작은 집 없는 이들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을 존중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약자들과 함께 평화의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내 삶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격한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기에 초기 공동체에서는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폭력을 다루는 것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숙고는 국가와 인종 간의 정치적 평화협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내가 직접 접하는 사람들의 신뢰와 평화 안에서 성장한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 가스실에서 살해당한 네덜란드계 유대 여인 에티 힐섬(Etty Hillsum)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전쟁 이후 두 종류의 급류가 터져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나는 사랑과 친절의 급류이고, 다른 하나는 증오의 급류이다. 나는 이 증오와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구절이 진정 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가슴속에 늘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에티의 일기는 삶의 회고, 영적 성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에 관한 토로입니다. 어떤 종교적 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영적 체험과 신비한 경험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우리 시대의 평화에 대해서 현재의 사회적 양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계몽할 수 있는 대단한 예언자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그녀의 지혜와 사랑은 그녀와 유대인 친구들이 가장 어둡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낼 때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인종 말살의 폭력에 의해 억압받고 뭉개지는 사냥감이자 표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계획되었던 유대민족 대학살은 아직까지 인류 역사에 가장 참담했던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는 희망과 평화의 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배울 수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9ㆍ11 테러 이후의 불안과 갈등 속에서 살더라도 결코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먼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희망과 평화의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사랑과 친절의 급류를 터뜨릴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 서문 중에서
가진 자들은 변화를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힘을 증대하고 유지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평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예절과 정중한 태도, 법을 존중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평화의 시작 단계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내면에 있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차츰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강자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어집니다.
평화는 폭력과 거부의 쇠사슬이 끊어지고, 약자들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사랑 받고 존중 받을 때에만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는 갈등을 억압하거나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존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대화하는 일입니다.
마음 대 마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때 비로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진정한 만남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존경할 때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던 두터운 장벽에서 걸어나올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우리는 모두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장 바니에 / 글을 시작하며
지난 38년간 라르슈(L’Arche,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제적공동체)에서 살아온 지적 장애인들은 평화와 갈등에 대한 나의 사고를 탄탄하게 형성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평화 만들기를 위해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반, 나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려고 영국 왕실 해군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다가 평화와 자유를 위하는 또 다른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1950년에 해군을 제대했습니다. 사람들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성과 사랑을 더 심화시키면서 그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1964년 라르슈 공동체의 설립은 그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실행에 옮기는 시작은 집 없는 이들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을 존중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약자들과 함께 평화의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내 삶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격한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기에 초기 공동체에서는 폭력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폭력을 다루는 것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숙고는 국가와 인종 간의 정치적 평화협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내가 직접 접하는 사람들의 신뢰와 평화 안에서 성장한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 가스실에서 살해당한 네덜란드계 유대 여인 에티 힐섬(Etty Hillsum)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전쟁 이후 두 종류의 급류가 터져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나는 사랑과 친절의 급류이고, 다른 하나는 증오의 급류이다. 나는 이 증오와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구절이 진정 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가슴속에 늘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에티의 일기는 삶의 회고, 영적 성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에 관한 토로입니다. 어떤 종교적 교육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영적 체험과 신비한 경험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우리 시대의 평화에 대해서 현재의 사회적 양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계몽할 수 있는 대단한 예언자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지혜와 사랑은 그녀와 유대인 친구들이 가장 어둡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낼 때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인종 말살의 폭력에 의해 억압받고 뭉개지는 사냥감이자 표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계획되었던 유대민족 대학살은 아직까지 인류 역사에 가장 참담했던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는 희망과 평화의 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배울 수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9ㆍ11 테러 이후의 불안과 갈등 속에서 살더라도 결코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먼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희망과 평화의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사랑과 친절의 급류를 터뜨릴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제병영 / 옮긴이의 글
장 바니에의 『인간되기』에 이어 『정의 없는 평화 없고, 용서 없는 정의 없다』는 여전히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자극하는 글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자신을 돌아보도록 권유하는 지침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지 역시 순화되어야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반쪽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 평화를 위한 행진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에 전쟁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회 안에서 우리가 맺어 가는 인간관계 안에서도 이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념을 추구하면서 서로가 적대화 되어가는 현 한국사회의 실상에 이 책은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되기』 뿐만 아니라 『정의 없는 평화 없고, 용서 없는 정의 없다』도 그냥 책을 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씹고 씹어서 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에게 엄청나게 도전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배워 나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되고 평화를 이룩하는 것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끊임 없이 이타적인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역자로서 이 책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