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질 들뢰즈 / 문학과지성사 / 2004.3.18
– 라이프니츠의 과학과 철학 세계와 바로크의 근친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주름’이라는 특수한 형상 속에서 분석한 책
이 책에서 들뢰즈는 우리 시대의 인간적 이성, 계몽적 이성이 허물어져버릴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또한 바로크의 두 층, 즉 자연과 정신, 신체와 영혼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은 보다 많은 주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언하는 듯한 짧은 명제로 이루어진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단편들은 바로크의 영토에 뿌려지고 또 뿌려져 풍요로운 숲을 이룬다.
○ 목차
제1부 주름
1장 물질의 겹주름
2장 영혼 안의 주름
3장 바로크란 무엇인가
제2부 포함
4장 충족 이유
5장 공존 불가능성,개체성,자유
6장 사건이란 무엇인가
제3부 신체를 갖기
7장 주름들 안의 지각
8장 두층
9장 새로운 조화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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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질 들뢰즈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페르디낭 알키에, 조르주 캉길렘, 장 이폴리트 등을 사사했다. 1969년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파리8대학 철학과의 철학사 주임교수가 됐고, 같은 해 평생의 철학적 동지였던 정신분석의이자 공산주의자인 펠릭스 과타리를 만났다. 199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동일성과 초월성에 반하는 ‘차이’와 ‘내재성’의 사유를 통해 기존 철학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고, 경험론과 관념론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하여 ‘초월론적 경험론’의 지평을 제시했다.
또한 니체적 관점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생성과 긍정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천철학의 향방을 제안함과 동시에 예술적 창조의 고유성을 철학적 개념의 생성 원리로 끌어들인 독창적인 예술철학적 작업들을 개진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 『베르그송주의』 『차이와 반복』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의미의 논리』 『시네마 1: 운동-이미지』 『시네마 2: 시간-이미지』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등이 있으며, 펠릭스 과타리와 함께 『앙띠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썼다
– 역자 : 이찬웅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들뢰즈에 관한 연구로 프랑스 리옹2-뤼미에르 대학에서 영화학 석사, 그리고 리옹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논문으로 『들뢰즈의 사유에서 신체, 기호 그리고 정서』가 있으며,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엔조 파치의 『어느 현상학자의 일기』를 번역했다. 논문으로 「들뢰즈의 이접적 종합 : 신의 죽음 이후 무엇이 오는가?」 등 프랑스 현대철학과 미학에 관한 다수의 글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 책 속으로
나는 명석하고 구별되는 표현 지대를 갖는다. 왜냐하면 나는 원초적인 독특성들, 나에게 운명으로 부여된 잠재적인 이상적 사건들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연역이 도출된다: 나는 신체를 갖는데, 이는 내가 명석하고 구별되는 표현 지대를 갖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가 명석하게 표현하는 것은 때가 되면 내 신체와 관계하게 되며, 보다 가까이에서 내 신체, 주위, 상황 또는 환경에 작용하게 된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20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라 할 만큼 우리 시대의 사상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1988년에 발표한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LE PLI, LEIBNIZ ET LE BAROQUE』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과학과 철학 세계와 바로크의 근친성에 주목하면서 이를‘주름’이라는 특수한 형상 속에서 분석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듯이 들뢰즈는 『베르그송주의』 『니체와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차이와 반복』 등의 여러 저작을 통해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와 같은 선대의 철학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여러 저작들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들뢰즈는 “맨 처음 저는 플라톤과 흄, 그리고 라이프니츠를 읽으면서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영화감독이 된 그의 딸은 들뢰즈 사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열렬한 라이프니츠주의자였습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들뢰즈가 철학사에서 어떤 여행을 했다면, 그리고 그 여정을 추적해본다면, 의외의 사실처럼 들리겠지만, 그 처음과 끝은 라이프니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연대기적인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들뢰즈가 펼쳤던 사유의 영토들, 즉 단 하나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다양성, 일의적 존재의 끊임없는 생성, 자연학과 형이상학의 상호 합치, 무한히 긍정하는 철학의 정신, 오직 창조만을 최고의 활동으로 갖는 존재의 본성, 이 모든 것이 라이프니츠에게서 예감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우리 시대의 인간적 이성, 계몽적 이성이 허물어져버릴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고는 무언가를 진단하고 재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바로크’를 요청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바로크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볼 수 없이 분해와 조립의 무한한 가능성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는 ‘카오스모스’로 존재하며 많은 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름 잡음과 펼침, 그리고 다시 주름 잡음의 과정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 또한 마치 미궁과 같아서 미궁을 이루는 무수한 갈래의 미로처럼 여러 방식으로 접혀 있다고 본다. 여기에 무한히 자기 확장 하며 무한히 열려 있는 체계로서의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서양 철학사에는 유명한 두 개의 원뿔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베르그송의 원뿔과는 다른 원뿔을 만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원뿔의 이미지를 통해 신체 경험의 유동성과 영혼의 고귀한 단일성이 조화된다는 점을 훌륭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원뿔이 넓은 밑면을 가질수록 높은 꼭짓점을 갖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존재론적 상황과 실천적인 함의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의 근친성이 놓여 있다. 물결과 흐름으로 넘실대는 물질의 바닥으로부터 사유와 자유를 품은 정신의 꼭짓점으로 솟아오르는 것이 바로크의 고유한 이미지다. 바로크의 예술은 이 원뿔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혼돈과 소용돌이를 묘사한다.
그러므로 바로크라는 낯선 말은 별다른 의미가 아니라, 같은 자연-바닥 안에서 신체로 소통하며 동시에 유일한 세계를 자신의 영혼-꼭짓점 안에 구축해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들뢰즈는 바로크의 두 층, 즉 자연과 정신, 신체와 영혼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은 보다 많은 주름이라고 말한다.
들뢰즈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철학이 햇빛으로 가득한 한낮의 이미지라면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별빛으로 반짝이는 밤하늘의 이미지다. 라이프니츠의 우주 안에는 무한히 많은 점들의 빛과 노래로 가득하다. 형이상학적인 점들 또는 모나드들이 자기 자신을 펼치는 것은 그것이 균형의 상태가 아니라 성장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일그러진 진주,’ 즉 바로크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바로크의 진주는 단일체지만, 어떤 불규칙성, 불균질성을 함축하는 단일체다. 그러므로 그 말은 이미 춤추는 원자, 싹트는 씨앗, 주름 잡힌 모나드를 상징한다.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는 철학서 그 이상이다. 이는 『천 개의 고원』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하나의 철학(라이프니츠)이 어떤 문화(바로크) 안에서 완전히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이중의 목적을 갖는다. 우선,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독단론적인 이미지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획기적인 시도가 이루어진다. 단언하는 듯한 짧은 명제로 이루어진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적 단편들은 바로크의 영토에 뿌려지고 또 뿌려져서 풍요로운 숲을 이룬다.
또한 이 책에서 시도한 들뢰즈의 작업은 현대적 환경에서 새로운 사유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예비적이고 탐색적인 성격을 갖는다. 17세기의 라이프니츠가 베르니니와 함께 바로크 건축 앞에 마주 서 있다면, 이제 들뢰즈는 보르헤스, 화이트헤드, 불레즈와 같은 20세기의 독창적인 사상가, 예술가들로부터 철학의 새로운 환경과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철학의 높이로 상승시켜간다. 모든 새로움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우리는 대립하기보다는 연대하고 전진해가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주름』의 끝을 맺었다.
“우리는 여전히 라이프니츠적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이므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들뢰즈의 저서들이 많이 번역 소개된 바 있다. 가히 들뢰즈 붐이라 할 만한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들뢰즈의 사상과 그가 원천으로 삼은 선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 출간되는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는 단순한 들뢰즈의 주저를 소개하는 차원에서뿐 아니라, 들뢰즈 철학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프랑스어판 소개 글
주름은 언제나 예술 안에 있었다; 그러나 바로크의 고유한 점은 주름을 무한하게 실어 나른다는 점이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전형적인 바로크라면, 그것은 모든 것이 스스로 접고, 펼치고, 다시 접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주제는, 문도 창도 없는 “모나드”인 영혼, 그래서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모든 명석한 지각을 끌어내는 영혼이라는 주제이다: 유비적으로 말해본다면, 그것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로크 성당의 내부와 뒤섞여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빛은 안의 관찰자가 지각할 수 없는 열린 틈을 통해서만 도달한다; 이처럼 영혼도 어두운 주름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적인 네오-바로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주름의 역사를 모든 예술에 걸쳐 추적해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름에 따른 주름,” 여기에는 말라르메의 시와 프루스트의 소설, 또한 미쇼의 작품, 불레즈의 음악, 한타이의 회화가 있다. 그리고 이 네오-라이프니츠주의는 끊임없이 철학에 영감을 불어넣어왔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